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소설 중에 <황새결송>이란 작품이 있다. 재판에서 억울한 판결을 받은 사람이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한 재판관을 동물에 빗대어 풍자한 내용이다. 조선 헌종 때인 1948년에 간행된 목판본 《삼설기》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을 송사형 우화소설(訟事形寓話小說), 공안소설(公案小說)의 뛰어난 작품으로 꼽기도 한다.

   경상도에 사는 부자에게 한 일가친척이 찾아와 같은 조상의 자손으로 혼자만 잘 사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재산의 반을 나눠주지 않으면 그대로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그는 친척을 서울로 데리고 가서 형조에 고소한 뒤에 자기의 정당함을 믿고 조용히 재판하는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불의한 친척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관원과 재판관에게 접근하여 유리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청탁하였다. 그는 재산의 반을 나눠주라는 판결을 받고 억울하고 분하였지만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관원들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고 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는 <황새 재판> 이야기로 뇌물을 받아 챙기고 부당한 판결을 한 판관을 비판한다.

   어느 날, 꾀꼬리뻐꾸기따오기가 모여 자기의 목소리가 가장 좋다고 다투다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황새에게 판결을 의뢰하였다. 제 소리가 가장 좋지 않은 것을 아는 따오기는 황새에게 그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비롯한 여러 먹거리들을 잡아다가 주며 자기의 소리를 최상으로 판결해 달라고 청탁하였다.

   소리겨룸을 하는 날, 황새는 꾀꼬리의 소리는 애잔하여 쓸데없다고 내치고, 뻐꾸기의 소리는 궁상스럽고 수심이 깃들여 있다 하여 내친 다음, 따오기의 소리가 가장 웅장하다며 상성으로 처결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관원들과 재판관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재판은 그 결과에 따라 원고든 피고든 어느 한쪽은 권리와 재산상의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므로 법관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므로 오랜 옛날부터 강조되어 왔다. 일찍이 공자는 재판이 인과 예, 효와 충의 기본적인 원칙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재판관은 피고와 원고를 동등하게 대우하며 그들의 입장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성경에서도 재판에서 공정성을 잃어서도 안 되고, 사람의 얼굴을 보아주어서도 안 되며 재판관이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신명기> 16:19)라고 하였다. 공의로운 재판을 하고, 입을 열어 억눌린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의 판결을 바로 하라(<잠언> 31:9)고 하였다.

   재판은 공정성과 함께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때에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한다. 재판관은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한다. 판사가 개인적 신념이나 정파성을 우선시하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요즈음 일부 판사들이 불공정한 판결을 하고, 판결을 지연하며 이념에 따라 공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판결을 한다. 그에 따라 사법부 전체를 불신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요즈음에는 국민이 사법부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나 상식을 가진 국민이 유죄라고 하는 사건이 괴변과 함께 무죄로 판결된 일이 있다. 국회의 구속동의까지 받은 구속영장을 야당의 대표라 하여 기각한 판사도 있다. 입시비리 사건의 판결이 5년을 넘긴 뒤에 확정되고, 선거법 위반 재판이 5년 넘게 걸리는 바람에 국회의원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는 일도 일어났다. 야당 대표의 선거법 재판이 재판 지연작전과 판사의 늑장으로 2년 넘게 걸려 1심이 끝난 일도 일어났다. 이러한 불공정한 판결이나 지연된 재판으로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재판이 온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측과 상의 없이 일주일에 두 번씩 무더기로 변론기일을 정하고, 대통령 측이 요구하는 증인을 대부분을 기각하며, 증인신문 시간을 제한하고 발언을 막는다. 경찰이나 검찰에게 조사 중인 사건의 조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여 받아낸 뒤에 이를 근거로 재판을 진행하며 증인이 동의하지 않는 검찰조서를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피의자가 된 대통령의 방어권을 박탈하는 조치이다. 그래서 탄핵재판 진행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하여 대통령 측과 많은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헌재는 이러한 진행을 신속한 판결을 위해서라고 한다. 재판 절차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은 신속함은 불공정을 낳는다. 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파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어 놓고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을 더하는 일이다. ‘일제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한 헌재라는 현직 검찰청장의 비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불공정한 재판 진행이나 판결, 시간 끌기 등을 자행한 판사에게 많은 법조인이나 일반 국민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위에 적은 <황새결송>의 관원들은 당사자의 동물에 빗댄 비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판사들은 잘못을 인정했다거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소식이 없다. 오늘의 재판관들은 조선 후기의 재판관에 비해 양심이 오염되고, 낯이 두꺼워진 탓일까?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의 저서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한 판관을 반실태수(半失太守)라 하고, 판관 중에 최하위라고 하였다.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판사님들은 최하위의 판사라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2025.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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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 동 1층에 자이 휘트니스 센터가 있다. 나는 이곳을 그냥 헬스장이라고 부른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올 때에 그 앞을 지나면서 보면, 오전에도, 저녁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도 그곳에 가서 운동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몇 년을 지냈다.

   그런데 나이 80이 넘으면서부터 체중이 시나브로 줄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이 들면 체중이 조금씩 준다는 말을 들었기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운동이 부족한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맨손체조와 아령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둘레길과 공원 걷기 시간을 늘렸다. 그러나 체중 주는 것이 멈추지 않음은 물론, 피부 가려움증이 생기고, 왼쪽 어깨가 심히 저렸다. 몇 년 전에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 숟가락질하기도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왼쪽 어깨가 아파 옷을 입고 벗을 때에 통증을 느껴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어깨통증으로 벌떡 일어나 어깨를 움직이고 주무른 뒤에 잠이 들곤 하였다.

   그래서 정형외과 의원을 거쳐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는 침을 놓고 물리치료를 한 다음에 부항을 뜨면서 근육이 줄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한의사는 몇 년 전 오른쪽 어깨가 아플 때에도 그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아령운동과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여 낫게 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둘레길과 공원 걷기와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한 상체와 하체 근육운동을 더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 공원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질 것 같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내와 함께 헬스장에 가서 담장직원을 만나 이야기해 보니, 회비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개인교습은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헬스장을 들어가 보니, 100평쯤 되어 보이는 널찍한 방에 70여 개의 운동기구가 번호표를 달고 서 있다. 여러 기구 중 내 체력에 맞는 기구를 이용하면 된다고 하였다. 지하가 아니어서 환기도 잘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여 회원등록을 하였다.

   등록한 다음날 운동복을 꺼내 입고 헬스장에 갔다. 젊은이와 중년, 노년의 남녀가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아내와 함께 체력에 맞는 운동기구를 물색하여 운동한 뒤에 샤워를 하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이든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언제부터 운동을 하였는가를 물어 보았다. 모두 몇 년 전부터 운동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이분들의 말을 들으면서 정년퇴임 전까지는 바빠서 그랬다 치더라도 퇴직한 뒤에도 운동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여러 기구의 사용법과 운동효과를 알리는 그림을 보면서 하체운동과 상체운동, 허리운동, 걷기운동 등 여러 운동을 하였다. 하체운동은 다리를 앞과 뒤로 움직이기, 옆으로 벌렸다 오므리기, 발로 밀고 당기기 등의 운동을 하였다. 상체운동은 팔을 벌렸다가 오므리기, 위로 들어올리기, 앞이나 위에 있는 것을 잡아당기기, 들어올리기 등의 운동을 하였다. 각 기구는 기본부터 시작하여 무게를 늘려 운동의 강도를 높이도록 잘 설계되어 있었다. 젊은이와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은 강도를 높여서 근육강화운동을 하지만, 나는 남아 있는 근육이 더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기본에서 조금 무게를 올려 운동하였다. 평상시에 잘 쓰지 않는 근육까지 움직여 근육의 퇴화를 막는 데에 목표를 두고 근육강화운동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니, 식욕이 늘고 잠을 잘 자게 되었으며 피부에 부스럼이 나던 것과 체중 주는 것이 멈춘 것 같다.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어깨근육이 강화된 때문인지 심하던 어깨통증도 사라졌다.

   어깨 통증은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할 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학위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심사본 3부를 제출해야 했다. 그 때는 복사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어서 논문을 복사하여 3부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미농지로 만든 넓은 원고지 넉 장을 포갠 뒤에 그 사이에 묵지를 넣고 볼펜으로 꼭꼭 눌러 썼다. 그런 뒤에 위쪽의 석 장은 심사본으로 제출하고, 맨 아래 것은 내가 보았다. 많은 분량의 원고를 꼭꼭 눌러 쓰다 보니, 손가락과 어깨의 근육에 무리가 갔는지 손가락과 어깨가 몹시 아팠다.

   이렇게 시작한 어깨 통증은 몇 년씩 시차를 두고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아프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이제까지 지내왔다. 이렇게 심심치 않게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어깨 통증이 다시 가라앉았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이 부족하니 근육이 줄어 통증이 온다는 한의사의 말이 실감난다. 뒤늦게나마 헬스장에 다니며 하루에 23시간씩 운동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릎퇴행성관절염이 있어서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통증을 느낀다. 이것은 연구하고 글을 쓰느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서 무릎관절을 보호해 줄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한다. 중년부터 운동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늦게나마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여 어깨통증을 비롯하여 잔병이 사그라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날씨가 풀린 뒤에도 둘레길과 공원 걷기는 물론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일도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한다.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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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19일에 두 주일 체류 예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인근의 터스틴시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하였다. 6년 전에 갔었고, 작년에 딸과 외손녀가 한국에 왔다 갔으므로 가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가 딸과 외손주들을 보고 싶다 하여 동행하였다. 저녁에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30분을 비행하였지만, 영화 1편을 보고 잠을 잤으므로 그리 지루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LA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마중 나와 있던 사위가 반갑게 인사하며 환영의 말을 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딸과 외손주들이 뜨겁게 환영하며 인사하였다. 그런 뒤에 딸이 정성스럽게 차린 저녁을 먹으며 환담하였다. 오랜만에 딸이 정성스럽게 차린 맛깔스러운 음식을 대하니 미감과 함께 만족스러움이 마음 가득 일었다. 저녁 식사 뒤에는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차려 놓고 노래를 부른 뒤에 건강을 축원한다는 덕담을 하였다. 전날 서울에서 두 아들과 손주들이 모여 생일 축하 모임을 가졌으므로, 뜻밖이어서 약간 새삼스러웠지만, 딸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 고맙고 기뻤다.

   사위는 청년 시절에 미국에 유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의 대기업에 취업하여 근무하다가 50세가 되던 해에 명예퇴직을 하였다. 그는 미국유학과 대기업 미국 주재원 경력이 있었으므로 퇴직 후에 재취업하여 LA주재원이 되었다. 그러자 2014년에 온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얼마 뒤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한동안 고생을 하였다.

   그는 힘들게 3년을 지낸 뒤에 영주권을 얻어 작은 사업을 시작하였고, 딸은 좋은 곳에 넓고 깨끗한 카페를 열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곳으로 온 외손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취업하여 일하고 있고, 6학년 때 와서 대학 4학년이 된 외손자는 큰 회사의 인턴 사원으로 뽑혀 졸업하면 바로 취업한다고 한다. 그동안 나와 아내는 날마다 딸의 가족이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그런 기도에 응답을 받아 안정된 생활 하는 것을 직접 와서 눈으로 확인하니 감사함과 함께 마음이 평안해진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함께 하지만, 각자 학교와 일터로 나간 평일에는 우리 부부는 주로 집에 있었다. 오후 3시 넘어 딸이 돌아오고 6시 지나 모두 돌아올 때까지는 집안에서 책을 읽고, 유튜브 방송을 보거나 동네를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딸과 외손녀는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집에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할 날과 식단, 인근 맛집에 가서 식사할 날과 식당을 정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일정에 따라 온 가족과 함께 맛집을 순례하였다.

   그 일정에 따라 미국식, 중국식, 일본식, 베트남식, 일본식,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멕시코식, 한국식 음식점을 순례하였다. 각국의 음식은 재료와 요리 방식이 다른 만큼 시각적 효과나 맛이 다르고 특색이 있어 좋았다. 식사 뒤에는 가까이에 있는 쇼핑몰에 가서 소핑을 하였다. 맛집 순례의 순서는 쇼핑몰의 위치를 고려하여 정했다고 한다. 쇼핑몰에 가니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넓고 큰 매장에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 중에는 대폭 할인하는 상품들도 많았다. 그래서 할인율이 높은 물건 중에서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유명 상표의 트래킹화와 파카를 구입하였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싸게 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내의 친구 부부가 찾아왔다. 아내와 중고등학교 동창인 그는 젊은 시절에 의사인 남편을 따라 와서 60여 년을 이곳에서 살고 있다. 몇 년 전 그들 부부가 한국에 왔을 때 내 차로 수종사, 강화도 등을 안내한 일이 있었으므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우리는 그의 차를 타고 태평양 연안인 라구나 해안으로 갔다. 전망이 좋은 식당의 창가에 자리 잡고, 브런치로 몇 가지 음식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그런 뒤에 광활한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해안 길을 걸었다. 흰 구름이 무리지어 떠도는 맑고 파란 하늘 아래에서 푸른 물은 솔솔 부는 가을바람에 작은 파도를 일으킨다. 이런 풍경을 보며 해안 산책로를 걸으니 참으로 뿌듯하고 기뻤다.

   다시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갔다. 그가 사는 곳은 55세 이상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입주하여 산다는 실버타운이었다. 산기슭의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주 좋았다. 그의 세 아들은 모두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넓고 깨끗한 집에서 노후를 안락하게 지내는 그들의 모습은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젊은 시절에 낯선 이곳으로 이민 와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교포의 삶의 현장을 보게 되어 기뻤다.

   LA 남쪽의 샌디에고에 살며 소설가로 크게 활동하는 제자 백 선생이 부인과 함께 차를 몰고 찾아왔다. 우리 부부는 그의 차를 타고 LA 다운타운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한 뒤에 그리피스 천문대를 찾아갔다. 그 날은 월요일로 천문대가 쉬는 날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해 아쉬웠다. 천문대 주변에서 LA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시내로 내려와 코리아타운을 지나 헐리우드 거리로 갔다. ‘스타의 거리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인도에 세계적인 스타의 이름과 나이, 손 또는 발의 자국을 찍은 동판이 박혀 있었다. 부르스 윌리스, 버트랑 카스타, 오우삼 등의 명판은 보았으나, 이병현 등 한국 배우의 명판은 찾지 못해 아쉬웠다.

   백 선생은 6년 전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에 우리를 샌디에고로 데리고 가서 호텔에 투숙하게 하면서 그곳의 명소와 유적지에 안내하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찾아와 인사하고, LA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40여 년 전 대학 재학시절에 맺은 사제의 인연을 잊지 않고 오늘도 찾아와 준 그의 따뜻한 마음에 깊이 감사한다. 그가 내년에 한국에 온다고 하니, 그때 감사하는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손녀는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얻어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를 배려하는 그의 깊은 생각에 감사하면서 함께 하루를 보냈다. 그는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에 다시 데리고 가서 카페의 운영 상황을 직접 보게 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가지로 안내하였다. 그와 차를 마시며 그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의 일, 이민 와서 겪은 어려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과 효도, 한국의 역사와 전통,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지식의 활용, 장래의 일 등에 관해 대화하였다.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27세 여성의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 등에 관해서도 들었다. 어린아이로만 여기던 그가 잘 자라 성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곳을 떠나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다녀와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대화하였다. 우리는 온 가족이 정성으로 대접해 준 일을 고마워하며 치하하였고, 그들은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말하였다. 우리는 나이를 생각하여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라고 하자, 사위는 교인 중에 그렇게 말한 분이 계신데 아홉 번이나 더 오셨다면서 또 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안고 그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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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99일에는 서울교대 1회 동기들이 경기도 파주시 월농면 도내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도감농원에서 밤 줍기를 한다. 2017년에 시작한 이 행사는 코로나 19로 모임이 중단되던 시기를 제외하곤 해마다 계속되어 금년으로 다섯 번째이다.

   도감농원은 심언녕 동기의 고향 마을 앞동산이다. 1970년대 초에 정부에서는 산림녹화 사업으로 산에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밤나무 심기를 권장하였다.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부모님과 상의하여 밤나무 400주를 심었다. 그 뒤 밤나무는 잘 자라서 밤송이가 열리기 시작하였으나, 연만하신 부모님들이 잘 관리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의 밤나무가 되었다. 1998년에 교직에서 명예퇴임을 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그는 앞동산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체험학습을 하러 오겠다는 학교가 늘어가자 도감농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농원을 잘 관리하였다.

   현장답사를 왔던 산림청 직원들은 산을 잘 가꾸고 있다면서 몇 가지 혜택이 있으니 임업경영인등록을 하라고 하였다. 등록한 뒤에는 생산품 판매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하였다. 몇 년 동안은 밤을 주워서 금촌시장에 내다 팔았으나 밤을 줍는 일이 힘들고,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파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임업경영인 재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산림청에서는 생산실적이라도 기록해 제출하라고 하였다. 그는 궁리 끝에 밤을 친구, 친척, 마을 사람들에게 주워가도록 하고, 그 장면을 사진 찍어 어림잡은 생산기록과 함께 제출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서울교대 1회 동기들이 밤 줍기 체험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동기회 회장에게 밤 줍기 행사를 제안하였다. 그러자 많은 동기들이 호응하여 밤 줍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땀 흘려 가꾼 농원의 밤을 동기들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점심 대접까지 하는 그의 동기애와 희생의 정신이 고맙고 고귀하기 짝이 없다.

   나는 신금호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하여 공덕역으로 가서 경의중앙선 문산행 열차로 바꿔 타고 가다가 월롱역에 내렸다. 약속한 1130분이 되니, 남자 10, 여자 6명으로 모두 16명이 모였다. 월롱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도내 4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그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일이 악수하며 환영하였다. 200m쯤 걸어서 그의 집에 도착한 우리는 매실차를 마시며 담소한 뒤에 동산으로 올라갔다.

   도감농원 간판이 달린 곳에 있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란 풀을 모두 베어 밤 줍기에 편하도록 해 놓았다. 밤송이를 발릴 때 쓸 막대기도 넉넉히 준비해 놓았다. 그는 산모기가 많으니 상의 소매를 장갑 안으로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뱀이 나타나면 놀라 소리치지 말고 옆으로 피하라고 하였다. 밤나무 밑에는 밤송이 밖으로 튀어나온 알밤도 있고, 밤송이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밤송이 안에 있는 밤은 밤송이 옆을 두 발로 밟고 막대기로 발린 뒤에 주워서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밤알은 나무에서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싱싱한 것도 있고, 오래 되어 좀 마른 것도 눈에 띈다. 밤알은 작년에 줍던 것보다 큰 것이 더 많았다. 눈에 띄는 밤알 중에서 튼실하고 싱싱한 것만 주워서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수확의 기쁨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허리를 굽히면 땅에서 지열이 올라와 후끈하며 땀이 흐른다. 밤 줍는 일을 되풀이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무릎도 아프기 시작하였다. 내가 일어서서 허리를 만지며 아이구 허리야!’라고 하니 옆에 있던 동기도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3040분쯤 지나고 보니 들고 있는 비닐봉지가 꽤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그만 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리사 쪽을 바라보니, 동기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모두 얼굴은 땀에 젖었지만 흡족한 표정이었다. 밤 주머니를 들어 보이며 주운 양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직접 밤나무를 가꾸지 않고도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 그의 배려심에 감사를 표하였다.

   밤 줍기를 끝낸 우리는 그의 안내로 집 앞에 있는 한식 뷔페식당으로 갔다. 일반 손님들이 지나간 뒤여서 자리도 많았고, 차린 음식도 맛깔스러워 보였다. 그의 제안으로 건배한 뒤에 식사를 시작하였다. 달걀은 손님이 각자 프라이를 해서 먹어야 하는데, 그의 딸이 직접 프라이를 해서 가져다주어 무척 고마웠다.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면서 뜻깊은 밤 줍기 행사를 하도록 초청해 준 그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작별할 때에 그의 얼굴에는 만날 때 짓던 환한 미소가 사라지고 아쉬움과 허전함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그가 마음을 쓰고 있는 가정의 일들이 모두 해소되어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내년에도 또 오라는 그의 말에 하루가 다르게 건강 상태가 변하는 80대의 동기들이 다 호응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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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6일 금요일에 교일산우회 회원들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장자호수공원에 갔다. 금년 810일에 지하철 8호선이 암사역에서 남양주시 별내까지 연장 개통되었으므로 장자호수역까지 편히 갈 수 있었다. 전동차에서 내려 보니,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적소에 설치되어 있어 이용하기 편하고, 역사 안이 넓고 깨끗하여 기분이 좋았다. 대합실에서 만난 회원들은 삼복더위를 피하기 위해 한 달 쉬었다가 만나는 첫 모임이어서 모두 반가워하였다.

   장자호수공원역 6번 출입구로 나와 200m쯤 걸으니 공원야외공연장이다. 야외공연장 한쪽에 길게 친 천막 안에서는 내일 열리는 장자못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바로 이어지는 잔디밭에 장자못의 유래를 적은 큰 비석이 서 있다. 비석에는 장자못 전설이 적혀 있어 이곳을 장자호수공원이라고 하는 연유를 적어 놓았다.

   비석에 적혀 있는 전설의 내용은 다른 여러 지방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와 별 차이가 없다. 나는 회원들에게 장자못 전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오는 지역의 호수와 바위 이름을 열거했다. 또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도 말하였다. 그런 뒤에 산책길을 걸으며 이 전설의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옛날 이곳에 욕심 많고 인색한 장자(長者.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장자가 외양간을 치우고 있을 때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하였다. 그는 스님에게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시주를 받으러 다닌다고 꾸짖으며 쇠똥을 퍼서 바랑에 넣어 주었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쌀을 가지고 나오던 며느리가 이 모습을 보고, 자기와 아들의 아침밥 지을 쌀을 시주하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말했다. “오늘 정오가 되기 전에 저 산 너머 친정으로 가시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뒤에서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며느리가 스님의 말대로 아기를 업고 고개를 올라갈 때 장대비가 쏟아지며 천둥 번개와 함께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니 집이 폭삭 꺼져 가라앉더니 큰 연못이 되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뜨렸으므로 바위가 되었다.

   권선징악적(勸善懲惡的)인 의미를 지닌 이 이야기는 여러 곳에 있는 연못과 바위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전해 온다. 이 전설이 전해 오는 곳 중 널리 알려진 곳으로는 강원도 태백시의 황지고성의 송지호와 화진포호강릉의 경포호, 충북 제천의 의림지, 충남 논산의 장자못공주의 용못 등이 있다.

   이와 비교되는 이야기가 《구약 성경》 「창세기에도 전해 온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주민들의 악행을 보다 못해 이곳을 멸망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두 천사를 보내어 롯의 착한 마음과 신앙심을 확인한 뒤에 그에게 가족을 데리고 성을 떠나라고 하면서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두 성이 유황불로 불탈 때 롯은 두 딸과 함께 소알성으로 도피하여 살았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장자못 이야기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분이 악인을 징벌한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부분적인 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앞 이야기에서는 초월적인 존재가 하나님이고, 주민의 악함을 확인하고 벌을 내리는 것은 사람의 모습으로 온 두 천사이다. 뒤 이야기에서는 초월적인 존재가 부처님이고, 그 뜻을 받들어 벌을 내리는 것은 스님이다. 이런 차이는 앞 이야기가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 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고, 뒤 이야기는 불교를 기저로 한 한국인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리라.

   악인을 징벌하는 전설을 배경으로 생긴 장자호수 주변에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공원의 유래를 생각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공연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호수를 끼고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고, 공원 외곽에도 산책로가 있어 사람과 자전거가 통행하도록 하였다. 산책로를 걷는 동안 좌우로 이어지는 잘 가꾼 꽃과 잔디, 정원수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조금 더 가니 생태체험관이 있었지만, 계단을 올라가야 하므로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 더 가니 통나무를 여러 간격으로 세워 놓은 뱃살통과 테스트장이 있다. 위쪽에 홀쭉(17cm), 날씬(20cm), 표준(23cm), 통통(25cm), 마음만은 홀쭉(27cm), 이러시면 안 됩니다(29cm), 당신은 외계인(32cm)’ 등이 씌어 있다. 이 말들이 퍽 애교스럽게 느껴진다. 자기 몸에 맞는 공간을 옆으로 통과해 보면서 자기의 건강과 몸매를 측정해 봄직하다.

   산책로를 걷다가 둑 아래로 난 데크길로 내려가니 가까워진 호수 수면에 물오리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호수 곳곳에 물속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가 서 있는 것을 보니, 물고기를 위한 배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는 버드나무가 서 있다. 길게 뻗은 호수 양편에 조성해 놓은 황톳길에서는 시민들이 맨발로 걷고 있었다. 장미정원, 어린이 놀이터, 숲속놀이터, 농구장, 반려견 놀이터 등 다양한 시설들을 바라보며 2시간 가까이 걸었다. 이슬비가 오락가락하였지만, 덥지 않아 산책하기에 좋았다.

    잔디밭 가운데에 원형으로 지붕을 덮은 긴 벤치가 여럿 있다. 우리는 그 중 한곳에 앉아 각자 준비해 온 커피, 과자, 바나나, 떡 등의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가볍고 즐거운 대화를 하였다. 길게 뻗은 호수 양편에 잘 다듬고 가꾼 잔디와 수목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은 뒤에 환담을 하노라니 한 달 내내 계속되던 폭염을 견뎌내느라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듯하다. 한 달 동안 쉬었다가 다시 모인 우리 모임의 힘찬 출발을 자축하며 회원 모두의 건강을 기원한다. (2024. 09.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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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에세이 《은혜의 샘물》이 기독교연합신문사 도서출판(도서출판 UCN)에서 202475일에 간행되었다. 이 책은 필자가 김기창, 이복규, 임문혁 장로와 돌아가며 써서 20222월부터 202312월까지 《기독교연합신문 》  「은혜의 샘물난에 실은 글들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4명의 필자가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감으로 하여 쓴 신앙 속 삶의 이야기이다.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는 글을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필자 스스로 은혜를 느끼는 글이어야 독자들과 공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무척 부담스럽고, 긴장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필자는 글을 쓰면서 그야말로 샘물같이 솟아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지난 삶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정리하면서 감사하였다. 그러다 보니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에 앞서 필자가 먼저 감동을 받게 되었다. 필자가 받은 은혜가 독자들에게도 흘러넘치기를 기도하고, 그러리라 믿는다.

   필자 네 사람은 모두 장로, 문인, 박사, 학자이며 30년 이상 교직에서 후학들을 길러낸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글이 연재되는 동안 다음엔 어떤 감동적인 글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신문을 기다리기도 했고, 쓴 글들을 서로 읽어보면서 각자가 일상적인 삶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새로운 은혜를 나누기도 하였다.

   필자가 쓴 글 25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어머니의 소원     

   * 사탄으로 몰린 집사

    * 돌잡이는 미신인가    

   * 전도에 힘쓰는 택시기사 

   * 신병을 앓는 이에게 전도를 

   * 딸을 위한 기도  

   * 목사 아내의 길

   * 아프리카 파견 선교사의 헌신과 보람

   * 성경 읽기

   * 선교사 아닌 선교사가 되어

   * 산타클로스의 고향

   *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쓰기

   * 시골 아가씨의 놀라운 성장과 변신

   * 세계 최초의 교회를 찾아서

   * 하나님의 계획

   * 기도하고 시작한 강의

   * 말보다 행동으로

   * 문설주에 바르는 양의 피와 팥죽

   * 실로암주여 당신께

   * 합심 기도

   * 목사 아들을 둔 부모

   * 교도소까지 전해진 은혜의 샘물

   * 고향 친구의 소천

   * 어느 스님의 분노

   * 성모 마리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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