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갔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학교에 오가면서 건너다니던 냇가에 이르니, 친구들과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하고 노래를 부르며 두꺼비집짓기 놀이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우리는 두꺼비집을 다 지은 뒤에 두꺼비를 잡아다가 각기 지은 집에 넣고, 누구의 집에 든 두꺼비가 나오지 않고 오래 있는가 내기를 하기도 하였다. 우리 둘레에 많이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던 두꺼비는 민속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해 봄에는 정읍 지역의 민속을 조사하던 중에 정읍시 북면 마정리에 갔었다. 승용차를 타고 정읍에서 칠보 가는 길로 10분쯤 달리니, 4차선 도로변의 언덕에 두꺼비가 앉아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는 가로(길이) 1m 90cm, 가로 90cm, 두께 70cm, 땅에서 입까지의 높이 80 cm, 땅에서 궁둥이까지의 높이 50cm 가량 되는 자연석이다. 이 바위가 있는 곳은 풍수지리상으로 아름다운 매화꽃잎이 떨어지는 연못의 형상을 지닌 '매화낙지(梅花落地)'라고 전해 온다. 그래서 자연마을 이름을 '매타실(梅墮實)' 또는 '연지동(蓮池洞)'이라고 한다. 이 바위는 원래 칠보산 용추봉에 있었는데, 천지조화의 힘을 얻어 풍광이 좋은 이곳으로 왔다고 전해 온다. 그런데 이 바위의 꼬리 부분이 향하는 마을은 풍년이 들고, 좋은 일이 겹쳐 일어나지만, 머리가 향하는 마을은 여자들이 바람난다고 전해 온다. 두꺼비 바위가 있는 곳에서 건너다 보이는 마을은 북면 월천동, 연지동과 평촌, 태인면 태남리 장재울 등 네 마을인데, 전에는 이 마을 사람들이 몰래 두꺼비 바위의 꼬리 부분이 자기 마을을 향하도록 돌려놓곤 하였다고 한다. 그 일로 이웃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일이 있어서 몇 년 전에 북면 태곡리에 사는 정종구(남, 57세, 농업) 씨 등 몇 명이 두꺼비 바위의 머리 부분을 마을이 없는 부분으로 향하게 한 뒤에 시멘트로 고정해 놓았다고 한다.

  지난 1995년 10월에는 경남 진해시 용원동 녹산공단 조성 공사장에서 공사를 하던 중에 땅 속에 묻혀 있던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 일이 있다. 가로 10m, 세로 8m, 높이 10m 가량의 이 바위는 두꺼비가 용원 앞 바다를 향해 뛰려고 움츠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바위가 발견되자 용원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마을의 수호신이므로 훼손하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신문 기사를 보고 이곳을 찾아갔을 때는 바위를 깨는 작업이 진행되어 몇 조각으로 깨진 뒤였는데,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바위를 깨는 작업을 맡은 중장비 기사의 꿈에 두꺼비가 나타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갈 터이니 며칠 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기사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하기도 하고, 마을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도 하였다. 

  나는 이런 일을 보며 두꺼비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 민속에서 두꺼비는 족제비, 구렁이 등과 함께 집 지킴이 또는 재물을 관장하는 신을 상징한다. 지킴이란 한 집안이나 어떤 장소를 지키고 있는 신령한 동물 또는 물건을 말한다. 이 지킴이는 가신(家神) 또는 수호신의 성격을 띠는데, 재복(財福)을 관장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두꺼비나 족제비, 구렁이는 부잣집에 꾄다고 전해 온다.

  무당의 굿거리 중 대감거리에서 부르는 <대감타령>에, "부자 되게 도와주마. 장자(長者) 되게도 도와주마. 곳간도 채우고, 단지도 채워서 멍의 노적 쌓아놓을 적에 노적 더미에 꽃이 피고, 금구렁이 굽을 치고, 업두꺼비 새끼치고, 금족제비 터를 잡아 밑의 노적 싹이 나고" 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는 두꺼비가 재복을 관장하는 업신으로 나타난다.

  충북 청원군 오창에는 처녀를 구한 두꺼비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한 처녀가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두꺼비에게 자기의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주곤 하였다. 얼마 지나자 그 두꺼비는 커다랗게 자랐다. 그 마을에서는 일년에 한 번씩 당집에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해에 두꺼비를 기른 처녀가 제물로 뽑혔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가 밤에 당집에 들어가 보니, 두꺼비가 먼저 와 있었다. 한밤중에 천장에서 지네가 파란 불꽃을 뿜으며 처녀를 잡아먹으려 하자 두꺼비가 빨간 불을 토하며 지네와 싸웠다. 밤새도록 싸움을 한 두꺼비는 지네를 죽여 처녀를 구한 뒤에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 <지네장터> 설화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데, 이 이야기에서 두꺼비는 의리가 있고, 희생 정신이 강한 동물로 나타난다.
 
  두꺼비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나이 자랑>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 노루가 잔치를 베풀고, 여러 짐승을 초대하였다. 잔치에 초대받은 짐승 중 여우와 토끼, 두꺼비가 서로 어른이라면서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였다. 먼저, 여우가 나이 많음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는 천지개벽할 때 하늘에 별을 붙였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토끼는, 여우가 별을 붙이기 위해 딛고 올라간 사다리를 만든 나무가 바로 자기가 심은 나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두꺼비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여우와 토끼가 왜 우느냐고 묻자 두꺼비는, 토끼가 심었다는 그 나무로 망치를 만들다가 죽은 손자 녀석이 생각나서 운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우와 토끼는 상좌를 두꺼비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두꺼비는 의뭉스럽고, 지혜가 많은 동물로 나타난다.   

    평남 강서 고분의 천장에 있는 일월화(日月畵)의 달 속에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두꺼비를 달의 정령으로 보는 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중국 신화에는 천하 제일의 궁사(弓師) 예(羿)가 서왕모로부터 불사약을 얻어다 놓았는데, 아내인 항아(姮娥)가 이를 남편 몰래 먹고, 남편의 활에 맞아 죽을 것이 두려워 달로 도망가서 미운 두꺼비로 변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우리 나라에 전해지면서 두꺼비가 달의 정령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는 자장율사의 사리탑 전설도 두꺼비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의 사리를 보러 온 조정의 사신이 사리탑의 돌 뚜껑을 열게 하고 보니, 그 곳에 커다란 두꺼비가 앉아 있고, 그 뚜껑의 안쪽에는 뒷날 아무개 성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열 것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아무개 성이 바로 그 사신의 성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두꺼비를 신령스러운 동물, 영혼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애장왕 10년 6월에 벽사(碧寺)의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었는데, 그 해 왕의 숙부 언승(彦昇)과 아우 이찬 제옹(悌邕)이 군사를 이끌고 대궐로 들어와 왕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고 한다. 또 백제 의자왕 20년 4월에는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위에 모였는데, 그 해에 백제가 망했다고 한다. 이들 이야기에서 두꺼비는 국가에 변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알려준 동물이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에는 술이 나오는 술샘, 즉 주천(酒泉)이 있었다고 한다. 이 샘에서는 전에 술이 나왔는데, 양반이 오면 약주가, 상사람이 오면 막걸리가 나왔다고 한다. 어떤 상사람이 양반 차림으로 가서 물을 뜨니 막걸리이므로 샘물마저 사람 차별한다고 화가 나서 개를 잡아넣은 후로 술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곳을 가보니, 주천의 전설을 적은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돌로 만든 두꺼비의 입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꺼비의 입에서 물이 흐르도록 한 것은 두꺼비가 물의 저장 및 조절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전기를 사용하는 가정에는 전기의 사용량과 전압이 적정량을 초과할 때 퓨즈가 끊어지게 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두꺼비집'이라고 한다. 전에 연탄불을 피울 적에 사용하던 철판 덮개를 '두꺼비'라고 하였다. 전기 안전장치나 연탄 덮개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두꺼비가 불을 조절한다는 의식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있는 두꺼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 보면, 정읍에서 두꺼비 바위의 꼬리가 자기 마을로 오게 하려고 애쓰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 녹산공단 조성 공사 중에 나타난 두꺼비 바위를 보존해야 한다던 마을 사람들의 주장을 알 것 같다. 두꺼비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니, 자녀 갖기를 원하는 분들께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아 잘 기르라는 덕담 한 마디를 하고 끝을 맺어야겠다. 

  <농지개량 제183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5)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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