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예배 시간에 담임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뒤에 당한 악마의 시험을 물리친 일(마태복음4:511)을 본문으로 타협하지 않는 믿음이란 제목의 설교를 하셨다.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계셨으므로 육신적으로 약해진 상황에서도 악마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물리치셨음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영국의 육상선수 데릭 레이몬드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아들과 아버지의 행동에 공감하도록 유도하셨다. 부자간의 사랑과 신뢰에 대한 공감은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졌고, 곧 하나님과 나의 관계 이해로 치환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데릭 레드몬드(Derek Redmond)196593일 영국 버킹엄셔에서 출생한 전직 육상 선수이다. 그는 19세 때 400m 달리기에 신기록을 세우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였지만, 경기 직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했다.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00m 계주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400m 종목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런데 준결승 경기 도중 허벅지 근육 파열로 트랙에서 쓰러졌다. 관중들은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숨을 죽이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의료진이 곧 들것을 가지고 와서 옮기려 하자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앞질러 가는 것을 본 그는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일어나서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그때 관중석에서 그의 아버지 짐 레이몬드가 달려와 아들아 함께 걷자라고 하면서 그를 부축하여 걸었다.

   이런 감동적인 모습을 본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관중의 격려에 힘과 용기를 얻은 그는 아버지와 함께 걸어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비록 메달은 얻지 못하였지만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함께 완주한 그의 스포츠 정신과 투혼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 사실은 곧 전 세계에 전파되어 만민의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그가 부상의 고통을 참으며 완주하여 감동의 드라마를 펼친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는 평소에 아버지를 사랑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관심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의 올림픽 참가에 대한 집념과 4년간 흘린 땀을 헛되이 흘려 버리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싶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합해져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인간적인 감동의 드라마를 펼칠 수 있었다.

   우리 삶의 여정은 올림픽 육상 경기에 출전한 선수의 행보에 비견할 수 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데릭 레이몬드가 경기 중에 허벅지 근육 파열이라는 불의의 사고를 당할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그가 당한 사고에 비견할 수 있는 뜻밖의 고난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뜻밖에 당한 고난으로 힘들어할 때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격려해 줄 분은 누구인가? 이런 분이 있다면 나는 용기를 얻고 힘을 내어 인생길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인생길에서 나를 도와줄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다짐해야 하겠다.

   「다니엘서를 보면,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으로 만든 신상과 임금께 절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꿋꿋하게 자기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그 벌로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불 가운데에서 살아 나왔다.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왕 때 다니엘 역시 그들의 신과 왕에게 절하지 않고 자기 신앙을 지켰다. 그는 그 벌로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보호로 몸을 상하지 않고 살아 나왔다.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떠한 유혹이나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분이므로, 그를 믿고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인생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신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감사하며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2026. 3. 18.)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성경 속 인물  (2) 2026.06.22
어머니 추모예배  (0) 2026.04.06
노년의 친구  (8) 2025.08.30
내 탓이오  (2) 2025.07.18
노년에 듣는 「스승의 은혜」 노래  (2) 2025.05.30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생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감동은 청소년 시절의 나에게 꿈과 소망을 갖게 해주었고,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용기와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청년기를 지나 중년으로 들어선 뒤에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요셉의 삶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곤 하였다. 노년에 이르러 생각해 보니 요셉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성경 속 인물이다.

   요셉 이야기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섭리가 교차하는 드라마와 같다. 그가 어린 시절에 입은 화려한 옷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표지로 자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난의 씨앗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편애와 꿈 이야기로 인해 형들의 질투와 미움을 샀다. 형들은 그를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았고, 그들은 그를 이집트 왕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았으므로, 그는 그의 집 노예가 되었다.

   그는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는 원망 대신 성실을 선택했고, 절망 대신 희망을 붙들었다. 그는 감옥에서 만난 시종장의 꿈을 해석한 것이 인연이 되어 왕의 꿈을 풀이하고, 나라를 구하는 총리 자리에 오른다. 그는 형들의 악의가 결국 가족을 살리는 길로 이어진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깨닫고, 자기를 죽이려다가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한다. 버림받음이 곧 선택이 되고, 고난이 새로운 삶의 준비 과정이 되는 역설적인 삶을 산 요셉의 일생은 사람의 계획을 초월하는 신비를 보여준다.

   나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년 동안 이일 저일을 하여 학비를 모은 뒤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 문제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학업을 포기하고 대도시로 가서 취업하여 1년을 지내는 동안 많은 고뇌를 겪었다. 그 무렵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 가서 종살이를 하면서도 자기가 꾼 꿈의 실현을 믿고 인내하며 성실하게 살아 전화위복(轉禍爲福)한 요셉의 삶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내 행위 모델(role model)이 된 요셉은 나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었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어머니의 가르침과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일을 마주하게 되면, 본분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요셉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성 문제나 금전 관계에서 원칙을 지키며 깨끗하게 살 수 있었다.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때에는 종살이와 감옥살이 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성실하게 산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도 믿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이라 믿고 이겨냈다. 그 결과 노년이 된 지금까지 크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한 일이다.

   요즈음 사회 지도층의 인사들이 돈 문제와 성 문제로 지탄받고, 오랫동안 쌓아온 사회적 명성이나 신뢰가 산산이 깨지는 사례를 보았다. 장차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청년이 담임목사의 비행을 알고 그 꿈을 접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일을 일으킨 사람들이 요셉의 언행을 마음에 새겼더라면 파국을 맞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범적인 삶을 산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그들을 롤 모델로 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814호(2026. 6. 21)>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3) 2026.07.17
어머니 추모예배  (0) 2026.04.06
노년의 친구  (8) 2025.08.30
내 탓이오  (2) 2025.07.18
노년에 듣는 「스승의 은혜」 노래  (2) 2025.05.30

   며칠 전에 온 가족이 모여 어머니 추모예배를 드렸다. 23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니 추모예배를 준비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950625일에 북한이 남침하여 온 나라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해에 스물한 살이던 형이 의용군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형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43세에 붕성지통(崩城之痛)과 참척(慘慽)의 아픔을 당한 우리 어머니는 6남매를 데리고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6남매와 함께 아버지의 뒤를 따르려고 마음먹고 몇 번이나 실행에 옮기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갈산감리교회 전도사님의 전도를 받고, 위로격려와 기도에 힘을 얻어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는 한편 삯바느질을 하시고, 셋째 누나에게는 장사를 하게 하였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나는 농사일을 하는 한편 나무를 해다가 땔감 대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낸 뒤에 누님 둘은 시집을 갔다. 어머니의 신앙심은 더욱 깊고 뜨거워졌으며 전도에 힘쓰셨다.

  어머니와 누님들은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날 저녁에는 어머니의 인도로 온 가족이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정예배를 드렸다. 예배 시간에는 어머니와 누님 셋이 돌아가면서 기도하였는데, 기도가 너무 길어 잠이 든 날도 있었다. 그때의 기도는 참으로 뜨거우면서도 간절하고 애잔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실 것이라 믿었다. 그 무렵의 가정예배는 우리 가족이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품게 해 주었고, 가족애를 느끼며 평온한 생활을 하게 해 주었다. 이 무렵의 가정예배는 내가 평생 신앙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머니가 열심히 전도하여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보신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서지방 감리사님은 어머니를 개척교회 담임 전도사로 파송하였다. 어머니는 50이 넘은 나이인데도 성경학교에 가서 중등교육 과정을 마친 뒤에 대전신학교에 가서 신학 공부와 목회 지도자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전도와 기도, 교회 부흥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교회는 어머니의 열성적인 전도와 쉼 없는 기도, 진정 어린 교인 사랑에 힘입어 차츰 부흥되었다. 교인이 늘어 자리가 잡힌 뒤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교회 개척하기를 여러 번 하셨다. 어머니는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전국의 이름난 기도원을 순회하며 기도하시는 중에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내려 그에 맞는 활동도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으므로 교인들로부터 기도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은퇴하신 뒤에 세배하러 오시는 목사님들은 어머니가 목회자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며 관련된 일화를 들려 주셨다.

  어머니는 70세가 넘도록 전도사로 일하시다가 75세에 은퇴하시고 집으로 오셨다. 어머니는 주일과 수요일 예배 때에는 우리와 함께 교회에 가셨지만, 새벽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 교회에 가서 기도하셨다. 어머니는 담임한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아들과 딸의 가정을 위해, 그리고 일가친척의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 결과 자녀손 모두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친척들도 대부분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복음 전도에 힘쓰고,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한 어머니의 수고를 인정하시고, “아버지를 45세에 불러가셨으니, 어머니는 그 두 배는 살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래서 95세까지 큰 병 없이 사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어머니의 기일을 맞으며 신앙의 모범을 보이면서 자손들을 위해 베푸신 고귀한 사랑과 헌신을 다시 생각한다. 어머니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계실 것을 믿고 감사한다. <기독교연합신문> 1804호, 2026. 04. 05.>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3) 2026.07.17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성경 속 인물  (2) 2026.06.22
노년의 친구  (8) 2025.08.30
내 탓이오  (2) 2025.07.18
노년에 듣는 「스승의 은혜」 노래  (2) 2025.05.30

   친구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 말로, ‘동무’, ‘’, ‘친우라고도 한다. 친구는 사귀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취미와 습관, 경험과 추억, 사상과 가치 등을 공유하며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특별한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주는 친구’,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친구’, ‘서로의 인격과 삶을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친구로 나누었다. 공자는 정직한 벗’, ‘성실한 벗’, ‘박식한 벗은 도움이 되는 친구[三益友]이고, ‘남의 뜻에 영합해 비위를 잘 맞추는 벗’, ‘말만 번지르르하고 마음이 음험해 실천이 없는 벗’, ‘줏대나 진심 없이 외면만 부드러운 벗은 해를 끼치는 친구[三損友]라고 하였다. 두 성현의 말은 친구의 성격과 본질을 잘 설명해 준다. 그와 동시에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가 일깨워준다.

   우리의 옛날이야기 중에 삶은 돼지를 싸서 짊어지고 친구를 찾아가 불의의 사고로 죽인 사람의 시신이라며 하룻밤만 숨겨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반응을 살펴서 누가 진실한 친구인가를 판가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최운식 편, 《한국의 민담 2》에 실린 진실한 친구참조). 이 이야기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친구도 좋지만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실한 친구라고 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성현의 가르침과 관계없이 이러한 우정관을 구비문학 작품에 담아 전파·전승해 왔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진심으로 바르게 행동해야 진실한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친구를 대할 때에 진심으로 대하며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였다. 그래서 몇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70대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보니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80대 노년이 되고 보니,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사귀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 성현이 친구에 관해서 한 말이나 우리 조상이 강조해 온 진실한 친구에 대한 관념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된다. 나이 든 내가 상대에게 이득을 줄 것도 없고, 또 바랄 것도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식 습득이나 인격 함양에 도움을 줄 사람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더 지식을 쌓고 인격을 함양할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줄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된다. 활동 영역이 제한적이니 건강 문제 외에 위기를 맞을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노년의 친구는 어떤 사람이 좋은 친구인가? 정서적으로 통하는 사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 좋다. 시간이 날 때 전화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주위의 여건 때문에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으면 아쉬움만 더해갈 뿐이다.

   힘들 때 위로해 주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였으면 좋겠다. 답답한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만나 내 속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사실과 다른 말로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헐뜯을 때 변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이런 사람이라면 주머니 사정이 좋아질 때마다 불러내어 식사하고 싶어질 것이다.

   노년이 되면 사회적인 활동이 줄어든다. 그에 따라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사실상 없어진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을 골라 관계를 두텁게 하여 친구로 삼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 생활 습관, 운동 등에 유의해 건강을 챙기면 노년의 외로움을 잊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2025. 8. 30.)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성경 속 인물  (2) 2026.06.22
어머니 추모예배  (0) 2026.04.06
내 탓이오  (2) 2025.07.18
노년에 듣는 「스승의 은혜」 노래  (2) 2025.05.30
지혜로운 어머니  (0) 2025.04.10

˙   며칠 전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엄마가 4살과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 앞에서 걷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넘어졌다. 엄마가 일으켜주니 그는 울면서 언니 때문에 넘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마주 걸어오며 본 바로는 그 아이는 언니와 상관없이 넘어진 것이 확실하였다. 그런데도 언니 탓을 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저 어린아이는 왜 자기보다 한발 앞서 가던 언니 탓을 할까? 이 생각을 할 때 오래전에 들은 옛날이야기 내 탓이오가 떠올랐다.

   옛날에 나이 어린 색시가 시집을 갔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빨래 앉힌 솥에 불을 땠다. 얼마 뒤에 밑에 깔린 빨래가 누렇게 탄 것을 본 색시는 어쩔 줄을 몰라 울고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이를 본 시어머니는 자기가 빨래를 잘못 앉힌 탓, 신랑은 자기가 물을 조금 길어다 놓은 탓, 시아버지는 자기가 근력이 부쳐 장작을 굵게 패 놓은 탓이라며 어린 색시를 위로하였다.

   위 이야기에서 가족들은 빨래를 태우고 우는 색시를 향하여 자기 탓이니 울지 말라고 달랜다.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잘못을 감싸줄 때 가정은 화목해지고, 하는 일마다 잘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잘못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면서 남을 배려하는 이타심을 갖게 하여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전파·전승해 왔다. 이처럼 옛날이야기는 재미와 함께 그 속에 담겨 있는 교훈적인 의미를 내면화하게 하는 훌륭한 인성교육 자료였다.

   우리 민족의 심층부를 이루는 민중들이 옛날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할 때 통치자들은 어떠하였을까? 중국 당나라 태종은 황충의 피해가 극심하자 모두 나의 부덕 때문이다. 차라리 내 심장을 갉아 먹거라라고 외친 뒤에 신하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황충 두 마리를 삼켜버렸다. 신하들은 그가 병이 날가 걱정하였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그 뒤에 황충의 재해가 멈췄다고 한다[《정관정요(貞觀政要)》무농(務農)].

   조선 태종 때 경상도 앞바다에서 조운선이 침몰하여 사람 수백 명과 세곡 1만 석이 물에 가라앉은 사고가 일어났다. 이 보고를 받은 태종은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쌀은 아깝지 않지만, 사람이 죽은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하였다[《조선왕조실록》태종 355일조]. 이것은 태종이 자신의 부덕함이 해난사고의 원인이라 하며 책임을 인정하는 진솔함과 지도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조선의 영조는 가뭄과 해충 피해가 계속되자 당 태종의 황충 일화를 인용하며 모두 나의 부덕 때문’이라고 자책하였다. 그런 뒤에 과인이 태종처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다짐하였다고 한다[《조선왕조실록》영조 41(1765) 63일 기사]. 조선의 왕들은 당 태종이나 조선 태종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다듬곤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도자의 무한책임론을 보여주는 것으로, 동양의 정치철학과 윤리관을 반영하고 있다.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에는 꽤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면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고 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의 결점이나 욕망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기를 방어하려고 한다. 타인의 기대나 평판을 의식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면 사소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나라에 큰 문제를 야기한다.

   요즈음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자기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법을 어긴 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 검찰의 조작 수사에 의한 것이라고 검찰 탓을 한다. 불법이나 비행이 드러나면 언론의 악의적 보도 때문이라고 얼론 탓을 한다. 사회적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이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법치 질서가 혼란해지고 상식과 가치관이 전도되는 현상을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무력감에 빠진다.

   이러한 풍조를 바로잡는 방법은 없을까? 1990년대 초반 가톨릭교회에서 전개한 내 탓이오운동은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다. 국민의 존경을 받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사회 갈등과 분열 속에서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보다 스스로 반성하고 화해를 추구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당시에 박정훈 전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장은 1990내 탓이오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사회 윤리 회복 운동을 이끌었다. 이 운동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상생활 중 옛날이야기를 통해서까지 민중의 마음속에 책임과 배려 정신을 일깨웠다. 우리도 교육, 언론, 매스컴을 통해 내 탓이오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사회 윤리를 회복했으면 좋겠다.(2025. 7. 18.)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추모예배  (0) 2026.04.06
노년의 친구  (8) 2025.08.30
노년에 듣는 「스승의 은혜」 노래  (2) 2025.05.30
지혜로운 어머니  (0) 2025.04.10
개구리 없는 게 한[恨無大蛙]  (0) 2025.03.08

   5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은 대한적십자사 중앙청소년적십자가 1963526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지자 정부는 2년 뒤인 1965년에 스승의 날을 공식기념일로 인정하고, 날짜를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515일로 변경하였다. 그 까닭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을 받는 것처럼 스승을 존경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였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화하는 제자, 정성 어린 선물을 보내는 제자, 직접 찾아와 함께 식사하며 담소하는 제자들이 있다. 이런 제자를 대할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그 마음에 감사한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에 그에게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아쉽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고마우면서 미안할 뿐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스승의 은혜(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 노래를 부른다. 50년 가까이 교직에 있었던 나 역시 이 노래를 스승 앞에서 부르기도 하였고, 스승의 위치에서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교직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된 내가 나이 든 제자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니 만감이 스쳤다. 올해에는 이런 일이 두 차례나 있었다.

   한번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지도한 여제자 세 명이 나와 아내를 인사동의 한식집으로 초대한 날의 일이다. 한 사람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노래 지도에 특출한 기량을 지녔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성악에 재능을 가졌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고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적인 인물이다. 모두 교직에서 은퇴한 뒤에 각자의 재능을 살리며 제2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세 사람이 카네이션과 선물을 준 뒤에 스승의 은혜노래를 불렀다. 세 사람이 화음을 맞춰 3절까지 부르는 동안 나는 세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에 감사하면서 부족했던 점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 가득하였다. 노래를 들은 뒤에 대화하면서 먹는 점심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정겹고 맛이 있었다.

   다른 한 번은 1982학번 학부 제자 8명과 함께 12일 일정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퇴직 교수인 K가 세종시 금강변에 별장처럼 쓰는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다며 동기생들을 초청하여 함께 갔다. 공주 갑사를 탐방하고 저녁에 전원주택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였다. 돼지고기와 양갈비를 K 부부가 직접 가꾼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먹으며 포도주를 곁들이니 정말 흥겨운 잔치 자리가 되었다. 여러 대화 중에 재학 시절에 있었던 일이 화제에 올랐을 때에는 서로 말을 보태며 즐거워하였다. 30여 년 전에 미국으로 가서 살고 있는 B 부부도 귀국하여 함께 자리하니 더욱 뜻깊고 정겨웠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에 K가 친구들을 일어서게 한 뒤에 하모니카로 스승의 은혜노래를 연주하자 모두 제창하였다. K의 부인은 작은 화분에 담긴 예쁜 꽃을 주면서 손수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기른 것이라고 하였다. 70세 전후의 이 동기들은 몇 년 전부터 철마다 한 번씩 나를 불러 함께 트레킹을 하며 담소하곤 한다. 이일만도 고맙고 과분하게 생각하며 지내는데, 오늘은 모두 뜻을 모아 스승의 은혜노래까지 불러주니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하였는가 되돌아보았다.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느라 시간에 쫓겨 학생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베풀지 못하였고, 함께 시간을 나누지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학연을 맺은 지 3040년이 지났고, 나이 70세가 넘어 같이 늙어가는 오늘까지 나를 스승으로 기억하고 칭송해 준다. 나에 대한 과분한 대접에 미안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오래전에 맺은 학연을 잊지 않고 이어오는 제자들을 보면서 교육자가 되어 많은 제자를 둔 것을 감사한다. 오늘 따라 전에 모임을 같이하던 판사와 검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사회의 병든 자들과 상대하며 사는데, 교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젊은이들과 생활하니 좋겠다.”라고 하던 말. 이제 제자들에게 재학 시절에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접어야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달라는 제자들의 말처럼 오래 사제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도록 건강 유지에 힘써야겠다. (2025. 5. 30.)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년의 친구  (8) 2025.08.30
내 탓이오  (2) 2025.07.18
지혜로운 어머니  (0) 2025.04.10
개구리 없는 게 한[恨無大蛙]  (0) 2025.03.08
황새 재판  (0) 2025.02.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