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선일보 일사일언(2023. 12. 28일자 제18)사람보다 나은 침팬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침팬지의 어떤 점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보다 낫다는 말인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필자가 누구인가를 살펴본 뒤에 찬찬히 읽었다. 에버랜드의 사육사 송영관 씨가 쓴 이 글은 제목과 내용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방에는 평범한 침팬지를 넣고, 나무 막대를 사용해야만 열 수 있는 먹이상자를 놓아두었다. 오른쪽 방에는 권위적인 대장 침팬지를 넣고, 먹이상자를 열 수 있는 도구만 넣어두었다. 침팬지는 도구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은 2007년과 2009년에 독일과 일본에서 침팬지에게도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 즉 이타심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상황을 파악한 오른쪽 방의 침팬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막대기를 왼쪽 방의 침팬지에게 건네주었다. 왼쪽 방의 침팬지는 건네받은 막대기를 이용하여 먹이상자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 먹이를 오른쪽 방의 침팬지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침팬지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 즉 이타심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 글을 읽고, 침팬지가 이타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큰 울림을 받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 때 불현듯 세 도둑의 죽음이라는 옛날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부잣집에서 큰돈을 훔친 세 도둑이 한적한 산골로 피신하였다. 그들은 목이 출출하였으므로 한 사람은 주막으로 술을 사러 가고, 둘은 거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돈을 지키던 둘은 돈을 혼자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함께 있던 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술병을 들고 온 사람마저 죽였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시며 호쾌한 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술을 사러간 사람이 돈을 혼자 차지하려는 속셈에서 술병에 독을 넣었으므로, 그 역시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되는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사람에게는 자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것에 앞서서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 이를 이기심이라고 한다. 이것은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본능으로 누구나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도를 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겸손히 남에게 사양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그리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러한 인간 성정의 사단(四端), 즉 인지상정(人之常情)에서 이타심이 나온다.

   사람은 남을 배려하기에 앞서 자기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것을 지향하며 부당한 일에 맞선다. 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고 마음 아파하며 도와주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두 가지 마음 즉, 이기심과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마음이 균형을 이루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선천적인 본인의 성향이나 환경 요인에 따라 어느 한 가지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이기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살이에 가장 밝고 똑똑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타심이 강한 사람을 세상 물정을 모르는 호구(虎口)로 생각하고, 이용하려 든다.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면서 이익을 꾀한다. 요즈음에 많이 일어나는 묻지마 폭행이나 보이스피싱 등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이나 범죄행위는 이런 사람들의 소행이다.

   이타심이 강한 사람은 이기심이 강한 사람을 자기만 아는 약삭빠른 사람,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치지도외(置之度外)한다그리고 옳은 일에 힘쓰고,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불의한 일을 보았을 때에는 참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선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임대아파트에 불이 났을 때 수차례 연기를 뚫고 고령자와 이웃 주민들의 대피를 도운 우영일 씨, 청주 오송 궁평2 지하차도 침수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3명을 구한 유병조 씨, 동해안에서 파도에 휩쓸려 나가는 5명을 구한 이형태 씨 등을 비롯하여 의인, 애국자 등은 이타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에는 누구나 아무 조건 없이 그 아이를 구하려고 한다. 이를 보면 사람은 누구나 이타심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음속에 함께 있는 이기심이 이타심을 억누르고 마음을 지배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마음 수양을 해야 한다. 저급하고 탐욕스런 이기심이 마음을 지배하면 침팬지만도 못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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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신문, 잡지, 학술지 등에 많은 글을 실었다. 그때마다 그 글에 대한 반응이 나타났다. 학술지에 실린 글은 전공분야가 같은 분들의 반응이었고,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글은 일반 교양인이나 지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아주 다양하였다.

   한국의 고소설이나 민속, 신화·전설·민담에 관한 글일 경우에는 한국문화의 전통이나 가치관, 지혜에 관한 느낌을 말해 주었다. 교육에 관한 글일 때에는 교사들이 느낌을 말해 주었다. 기독교 신앙에 관한 글일 경우에는 기독교 교우들이 자기의 신앙 체험과 주님의 은혜에 관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반응은 다른 글을 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즈음에는 《기독교연합신문》은혜의 샘물코너에 신앙수필을 한 달에 한 편씩 실었다. 여기에 실린 글에 대한 반응은 감동을 받았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등으로 다양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지인들이 대면이나 전화, 또는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로 받은 반응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의외의 인물로부터 반응이 왔다.

   지난 1월 첫째 주일에 일찍 교회에 가니, 모르는 사람한테 온 편지가 주보함에 꽂혀 있었다. 보낸 사람의 주소를 보니, ‘경북 포항시 흥해우체국 사서함이라 쓰여 있고, 발신인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수신인은 장위교회 최운식 장로님께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나에게 오는 우편물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뜯어서 사연을 읽었다.

   첫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실 장로님께 이렇게 번거로운 서신을 드리게 되어 정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입니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재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항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이라면서, 나이와 수인번호와 이름을 적었다. 60대 중반인 그는 노안으로 인해 신문과 책을 보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많아 안경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가족과 지인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라고 하였다. 그러니 안경을 구입할 돈 7만원을 보내달라고 하면서 교도소에서 사용하는 은행 계좌번호를 적었다.

그는 우연히 《기독교연합신문 》 을 보다가 은혜의 샘물난에 실린 목사 아들을 둔 부모란 제목의 내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나가는 장위교회가 자기가 사는 곳 근처에 있다는 말도 하였다. 이로 보아 그는 서울의 북부 지역에 사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니는 교회 이름에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며  기독교연합신문 》 이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고, 들어간 신문을 수인들이 찬찬히 읽는다는 것에 적이 놀랐다. 그가 이 글을 읽고 도움을 청할 대상으로 나를 고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내 글을 읽고 반가운 마음과 함께 공손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목사 아들을 둔 부모와 목사가 된 아들의 마음과 신앙심이 그의 마음에 전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의 편지는 문장이 바르고, 표현이 적절하였으며,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잘 하였다. 글씨는 달필은 아니었지만, 읽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말의 앞과 뒤에 인사치레를 잘 하였다. 이로 보아 학력과 교양 수준이 높은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사람이 무슨 일로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기독교에 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적어 보낸 계좌번호로 돈을 보내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나님, 그가 이 돈으로 안경을 맞춰 쓰고 밝아진 눈으로 신앙에 관한 글과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사히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여 새 출발하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기도가 이루어 질 것이라 믿는다.

   기독교 신앙에 관한 글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글이나 신앙을 강요하는 느낌을 주는 글은 좋은 글마저 읽기를 회피하게 만드는 핑계를 만들어 준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내용을 바르고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한 글은 많이 써서 널리 보급해야 한다. 이런 글은 설교 못지않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704,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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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연구실에는 한자로 斷金如蘭(단금여란)이라고 쓴 작은 액자가 걸려 있다. 은사이신 구용 김영탁 교수님께서 써 주신 휘호이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二人同心其利斷金 同心之言其臭如蘭(이인동심기리단금 동심지언기취여란)에서 따온 말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고, 마음을 같이 하여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 성경에도 있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복음18:19). 가족이나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 합심협력하여 기도하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합심협력의 중요성을 주역》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으로 일깨워 준다.

   우리 교회 여자 권사님이 오래 전에 쓴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시부모님과 시누이, 시동생과 함께 잘 살았다. 그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여 여러 병원을 다니며 유명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좋다는 약과 식품을 다 먹었지만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피를 토하기까지 하였다. 서울대학병원의 간() 전문의에게 오랫동안 진료를 받았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는 담당 의사가 약도 주지 않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좀 쉬라고 했다.

   그는 이제 내 병은 고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득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는 병원 앞에서 통곡하였다. 그는 절망적인 마음을 추스르고 큰 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하였다. 언니는 가까운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였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그는 그날부터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기도할 줄 몰라 하나님, 제 병을 낫게 해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주일 낮에는 언니가 섬기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어느 날 새벽에 인사도 드린 적이 없는 목사님께서 안수기도를 해 주시고, 우리 교회에 나오면 특별히 기도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그 교회에 등록하였다. 그날부터 목사님은 매일 교인 한 분과 함께 그의 집에 오셔서 기도해 주셨다. 병원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다니면서 검사를 받고 약을 먹었다.

   얼마 후에 온몸에 멍이 생겼다. 그날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간수치가 1,000이 넘는다고 하면서(간수치 정상은 40미만) 바로 입원하라고 하였다. 그 날이 1231일이었는데, 입원하려고 하니 병실이 없을 뿐더러 13일까지 공휴일이라서 14일에 입원하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그의 몸에 나쁜 못이 많이 있다고 하면서 다 뽑아주었다. 밤중에 언니한테 전화를 하였더니, 언니가 말했다. “너를 위하여 우리 교회 형제자매 여러분이 작정하고 철야기도를 하였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이제 너는 다 나았다!”

   14일에 다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검사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보시고, 그동안 무슨 일을 하였느냐면서 퇴원하라고 하였다. 그 말에 놀라 항의하면서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와 치료를 다 해 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1주일 동안 다시 모든 검사를 받은 뒤에 병이 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날아갈 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뒤로 그는 새벽기도회는 물론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고, 여러 교회의 부흥회에도 다니면서 은혜를 받았다. 그 뒤로 그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던 시부모님이 교회 출석을 허락하심과 동시에 분가하라고 하셨다. 그 뒤로 그는 마음 놓고 교우들과 함께 봉사전도활동을 하였다. 얼마 후에 그의 기도가 이루어져 남편도 복음을 받아들였다. 합심 기도의 위력을 안 그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온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함으로써 어려움을 타개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며칠 전에 척추 수술로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남자 권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수술하기 전 집도 의사는 그 수술의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면서 결과가 좋으면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수술을 전후하여 그의 부인 권사님과 두 아들 목사님은 물론, 전 교인이 합심하여 수술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 결과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교회에 출석할 수 있게 되었다. 집도 의사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놀라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란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라 생각하고 감사한다. 그가 지팡이를 던져버릴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기독교연합신문, 1696호, 202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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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크고 작은 재난이나 질병을 겪으며 살아왔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노여움이나 징벌에 의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재난이 없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또 해를 끼치는 신들이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책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그 예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에 양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다. 한국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대문에 바르고, 대문 앞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은 7년씩 이어지는 풍년과 흉년을 슬기롭게 대처하여 이집트의 구원자로 칭송을 받는다. 요셉의 인도로 이집트에 이주한 야곱의 가족 70명은 430년을 사는 동안 번성하여 큰 세력을 이루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후세의 이집트 왕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으로 부렸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을 호소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을 내린다. 모세는 이집트 왕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다. 이집트 왕이 이를 거절하자, 모세는 이집트에 아홉 가지 재앙을 내렸지만,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열 번째 재앙을 내릴 것을 예고하고, 할 일을 알려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명에 따라 일 년 된 수컷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랐다. 그리고 길을 떠날 차림으로, 그 고기를 불에 구워서 무교병을 쓴 나물과 함께 먹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이집트 사람의 집을 찾아다니며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치셨다. 그러나 문설주와 상인방에 양의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는 아무런 해가 없었다. 열 번째 재앙을 당한 이집트 왕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을 허락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은 탈출에 성공하였다. 유월절은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성주신을 비롯한 가신들에게 바치고, 대문과 그 둘레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풍습은 고려시대 이색의 《목은집》 이제현의 《익재집》에 이와 관련된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동지팥죽은 역귀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 하였다.

   동지는 태양의 황경이 270° 위치에 있을 때로, 양력 1222일경이다. 밤낮의 길이는 하지로부터 낮이 차츰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다가 동짓날에 극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동짓날을 아세(亞歲)또는 작은설이라고도 하는 것은 동지가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절기임을 말해 준다.

   팥죽의 주재료인 팥은 붉은 색을 띠는 곡식이다. 붉은 색은 밝은 태양, 활활 타는 불꽃을 상징하는 색이다. 이런 색을 귀신들은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그에 따라 민속에서는 붉은 색을 축귀(逐鬼)’, ‘축사(逐邪)’의 힘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옛사람들은 질병이나 재난의 원인을 잡귀잡신이 들은 때문이라 여겼다. 그래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붉은 색이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고, 나누어 먹으면서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였다.

   동지팥죽에는 쌀과 함께 새알심을 넣는다. 쌀의 흰색은 태양의 빛을 상징하는 흰색으로, 신성의 의미를 지닌다. 찹쌀이나 수수 가루로 동글동글하게 만든 새알심은 새의 알을 상징한다. 신화에서 알은 생명의 근원으로, 생산력을 상징한다. 따라서 팥죽의 쌀과 새알심은 흰색이 지닌 신성성과 새알심이 지닌 생산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동지팥죽에는 팥의 붉은 색이 지닌 축귀축사의 의미, 쌀의 흰색이 지닌 신성성, 새알심이 지닌 생산력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매우 특별한 음식이라 하겠다. 작은설인 동짓날에, 이러한 의미를 지닌 팥죽을 쑤어 성주신을 비롯한 가신들에게 바치고, 대문과 문 둘레에 뿌리는 것은 잡귀잡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고,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에 양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는 것은 사람과 집짐승의 처음 난 것을 죽이러 다니는 천사에게 이스라엘 사람의 집임을 알려 재앙을 면하려고 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인이 동짓날 대문에 팥죽을 바르는 것은 잡귀잡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두 가지 풍습은 재앙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풍습은 성경에 기록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에 비하여 동지팥죽은 민속으로 전해 오다가 현대에는 그 의의가 약화되어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689,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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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아내가 동사무소에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반납하였다. 동에서는 노인의 운전면허증 반납을 권장하는 뜻에서 10만원이 들어 있는 교통카드를 주었다고 한다. 아내는 나에게 언제까지 자동차 운전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운전을 하고 있고, 운전면허증은 내년까지 유효하다. 그러므로 그 일은 내년에나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내의 물음을 계기로 나의 운전 경력과 내가 탄 승용차에 관한 기억을 되돌아본다.

   나는 19792월에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받았다. 후배 교사의 소개로 이웃 초등학교의 교사들이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단체로 자동차운전교육을 받는 데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론과 실기 교육을 마치고 면허시험에 응시하였다. 이론시험에는 함께 응시한 교사들 모두 합격하였다. 그러나 실기시험에는 1차로 합격한 사람이 몇 명 안 되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한 번에 합격하여 면허증을 받는 기쁨을 맛보았다.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받고 보니, 자동차를 사서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대학 교수가 된 지 1년밖에 안 된 나로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잘 하지만, 실생활 면에서는 단돈 1만원도 융통하지 못하는 손방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승용차를 살 수 있게 200만원만 빌려다 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니냐면서 펄쩍 뛰었다. 나는 승용차를 사려는 이유와 빚 갚을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그 해에 나는 시간강사 시절에 나가던 때와 같이 외부 강의를 맡았다. 그래서 두 대학에 가서 여러 시간 강의를 해야 했다. 멀리 있는 두 대학 출강을 위해 오가는 시간을 아껴서 강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나는 두 대학 강사료를 받으면 월급 건드리지 않고 꾼 돈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방학에 자료조사 여행을 갈 때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니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승용차를 사야 한다고 하였다. 아내는 내 설득에 넘어가서 동료 교사한테 돈을 꾸어다 주었다.

   그래서 그해 4월에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소형승용차를 구입하였다. 지금은 누구나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각 기관의 장이나 사업하는 사람이 아니면 자가용 승용차를 사서 탈 생각을 가지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갓 임용된 교수가 자가용을 샀으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함께 빈축을 사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싶은 것을 샀고, 유용하게 이용할 계획이 있었으므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 구입한 브리사는 1000cc 미만의 소형차였지만, 꿈에 그리던 자가용 승용차였으므로, 중형이나 대형승용차가 부럽지 않았다. 장위동 집에는 주차장이 없었으므로, 동네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를 탈 때에는 학원에서 배운 대로 매일 엔진오일, 브레크오일, 타이어 공기압 등을 체크하고, 기름걸레로 차체의 먼지를 제거하곤 하였다. 차에 흙물이나 빗물 자국이 있을 때에는 물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겨울에는 물을 데워가지고 나와서 차를 닦곤 하였다. 이런 열정과 정성은 처음 가진 승용차에 기울였던 것이고, 그 다음에 구입한 승용차부터는 차츰 게을리하였다. 요즈음에는 운행에 꼭 필요한 사항만 점검하거나 그것도 미루는 때가 많다. 가끔씩 카센터에 가서 안전점검을 받고, 자동세차를 하거나 어쩌다가 돈을 주고 손세차를 한다.

   브리사를 사던 해에는 어머니와 큰누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하였다. 소형차에 어머니와 큰누님, 그리고 우리 부부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3남매가 탔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큰 불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주 계룡산 갑사와 동학사, 부여 낙화암 등 충남의 명승지를 순례하였다. 그 뒤에는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하였으니, 첫 번째 차에 기울인 사랑이었던 것 같다.

   브리사는 5년 동안 큰 고장 없이 나의 발 노릇을 해 주었다. 나의 출퇴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의 출근에도 도움을 주었다.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학생들과 함께 설화자료 조사 여행을 하였다. 커다란 릴(reel) 녹음기를 비롯하여 여행의 필수품을 넣은 큰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자료조사 여행을 다니던 때에 비하면 정말 편안한 여행이었다. 시골에서 비를 만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가슴 졸이던 일, 눈이 쌓여 움직이지 못하고 여관에서 며칠씩 묵던 일 등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때 동행하여 고생했던 학생들(지금은 교수가 된 이가 여럿임)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이제 내가 자동차 운전을 시작한 지도 어언 44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의 발이 되어 준 승용차를 세어 본다. 1979년에 산 브리사(기아자동차, 서울14790)를 비롯하여 1984년의 맵시나(대우자동차, 서울19745), 1991년 콩코드(기아자동차, 서울29028), 1996년 소나타(현대자동차, 서울315147), 2001년 카렌스(기아자동차, 서울488424), 2006SM7(르노삼성자동차, 016097), 2014SM7(르노삼성자동차, 403987) 등이다. 이들 7대의 승용차가 지금까지 나의 발이 되어 출퇴근, 자료조사, 관광여행 등을 도와주었다. 지금까지 나의 발이 되어 준 7대의 승용차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그동안 승용차를 타고 다님으로써 출퇴근 때에 편했던 것은 물론이고, 자료조사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설화와 민속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자료집도 여러 권 간행할 수 있었다. 방문이나 관광 여행에서는 큰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 주었다. 지인 중에는 일찍부터 운전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며 기피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차를 운행하였으니, 운전을 즐기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사고 없이 운전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앞으로 언제까지 운전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23.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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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큰 회사의 대리로 근무하는 조카와 조용히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이야기하는 중에 기독교인의 행동이 화제에 올랐다. 그는 다소 역정 섞인 말투로, 직장에서 예수 잘 믿는다고 떠들며 설치는 사원들 때문에 창피하고 화가 나서 교회를 못 다니겠다고 하였다. 장로의 아들로, 얼마 전에 교회 집사가 되어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의아스러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는 몇 사람의 실례를 들면서 이야기하였다. 예수를 믿는다고 떠들며 설치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여 사람들의 빈축을 사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내세웠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그렇지 못할 바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떠들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그들의 말과 행동에 혐오감을 느끼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저렇다고 비아냥거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장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지, 예수를 믿고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를 한단다.

   우리 둘레에는 이웃을 사랑하며 남모르게 봉사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인임을 내세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선량한 기독교인들을 속이거나 바가지를 씌워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도 틈만 나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예수를 믿도록 권면하는 말을 한다. 이러한 사람의 전도가 효과가 있을까? 열심히 전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이름을 더럽히거나 욕되게 하여 전도를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내가 아는 교수 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전도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교회에 좀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갔고, 거기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인과 함께 교회에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교회 마당에 주차 공간이 있기에 후진하여 주차할 요량으로 차를 앞으로 뺐는데, 그 사품에 점잖게 차린 한 중년 남자가 잽싸게 차의 머리를 앞으로 하여 그 자리에 차를 댔다. 그는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혀 멍하니 서 있다가 다른 자리에 차를 대고,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표정 하나 없이 차의 문을 잠그고, 바로 그 교회로 들어갔다. 그는 저렇게 뻔뻔한 사람과 한 자리에 앉아 예배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부인만 예배에 참석하게 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 뒤로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신앙은 사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을 구실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교회의 임원일지도 모르는 그 중년 남자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여 전도는커녕 제 발로 찾아온 교인을 문전에서 쫓아버리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말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도에 방해가 되는 언행으로 전도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도는 말보다 행동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하다 보니, 전에 근무하던 대학에서 가르친 M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대학입시 공부를 하여 30세가 다 되어 야간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2학년 때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만 하였으므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에는 앞장서곤 하였다.

   학우들은 착하고 부지런하며 겸손한 그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나이가 제일 많은 그를 과대표로 선임하였다. 그 때는 학교가 재단 문제로 교수와 학생들 모두 의견이 엇갈려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학우들에게 충고하고 설득하여 화합을 이루면서 무리 없이 과를 이끌었다. 그는 몇 학기에 걸쳐 과대표를 하면서 과의 일에 솔선수범하고, 봉사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첨예하게 대립되던 재단 문제에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학우들도 그를 욕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임은 물론,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하기도 하였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한 학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그 동안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 못 봤습니다. 그런데 그는 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저도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기독교인은 말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684호,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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