지금으로부터 10여 전의 일이다. 은행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기다리는 동안 객장(客場) 안에 준비해 놓은 주간지를 보다가 '성업(盛業) 중인 사혼 예식장(死婚禮式場)'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의 내용은 서울 우이동 도봉산 기슭에 죽은 처녀와 총각의 혼인을 주선하여 주고, 식을 올리는 사혼예식장이 있는데, 성업 중이라고 하면서 허름한 건물의 사진까지 실려 있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사혼(死婚)의 민속이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음을 알았다. 주간지는 일반 독자들의 흥미 위주로 제작되기 때문에 기사 내용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기도 하고, 과장(誇張)하여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기사는 사혼의 민속이 요즈음에도 행하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어서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 후 사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내가 만난 무당 한 사람은 몇 차례 사혼을 주관해 주었다고 하였다.

  사혼은 죽은 사람의 영혼끼리의 혼인을 뜻하는 말로, '명혼(冥婚)'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한국인의 영혼관(靈魂觀)을 바탕으로 하여 생긴 민속이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고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육신(肉身)과 영혼(靈魂)의 결합으로 본다. 이에 의하면 육신은 형체가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可視的) 존재인데, 얼마 후에는 죽어야 하는 유한(有限)한 존재이다. 영혼은 형체가 없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불가시적(不可視的) 존재인데,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존재이다. 이러한 육신과 영혼이 결합되어 있는 상태가 삶이고, 육신에서 영혼이 벗어난 상태가 죽음이다. 육신은 이승에서 영혼이 거처하는 집이다.

  영혼은 편의상 생령(生靈)과 사령(死靈)으로 나눌 수 있다. 생령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는 영혼이고, 사령은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육신을 벗어난 영혼이다. 생령의 존재를 말해 주는 자료로는 [혼(魂)쥐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아내가 낮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코에서 콩알 만한 하얀 쥐가 들락날락하다가 방바닥으로 내려선 다음,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르며 쥐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얼마 후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 꿈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쥐의 행동과 일치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내가 잠자는 남편의 코에서 나온 작은 쥐를 자막대기로 때려서 죽였더니,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려 그 여자는 과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의 몸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는데, 그 영혼은 잠잘 때에 잠시 육체를 벗어나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령은 선령(善靈)과 악령(惡靈)으로 나눌 수 있다. 선령은 수명대로 살다가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내세(來世)에 가서 평안히 지내는데, 가끔씩 세상에 나와서  자손이나 친척·친지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악령은 비명횡사(非命橫死)한 사람의 영혼으로, 생전의 원한이 남아서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힌다. [아랑 전설]이나 고소설 [장화홍련전]·[김인향전]에서 사또 앞에 나타나 원한을 풀어줄 것을 청원하는 영혼은 비명에 죽은 원한을 풀지 못하여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떠도는 처녀의 영혼이다.

  악령의 대표적인 예는 시집·장가를 가지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 '총각 귀신(몽달귀신)'이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죽어 시집·장가도 가지 못한 한(恨) 때문에 가족들에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히 행복하게 사는 옛 친구나 친척에게 나타나 이들을 못살게 군다고 한다. 그래서 전에는 처녀나 총각이 죽으면, 네 갈래 길의 가운데를 파고 이들의 시신을 엎거나 세운 다음, 그 위에 가시를 얹고 흙을 덮어 평평하게 해 놓아 오가는 사람들이 밟고 다니도록 했다고 한다. 이것은 한을 품고 죽은 처녀나 총각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떠도는 것을 막기 위해 행한 비정한 매장법(埋葬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 하여 이들의 한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이들의 떠돌음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이들의 영혼을 혼인시키는 사혼이었다.   

  사혼은 전국적으로 행하여 졌는데, 정혼(定婚)하는 과정이나 예식의 진행 절차는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맨 먼저 죽은 처녀나 총각의 가족이나 친척이 중매쟁이이게 적당한 혼처(婚處)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 중매쟁이는 무당인 경우가 흔하다. 부탁 받은 중매쟁이는 이들의 나이를 알아서 궁합을 보아 중매를 서는데, 이들의 나이는 죽은 지 몇 년이 되었건 간에 죽을 때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혼처가 정해지면, 예식을 맡은 무당은 택일(擇日)을 하고, 신랑과 신부의 인형을 준비한다. 신랑과 신부의 인형에는 각각의 사주(四柱)를 써서 가슴에 붙이고 옷을 입힌다. 옷은 그 사람이 살았을 때에 입던 옷이 있으면 그 옷을 가져다 입히고, 없을 때에는 새 옷을 마련하여 입힌다. 준비가 되면 양가의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해원(解寃)굿을 한다. 해원굿이 끝나면 신랑 인형에는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신부 인형에는 원삼 족두리를 입히고 혼인굿을 한다. 혼인굿을 마치면 신방을 차려 이들이 한 이불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한 다음, 이들을 한 곳에 묻는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총각과 처녀로 죽은 한을 풀고, 저승으로 가서 함께 편안히 거하게 된다. 절에서 스님의 주관으로 하는 경우에는 불교식으로 진행한다.

  사혼에 의해 맺어진 사돈끼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낸다고 한다. 살아 있는 아들과 딸에 의해 맺어진 사돈의 경우에는 아들과 며느리(또는 딸과 사위)가 금실 좋게 살 때에는 사이가 좋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자연히 그 부모들의 관계도 나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혼에 의해 맺어진 사돈의 경우에는 죽은 아들과 며느리(딸과 사위)의 금실이 나빠져 속을 썩일 일이 없고, 참척(아들과 딸이 앞서 죽음)을 당한 슬픔과 고통을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의좋게 지낸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상공에서 격추되어 많은 사람이 불의의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고, 괌도에서 사고를 당하여 많은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불행한 일도 있었다. 두 사고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때 그 비행기에 탔다가 세상을 떠난 처녀와 총각의 영혼을 혼인시킨다는 방송과 신문의 보도가 있었다. 그 기사의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두 사람이 서로 사귀던 사람들이겠거니 하였다. 그러나 그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니, 두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대한항공 직원의 중매로 사혼을 한 경우도 있고, 혼인을 약속한 사람들이 예식을 올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므로 양가에서 협의하여 사혼예식을 한 경우도 있었다. 그보다 몇 년 전에도 겨울 산행을 하다가 눈사태가 나서 죽은 남녀 대학생이 사혼을 하였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었다. 그 때 사혼을 한 젊은이 역시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각각 산행을 하다가 불행을 당한 사람들인데, 어느 친지가 중매를 서서 사혼을 하였다고 한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에 100여 명의 어른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자기 둘레에서 사혼하는 것을 보았거나, 들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였더니, 20여 명이 손을 들었다. 이것은 지금도 사혼이 행하여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요즈음에도 사혼이 행하여지고 있는데, 이 일이 눈에 뜨이거나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것은 사혼을 할 때 청첩장을 돌려 널리 알리지 않고, 아주 가까운 친족만 모여 하기 때문이다.

  사혼 민속의 시작은 처녀나 총각 귀신한테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산 자의 이기심(利己心)의 작용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죽은 자의 한을 풀어줌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돌지 아니하고, 저승으로 가서 편안히 거하게 해 주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산 자와 죽은 자를 확연히 구별하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우리 민족의 심성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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