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소설 중에 <황새결송>이란 작품이 있다. 재판에서 억울한 판결을 받은 사람이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한 재판관을 동물에 빗대어 풍자한 내용이다. 조선 헌종 때인 1948년에 간행된 목판본 《삼설기》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을 송사형 우화소설(訟事形寓話小說), 공안소설(公案小說)의 뛰어난 작품으로 꼽기도 한다.

   경상도에 사는 부자에게 한 일가친척이 찾아와 같은 조상의 자손으로 혼자만 잘 사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재산의 반을 나눠주지 않으면 그대로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그는 친척을 서울로 데리고 가서 형조에 고소한 뒤에 자기의 정당함을 믿고 조용히 재판하는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불의한 친척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관원과 재판관에게 접근하여 유리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청탁하였다. 그는 재산의 반을 나눠주라는 판결을 받고 억울하고 분하였지만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관원들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고 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는 <황새 재판> 이야기로 뇌물을 받아 챙기고 부당한 판결을 한 판관을 비판한다.

   어느 날, 꾀꼬리뻐꾸기따오기가 모여 자기의 목소리가 가장 좋다고 다투다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황새에게 판결을 의뢰하였다. 제 소리가 가장 좋지 않은 것을 아는 따오기는 황새에게 그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비롯한 여러 먹거리들을 잡아다가 주며 자기의 소리를 최상으로 판결해 달라고 청탁하였다.

   소리겨룸을 하는 날, 황새는 꾀꼬리의 소리는 애잔하여 쓸데없다고 내치고, 뻐꾸기의 소리는 궁상스럽고 수심이 깃들여 있다 하여 내친 다음, 따오기의 소리가 가장 웅장하다며 상성으로 처결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관원들과 재판관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재판은 그 결과에 따라 원고든 피고든 어느 한쪽은 권리와 재산상의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므로 법관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므로 오랜 옛날부터 강조되어 왔다. 일찍이 공자는 재판이 인과 예, 효와 충의 기본적인 원칙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재판관은 피고와 원고를 동등하게 대우하며 그들의 입장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성경에서도 재판에서 공정성을 잃어서도 안 되고, 사람의 얼굴을 보아주어서도 안 되며 재판관이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신명기> 16:19)라고 하였다. 공의로운 재판을 하고, 입을 열어 억눌린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의 판결을 바로 하라(<잠언> 31:9)고 하였다.

   재판은 공정성과 함께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때에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한다. 재판관은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한다. 판사가 개인적 신념이나 정파성을 우선시하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요즈음 일부 판사들이 불공정한 판결을 하고, 판결을 지연하며 이념에 따라 공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판결을 한다. 그에 따라 사법부 전체를 불신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요즈음에는 국민이 사법부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나 상식을 가진 국민이 유죄라고 하는 사건이 괴변과 함께 무죄로 판결된 일이 있다. 국회의 구속동의까지 받은 구속영장을 야당의 대표라 하여 기각한 판사도 있다. 입시비리 사건의 판결이 5년을 넘긴 뒤에 확정되고, 선거법 위반 재판이 5년 넘게 걸리는 바람에 국회의원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는 일도 일어났다. 야당 대표의 선거법 재판이 재판 지연작전과 판사의 늑장으로 2년 넘게 걸려 1심이 끝난 일도 일어났다. 이러한 불공정한 판결이나 지연된 재판으로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재판이 온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측과 상의 없이 일주일에 두 번씩 무더기로 변론기일을 정하고, 대통령 측이 요구하는 증인을 대부분을 기각하며, 증인신문 시간을 제한하고 발언을 막는다. 경찰이나 검찰에게 조사 중인 사건의 조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여 받아낸 뒤에 이를 근거로 재판을 진행하며 증인이 동의하지 않는 검찰조서를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피의자가 된 대통령의 방어권을 박탈하는 조치이다. 그래서 탄핵재판 진행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하여 대통령 측과 많은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헌재는 이러한 진행을 신속한 판결을 위해서라고 한다. 재판 절차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은 신속함은 불공정을 낳는다. 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파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어 놓고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을 더하는 일이다. ‘일제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한 헌재라는 현직 검찰청장의 비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불공정한 재판 진행이나 판결, 시간 끌기 등을 자행한 판사에게 많은 법조인이나 일반 국민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위에 적은 <황새결송>의 관원들은 당사자의 동물에 빗댄 비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판사들은 잘못을 인정했다거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소식이 없다. 오늘의 재판관들은 조선 후기의 재판관에 비해 양심이 오염되고, 낯이 두꺼워진 탓일까?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의 저서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한 판관을 반실태수(半失太守)라 하고, 판관 중에 최하위라고 하였다.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판사님들은 최하위의 판사라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2025.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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