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9)>

다 같이 기도합시다예배 처음 시간이오니는 부적절한 말

 

 

  대개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간에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를 하는 순서가 있다. 대표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보면, 앞에 나가서 바로 기도의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다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적절하지 않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은 사회자가 기도 순서임을 말하여 알거나, 혹은 말하지 않더라도 주보를 보고, 기도 순서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모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뒤에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한참 뒤에 들리는 첫 말이 다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라고 한다면 조금은 당황스럽게 된다. 이러한 엇박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대표 기도자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표 기도를 맡은 사람은 이런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말고, 바로 기도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기도 중에 지금은 예배 처음 시간이오니~또는 이제 예배를 시작하오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과 성가대의 입장에 이어 사회자의 예배 시작을 알리는 말로 시작된다. 대표 기도는 예배가 시작되어 조용한 기도(묵도), 성가대의 송영(頌榮), 예배에의 부름, 찬송, 성시 교독 다음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대표 기도를 하는 사람이 지금은 예배 처음 시간이오니라고 한다면, 기도하기 전까지의 모든 순서는 예배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못 말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예배의 시종(始終)을 주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예배는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이 말 역시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꼭 하고 싶으면 이 예배를 마칠 때까지 주께서 주관하시고,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예배 시작 전에 부르는 찬송을 준비 찬송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준비 찬송이 있고, 본 찬송이 있을 수 없다. 예배 시작 전에 찬송을 부를 경우에도 준비 찬송이라 하지 말고, ‘몇 장 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송관김기창,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서울 : 예찬사, 2000.

<기독교타임즈 제450, 2006. 11. 18.>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8)>

 너무 좋아요(감사합니다/예뻐요).’는 잘못된 표현

 

   교인들 중에는 예배가 끝난 직후에 목사님께 설교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을 준 장로님께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집사님께 아이가 너무 예뻐요.”라고 칭찬의 말을 한다. 이런 말은 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쓰는데, 실은 잘못 표현한 말이다.

 

  ‘너무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 분에 넘치게/ 과도하게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이다. 따라서 이 말의 한정을 받는 말은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참외가 너무 익었다.’고 하면, ‘참외가 지나치게 익어서 먹을 수 없다./ 참외가 곯아서 먹을 수 없다.’는 말이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고 하면 날씨가 지나치게 추워서 견디기 어렵거나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위에 적은 설교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는 설교 말씀이 지나치게 좋아서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장로님, 너무 감사합니다는 장로님의 친절이나 호의가 지나쳐서 과잉친절을 하였다는 말이 된다. ‘아이가 너무 예뻐요.’는 아이가 지나치게 예뻐서 좋지 않다는 말이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過猶不及). 그러므로 앞의 말은 설교 말씀이 매우 좋았어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주 예뻐요.’라고 하면 말하는 사람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바른 표현이 된다. 교인들 중에는 목사님의 말씀에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은혜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 감당할 수 없어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런 인사는 목사님께 대한 치하라기보다는 걱정을 끼쳐드릴 말이다. 이때에는 너무 대신에 많은이나 을 넣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어른들 중에 이 꽃은 너무너무 예뻐요.’라고 하거나, ‘걔는 너무너무 잘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너무너무를 강조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첩어(疊語)에 의한 강조는 아동 언어의 특징이므로 어른들이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너무너무란 말 대신에 매우/ 아주를 넣어 쓰는 것이 좋겠다. 이 말은 너무너무 미워.’, ‘홍수의 피해가 너무너무 비참하였다.’와 같이 한정을 받는 말이 가치개념으로 보아 부정적인 것일 때에는 써도 좋다.

<참고문헌>

박갑수, 우리말의 허상과 실상,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3.

                                                                        <기독교타임즈 제448, 2006. 11. 4.>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7)>

감사(축하)드립니다’는 감사(축하)니다’로 써야 

 

  손윗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런 언어 습관이 널리 퍼져서 교인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복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감사(感謝)는 한자어로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의 뜻을 가진 명사이다. 여기에 접미사 하다가 붙어 동사가 되었다. 고마움을 나타내는 것은 내 마음의 표현이지 드리는 것이 아니다. 말씀은 드린다고 할 수 있지만, ‘감사는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손윗사람이나 하나님께 고마움을 나타낼 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드린다는 말을 넣어 말한다고 하여 공경의 뜻이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남의 좋은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인사할 때 축하드립니다하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축하역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축하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축하'란 말 뒤에 '드린다'는 말을 넣어 말한다고 하여 공경의 뜻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 감사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은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으로 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말한 의도와는 다르게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사한다는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감사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지 말고,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같은 뜻의 말이지만, 쓰이는 자리에 맞게 구별해서 써야 한다. 기도할 때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같은 말을 중복한 것이므로 적절하지 않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영광돌립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역시 옳지 않다. 이 말에서 감사영광을 받아 서술하는 말은 돌립니다’가 된다.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다. 그러나 감사는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린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은 감사하옵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해야 한다.

<참고문헌>

이송관김기창,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서울 : 예찬사, 2000.

리의도,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꼭 알아야 할 것들, 서울 : 설필, 1997.

                                                                     <기독교타임즈 제447, 2006. 10. 28.>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6)>

‘십팔 번’은 ‘애창곡’, ‘즐겨 부르는 노래’, ‘장기’로 써야

 

 

  어느 학술 발표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식사 후에 오락회가 열렸는데, 진행을 맡은 사람이 참석자에게 노래를 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는 000님이 십팔 번 ×××을 부르겠습니다.” 진행자는 십팔 번(十八番)’이란 말을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뜻으로 쓴 것 같다.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도 흔히 듣는다. 교인 몇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사람이 “000 집사님의 18번인 000장을 부릅시다.” 하고 제안하기도 한다교인들끼리 돌아가며 찬송가나 가곡, 가요를 부르는 자리에서도 십팔 번이란 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전에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 <라구요>의 가사 중에 우리 아버지 십팔번은 000이구요, 우리 어머니 십팔번은 000”이란 구절이 있다. 이 노래는 방송 전파를 타고 널리 퍼졌다. 이 말은 일부 국어사전에도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재주’, ‘가장 잘 부르는 노래’, ‘장기(長技)’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에서 들여온 관용어로, 별로 달가운 연원을 가진 말이 아니다.

 

  십팔 번은 일본어 쥬우하찌방(十八番)’을 이르는 것이다. 후지이(藤井之男)가 엮은 <언어대사전(諺語大辭典)>에 보면, 이 말은 배우 이찌까와 단쥬우로우가(市川團十郞家)에 전하는 18종의 예()가 있는데, 무릇 자랑으로 하는 일을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이찌가와 단쥬우로(1660~1704)는 이찌가와가(市川家)7세손으로, 17세기 에도(江戶) 전기에 일본 전통 희극인 가부끼(歌舞伎)의 대표적 배우였다. 그는 이찌가와가의 7대에 성공한 열여덟 가지 예()를 정리하였다. 이것이 가부끼 쥬우하찌방(歌舞伎十八番)’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쥬우하찌방이라 이르게 되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십팔 번이 된 것이다.

 

  일본 가부끼에서 유래한 십팔 번을 우리의 노래나 연희에서 그대로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래를 말할 때에는 애창곡(愛唱曲)’, ‘즐겨 부르는 노래또는 잘 부르는 노래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노래가 아닌 춤이나 연희일 때에는 장기(長技)’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불필요한 일본어는 쓰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박갑수, 우리말의 오용과 순화,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4.

박숙희, 반드시 바꿔 써야 할 우리말 속 일본말, 서울 : 한울림, 1996.

                                      <기독교타임즈 제446, 2006. 10. 21.>

 

  우리말 바로 알고 쓰기(4)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님, 어머님’

 

  요즈음 20대 청년이나 30·40대의 중년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것은 저의 아버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저의 어머님이 편찮으셔요.”와 같이 자기의 부모를 아버님·어머님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 고등학교 국어과 교사가 자기 부모를 아버님·어머님하는 동료 교사에게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그러자 동료 교사는 나를 낳아 길러주신 내 부모님을 아버님·어머님’이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 되었단 말이오?”라고 하면서 화를 내더라고 한다. 자기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드러내는 것은 좋으나, 이런 표현은 우리의 언어 관습에 맞지 않는다.

 

  몇 년 전 C 목사님 목회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식순에 그 자리에 참석한 C 목사님의 아버님께 꽃다발을 드리는 순서가 있어 아주 좋게 생각하였다. 그 순서가 되자 사회를 맡은 젊은 목사님이 다음은 C 목사님의 선친께 꽃다발을 드리는 순서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나는 C 목사님과 C 목사님의 아버님을 비롯한 여러분에게 큰 실례를 범하였다는 생각에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으로 긴장이 되어 등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서를 넣지 않음만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회를 맡은 목사님은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뜻하는 말인 선친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 역시 의외로 많다.

 

  전에는 남에게 자기 아버지를 지칭할 경우 살아계실 때에는 가친(家親)이라 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선친(先親) 또는 선고(先考)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에는 자친(慈親), 돌아가신 뒤에는 선비(先妣) 또는 현비(顯妣)라고 하였다. 남의 부모를 지칭할 경우, 아버지는 춘부장(春府丈)’ 또는 어르신(어르신네)’이라고 하고, 어머니는 자당(慈堂)’, 또훤당(萱堂)’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말을 잘 쓰지 않고, 남에게 자기의 부모를 말할 때에는 아버지·어머니라고 한다. 남의 부모를 지칭할 때에는 높이는 뜻에서 아버님·어머님이라고 한다. 여성의 경우 친정 부모를 말할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라 하고, 시부모를 말할 때에는 아버님, 어머님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말에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이르는 지칭어와 직접 부르는 호칭어의 쓰임이 다른 경우가 있다. 자기의 부모를 호칭할 때에는 집안의 관습이나 분위기에 따라 친근감이 있는 말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 자기 부모를 지칭하거나 남의 부모를 지칭할 때에는 바르게 써야 한다. 그래야 실례를 범하거나 언어 습관이 좋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참고문헌> 조선일보사국립국어연구원 편, 우리말의 예절, 서울 : 조선일보사, 1993.

                                                    <기독교타임즈 제445, 2006. 10. 14.> 에 수록한 글임.

 

우리말 바로 알고 쓰기(3)

목사가 자기를 ‘000 목사’, 아내를 ‘사모’라고 하는 것은 실례

 

  목사님이나 교우들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면, 자기 스스로를 00 목사’, ‘00 장로(권사, 집사)’라고 말하는 분이 의외로 많다. 이분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에도 00 목사입니다’라고 한다. 장로나 권사는 00 장로(권사, 집사)입니다라고 한다.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높이는 뜻에서 이름 뒤에 직명을 붙이고, 끝에 자를 붙여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부를 때에 00 사장님(부장님, 전무님, 상무님, 부장님, 과장님, 팀장님)’, ‘00 장관님(차관님, 국장님)’, ‘00 선생님(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남이 나를 부를 때에도 그렇게 불러주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의식이 교회 안에도 퍼져서 00 목사님(전도사님)’, ‘00장로님(권사님, 집사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상대방을 높여 부르려는 마음에서 생긴 것으로,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관습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말할 때에 직명을 뒤에 쓰면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되어 실례가 된다.

 

  남에게 자기를 말할 경우 직명을 밝힐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장로(권사, 집사) 00’, ‘목사(전도사) 00’라고 직명을 먼저 말하고, 그 뒤에 자기 이름을 말해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표현이 된다. 상대방이 나의 직분을 알 경우에는 직명을 생략하고 이름만 말해도 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겸손을 모르는 교만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따라서 성경을 여러 편 쓴 '바울'을 말할 때에는 '사도 바울'이라고 하지 말고, '바울 사도'라고 해야 한다. 목사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 '목사 아무개가 말하기를'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아무개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 것이 존경의 뜻을 담고 있다.

    

  몇 년 전에 어느 교파의 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젊은 목사가 단상에 올라 자기소개를 한 뒤에 가족을 소개하는데, 자기 아내를 가리켜 제 사모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총회장이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 아내를 사모라고 하는 것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사모(師母)’는 스승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러러 존경하는 스승을 아버지에 비겨 사부(師父)’라 하고, 스승의 부인을 어머니에 비겨 사모라고 한다. 그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목사나 전도사의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목사나 전도사는 신앙적으로 스승 격이니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존경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그 분의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모란 말이 목사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라도 된 양 잘못 쓰이고 있다. 그래서 목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소개하면서 제 사모입니다.’란 말을 예사로 쓰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므로, ‘제 처(아내, 내자, 안식구)입니다로 고쳐 써야 한다.

 

<참고문헌> 이송관김기창,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서울 : 예찬사, 2000.

리의도,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꼭 알아야 할 것들, 서울 : 설필, 1997.

박갑수, 우리말의 허상과 실상,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3.

박갑수, 우리말의 오용과 순화,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4.

                                                    <기독교타임즈 제444, 2006. 9. 30.>에 수록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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