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는 재미있는 도깨비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온다. 도깨비 이야기에는 도깨비불을 본 이야기, 도깨비와 씨름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도깨비를 만나 소원을 성취하고 부자된 이야기, 거짓말을 했다가 도깨비한테 혼난 이야기 등 많이 있다.
 
  도깨비 이야기는 어른들도 좋아하지만, 어린이들도 매우 좋아한다. 지금까지 나온 360여 권의 전래동화집에 여러 번 수록된 이야기 100화를 뽑아 수록 빈도수를 조사해 보니, [도깨비방망이], [도깨비감투], [혹부리영감] 등이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 준다.
 
  도깨비는 신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귀신들과는 달리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도와준다, 도깨비는 거짓말 한 사람, 탐욕스런 사람을 골탕먹이고 벌을 주기도 하지만, 착한 사람을 해치는 일은 없다. 그래서 한국인은 어린 시절에 도깨비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고, 도깨비와 만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한국인과 친근한 도깨비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깨비는 '돗가비', '도채비' '독갑이', '귓것', '망량(  )' 등으로 불리는데, 제주도에서는 '영감'·'참봉'이라고 부른다. 도깨비는 15세기에 쓰여진 {월인석보}나 {석보상절}에는 '돗가비'로 표기되어 있다. 국어학자의 해석에 의하면, 돗가비는 '돗'과 '아비'의 합성어인데, '돗'은 '도섭'을 뜻한다고 한다. '도섭'이란 능청맞고 수선스럽게 변덕을 부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돗가비'는 '돗아비'에 'ㄱ'이 첨가된 것으로, '수선스럽고 능청맞게 변덕을 부리는 아비'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도깨비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어원 해석이어서 흥미롭다.

  도깨비에 관한 문헌 기록으로 오래된 것은 {삼국유사}의 [도화녀와 비형랑] 이야기이다. 신라 25대 진지왕의 영혼이 죽은 뒤에 살았을 때 좋아하던 도화(桃花)를 찾아가 7일 간 교혼(交婚)한 뒤에 비형(鼻荊)을 낳았다. 26대 진평왕이 그를 데려다 대궐에서 기르고 집사 벼슬을 주었는데, 그는 밤마다 나가서 도깨비들과 어울려 놀다가 새벽 종소리가 나면 들어오곤 하였다. 진평왕이 이를 알고 비형에게 신원사 북쪽에 있는 내에 다리를 놓으라고 하였다. 비형이 도깨비들을 데리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으니, 이를 '귀교(鬼橋)'라고 하였다. 또, 진평왕이 비형에게 도깨비 중에서 사람으로 출현해서 조정 정사를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고 하니, 비형은 길달(吉達)을 천거하였다. 왕은 길달에게 집사 벼슬을 주었는데, 길달은 충성스럽고 정직하였다. 길달은 흥륜사 남쪽에 문루(門樓)를 세웠는데, 이를 길달문(吉達門)이라 하였다. 뒤에 길달이 여우로 변하여 달아나니, 비형이 다른 도깨비들을 시켜 길달을 잡아 죽였다.
 
  이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夜行性)이 있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완성하거나 문루를 세울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지왕의 혼령과 과부 도화 사이에서 난 비형은 인간과 신의 양면성을 지닌 신이한 존재로, 도깨비들을 통솔하고,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도깨비의 형상에 관한 기록을 보면, 성현(1436∼1509)이 쓴 {용재총화}에는 "허리 위는 보이지 않고 허리 아래만 보이는데, 종이 옷을 둘렀고, 다리는 살이 없이 바짝 말랐는데, 검은 칠을 한 것 같다."고 하였다. 유몽인(1558∼1623)이 쓴 {어우야담}에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내는 도깨비의 장난에 시달리던 사람이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니, 놀랄 것이라고 하면서 그려 주었는데, 무서워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도깨비가 스스로 그린 모습은 머리가 두 개, 눈이 네 개이고, 높은 뿔에 입을 벌리고 이빨을 드러냈는데, 코와 입이 터져 있고, 입과 눈동자는 모두 시뻘겋더라고 하였다. 이런 모습은 삼국 시대 이래로 전해 오는 귀면와(鬼面瓦)의 모습과 비슷하다.
 
  지금 생존해 있는 어르신들 중에는 도깨비불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 도깨비불은 흐린 날이나 보슬비가 내리는 밤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자란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있는데, 궂은 날 밤이면 들판 건너 산밑에서 도깨비불이 노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어느 여름밤에 들녘 끝자락에서 불빛이 사뭇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도깨비불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도깨비와 씨름하였다는 사람도 여럿 만나보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에 어떤 사람이 장에 갔다가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해가 진 뒤에 집에 오게 되었다. 그가 마을 가까이에 있는 상엿집 근처에 왔을 때, 숲 속에서 한 장정이 나와서 씨름을 하자고 하였다. 그가 "이 밤중에 무슨 씨름이냐?"고 핀잔을 하고 지나쳐 오려고 하니까, 그 장정이 길을 막으며, "나와 씨름을 하여 이기면 집에 갈 수 있지만, 지면 집에 못 간다."고 하였다. 씨름을 시작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보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그가 잘 쓰는 왼다리감기 기술을 거니, 장정이 넘어졌다. 그가 손을 털고 오려고 하니, 장정은 한 판 더 하자고 하였다. 그는 다시 있는 힘과 기술을 다해 그를 메치고 오려고 하니, 장정은 한 번만 더 하자고 하였다. 집으로 오려고 하는데 또 씨름을 하자고 하므로 그는 그를 다시 업어 메친 뒤에 허리띠를 끌러 옆에 있는 밤나무에 묶어놓고 집으로 왔다. 이튿날 아침에 그가 허리띠를 찾으러 그 곳에 가보니, 허리띠로 밤나무에 묶어 놓은 것은 쓰다 버린 빗자루였다.   

    위 이야기에서 남자가 씨름을 한 장정은 도깨비이고, 그 본체는 빗자루이다. 그는 밤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상엿집 근처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다른 이야기에서도 도깨비를 만나는 시간은 해진 뒤이고, 만나는 공간은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고개, 서낭당 앞 등 다양하다. 도깨비의 본체로는 부지깽이, 절구공이, 키로 나타나기도 한다. 씨름을 하다 보니,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과 도깨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있는데, 조선 연산군 때 김안로가 쓴 {용천담적기}에는 좀 색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한 선비가 해진 뒤에 거리에 나섰다가 한 여인을 만났는데, 달빛에 비친 여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가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거니, 여인이 상냥하게 받아주었다. 그는 여인을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갔다. 여인의 집은 골목길을 돌아 개천가에 있었는데, 흰 담장이 둘러있는 저택이었다. 방안에 들어가 보니, 단정한 병풍과 서화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수놓은 자리와 꽃방석, 화장대와 화로 등이 세간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옷을 벗어 횃대에 걸고, 금침에 들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새벽녘에 천둥소리가 요란하여 잠을 깨어 보니, 호화저택은 간 곳이 없고 돌다리 아래에서 흙덩이를 베고, 가마니때기를 덮고 누워 있는데, 악취가 진동하였다. 옷을 찾으니, 돌 틈에 끼어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선비를 홀린 여인은 도깨비인데, 남성을 홀린 것으로 보아 암도깨비였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도깨비 이야기는 대부분 여인이 남성인 도깨비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돈도 얻어 잘사는 숫도깨비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 이야기는 암도깨비 이야기여서 흥미롭다.
 
  도깨비의 성정, 신이한 능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으로 미루고, 도깨비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만 잠깐 생각해 보자.
 
  도깨비의 정체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도깨비는 한국인이 오래 전부터 내면 깊숙이 간직해 온 자신감과 열등감, 바라는 것과 한스러움 등의 복합심리가 만들어낸 관념적 형상이다. 그래서 도깨비에는 한국인의 꿈과 낭만, 생활의 멋과 지혜, 경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 가치관 등이 복합되어 있다. 도깨비는 풍농(풍農)과 풍어(豊漁)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신앙되기도 한다. 도깨비는 먹고 마시고 춤추며 질펀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노총각이나 과부의 애인 노릇을 하기도 하며, 재물을 가져다주거나 명당 자리를 잡아 주어 잘 살게 해 준다.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다리를 놓아주거나 보(洑)를 막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사람, 의리 없는 사람, 탐욕스런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 이러한 도깨비의 성정은 한국인의 내면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라 하겠다.
          <농지개량 제185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7)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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