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6)>

‘십팔 번’은 ‘애창곡’, ‘즐겨 부르는 노래’, ‘장기’로 써야

 

 

  어느 학술 발표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식사 후에 오락회가 열렸는데, 진행을 맡은 사람이 참석자에게 노래를 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는 000님이 십팔 번 ×××을 부르겠습니다.” 진행자는 십팔 번(十八番)’이란 말을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뜻으로 쓴 것 같다.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도 흔히 듣는다. 교인 몇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사람이 “000 집사님의 18번인 000장을 부릅시다.” 하고 제안하기도 한다교인들끼리 돌아가며 찬송가나 가곡, 가요를 부르는 자리에서도 십팔 번이란 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전에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 <라구요>의 가사 중에 우리 아버지 십팔번은 000이구요, 우리 어머니 십팔번은 000”이란 구절이 있다. 이 노래는 방송 전파를 타고 널리 퍼졌다. 이 말은 일부 국어사전에도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재주’, ‘가장 잘 부르는 노래’, ‘장기(長技)’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에서 들여온 관용어로, 별로 달가운 연원을 가진 말이 아니다.

 

  십팔 번은 일본어 쥬우하찌방(十八番)’을 이르는 것이다. 후지이(藤井之男)가 엮은 <언어대사전(諺語大辭典)>에 보면, 이 말은 배우 이찌까와 단쥬우로우가(市川團十郞家)에 전하는 18종의 예()가 있는데, 무릇 자랑으로 하는 일을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이찌가와 단쥬우로(1660~1704)는 이찌가와가(市川家)7세손으로, 17세기 에도(江戶) 전기에 일본 전통 희극인 가부끼(歌舞伎)의 대표적 배우였다. 그는 이찌가와가의 7대에 성공한 열여덟 가지 예()를 정리하였다. 이것이 가부끼 쥬우하찌방(歌舞伎十八番)’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쥬우하찌방이라 이르게 되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십팔 번이 된 것이다.

 

  일본 가부끼에서 유래한 십팔 번을 우리의 노래나 연희에서 그대로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래를 말할 때에는 애창곡(愛唱曲)’, ‘즐겨 부르는 노래또는 잘 부르는 노래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노래가 아닌 춤이나 연희일 때에는 장기(長技)’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불필요한 일본어는 쓰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박갑수, 우리말의 오용과 순화,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4.

박숙희, 반드시 바꿔 써야 할 우리말 속 일본말, 서울 : 한울림, 1996.

                                      <기독교타임즈 제446, 200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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