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한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옆자리의 남자 손님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크게 들렸다. 그 손님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나오는 일본어가 귀에 거슬렸다. 그 손님들에게 다가가 지적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주제넘은 일이라 생각되어 그만두었다.

   그들의 대화 중에 그렇게 무데뽀로 덤비지 말고 잘 생각해 봐라는 말이 들렸다. 그 사람은 정말 무데뽀한 사람이야.”라는 말도 들렸다. ‘무데뽀무철포(無鐵砲)라는 한자어에서 온 일본말이다. 아무 데나 마구 쏘아대는 대포처럼 무모한 행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이 한국어로 들어오면서 발음이 변형되어 무데뽀로 굳어졌다. 일부에서는 대포가 없다는 뜻과 혼동하여 무대포로 쓰기도 하지만 바른 표기는 아니다.

   이 말은 그 방향과 시각을 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마구 쏘아대는 대포처럼 앞뒤 생각 없이 무슨 일을 하거나, 분별없이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또 그런 사람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이다. 이를 대체할 우리말로는 무턱대고, 저돌적, 무작정, 막무가내등이다. 따라서 위의 말은 그렇게 무턱대고(저돌적으로) 덤비지 말고 잘 생각해 봐”, “그 사람은 정말 무모한 사람이야라고 바꿔 말하는 것이 좋겠다.

   그들은 대화 중에 그 사람 정말 앗싸리하더라라는 말과 그 일은 질질 끌지 말고 앗싸리하게 거절해.”라는 말도 하였다. 이 말은 일본어 산뜻하게, 담백하게, 간단하게라는 의미를 지닌 일본어 あっさり에서 온 말이다.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로는 산뜻하게, 담박하게, 시원스럽게, 깨끗하게, 간단하게가 있다. 그러므로 위의 대화는 그 사람 정말 시원스럽더라. 그 일은 질질 끌지 말고 깨끗하게 거절해.”로 바꿔 쓰는 것이 좋겠다.

   얼마 전에 시골에 가서 그곳 주민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사는 마을을 우리 부락(部落)’이라 하였다. 이 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격하하는 뜻에서 의도적으로 쓴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인 마을을 ‘00부락이라고 한 것은 그 마을을 얕잡아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부락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뜻을 지닌 부락이라는 말을 버리고 마을, 동네로 쓰는 것이 좋겠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인삼 엑기스, 매실 엑기스라고 하여 엑기스란 말을 우리말처럼 사용한다. 이 말은 진액, 추출액의 뜻을 지닌 영어 엑스트랙트(extract)’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 말을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우니까 엑기스라고 줄여서 말한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일상용어처럼 쓰고 있다.

   한국인은 어떤 외국어도 자유롭게 발음할 수 있고, 한글로 적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굳이 일본식 영어를 따라 하지 말고, 영어의 원음 그대로 엑스트랙트라고 하거나 줄여서 엑스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영어의 엑스트랙트나 엑스보다는 같은 뜻을 가진 우리말 진액, 농축액, 진수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적합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아직도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일본어를 청산하는 일은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그와 함께 우리 말이나 글에 불필요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일을 자제하고, 쓰지 않도록 지적하는 일도 계속했으면 좋겠다.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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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 (《표준국어대사전 》)를 뜻하는 말이다. 칡과 등나무는 혼자 서지 못하고 남을 의지해야만 잘 살 수 있는 넝쿨식물이다. 성장력이 강한 두 식물이 한곳에 있으면 서로 엉켜 싸우게 된다. 그래서 칡 갈()자와 등나무 등()자를 써서 갈등(葛藤)이라 했다.

   갈등은 인간의 삶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갈등을 직접 겪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갈등은 그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내적 갈등, 외적 갈등, 사회적 갈등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내적 갈등은 각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이성과 감정의 충돌, 가치관의 충돌, 사회적 압력과 개인적 욕구의 충돌, 과거의 트라우마,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등에서 생긴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끊임없는 고민과 우유부단, 자기비판과 죄책감, 집중력 저하, 의사결정 장애 등으로 나타난다. 감정적으로 불안, 초조, 우울감, 무기력감, 심한 감정의 기복, 과도한 긴장으로 나타난다. 신체적으로 수면장애, 두통, 소화불량, 피로감, 스트레스성 질환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외적 갈등은 집단 간의 이견, 이해관계, 그에 따른 행동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부모형제자매의 갈등, 부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부모의 편애, 재산의 분배나 상속, 진로, 부모의 재혼, 가치관이나 욕망의 차이 등 여러 요인에서 생긴다. 지인 중에 혼자된 아버지가 재혼하는 것을 반대하던 아들이 재혼한 아버지와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는 이가 있다. 그는 이 일로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생겼다고 한다. 또 서울에 와서 직장 생활을 하고 지내던 동생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고향의 형이 집과 농지를 다 차지하였다는 이유로 형과 왕래를 끊은 사람도 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자녀들도 왕래가 끊겨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부부간에 성격의 차이, 자녀의 진로나 생활 태도, 외도 문제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남녀이므로 성격이나 가치관, 생활 습관이 같지 않아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부부가 자녀에 대한 기대와 진로에 대한 생각, 교육 방법의 차이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처신을 바로 하지 못하여 부부간의 신뢰가 깨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주 다투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이혼을 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자녀는 심각한 정신적, 육신적,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된다.

   사회적 갈등은 집단 간의 갈등으로, 노사문제,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른 문제, 지역 발전 문제 등으로 야기된다. 대기업의 경우 노사문제는 국가 사회에 많은 폐해를 끼치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나뉘어 진영논리를 고집하는 바람에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다. 그래서 헌법 질서가 흔들리고, 국가 경제와 안보가 예측 불허의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조선 건국을 추진하는 혁명파와 고려를 지키려는 충성파의 대립과 갈등은 심각하였다. 이런 때에 이방원은 하여가를 지어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고 하며 정몽주의 뜻을 묻는다.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화답하여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하여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변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심각한 갈등의 중심에 서 있던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서로 뒤엉켜 좋을 것이 없는 칡과 등나무는 되도록 떨어져 살려고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같은 곳에서 살게 되었을 경우에는 칡은 오른감기를 하고, 등나무는 왼쪽 감기를 하여 갈등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이것은 의탁물을 감고 위로 올라가 햇빛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넝쿨식물의 생존 지혜라 하겠다.

   사람들이 대립과 갈등을 겪는 원인은 의사소통의 부족, 이해관계의 충돌, 성향 및 가치관 차이, 감정적 요인과 신뢰 부족, 정체성 문제 등 다양하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먼저 갈등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때에는 감정이 아닌 사실에 집중하여 문제의 본질을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협력적인 태도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적 갈등이 심화하면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은 설득하고 회유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적 갈등 해결을 위한 접근법은 공감과 경청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와 양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갈등 해소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3자가 이해와 양보의 마음을 갖도록 설득하며 중재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설득과 중재를 통해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한다.(2025. 10. 8)

 

 

 

   친구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 말로, ‘동무’, ‘’, ‘친우라고도 한다. 친구는 사귀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취미와 습관, 경험과 추억, 사상과 가치 등을 공유하며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특별한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주는 친구’,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친구’, ‘서로의 인격과 삶을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친구로 나누었다. 공자는 정직한 벗’, ‘성실한 벗’, ‘박식한 벗은 도움이 되는 친구[三益友]이고, ‘남의 뜻에 영합해 비위를 잘 맞추는 벗’, ‘말만 번지르르하고 마음이 음험해 실천이 없는 벗’, ‘줏대나 진심 없이 외면만 부드러운 벗은 해를 끼치는 친구[三損友]라고 하였다. 두 성현의 말은 친구의 성격과 본질을 잘 설명해 준다. 그와 동시에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가 일깨워준다.

   우리의 옛날이야기 중에 삶은 돼지를 싸서 짊어지고 친구를 찾아가 불의의 사고로 죽인 사람의 시신이라며 하룻밤만 숨겨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반응을 살펴서 누가 진실한 친구인가를 판가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최운식 편, 《한국의 민담 2》에 실린 진실한 친구참조). 이 이야기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친구도 좋지만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실한 친구라고 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성현의 가르침과 관계없이 이러한 우정관을 구비문학 작품에 담아 전파·전승해 왔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진심으로 바르게 행동해야 진실한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친구를 대할 때에 진심으로 대하며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였다. 그래서 몇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70대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보니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80대 노년이 되고 보니,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사귀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 성현이 친구에 관해서 한 말이나 우리 조상이 강조해 온 진실한 친구에 대한 관념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된다. 나이 든 내가 상대에게 이득을 줄 것도 없고, 또 바랄 것도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식 습득이나 인격 함양에 도움을 줄 사람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더 지식을 쌓고 인격을 함양할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줄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된다. 활동 영역이 제한적이니 건강 문제 외에 위기를 맞을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노년의 친구는 어떤 사람이 좋은 친구인가? 정서적으로 통하는 사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 좋다. 시간이 날 때 전화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주위의 여건 때문에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으면 아쉬움만 더해갈 뿐이다.

   힘들 때 위로해 주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였으면 좋겠다. 답답한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만나 내 속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사실과 다른 말로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헐뜯을 때 변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이런 사람이라면 주머니 사정이 좋아질 때마다 불러내어 식사하고 싶어질 것이다.

   노년이 되면 사회적인 활동이 줄어든다. 그에 따라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사실상 없어진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을 골라 관계를 두텁게 하여 친구로 삼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 생활 습관, 운동 등에 유의해 건강을 챙기면 노년의 외로움을 잊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2025.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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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엄마가 4살과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 앞에서 걷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넘어졌다. 엄마가 일으켜주니 그는 울면서 언니 때문에 넘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마주 걸어오며 본 바로는 그 아이는 언니와 상관없이 넘어진 것이 확실하였다. 그런데도 언니 탓을 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저 어린아이는 왜 자기보다 한발 앞서 가던 언니 탓을 할까? 이 생각을 할 때 오래전에 들은 옛날이야기 내 탓이오가 떠올랐다.

   옛날에 나이 어린 색시가 시집을 갔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빨래 앉힌 솥에 불을 땠다. 얼마 뒤에 밑에 깔린 빨래가 누렇게 탄 것을 본 색시는 어쩔 줄을 몰라 울고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이를 본 시어머니는 자기가 빨래를 잘못 앉힌 탓, 신랑은 자기가 물을 조금 길어다 놓은 탓, 시아버지는 자기가 근력이 부쳐 장작을 굵게 패 놓은 탓이라며 어린 색시를 위로하였다.

   위 이야기에서 가족들은 빨래를 태우고 우는 색시를 향하여 자기 탓이니 울지 말라고 달랜다.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잘못을 감싸줄 때 가정은 화목해지고, 하는 일마다 잘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잘못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면서 남을 배려하는 이타심을 갖게 하여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전파·전승해 왔다. 이처럼 옛날이야기는 재미와 함께 그 속에 담겨 있는 교훈적인 의미를 내면화하게 하는 훌륭한 인성교육 자료였다.

   우리 민족의 심층부를 이루는 민중들이 옛날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할 때 통치자들은 어떠하였을까? 중국 당나라 태종은 황충의 피해가 극심하자 모두 나의 부덕 때문이다. 차라리 내 심장을 갉아 먹거라라고 외친 뒤에 신하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황충 두 마리를 삼켜버렸다. 신하들은 그가 병이 날가 걱정하였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그 뒤에 황충의 재해가 멈췄다고 한다[《정관정요(貞觀政要)》무농(務農)].

   조선 태종 때 경상도 앞바다에서 조운선이 침몰하여 사람 수백 명과 세곡 1만 석이 물에 가라앉은 사고가 일어났다. 이 보고를 받은 태종은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쌀은 아깝지 않지만, 사람이 죽은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하였다[《조선왕조실록》태종 355일조]. 이것은 태종이 자신의 부덕함이 해난사고의 원인이라 하며 책임을 인정하는 진솔함과 지도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조선의 영조는 가뭄과 해충 피해가 계속되자 당 태종의 황충 일화를 인용하며 모두 나의 부덕 때문’이라고 자책하였다. 그런 뒤에 과인이 태종처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다짐하였다고 한다[《조선왕조실록》영조 41(1765) 63일 기사]. 조선의 왕들은 당 태종이나 조선 태종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다듬곤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도자의 무한책임론을 보여주는 것으로, 동양의 정치철학과 윤리관을 반영하고 있다.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에는 꽤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면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고 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의 결점이나 욕망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기를 방어하려고 한다. 타인의 기대나 평판을 의식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면 사소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나라에 큰 문제를 야기한다.

   요즈음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자기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법을 어긴 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 검찰의 조작 수사에 의한 것이라고 검찰 탓을 한다. 불법이나 비행이 드러나면 언론의 악의적 보도 때문이라고 얼론 탓을 한다. 사회적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이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법치 질서가 혼란해지고 상식과 가치관이 전도되는 현상을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무력감에 빠진다.

   이러한 풍조를 바로잡는 방법은 없을까? 1990년대 초반 가톨릭교회에서 전개한 내 탓이오운동은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다. 국민의 존경을 받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사회 갈등과 분열 속에서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보다 스스로 반성하고 화해를 추구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당시에 박정훈 전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장은 1990내 탓이오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사회 윤리 회복 운동을 이끌었다. 이 운동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상생활 중 옛날이야기를 통해서까지 민중의 마음속에 책임과 배려 정신을 일깨웠다. 우리도 교육, 언론, 매스컴을 통해 내 탓이오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사회 윤리를 회복했으면 좋겠다.(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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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나이가 든 남성들은 밖에 나갈 때 대부분 모자를 쓴다. 모자는 대개 운동모자(야구모자 베레모 · 중절모 등으로, 그 모양이나 색상 · 재질 등이 다양하다. 나 역시 외출할 때에는 모자를 쓴다. 그날 가는 곳, 날씨, 모임의 성격, 입을 옷이나 신발 등에 맞게 골라서 쓴다.

   내가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나이 50대 후반부터이다. 50대 초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50대 중반을 지나니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그에 따라 추운 날에는 머리가 시리고, 햇볕이 쬐는 날에는 머리가 따가웠다. 이런 사정을 들은 선배 교수가 모자를 쓰라고 권하였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는 머리숱이 적어짐에 따라 느끼는 추위를 막고, 더운 날에는 머리에 햇볕이 직접 쬘 때 따가운 것을 막기 위해 모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 뒤에 자외선이 얼굴에 비치는 것을 차단하고, 흰머리가 드러나는 것을 가리려는 뜻을 추가하여 모자를 쓰곤 한다.

   처음에는 체육행사 때 받아다 두었던 운동모자를 썼다. 이를 본 아내가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는 날이 있다며 베레모를 사다 주어 즐겨 썼다. 그 뒤에 대학원 제자들이 중절모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작아서 백화점에 가서 제일 큰 것으로 바꿔 왔다. 그래도 작아서 불편하였지만, 이를 선물로 준 대학원생들의 정성을 생각하여 가끔씩 썼다. 아내는 내 머리가 커서 기성품 중에서는 맞는 모자를 찾기 어려우므로 따로 주문해야 한다고 하였다.

   내 머리가 보통 사람들보다 큰 편이어서 기성품 중에는 맞는 모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군에 입대하였을 때 처음 알았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인제에 있는 부대에 배속되어 일등병으로 진급했을 때의 일이다.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찌그러진 모자를 버리고 새 군모를 사려고 부대 PX에 가서 골랐으나 내 머리에 맞는 것이 없었다. 이를 본 PX 근무병이 내 머리를 재어 보고는 최 일병 머리통은 특제라고 놀리면서 주문해 주어 며칠 뒤에 받아서 썼다.

   튀르키예에 근무할 때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파자르(국제시장)에 가니 양가죽으로 만든 베레모와 방한모가 눈에 띄었다. 가죽의 품질과 촉감, , 모양이 좋고 가격도 적절하여 사고 싶었으나 좀 작아서 망설였다. 이를 본 모자점 주인이 계속 쓰면 늘어날 것이라며 권유하는 말을 듣고 사 왔다. 그러나 몇 년을 써 보았지만 늘어나지 않아 불편하여 지인에게 주었다.

   그 뒤에 아내와 나는 큰 모자 도매상이나 백화점에 가면 내 머리에 맞는 모자가 있는가 살피고, 눈에 띄면 사 왔다. 몇 년 전에는 작은아들이 영국에서 크기가 넉넉하고, 색과 천이 좋은 베레모를 사 왔다. 작년 미국에 사는 딸의 집에 갔을 때 규모가 큰 쇼핑몰에 갔다가 내 머리에 맞고 챙이 넓은 등산모와 통풍이 잘되는 중절모를 발견하였다. 나는 모자가 많은데 또 사려느냐며 만류하는 아내의 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서 가지고 왔다.

   이제 우리 집에는 챙이 넓은 야구모자와 등산모자, 귀마개가 있는 방한모, 색과 질감이 다른 베레모와 중절모 등 여러 개의 모자가 있다. 작게 느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자 여러 개를 지인에게 주었어도 20여 개가 남아 있어 외출할 때마다 골라서 쓴다. 편한 복장으로 산책을 나갈 때에는 운동모자를 쓰고, 친구들과 야외에 나가서 낮은 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걷는 날에는 챙이 넓은 등산모를 쓴다. 시내에서 지인들을 만나거나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양복 차림으로 갈 때에는 베레모나 중절모 중에서 천의 색상과 재질이 분위기에 맞는 것을 골라 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자들은 나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할 필수품이다. 이들을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며 이것들과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에 힘써야겠다. (2025. 6. 28.)

   5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은 대한적십자사 중앙청소년적십자가 1963526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지자 정부는 2년 뒤인 1965년에 스승의 날을 공식기념일로 인정하고, 날짜를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515일로 변경하였다. 그 까닭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을 받는 것처럼 스승을 존경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였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화하는 제자, 정성 어린 선물을 보내는 제자, 직접 찾아와 함께 식사하며 담소하는 제자들이 있다. 이런 제자를 대할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그 마음에 감사한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에 그에게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아쉽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고마우면서 미안할 뿐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스승의 은혜(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 노래를 부른다. 50년 가까이 교직에 있었던 나 역시 이 노래를 스승 앞에서 부르기도 하였고, 스승의 위치에서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교직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된 내가 나이 든 제자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니 만감이 스쳤다. 올해에는 이런 일이 두 차례나 있었다.

   한번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지도한 여제자 세 명이 나와 아내를 인사동의 한식집으로 초대한 날의 일이다. 한 사람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노래 지도에 특출한 기량을 지녔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성악에 재능을 가졌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고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적인 인물이다. 모두 교직에서 은퇴한 뒤에 각자의 재능을 살리며 제2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세 사람이 카네이션과 선물을 준 뒤에 스승의 은혜노래를 불렀다. 세 사람이 화음을 맞춰 3절까지 부르는 동안 나는 세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에 감사하면서 부족했던 점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 가득하였다. 노래를 들은 뒤에 대화하면서 먹는 점심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정겹고 맛이 있었다.

   다른 한 번은 1982학번 학부 제자 8명과 함께 12일 일정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퇴직 교수인 K가 세종시 금강변에 별장처럼 쓰는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다며 동기생들을 초청하여 함께 갔다. 공주 갑사를 탐방하고 저녁에 전원주택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였다. 돼지고기와 양갈비를 K 부부가 직접 가꾼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먹으며 포도주를 곁들이니 정말 흥겨운 잔치 자리가 되었다. 여러 대화 중에 재학 시절에 있었던 일이 화제에 올랐을 때에는 서로 말을 보태며 즐거워하였다. 30여 년 전에 미국으로 가서 살고 있는 B 부부도 귀국하여 함께 자리하니 더욱 뜻깊고 정겨웠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에 K가 친구들을 일어서게 한 뒤에 하모니카로 스승의 은혜노래를 연주하자 모두 제창하였다. K의 부인은 작은 화분에 담긴 예쁜 꽃을 주면서 손수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기른 것이라고 하였다. 70세 전후의 이 동기들은 몇 년 전부터 철마다 한 번씩 나를 불러 함께 트레킹을 하며 담소하곤 한다. 이일만도 고맙고 과분하게 생각하며 지내는데, 오늘은 모두 뜻을 모아 스승의 은혜노래까지 불러주니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하였는가 되돌아보았다.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느라 시간에 쫓겨 학생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베풀지 못하였고, 함께 시간을 나누지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학연을 맺은 지 3040년이 지났고, 나이 70세가 넘어 같이 늙어가는 오늘까지 나를 스승으로 기억하고 칭송해 준다. 나에 대한 과분한 대접에 미안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오래전에 맺은 학연을 잊지 않고 이어오는 제자들을 보면서 교육자가 되어 많은 제자를 둔 것을 감사한다. 오늘 따라 전에 모임을 같이하던 판사와 검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사회의 병든 자들과 상대하며 사는데, 교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젊은이들과 생활하니 좋겠다.”라고 하던 말. 이제 제자들에게 재학 시절에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접어야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달라는 제자들의 말처럼 오래 사제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도록 건강 유지에 힘써야겠다. (202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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