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엄마가 4살과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 앞에서 걷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넘어졌다. 엄마가 일으켜주니 그는 울면서 언니 때문에 넘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마주 걸어오며 본 바로는 그 아이는 언니와 상관없이 넘어진 것이 확실하였다. 그런데도 ‘언니 탓’을 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저 어린아이는 왜 자기보다 한발 앞서 가던 언니 탓을 할까? 이 생각을 할 때 오래전에 들은 옛날이야기 「내 탓이오」가 떠올랐다.
옛날에 나이 어린 색시가 시집을 갔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빨래 앉힌 솥에 불을 땠다. 얼마 뒤에 밑에 깔린 빨래가 누렇게 탄 것을 본 색시는 어쩔 줄을 몰라 울고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이를 본 시어머니는 자기가 빨래를 잘못 앉힌 탓, 신랑은 자기가 물을 조금 길어다 놓은 탓, 시아버지는 자기가 근력이 부쳐 장작을 굵게 패 놓은 탓이라며 어린 색시를 위로하였다.
위 이야기에서 가족들은 빨래를 태우고 우는 색시를 향하여 ‘자기 탓’이니 울지 말라고 달랜다.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잘못을 감싸줄 때 가정은 화목해지고, 하는 일마다 잘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잘못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면서 남을 배려하는 이타심을 갖게 하여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전파․전승해 왔다. 이처럼 옛날이야기는 재미와 함께 그 속에 담겨 있는 교훈적인 의미를 내면화하게 하는 훌륭한 인성교육 자료였다.
우리 민족의 심층부를 이루는 민중들이 옛날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할 때 통치자들은 어떠하였을까? 중국 당나라 태종은 황충의 피해가 극심하자 “모두 나의 부덕 때문이다. 차라리 내 심장을 갉아 먹거라”라고 외친 뒤에 신하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황충 두 마리를 삼켜버렸다. 신하들은 그가 병이 날가 걱정하였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그 뒤에 황충의 재해가 멈췄다고 한다[《정관정요(貞觀政要)》「무농(務農)」].
조선 태종 때 경상도 앞바다에서 조운선이 침몰하여 사람 수백 명과 세곡 1만 석이 물에 가라앉은 사고가 일어났다. 이 보고를 받은 태종은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쌀은 아깝지 않지만, 사람이 죽은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하였다[《조선왕조실록》태종 3년 5월 5일조]. 이것은 태종이 자신의 부덕함이 해난사고의 원인이라 하며 책임을 인정하는 진솔함과 지도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조선의 영조는 가뭄과 해충 피해가 계속되자 당 태종의 황충 일화를 인용하며 ‘모두 나의 부덕 때문이’라고 자책하였다. 그런 뒤에 “과인이 태종처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다짐하였다고 한다[《조선왕조실록》영조 41년(1765년) 6월 3일 기사]. 조선의 왕들은 당 태종이나 조선 태종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다듬곤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도자의 무한책임론을 보여주는 것으로, 동양의 정치철학과 윤리관을 반영하고 있다.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에는 꽤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면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고 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의 결점이나 욕망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기를 방어하려고 한다. 타인의 기대나 평판을 의식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면 사소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나라에 큰 문제를 야기한다.
요즈음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자기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법을 어긴 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 검찰의 조작 수사에 의한 것이라고 검찰 탓을 한다. 불법이나 비행이 드러나면 언론의 악의적 보도 때문이라고 얼론 탓을 한다. 사회적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이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법치 질서가 혼란해지고 상식과 가치관이 전도되는 현상을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무력감에 빠진다.
이러한 풍조를 바로잡는 방법은 없을까? 1990년대 초반 가톨릭교회에서 전개한 ‘내 탓이오’ 운동은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다. 국민의 존경을 받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사회 갈등과 분열 속에서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보다 스스로 반성하고 화해를 추구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당시에 박정훈 전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장은 1990년 ‘내 탓이오’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사회 윤리 회복 운동을 이끌었다. 이 운동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상생활 중 옛날이야기를 통해서까지 민중의 마음속에 책임과 배려 정신을 일깨웠다. 우리도 교육, 언론, 매스컴을 통해 ‘내 탓이오’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사회 윤리를 회복했으면 좋겠다.(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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