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들과 함께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회원의 밭농사 현장을 찾았다. 회원들은 건강 증진을 위해 먼저 서울시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잡고 있는 일자산 산행을 한 뒤에 회원이 농작물을 가꾸는 밭에 갔다. 회원이 어디에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그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천호역과 잠실역에서 보훈병원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보훈병원으로 갔다. 셔틀버스는 천호동에서는 10, 잠실에서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타야 하였다. 나는 천호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중앙보훈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랐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신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에 대한 진료와 의학적정신적 재활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보훈병원 이용자가 많다는 것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깊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여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앙보훈병원에서 만난 회원 9명은 회원의 안내로 보훈병원 뒤에 있는 일자산 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산등성이가 4km 가까이 이어지므로 일자산(一字山)’이라 하였다는 산 이름처럼 산길은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길 양편에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은 푸른빛을 더해 가고 있었다. 회원들과 삼삼오오(三三五五) 짝을 지어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대화는 참으로 정겨웠다.

 

   산길을 걸을 때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개암나무였다. 자주 가는 대모산에서 보지 못하던 개암나무가 열매를 담은 파란 주머니를 다닥다닥 달고서 뽐내며 서 있었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보던 개암나무와 부모님 산소 옆에 줄지어 서 있던 개암나무의 모습이 떠올랐다. 춘천 김유정 문학관 뒷산에서 보던 커다란 개암나무의 모습도 떠올랐다. 터키에 있을 때 흑해 연안에서 보던 개암나무숲의 모습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우리 일행은 1시간 넘게 걸은 뒤에 땀을 식히려고 일자산 등성이에 있는 쉼터의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 때 회원이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과 부침개를 꺼내놓았다. 회원은 오이를, 회원은 초컬릿 과자를 꺼내놓았다. 쉼터의 간이탁자가 갑자기 조촐한 파티의 식탁이 되었다. 회원들은 포도주잔을 높이 들어 이런 기회가 자주 있기를 빈다.’는 건배사를 줄인 구호 이기자를 크게 외친 뒤에 건배(乾杯)하였다. 산에서 부침개와 오이, 과자를 안주 삼아 마시는 포도주의 맛은 아주 좋았다.

 

   얼마를 더 걸은 뒤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2시간 이상을 걸었으니 5~6km는 족히 걸었으리라. 내려오는 길 양편에는 노란 얼굴에 하얀 꽃잎을 예쁘게 단 개망초가 주욱 늘어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산을 내려오니, 물류 창고들이 밭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낯선 곳이기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곳은 경기도 하남시 서부면 감북동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회원의 안내에 따라 물류 창고 뒤에 있는 밭으로 갔다. 거기에는 두 필지의 널찍한 밭이 있는데, 왼쪽이 회원이 농사짓는 밭이라고 하였다.

 

   밭의 입구에는 농기구와 거름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간이시설과 걸터앉을 수 있는 나무토막 등이 있었다. 200평은 족히 될 것 같은 밭에는 토마토와 가지, 고추가 튼실한 열매를 자랑하고, 상추호박오이땅콩강낭콩고구마도라지부추토란생강당귀 등이 자라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활짝 핀 백합꽃이 줄지어 서 있다. 이들은 기름진 땅에서 충분한 영영분과 적당한 수분을 섭취한데다가 햇볕을 제대로 받아 자람 상태가 아주 좋았다. 갈색을 띈 흙은 매우 기름져 보이는데, 두둑은 물론 고랑에도 잡초가 전혀 없다. 숙련된 농사꾼이 정성스레 가꾸는 밭임을 알 수 있었다. 농작물들은 주인이 자기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였다.

 

   ㅂ회원은 서울 시내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20여 년 전부터 농작물을 가꿨다고 한다.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라며 농사짓는 것을 보았기에 농작물을 가꾸는 일이 낯설지 않아서 동료들과 공동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해 왔다고 한다. 강동구 상일동이 개발되기 전에 밭을 빌려 30여 평의 밭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옮길 장소를 물색하던 중 4년 전에 지금의 밭을 얻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여러 작물의 특성을 연구하여 그에 맞는 재배법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가 가꾼 밭작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본 이곳 토박이 농사꾼들도 모두 놀라워한다고 하였다.

 

   그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천연비료를 만들어 쓰는데, 이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서 천호동 집 근처의 기름집에서 수시로 깻묵을 얻어오고, 건강원에서 건강식품을 다리고 난 찌꺼기를 얻어온다. 깻묵에 뜨물을 부어 발효시킨 뒤에 건강원에서 얻어온 한약재와 건강식품 찌꺼기를 다시 섞어 뜨물을 부어 비닐로 덮어두면 완전히 발효되어 좋은 거름이 된다. 밭에서 뽑은 풀과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 중 소금기가 없는 밥이나 과일껍질은 물론이고, 대변도 따로 받아 발효시켜 거름을 만든다. 밭 가장자리에 비닐로 덮은 둥그런 더미가 몇 개 있는데, 그게 바로 거름을 발효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든 거름은 최상의 천연비료이므로, 이를 먹고 자란 농작물은 아주 건강하다. 그래서 병충해에 잘 견디므로, 따로 농약을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몇 년을 하면 토질도 바뀌어 농작물이 잘 자라는 땅이 된다고 한다. 천연비료를 만들어 쓰는 그의 꾸준한 노력과 정성이 놀랍고 갸륵하다.

 

   나는 일행과 함께 밭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상추 줄기에 달린 잎을 따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 상추를 먹어보니, 쌉쌀하면서 고소한 맛이 유별하였다. 식당에 가서 먹거나 가게에서 사다 먹던 상추의 맛과 달랐다. 아내는 이렇게 맛 좋은 상추는 처음 먹어본다며 좋아하였다. 나는 상추를 먹으며 1주일에 45일을 거름의 재료를 비롯하여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자전거에 싣고 50분씩 달려가서 농작물을 가꾸는 교장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정년퇴임한 후에 밭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농작물의 특성에 따른 농사법을 연구하면서 정성과 땀을 기울이는 교장이 그 일을 하면서 더욱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20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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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임새는 판소리에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가 창()의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하여 삽입하는 소리로, 분위기에 맞게 좋지’, ‘얼시구’, ‘좋다’. ‘그렇지’, ‘잘한다등의 말을 말한다. 추임새는 고수뿐만 아니라 청중도 하고, 판소리뿐만 아니라 탈춤에서도 많이 한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국립극장으로 고()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박 명창이 마이크 앞에 서서 허두가를 불렀는데, 청중들이 조용히 앉아 듣기만 하였다. 박 명창은 스탠드에 걸려 있던 마이크를 빼어 들더니, “아니, 이 잡것들, 요렇게 가만히 자빠져 있으려면 뭐 하러 왔당가? 내가 소리를 잘 하면, ‘좋지’, ‘얼시구’, ‘잘한다하면서 손뼉도 치고 그래야 내가 신명이 나서 소리를 하지! 가만히 자빠져 있으려면 집에 가서 낮잠이나 자!” 하고 말했다. 이런 야유 섞인 꾸지람을 들은 청중들이 머쓱해 하자, 박 명창은 서양음악 감상회에 가서는 조용히 앉아 감상해야 하지만, 판소리 공연장에서는 추임새를 해야 창자가 신명이 나서 소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추임새의 필요성과 요령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판소리 공연장의 분위기나 감상 태도에 익숙하지 않아 조심하던 청중들이 박 명창의 설명을 들은 뒤에 적절히 추임새를 하였다. 그래서 그 날의 공연장은 아주 흥겨운 소리판이 되었다.

 

   ‘추임새란 말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느라 훌륭하거나 뛰어나다고 말하다.’의 뜻을 가진 추다또는 추어주다의 관형형에 모양, 상태, 정도를 나타내는 접사(接辭) ‘를 더한 말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리판이나 탈판의 추임새는 소리꾼이나 탈꾼의 흥을 돋우기 위해 하는 말이다. 고수나 청중이 분위기에 맞춰 추임새를 잘 하면, 판소리 창자(唱者)나 탈춤 연희자(演戱者)는 흥이 나서 더 잘 하게 된다. 그에 따라 관객도 더욱 흥이 나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추임새는 창자나 연희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관객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양편 모두를 위한 것이다.

추임새는 소리판이나 놀이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꼭 필요하다. 상대방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였을 때, 그 것을 이해하고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격려해 주면, 그 사람은 신명이 나고, 힘이 생겨 그 일을 더 잘 하게 된다. 이를 보는 사람도 덩달아서 기쁘고 즐겁게 된다. 이것은 가정이나 직장, 교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보면, <잠언> 2511절에는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라고 하였다. 그리고 <에베소서> 429절에는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경우에 알맞은 말은 남을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말이 아니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며, 칭찬과 격려의 마음을 담은 말이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으며,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면 듣는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게 되고, 하던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말은 은쟁반에 담은 금사과처럼 귀하고 예쁘며, 품위가 있고 멋이 있으며, 상대방에게 은혜가 된다. 이러한 말은 곧 판소리나 가면극에서 말하는 추임새와도 같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늘 남의 장점을 말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그 분은 오래 전에 한 직장에서 몇 년간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교수이다. 그 분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들어 이야기하고, 부족한 점이나 잘못한 일은 화제에 올리지 않거나 감싸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나는 그 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후 이를 본받아 실천하면서 살아왔다.

 

   사람들 중에는 분위기에 맞춰 칭찬하고 추임새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단점이나 잘못된 점을 들추어 꼬집기를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욕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의 말은 말하는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싫증이 나게 만든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만나기만 하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지난 일, 그 사람이 힘들 때 조금 도와주었던 일 등을 되뇌면서 그 사람을 꼬집고 헐뜯어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에 딴 생각을 하곤 하였고,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하곤 하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것만 기억하세요.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화제에 올리지 마세요. 기분 좋은 화제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자주 만나 술을 사드리겠습니다.” 하고 충고의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주 만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분위기에 맞게 하는 칭찬 즉 추임새는 상대방을 신명나게 하고, 그에 따라 나도 즐겁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남의 결점은 감싸주고, 장점을 드러내어 칭찬하는 사람이 추임새를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추임새를 잘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추임새를잘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추임새의 요령과 효과를 잘 알고 실천하면, 우리의 삶은 은쟁반의 금사과처럼 더욱 예쁘고, 품위가 있으며 풍요로워질 것이다.

   <성동문단 제14호, 서울 : 성동문인협회, 2014. pp.12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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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2014. 02. 14)에 교일산우회 회원들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입구에서 만나 독립문공원을 지나서 아파트 뒤쪽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안산 자락길표지판이 나왔다. 서울 시내의 크고 작은 산에는 쉽게 접근하여 편히 걸을 수 있는 만들어 놓고, ‘둘레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몇 군데에는 장애인 휠체어나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고, ‘자락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 말은 산자락에 있는 길이란 뜻인 듯하다.

 

   안산은 서대문구에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말의 안장과 같다고 하여 안산(鞍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안산은 정상이 해발 296m로 나지막한 산인데, 전망대에서 남산타워가 바로 보이고, 그 뒤로 관악산이 보였다. 북동쪽으로는 인왕산과 북한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서대문형무소가 보였다. 벚나무, 층층나무가 많은데, 메타세쿼이아 숲, 자작나무숲이 있어 이채롭다. 전에는 서울 서북지방에서 보내는 봉화를 받아 남산으로 보내는 동봉화대가 있던 곳이다.

 

   우리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산자락의 쉼터에서 형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내 앞의 벤치에 앉아 있던 형이 나의 뒤쪽을 가리켜며 뒤를 보라고 하였다. 내가 몸을 돌려 뒤를 보니, 기둥에 검정색으로 常樂我淨이라 쓴 누런 나무판이 걸려 있다. 이를 본 회원들은 각자의 한문 실력을 발휘하여 상락아정의 뜻을 풀이하였다. 한 회원이 항상 즐거워하며 나를 정결하게 하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보다는 더 깊은 뜻이 있는 말인 것 같은데, 구체적인 뜻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주 산행 모임 때 형이 흰 종이 한 장을 주었다. 그것은 常樂我淨의 뜻을 조사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간단히 살펴본 뒤에 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서 다시 읽어 보고, 다른 자료를 찾아보며 내 나름으로 이 말의 뜻을 정리하였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涅槃)의 네 가지 덕(四德)이라고 한다. 열반은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이르는 말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표이다. ‘상락아정은 열반의 네 가지 덕목이니, 글자 한 자 한 자가 깊은 뜻을 가진 말이다. 이를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풀이하는 식으로 뜻을 풀이하려고 하면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상()영원한 본성(本性)’을 말한다. 부처 같은 본성은 없어지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인연을 초월하고 업장(業障)을 소멸하여 즐거워하는 해탈의 경지이다. ()본성의 자아(自我),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자아이다. ()번뇌와 망상(妄想) 없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를 뜻한다. 시장 한 가운데에 있어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깨끗하여 누구에게나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상락아정은 청정무구한 본성을 찾아 즐거워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하면서 번뇌와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덕을 이룬다.’는 말이 된다. 그러고 보면, 상락아정은 이르기 어려운 경지이지만, 이를 얻기 위해 힘써 노력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하겠다.

 

   나는 이르기 어렵지만, 이를 목표로 삼고 노력하라는 뜻의 상락아정과 뜻이 통하는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경을 뒤적이던 중 다음 구절에 유의하였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본성 즉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서 기뻐하라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상()과 낙()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아()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면서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정()에 해당한다. 이렇게 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에 맞는 삶이 된다. 이런 삶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열반의 경지에 이른 삶이다. 그러고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상락아정이나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은 같은 맥락의 가르침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여러 번 읽었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도 수없이 들었다. 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이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 결심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곤 하였다. 이번 산행에서 본 상락아정의 뜻을 되새기면서 이 말씀의 실천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안산 자락길 쉼터에 걸려 있는 상락아정의 현판은 무심코 지나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나무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고 가다듬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귀한 말이다. 이 현판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사에 무뎌져가는 나에게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안산 자락길 걷기는 매우 즐겁고 유익하였다.

  며칠 전(2014. 5. 16)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 8명과 수서역에서 만나 함께 대모산 산행을 하였다. 잘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를 비롯한 온갖 수목(樹木)과 풀들이 만들어주는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을 따라 걷는 길은 정말 상쾌하였다형은 회원들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알맞은 운동을 하는 금요일의 산행은 기쁘고 즐거워서 건강 증진에 보약 한 제를 먹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회원들은 모두 동감을 표시하였다.

 

   산행을 마친 뒤에 대모산입구역 근처에 있는 식당 가마골 오리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는 산행 뒤에 가끔씩 가던 식당이었으므로 별다른 생각 없이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자리에 앉자마자 형이 오늘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나의 큰딸이 금요일마다 함께 산행을 하는 친구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라며 금일봉을 주었는데, 꼭 대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회원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이 있어 몇 주 동안 산행에 빠졌더니한 회원이 형은 따님들을 잘 둔 덕에 해외여행을 하느라고 빠졌겠지요.’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큰딸에게 하였더니딸이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하는 딸을 정겨운 시선으로 봐 주는 친구 분들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자기가 나와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겠다고 하더군요. 번거로우니 그만두라고 하였더니, 그러면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꼭 식사 대접을 하라며 돈을 주었어요. 딸의 마음 쓰는 것이 고마워서 돈을 받아왔으니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하겠어요.”

 

   이 말을 들은 우리들은 형 큰따님의 효심이 가상하다며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어디를 여행하였느냐고 물었다. 형은 부활여행(復活旅行)’을 하였다고 하였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우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간단한 시술을 받고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였는데문제가 생겨 응급실로 실려가 치료를 받고 다시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였다.”고 하면서 그간의 일을 간략히 말하였다형은 이를 부활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면서 부활여행을 하느라 산행에 빠졌는데, 일부 회원이 해외여행을 간 것으로 짐작한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우리는 그 동안 형이 생사의 갈림길을 오간 것에 놀라고건강을 회복한 것에 안도하면서 그 동안  형의 근황에 무심하였던 것이 미안하여 얼굴이 화끈거렸다.

 

   ㅈ형이 부활 여행을 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는 부인과 따님의 놀라움과 걱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웠을 것이고, 그 여행을 무사히 마쳤을 때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을 것이다. 오늘의 오찬은 형이 건강을 회복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큰따님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것이다. 아버지가 부활여행을 하였다면자녀들은 누구나 이를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아버지의 친구들에게까지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산업사회로 발전해 오면서 충효(忠孝)보다는 개인의 이익이나 편리함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옅어지고뒷전으로 밀려나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형 큰따님의 효심을 정말 갸륵하다 하겠다. 우리들은  , 정말 따님을 잘 가르쳤군요.”,  “건강을 회복한 것을 축하하오.” 하고 진심어린 인사를 한 후 오리고기와 형이 준비한 인삼주를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산행 뒤에 효심이 어린 오찬을 즐길 수 있어서 몸도 마음도 즐겁고 흐뭇하였다.

   지난 금요일(201459)에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들과 함께 고양 국제 꽃박람회장에 갔다. 오전 11시에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에서 만나 10분 정도 걸으니, 박람회장이 나왔다. 고양의 명소인 호수공원의 호수교와 장미원 입구에서 열린 이번 꽃박람회는 ‘100만 시민이 창조하는 600년 고양의 신한류 꽃축제를 주제로, 2014425일 금요일부터 511일 일요일까지 열렸다. 이번 박람회에는 국내 200개 업체와 해외 35개국 120개 업체가 참가하였다.

 

   꽃 전시장은 실내전시관과 야외전시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실내전시관에는 해외 35개국에서 가져온 각양각색의 아름다움 꽃들이 전시되어 있고, 대한민국 화훼관련 기관 및 단체가 길러서 출품한 화훼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실내전시관에는 정말 많은 꽃들이,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꽃 중에는 눈에 익고 이름을 아는 것도 있지만, 이름을 모르는 꽃, 처음 보는 꽃도 많았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에서 꽃 넓이가 가장 큰 꽃(원산지:인도네시아), 세계에서 가장 큰 장미(원산지:콜롬비아, 에콰도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다이아몬드 장미(원산지:인도), 꽃잎의 색이 각기 다른 튤립(원산지:네덜란드) 등이었다.

 

   야외전시장은 몇 개의 권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적어 본다. <고양 신한류 정원>K-POP패션영화한식스포츠 등 다섯 가지의 신한류 테마를 약 80여 종, 10만 송이의 꽃으로 표현한 조형물, 세계 평화화합을 상징하는 월드컵 조형물, 한반도 역사를 담은 기와집, 볍씨와 대한민국 태극기 조형물을 중심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고양 신한류의 비젼을 제시하였다.

 

   <LOHAS 플라워 터널>은 화려한 서양난 터널을 시작으로 탐스러운 호박 터널, 풍성한 과실과 열매를 감상할 수 있는 생명의 결실 터널, 꽃과 나비곤충양서류조류와 함께 하는 생태환경 터널이 이어져 있다. 이것은 꽃박람회 최초의 멀티 테마 정원으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고양>에는 한국 전통 정원과 현대 화훼 예술의 이색적인 만남, 풍동산황동의 부자 이야기, 공양왕의 삽살개 이야기, 찬 우물 이야기, 우리 꽃 이야기 등 우리의 옛 이야기가 흐르는 정원이 마련되어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야외전시장에는 여기에 적은 것 외에도 많은 꽃들과 각각의 주제를 드러내는 조형물들이 많았다.

 

   꽃 전시장을 둘러본 뒤에 호수가 벤치에 앉아 호수공원의 모습을 살펴보니, 현대 도시와 잘 어울리도록 조성되어 있다. 호수공원은 고양 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면서 건강을 증진하게 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공원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과 예쁜 꽃을 재료로 하여 주제를 형상화한 작품들을 보고 호수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한결 고와지고, 부드러워지는 듯하였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좀 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것이 아쉽다.

 

 

 

 

 

 

 

 

     지난 5월 2일에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들과 함께 강서구 방화동과 개화동에 자리잡고 있는 강서둘레길을 걸었다. 오전 1030분에 지하철 5호선 방화역에서 만나 오늘의 산행 코스를 추천한 권 박사의 안내로 옆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개화산 둘레길을 걸었다.

 

  제일 먼저 간 방화근린공원에는 소나무와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빈터에는 운동기구와 쉼터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근린공원을 지나 약사사(藥師寺)에 갔다. 약사사는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절인데,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9호와 40호인 3층석탑과 석불(石佛)이 있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개화사(開花寺)인데, 약수가 유명하여 약사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 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림의 소재를 찾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개화산 전망대에 오르니 행주산성, 북한산, 방화대교, 월드컵공원, 남산타워, 가양대교, 63빌딩 등이 한눈에 보였다. 그 옆에는 겸재가 가양동에 있는 정자 소악루(小岳樓)를 중심으로 한강 주변을 그린 <소악후월(小岳候月,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다)>, 양천 쪽에서 난지도 부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금성평사(錦城平沙, 금성의 평평한 모래펄)>, 목멱산에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 목멱산에 아침해가 떠오르다)> 등 여섯 작품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곳에 와서 진본(眞本)은 아니지만,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원조로 꼽히는 겸재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화산 정상에 오르니, 육각정자인 봉화정이 있고, 그 옆에 복원해 놓은 조선시대의 봉화가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라뱃길 전망대가 나왔다. 이곳에서 보니,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연결하는 아라뱃길과 김포시, 일산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늘길 전망대에 오니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보니, 조선 중기의 문신 심정(沈貞, 1471~1531)을 비롯한 풍산 심씨 가문의 묘 60여 기가 있는 풍산심씨 묘역이 있었다. 심정은 중종 14년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몰아내고 좌의정까지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경빈 박씨의 동궁 저주 사건이 드러나 삼사(三司)의 탄핵을 받고 강서로 유배되었다가 사약(賜藥)을 받아 죽은 인물이다. 심정의 묘를 둘러보면서 정권을 잡기 위해 사화(士禍)를 일으켰던 인물의 비참한 말로(末路)를 생각하니,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업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니, 마을 어귀에 높이가 26m나 되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조선 중종 때의 정승 심정이 심은 나무로 수령이 은행나무는 400, 느티나무는 450년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마을을 지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강서둘레길을 걸으며 서울 서쪽에 있는 개화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조선 시대의 인물 겸재 정선의 작품 활동과 심정의 정치 역정을 돌아보았다. 함께 한 회원들은 모두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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