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예로부터 가택(家宅)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의례를 행하며 신앙하여 왔다. 이를 가신 신앙(家神信仰)이라고 한다. 가택 신앙, 가정 신앙, 집안 신앙이라고 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가신(家神)이라는 용어가 일제 강점기에 사용하던 일본식의 용어라 하여 비판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집안 신앙이나 가정 신앙이라 할 경우, 집안에 존재하는 가신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신앙하는 종교 전반을 포함하는 뜻으로 확대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가신(家神)은 가택신(家宅神)의 준말로 볼 수 있고, 집신은 가(家) 대신 집으로 쓴 것인데 익숙하지 않은 데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종전의 용어대로 가신 신앙이란 말을 많이 쓴다.  가신은 집안 곳곳에 존재하므로, 가신 신앙은 다신 신앙(多神信仰)이다. 가신에는 성주·조상·조왕·삼신·터주·업·철륭·우물신·우마신 등이 있다.

 
  성주신

  성주신은 그 집안의 으뜸 신으로, 집안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한다. 집안의 으뜸 신답게 그 자리도 그 집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집의 모양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 마루의 대들보 밑이나 상기둥의 윗부분과 같은 집안의 중심부가 성주신의 자리다.

  성주신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는 대청의 대들보 밑이나 상기둥의 윗부분에 백지, 또는 무명을 접어서 실타래로 묶거나 한지를 반구형(半球形)이 되게 만들어 붙인다.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접어 붙인 다음 실타래나 띠풀로 매고, 대청 한 편에는 성주단지나 성주독을 놓기도 한다. 

  성주신의 신체를 봉안하는 것은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한 뒤에 성주맞이굿을 하고 봉안하기도 하고, 대주(大主, 남자주인)의 나이가 7 또는 3이 드는 해에 봉안하기도 한다. 성주단지나 성주독에는 쌀이나 다른 곡식을 담는데, 이것은 농경 문화의 반영이다. 이 단지의 쌀은 주로 음력 10월 가을 추수 때 갈아넣는다. 이 속에 넣었던 곡물은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밥을 지어 가족들만 먹는다. 그 곡물을 복이 담긴 신성물(神聖物)로 여겨 이를 내보내는 것은 복을 내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신제는 설날·추석과 같은 명절에도 지내지만, 예전에는 특히 햇곡을 천신(薦新)하는 음력 10월 상달에 가신 단지에 들어있는 곡물을 갈면서 크게 고사를 지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박씨 댁 성주

 

                   충남 홍성군 갈산면 기산리 김씨 댁 성주

 

     경북 안동시 이천동 조씨 댁 성주



      조상신
  조상신은 후손을 보살펴 주는 신으로 자리는 안방의 윗목 벽 밑인데, 대체로 신체가 없다. 신체가 없이 모시는 가신을 '건궁'이라 하는데, 조상신은 건궁으로 모시는 경우가 흔하다. 조상신이 제석신(帝釋神)·세존단지 등 불교적인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각 가정에서는 명절이나 기일(忌日)에 돌아가신 조상께 제사를 지내므로, 가신을 모시지 않는 가정에도 조상신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가신으로서의 조상과 제사를 받는 조상과는 차이가 있다. 유교식 제사를 받는 조상은 서열이 명확하다. 종가(宗家)의 경우에는 집에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고, 5대 이상의 조상에게는 음력 10월에 묘에 가서 시향(時享)을 올린다. 그러나 가신으로 모시는 조상은 서열이 확연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가신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조상은 가족들에게 현몽(現夢)하거나, 현몽하기 전에 우환이 있다든지 혹은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어 그 일로 점복자를 찾아가 점을 하고, 점사(占辭)에 따라 모셔지게 된다.

  조상신으로는 주로 한(恨)이 많거나 무언가 색다르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들어앉는다. 이들은 아주 윗대 조상부터 최근에 세상을 떠난 조상에 이르기까지 가정마다 다르다.

      조왕신
  조왕신(王神)은 부엌에 있는 신으로, 그 자리는 부뚜막이다. 삼신과 더불어 육아(育兒)를 담당한다. 간혹 재산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부엌에 불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은 재산을 상징한다. 그래서 화재가 난 꿈을 꾸면 재산이 생기는 것으로 여긴다. 새로 이사간 집에 성냥이나 양초를 가지고 가는 것도 불이 타듯 재산이 불어나라는 의미가 있다. 예전에 불씨를 꺼뜨리는 며느리는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 하여 쫓아내기도 하였다. 이것은 불과 재산을 직접적으로 관련시키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조왕의 신체로는 '조왕중발'이라 하여 사기 종지에 정화수(井華水)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신체가 없는 건궁 조왕도 흔하다. 조왕중발의 물을 매일 아침 갈아 올리고, 별식이 나도 올리는 것으로 신앙 의례를 표현한다. 부뚜막은 조왕신의 자리여서 주부들이 부엌에서 일할 때 아무리 피곤해도 부뚜막에는 걸터앉지 않는다. 꼭 앉아야 한다면 바닥에 나무토막 따위를 깔고 앉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왕신은 섣달 그믐 무렵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를 찾아가서 지난 일 년 간의 일을 고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 때 각별히 말조심을 한다. 때로는 부뚜막에 엿을 붙여두기도 한다. 혹 하늘에 가더라도 옥황상제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입을 막는 것이다. 


  조왕신이 자녀들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경북 안동에서는 평소 조왕을 모시지 않는 가정에서도 아들이 군대에 가거나, 그밖에 자녀들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기면 조왕을 모셔 정화수를 올리며 기도한다. 그러다가 아들이 무사하게 제대를 하게 되면 조왕중발을 거둔다. 매우 실리적이고 공리적(功利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리성은 조왕신에 대한 신앙 뿐 아니라 우리의 민간신앙 전반에 걸쳐 공통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부뚜막 위 작은 선반에 정화수를 떠 놓는다. (왼쪽 사진은 온양민속박물관, 오른쪽 사진은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것임)



        삼신
   삼신[胎神, 産神]은 자녀의 출생·육아·성장 등을 관장하는 신(神)이다. 그 자리는 안방 아랫목이다. 신체는 삼신자루라 하여 한지로 만든 자루 속에 쌀을 넣어 아랫목 구석의 벽에 높직이 달아 매 놓는다. 또는 쌀을 바가지나 동이에 담고, 시렁을 만들어 거기에 얹어놓기도 한다. 이를 각기 삼신바가지 또는 삼신동이라고 한다.

  삼신은 일반적으로 '삼신할머니'로 통칭되고 있으나, 지역에 따라서 달리 부르기도 한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삼신을 '지앙'이라 하고, 경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세존할매'라 일컫는다. 집안에 따라서는 삼신할머니와 삼신할아버지 부부를 상정(想定)하기도 한다.

  삼신의 점지를 받아 아이가 태어나면 일곱 살 때까지 보호를 받는다. 그 후부터의 수명은 칠성신이 관장한다. 삼신은 아이를 관장하는 가신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삼신상을 차린다. 유달리 깨끗한 신이라고 생각하여 정화수만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쌀밥과 미역국, 그리고 물을 떠올린다. 또 설·정월 대보름·추석·동지 등 주요 명절에도 삼신제를 지낸다.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로 새 밥을 올리는데, 특히 삼신에게는 비린 음식을 올리지 않는다.

  삼신은 그 가계(家系)의 여자 조상이 좌정(坐定)한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때에는 현몽, 또는 점사에 따라 삼신을 모신다. 삼신은 아이 갖기를 빌며 모시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이가 있더라도 섬기는 예가 있다. 


  삼신바가지 혹은 삼신단지에 담긴 쌀은 일 년에 한 번씩 햇곡이 나면 갈아넣는다. 묵은 쌀은 집안 식구끼리만 먹으며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은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다.

        터주신
  터주는 지신(地神)이라고도 하는데 집터를 맡아보며 집안의 액운을 걷어주고, 재복(財福)을 주는 신이다. 가정에 따라서는 터주대감, 또는 터대감이라고도 한다. 터주를 상징하는 신체는 집의 뒤뜰 장독대 옆에 '터주가리'를 만들어 신체로 모신다. 터주가리는 서너 되들이 옹기나 질그릇 단지에 벼(요즈음에는 주로 쌀)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짚을 원추형으로 덮는다. 이 터주가리에 담았던 곡물은 해마다 추수 때에 갈아넣는다. 묵은 곡식은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가족들이 먹으며 복을 빈다. 가을에 햅쌀로 갈아넣을 때 메를 지어 올리는 경우도 있다.

  터주신에 대한 제의는 특별히 지신제(地神祭)를 올리는 경우가 있고, 정초나 그 밖의 명절에 떡을 한 접시 올리고, 별식(別食)이 있을 때에 한 그릇 올린다. 이것은 다른 가신에 대한 의례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업신(神)
  업신은 광이나 곳간과 같은 은밀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재복(財福)을 준다는 가신이다. 업·업왕신·업왕·업위신이라고도 하지만, 민간에서는 '업'이라는 말과 함께 '지킴이·집지킴이' 등으로 부른다.

  업신의 대상으로 구렁이·족제비·두꺼비 그리고 사람을 들고 있다. 업이 그 집을 나가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하거나,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업신은 대체로 신체가 봉안되지 않고 건궁으로 모시지만, 다른 가신과는 달리 업구렁이라든가 업족제비·업두꺼비와 같은 동물을 업신으로 상정한다. 또 사람에게 붙어 다닌다는 인업을 업신으로 삼기도 한다. 인업은 사람에게 붙어 다니면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는 신으로, 형상은 그 사람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인업과 인업을 달고 있는 사람과는 별개의 존재인데도, 그 사람 자신이 인업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업의 자리는 광·곳간과 같이 재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는 바로 업신이 재복신임을 말해준다. 업신을 대접하는 의례는 정기적으로 지내거나 필요에 따라서 수시로 지낸다. 정기 의례는 설날·추석·동지 등 주로 큰 명절에 다른 가신과 함께 올리고, 그밖에 사람 눈에 띄었을 때에는 단독으로 올리기도 한다. 업신이 눈에 띄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단지
  경북 안동·예천·풍기·상주 등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용단지를 섬긴다. 특히 안동 지역에서는 용단지 신앙이 가장 보편적인 가신 신앙이다.

  용단지는 신체(神體)의 모양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원래 용신(龍神)은 바람과 비·물 등을 관장하고 있는 신으로, 하늘과 땅을 오가는 전능한 신인데, 가신으로 모실 때에는 농경신·재산신의 성격을 띤다. 재산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는 업신 또는 터주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안동 사람들은 용단지를 터주신이라고도 하고, 업신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용단지는 용이 드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데, 용이 든다는 말은 재산이 들고 가정을 잘 수호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 자리는 곡물이 드나드는 부엌·고방, 또는 돈궤를 두는 다락 등이다. 용단지에는 쌀이나 다른 곡식의 나락을 담아둔다.

 
  용단지를 위하는 까닭은 농경신인 용신을 받듦으로써 집안의 평안과 농사의 풍작을 빌고, 집과 재물을 보살펴주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가신은 저마다 고유의 기능이 있지만, 다른 가신의 기능이 뒤섞여 있다. 가신은 대체적으로 농경신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용단지는 보다 농경성이 강하다.

        기타 가신
  위에서 설명한 가신 외에도 여러 가신이 있다. 호남에서는 터주신으로 섬기지만, 장독신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철륭'을 비롯하여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우물신', 소와 말을 지켜주는 '우마신(牛馬神)'을 섬긴다. 또 대문에는 '문신(門神)'이 있어 액살(厄煞)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변소에는 '측간신(厠間神)'이 있어 항시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가신은 대체로 집안의 평안을 돌보는 착한 신이지만, 측간신은 좀 사악한 성정이 있다 하여 우리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충남에서는 '왕신단지'라는 사나운 가신을 모시기도 한다.

  가신은 생업과 관련된 직능신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인삼 농사를 하는 경북 풍기 지역에서는 생업과 관련된 인삼신(人蔘神)을 상정하여 인삼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가신 신앙은 흔히 여성 신앙이라고도 한다. 전 시대(全時代)에 걸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시대부터 근대 초기까지도 여성은 대체로 유교적인 이념에 묶여 사회적인 제약이 많았다. 이는 가신 신앙이 여성 신앙화 할 수 있는 한 요소가 되기도 했다.

  가신 신앙에는 현실적인 고난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적 욕구, 나아가서 인간답게 살려는 욕구가 투영되어 있다. 전통 사회에서 가신 신앙은 여성들의 힘든 삶을 극복하는 심리적 기제의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여성들은 가신 신앙을 통해 현실에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최운식 외, 한국 민속학 개론(서울:민속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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