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뛰기는 예로부터 단오절에 널리 행하던 민속놀이다. 그네뛰기는 남성놀이인 씨름과는 달리 여성들 사이에서 주로 행해졌는데, 마을 어귀나 동네 마당의 큰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가지에 줄을 매고 하였다. 그네를 매기에 적당한 나무가 없을 때에는 넓은 마당에 긴 통나무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가로질러 묶은 통나무에 그네를 매었는데, 이를 '땅그네'라고 하였다. 그네뛰기는 4월 초파일 전후에 시작하여 오월 단오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네뛰기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므로, 재미와 함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네를 허공 높이 구르기 위해서는 온몸의 탄력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특히 팔 다리의 힘이 뛰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그네뛰기를 통하여 팔다리의 힘을 기르고, 온몸의 순발력과 민첩성을 기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예쁘고 화려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이 그네에 올라 하늘 높이 몸을 날려 오가는 모습은 새장에 갇혀있던 새가 풀려나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활기가 넘치면서도 아름답다. 단오에 그네뛰기 하던 모습을 민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오월이라 단옷날은 천중가절(天中佳節) 아니냐./ 수양청청 버들 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
(후렴)후여넝층 버들가지 저 가지를 툭툭 차자.
후여넝출 버들가지 청실홍실 그네 매고/ 임과 나와 올려 뛰니 떨어질까 염려로다.//
한 번 굴러 잎이 솟고 두 번 굴러 뒷이 솟아/ 허공중층 높이 뜨니 청산녹수 얼른얼른.//
어찌 보면 훨씬 멀고 얼른 보면 가까운 듯/ 올라갔다 내려온 양 신선선녀 하강일세.//
난초 같은 고운 머리 금박댕기 너울너울/ 오이씨 같은 두 발길로 반공 중에 노닌다.//
요문갑사 다홍치마 자락 들어 꽃을 매고/ 초록적삼 반호장에 자색 고름도 너울너울.//

    이 민요에는 그네뛰기의 정경은 물론 그 멋과 흥취가 잘 드러나 있다. 민요를 이야기하다 보니,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니 구름 속에 나부낀다.……한 번 구르니 나무 끝이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 아래라."고 노래한 가곡 [그네]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 노랫말에도 그네 뛰는 모습과 함께 그 멋과 흥취가 드러나는데, 예로부터 불러오던 민요의 내용과 통하는 점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중국의 경우, 그네뛰기는 북방 유목민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옛 문헌인 {형초세시기(荊礎歲時記)}에 "북방 민족이 한식날 그네뛰기를 하여 가볍고 날랜 몸가짐을 익혔다. 그 후 이것을 중국 여자들이 배웠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가지를 가로질러 맨 다음, 거기에 물감들인 줄을 매달고 선비와 부인들이 줄 위에 앉거나 서서 밀고 잡아당기며 놀았다. 이 놀이를 추천(추韆)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중국의 그네뛰기는 북방에서 시작되어 점차 남쪽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일설에는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북방의 융적(戎狄, 북방에 사는 異民族)을 친 후부터 그들의 놀이인 그네뛰기가 중국에 전해져 청명절을 전후하여 성행하였다고 한다. 당 나라 현종은 이 날 궁정에 그네를 매고 궁녀들에게 그네뛰기를 하게 하였는데. 이 놀이를 '반선녀(半仙女) 놀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그네뛰기가 중국에서 전래한 것인지, 아니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네뛰기에 관한 기록은 고려 때부터 보인다. 중국 문헌 {송사(宋史)}에는 고려 현종 때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곽원(郭元)이 "고려에는 단오일에 그네뛰기를 한다."고 하였다. 그네뛰기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문헌은 {고려사(高麗史)}인데, "단오절에 최충헌이 그네뛰기를 백정동궁(栢井洞宮)에서 베풀고, 문무(文武) 4품 이상을 초청하여 연회하기를 사흘 동안 하였다."는 기록과 최이(崔怡)가 "5월에 여러 관원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할 때 그네를 매고 무늬 놓은 비단과 채색 꽃으로 꾸몄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우왕이 "거리를 순행하고, 수창궁으로 가서 그네뛰기를 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로 보아 고려 시대에는 그네뛰기가 널리 성행하였고, 매우 호사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쓰여진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단오 날에 여염집 부녀자들 사이에 그네뛰기가 성행하였다."고 하였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항간에서는 단오절에 남자와 여자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고 하였다. {송경지(松京誌)}에는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여염집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고, 남자들은 씨름을 한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제주도에는 매년 8월 보름에 다른 놀이와 함께 그네뛰기를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하였다. {개성지(開城誌)}에는 "5월 5일에 여자들은 성장을 하고 경덕궁에 모여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만월대에 모여 씨름을 한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조선 시대에도 그네뛰기가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네뛰기에는 한 사람이 뛰는 '외그네뛰기'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뛰는 '쌍그네뛰기'가 있다. 그네뛰기 대회를 할 때에는 누가 더 높이 오르는가를 겨루는데, 높이를 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네 앞 적당히 떨어진 곳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방울을 매단 다음, 그네가 앞으로 높이 솟아오를 때 장대에 매달린 방울을 발로 차서 방울을 울리는데, 정한 횟수를 오가면서 울리는 방울 소리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여 승부를 가리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그네의 발판에 긴 줄자를 매달아 그네가 높이 올라갔을 때 그 높이를 재는 방법이다. 그네뛰기 대회를 할 때에는 푸짐한 상품도 주어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그네뛰기는 20세기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서울을 비롯하여 개성, 평양, 사리원, 수원, 남원, 김천 등에서는 대대적으로 행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에 우리 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일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국가가 총동원을 해야하는 때에 그네뛰기와 같은 한가한 민속놀이를 할 수 없다 하여 이를 금하였다. 그래서 한 동안 널리 행해지지 않다가 8·15광복 후부터 다시 전국에서 이 놀이가 부활하였다. 서울에서는 남산과 장충단 공원, 사직공원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민간 단체의 주관으로 크게 열렸다. 1956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82회 탄신 축하 기념 행사로 창경궁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이 때 일반은 개인전을, 여자 중·고생은 단체전을 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최근에 와서는 다양한 운동경기와 여가 선용 방법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네뛰기는 전처럼 널리 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주부클럽연합회에서 신사임당 기념행사의 하나로 1970년부터 매년 5월에 하는 그네뛰기 대회와 밀양의 '아랑제(阿娘祭)'와 남원의 '춘향제(春香祭)' 때에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정도이다. 

    그네는 지방에 따라 '근데, 군데, 근듸, 군듸, 근의, 군의, 구리'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추천( 韆)'이라고 한다. 고려 때 지어진 경기체가 [한림별곡]에는 "홍(紅)실로 홍(紅)글위 매요이다"라 하여 그네를 '글위'라 하였다. 그네를 조선 정조 때 이성지(李成之)가 지은 {재물보(才物譜)}에는 '근의'라 하였고, 숙종 때 신이행(愼以行)·김경준(金敬俊)이 지은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그릐'라 하였다. 고소설 {춘향전]에서는 "이애 향단아 근듸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다. 근듸줄 부뜰어라."라 하였다. 이로 보아 그네는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원래는 '근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그네는 '끈(繩)의 놀이(戱)'를 뜻하는 말이라 하겠다.

  그네뛰기는 단오에, [놋다리밟기]나 [강강술래]는 추석에 널리 행해온 여성의 민속놀이인데,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하던 조선 시대의 여성들도 이 날만은 자유롭게 외출하여 친구·친척·친지들과 함께 이들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곤 하였다. 그 중 그네뛰기는 녹음방초(綠陰芳草)가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여성들이 자연 속에서 하루를 즐기면서 체력단련도 할 수 있었으니, 민속적으로나 정서 함양·체력 단련 면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놀이이다. '그네를 뛰면 여름에 모기에 물리지 않으며 더위도 타지 않는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데, 이 말에는 그네뛰기를 하여 체력을 기르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네뛰기를 전처럼 널리 행하여 우리의 전통적 민속놀이를 계승하면서 체력도 기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농지개량 제184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6)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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