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월 5일)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이다. 태양의 황경이 345도에 이르는 때로 동지를 지낸 뒤로 74일째 되는 날이고, 춘분을 15일 앞둔 날이다. 경칩은 추위가 풀려 만물이 약동하며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돋는 때이므로 겨울잠을 자던 벌레, 개구리 등이 깨어난다는 날이다. 한국에선 겨울잠을 자는 동물 중 유난히 개구리를 주목한다.
《삼국유사》에는 북부여의 금와왕(金蛙王) 이야기가 실려 있고, 이수광의 《지봉유설 》 에는 이른 봄에 개구리 우는 소리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습이 있다고 하였다. ‘경칩에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 통증에 좋고 허약해진 몸을 보양할 수 있다’라고 하여 개구리 알을 뜨러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불치병으로 여기던 결핵 환자가 집에서 쫓겨나 냇가에 헛집을 짓고 지내면서 개구리와 뱀을 잡아 먹고 병이 나았다는 말도 들었다. 이로 보아 개구리는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구리는 황새를 비롯해 몸집이 큰 새들이 무척 좋아하는 먹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황새와 개구리를 제재로 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한무대와(恨無大蛙, 개구리 없는 것이 한)’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1971년부터 조금씩 다른 이 이야기를 여러 지방에서 채록하여 설화집에 실은 바 있다.
숙종 임금이 미복차림으로 야순을 하다가 밤늦게까지 글을 읽고 있는 선비의 집에 이르러 보니, 책상 앞 벽에 ‘한무대와’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왕이 그 말의 뜻을 물으니, 그는 자기 인생의 역사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느 해 경칩 무렵에 꾀꼬리와 부엉이가 만나 누가 노래를 잘 하는가를 다투었다. 그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황새에게 판결을 의뢰하기로 하였다.
꾀꼬리가 노래 연습을 할 때 부엉이는 개구리를 잡아 황새에게 갖다 주면서 자기가 이기게 해 달라고 청탁하였다. 황새가 ‘부엉이의 소리가 힘이 있고 장부답다’며 손을 들어주는 것을 본 꾀꼬리는 분하고 억울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면서 뇌물과 뒷배가 횡행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꾀꼬리와 같은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고 하였다.
임금은 그에게 곧 별과가 있을 것이니 응시해 보라고 권하고 돌아와 과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조처하고, 별과를 시행하였다. 그가 시험장에 가서 보니, 시제가 ‘한무대와’로 자기 이야기였으므로 글을 잘 지어 급제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선비는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그것은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권력자에게 뇌물로 줄 돈이 없고, 뒤를 받쳐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재 발굴을 목적으로 시행되는 과거가 뇌물과 청탁, 뒷배가 횡행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리고 자기의 처지를 꾀꼬리에 빗대어 ‘한무대와’라고 벽에 써 붙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널리 구전되어 오면서 고소설 「황새 결송」에 수용되어 불공정한 재판을 풍자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겪은 이야기라고 하기도 하고, ‘와이로(蛙利鷺)’란 말의 어원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다 확실하지는 않다. 이것은 오랜 동안 민간에 전해 오면서 덧붙여진 이야기인 듯하다.
이 이야기는 과거 시험을 비롯한 인사문제에 뇌물과 청탁이 횡행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그러면서 공정하게 인재를 골라 쓰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선비의 한은 잠행 중이던 숙종 임금의 방문을 계기로 해결의 전기를 맞는다. 과거 부정의 현황을 파악한 임금은 과거가 공명정대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조처하는 한편 별과를 시행하여 그를 급제하게 하여 평생의 한을 풀어주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자녀 입시 비리문제나 선거관리위원회의 가족 채용 비리를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개구리 없음을 한탄하던 선비가 임금을 만나 한을 푼 것처럼 불공정한 일들이 바로잡히고, 그런 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공명정대한 세상이 되기를 마음 간절하다. (2025.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