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9일에는 서울교대 1회 동기들이 경기도 파주시 월농면 도내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도감농원에서 밤 줍기를 한다. 2017년에 시작한 이 행사는 코로나 19로 모임이 중단되던 시기를 제외하곤 해마다 계속되어 금년으로 다섯 번째이다.

   도감농원은 심언녕 동기의 고향 마을 앞동산이다. 1970년대 초에 정부에서는 산림녹화 사업으로 산에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밤나무 심기를 권장하였다.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부모님과 상의하여 밤나무 400주를 심었다. 그 뒤 밤나무는 잘 자라서 밤송이가 열리기 시작하였으나, 연만하신 부모님들이 잘 관리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의 밤나무가 되었다. 1998년에 교직에서 명예퇴임을 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그는 앞동산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체험학습을 하러 오겠다는 학교가 늘어가자 도감농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농원을 잘 관리하였다.

   현장답사를 왔던 산림청 직원들은 산을 잘 가꾸고 있다면서 몇 가지 혜택이 있으니 임업경영인등록을 하라고 하였다. 등록한 뒤에는 생산품 판매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하였다. 몇 년 동안은 밤을 주워서 금촌시장에 내다 팔았으나 밤을 줍는 일이 힘들고,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파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임업경영인 재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산림청에서는 생산실적이라도 기록해 제출하라고 하였다. 그는 궁리 끝에 밤을 친구, 친척, 마을 사람들에게 주워가도록 하고, 그 장면을 사진 찍어 어림잡은 생산기록과 함께 제출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서울교대 1회 동기들이 밤 줍기 체험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동기회 회장에게 밤 줍기 행사를 제안하였다. 그러자 많은 동기들이 호응하여 밤 줍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땀 흘려 가꾼 농원의 밤을 동기들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점심 대접까지 하는 그의 동기애와 희생의 정신이 고맙고 고귀하기 짝이 없다.

   나는 신금호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하여 공덕역으로 가서 경의중앙선 문산행 열차로 바꿔 타고 가다가 월롱역에 내렸다. 약속한 1130분이 되니, 남자 10, 여자 6명으로 모두 16명이 모였다. 월롱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도내 4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그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일이 악수하며 환영하였다. 200m쯤 걸어서 그의 집에 도착한 우리는 매실차를 마시며 담소한 뒤에 동산으로 올라갔다.

   도감농원 간판이 달린 곳에 있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란 풀을 모두 베어 밤 줍기에 편하도록 해 놓았다. 밤송이를 발릴 때 쓸 막대기도 넉넉히 준비해 놓았다. 그는 산모기가 많으니 상의 소매를 장갑 안으로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뱀이 나타나면 놀라 소리치지 말고 옆으로 피하라고 하였다. 밤나무 밑에는 밤송이 밖으로 튀어나온 알밤도 있고, 밤송이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밤송이 안에 있는 밤은 밤송이 옆을 두 발로 밟고 막대기로 발린 뒤에 주워서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밤알은 나무에서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싱싱한 것도 있고, 오래 되어 좀 마른 것도 눈에 띈다. 밤알은 작년에 줍던 것보다 큰 것이 더 많았다. 눈에 띄는 밤알 중에서 튼실하고 싱싱한 것만 주워서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수확의 기쁨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허리를 굽히면 땅에서 지열이 올라와 후끈하며 땀이 흐른다. 밤 줍는 일을 되풀이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무릎도 아프기 시작하였다. 내가 일어서서 허리를 만지며 아이구 허리야!’라고 하니 옆에 있던 동기도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3040분쯤 지나고 보니 들고 있는 비닐봉지가 꽤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그만 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리사 쪽을 바라보니, 동기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모두 얼굴은 땀에 젖었지만 흡족한 표정이었다. 밤 주머니를 들어 보이며 주운 양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직접 밤나무를 가꾸지 않고도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 그의 배려심에 감사를 표하였다.

   밤 줍기를 끝낸 우리는 그의 안내로 집 앞에 있는 한식 뷔페식당으로 갔다. 일반 손님들이 지나간 뒤여서 자리도 많았고, 차린 음식도 맛깔스러워 보였다. 그의 제안으로 건배한 뒤에 식사를 시작하였다. 달걀은 손님이 각자 프라이를 해서 먹어야 하는데, 그의 딸이 직접 프라이를 해서 가져다주어 무척 고마웠다.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면서 뜻깊은 밤 줍기 행사를 하도록 초청해 준 그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작별할 때에 그의 얼굴에는 만날 때 짓던 환한 미소가 사라지고 아쉬움과 허전함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그가 마음을 쓰고 있는 가정의 일들이 모두 해소되어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내년에도 또 오라는 그의 말에 하루가 다르게 건강 상태가 변하는 80대의 동기들이 다 호응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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