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는 이즈미르에서 동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옛 도시로, 성경에 나오는 빌라델비아인데, 현지명은 알라셰히르(Alaşehir)이다. 필라델피아는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 왕국의 아탈로스(Attalus) 2(재위 기간 B.C. 159~138)가 세운 도시이다. 아탈로스 2세는 페르가뭄 왕국의 유메네스 2세 왕의 동생인데, 본래 이름은 필라델푸스(Philadelphus)이다. 그는 뛰어난 정치력과 군사적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형을 진심으로 도우며 충성하였다. 그는 뒤에 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도시 이름은 자기의 원래 이름을 따서 필라델피아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형제사랑[兄弟愛]’이다.

   토모로우스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필라델피아는 비옥한 평야를 끼고 있다. 서쪽으로는 페르가뭄과 사르디스(사데)를 잇고, 동쪽으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크게 발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지진이 잦아 크게 발전하지는 못하고, 농민들이 포도 농사를 짓고 사는 작은 도시가 되었다. 필라델피아에는 사도 시대에 약 1,000명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A.D. 17년과 23년에 일어난 큰 지진으로 도시가 모두 파괴되어 남은 유적이 거의 없다. 옛 도시가 있던 자리에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발굴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곳에는 다만 사도요한 교회의 육중한 돌기둥 두 개와 돌들이 빌라델비아 교회라는 이름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이것은 비잔틴 시대에 세워져 사도 요한에게 바쳐진 교회의 유적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요한계시록(3 : 7~13)에 일곱 교회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믿음의 시련 중에서도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한 탓에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 받지 않고, 칭찬을 받은 교회이다.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이 순교할 때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 10명도 함께 순교하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3 : 8)는 표현으로 보아 규모도 크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것 같으나 내실이 있는 교회였던 것 같다. 이 교회는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 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갔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몸에 써 두겠다는 약속을 받은 교회이다.

   버스에서 내려 빌라델비아 교회 터에 가니, ‘성 요한 교회라고 쓴 안내판이 붙어 있다. 주님의 칭찬을 받던 교회의 모습은 간데없고, 돌과 벽돌로 겹겹이 쌓은 육중한 기둥만이 쓸쓸히 서 있다. 교회 기둥 옆에는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좁은 골목길 맞은편의 작은 자미(이슬람 사원) 앞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돌아본 뒤에 샤데 교회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니, 올 때와 마찬가지로 포도밭이 많다. 키가 작은 포도나무 덩굴에는 알알이 익어가는 포도 알을 마음껏 매단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까닭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첫째, 이곳에는 지진이 유난히 많았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은 잦은 지진을 겪으면서 삶에 대한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삶에 대한 불안은 신앙을 뜨겁게 하고,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을 것이다. 둘째, 이곳 사람들은 도시보다는 비옥한 땅에서 포도 농사에 힘쓰면서 삶의 체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이들은 포도를 수확한 뒤에 다음 해의 포도 수확을 위하여 쓸모없는 가지를 잘랐을 것이다. 이들은 쓸모없는 가지 즉,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지, 앞으로도 열매를 맺지 않을 것 같은 가지를 잘라 땔감으로 쓰면서, 신앙인으로서 쓸모없는 자가 되면 잘라낸 포도나무 가지와 같이 된다는 것을 수없이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열매를 맺어 농부의 보호를 받는 것과 같은 가지 즉, 온전한 믿음을 간직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힘썼을 것이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중 <터키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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