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제아는 라오디키아(Laodikya)라고도 하는데, 데니즐리(Denizli)와 파묵칼레(Pamukkale)의 사이에 있다. 데니즐리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길에 있는 코루주크(Korucuk) 마을에 라오디제아(Laodicea)행 표지판이 있었다. 그 표지판을 따라 1km쯤 가니 라오디제아 유적지가 나왔다. 이곳이 성경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초대 일곱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아교회가 있던 곳이다.

   라오디게아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이오니아인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이곳을 디오스폴리스(Diospolis), 또는 로아스(Lhoas)라고 불렀다. 기원전 261~253년에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는 이 지역에 도시를 건설하고, 아내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라오디케아라고 하였다. 그 말의 뜻은 백성의 정의라고 한다. 라오디케아는 기원전 190년부터 페르가뭄의 통치를 받다가 A.D. 133년에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었다.

   옛날의 라오디케아는 리쿠스 강이 흐르는 산골짜기에 넓고 기름진 평야를 끼고 있었다. 이곳은 동서남북에 있는 도시들과 통하는 교통의 요지여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시되었다. 이곳 주민들은 넓은 평원에서 농사를 짓고, 양을 기르는 한편 인근 산에서 금을 캐내어 거래하였다.

   라오디게아에는 약 9km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 온천수가 흘러오고, 바바 산의 만년설(萬年雪)이 녹아 흘러내리는 곳이었다. 이들 온천수와 냉천수(冷泉水)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인근에는 좋은 약재가 나는 곳이 많아 이를 이용하여 약을 생산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이곳에서 만든 귓병과 눈병 치료약은 치료 효과가 뛰어나서 아주 유명하였다. 그래서 이곳은 일찍부터 농업, 상업과 함께 의약이 발달하고, 은행과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였다.

   라오디게아는 A.D. 17년과 60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는데, 로마의 재정적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재건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라오디게아가 품질 좋은 흑양모 생산과 직조(織造), 염색업, 목화 재배와 면직물 생산, 의약품 생산, 금 생산 등을 통해 축적한 자본과 기술이 넉넉하였음을 말해 준다. 당시 이곳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삶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세속적인 만족에 이끌리어 영적인 문제에는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서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요한계시록 31518>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신앙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아 주님 보시기에 매우 못마땅하여 꾸짖은 말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안 된 다른 지역의 교인들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이곳 교인들은 신앙적으로 게으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이를 꾸짖고,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라.”고 명하셨다.

   위에 적은 성경 말씀에는 당시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반영한 표현이 여러 군데 나온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히에라볼리스에서 흘러오는 온천물을 사용하였는데, 9km를 흘러왔기 때문에 물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고 한 표현은 이를 빗대어 표현한 것 같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은 당시의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반영한 표현이라 하겠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목화 생산이 많았고, 면직 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흰색 면직물이 유명하였는데, 로마 상원의원들이 입던 흰옷은 이곳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고 한 것은 이곳이 안약의 명산지임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에 적은 성경의 말씀은 당시 라오디게아의 지역적 특성과 생활상을 예로 들어 표현하여 교인들의 잘못을 일깨우려한 것이다.

   라오디게아 유적지에 와 보니, 넓은 산언덕에 여러 건물의 주춧돌과 벽을 쌓았던 돌과 건물의 기둥이 널려 있다. 아치형으로 된 건물의 잔해도 보이고, 원형극장과 교회 터 등도 있다. 잘 다듬어진 대리석 기둥이 서 있는 대로 양편에는 큰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양옆으로 건물의 잔해들이 즐비한 옛길을 걸으며 넓은 땅에 큰 규모의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하였던 거리의 모습, 그 거리를 오가며 풍요로움을 만끽하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올 때 차지도 덥지도 않으니 뱉어 버리리라.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신앙적으로는 게으르고 형식적인 믿음을 가진 현대인, 특히 나에게 꼭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꾸중을 들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길을 내려왔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중 <터키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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