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에 두 주일 체류 예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인근의 터스틴시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하였다. 6년 전에 갔었고, 작년에 딸과 외손녀가 한국에 왔다 갔으므로 가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가 딸과 외손주들을 보고 싶다 하여 동행하였다. 저녁에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30분을 비행하였지만, 영화 1편을 보고 잠을 잤으므로 그리 지루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LA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마중 나와 있던 사위가 반갑게 인사하며 환영의 말을 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딸과 외손주들이 뜨겁게 환영하며 인사하였다. 그런 뒤에 딸이 정성스럽게 차린 저녁을 먹으며 환담하였다. 오랜만에 딸이 정성스럽게 차린 맛깔스러운 음식을 대하니 미감과 함께 만족스러움이 마음 가득 일었다. 저녁 식사 뒤에는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차려 놓고 노래를 부른 뒤에 건강을 축원한다는 덕담을 하였다. 전날 서울에서 두 아들과 손주들이 모여 생일 축하 모임을 가졌으므로, 뜻밖이어서 약간 새삼스러웠지만, 딸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 고맙고 기뻤다.
사위는 청년 시절에 미국에 유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의 대기업에 취업하여 근무하다가 50세가 되던 해에 명예퇴직을 하였다. 그는 미국유학과 대기업 미국 주재원 경력이 있었으므로 퇴직 후에 재취업하여 LA주재원이 되었다. 그러자 2014년에 온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얼마 뒤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한동안 고생을 하였다.
그는 힘들게 3년을 지낸 뒤에 영주권을 얻어 작은 사업을 시작하였고, 딸은 좋은 곳에 넓고 깨끗한 카페를 열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곳으로 온 외손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취업하여 일하고 있고, 6학년 때 와서 대학 4학년이 된 외손자는 큰 회사의 인턴 사원으로 뽑혀 졸업하면 바로 취업한다고 한다. 그동안 나와 아내는 날마다 딸의 가족이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그런 기도에 응답을 받아 안정된 생활 하는 것을 직접 와서 눈으로 확인하니 감사함과 함께 마음이 평안해진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함께 하지만, 각자 학교와 일터로 나간 평일에는 우리 부부는 주로 집에 있었다. 오후 3시 넘어 딸이 돌아오고 6시 지나 모두 돌아올 때까지는 집안에서 책을 읽고, 유튜브 방송을 보거나 동네를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딸과 외손녀는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집에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할 날과 식단, 인근 맛집에 가서 식사할 날과 식당을 정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일정에 따라 온 가족과 함께 맛집을 순례하였다.
그 일정에 따라 미국식, 중국식, 일본식, 베트남식, 일본식,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멕시코식, 한국식 음식점을 순례하였다. 각국의 음식은 재료와 요리 방식이 다른 만큼 시각적 효과나 맛이 다르고 특색이 있어 좋았다. 식사 뒤에는 가까이에 있는 쇼핑몰에 가서 소핑을 하였다. 맛집 순례의 순서는 쇼핑몰의 위치를 고려하여 정했다고 한다. 쇼핑몰에 가니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넓고 큰 매장에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 중에는 대폭 할인하는 상품들도 많았다. 그래서 할인율이 높은 물건 중에서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유명 상표의 트래킹화와 파카를 구입하였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싸게 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내의 친구 부부가 찾아왔다. 아내와 중․고등학교 동창인 그는 젊은 시절에 의사인 남편을 따라 와서 60여 년을 이곳에서 살고 있다. 몇 년 전 그들 부부가 한국에 왔을 때 내 차로 수종사, 강화도 등을 안내한 일이 있었으므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우리는 그의 차를 타고 태평양 연안인 ‘라구나 해안’으로 갔다. 전망이 좋은 식당의 창가에 자리 잡고, 브런치로 몇 가지 음식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그런 뒤에 광활한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해안 길을 걸었다. 흰 구름이 무리지어 떠도는 맑고 파란 하늘 아래에서 푸른 물은 솔솔 부는 가을바람에 작은 파도를 일으킨다. 이런 풍경을 보며 해안 산책로를 걸으니 참으로 뿌듯하고 기뻤다.
다시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갔다. 그가 사는 곳은 55세 이상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입주하여 산다는 실버타운이었다. 산기슭의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주 좋았다. 그의 세 아들은 모두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넓고 깨끗한 집에서 노후를 안락하게 지내는 그들의 모습은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젊은 시절에 낯선 이곳으로 이민 와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교포의 삶의 현장을 보게 되어 기뻤다.
LA 남쪽의 샌디에고에 살며 소설가로 크게 활동하는 제자 백 선생이 부인과 함께 차를 몰고 찾아왔다. 우리 부부는 그의 차를 타고 LA 다운타운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한 뒤에 ‘그리피스 천문대’를 찾아갔다. 그 날은 월요일로 천문대가 쉬는 날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해 아쉬웠다. 천문대 주변에서 LA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시내로 내려와 코리아타운을 지나 헐리우드 거리로 갔다. ‘스타의 거리’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인도에 세계적인 스타의 이름과 나이, 손 또는 발의 자국을 찍은 동판이 박혀 있었다. 부르스 윌리스, 버트랑 카스타, 오우삼 등의 명판은 보았으나, 이병현 등 한국 배우의 명판은 찾지 못해 아쉬웠다.
백 선생은 6년 전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에 우리를 샌디에고로 데리고 가서 호텔에 투숙하게 하면서 그곳의 명소와 유적지에 안내하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찾아와 인사하고, LA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40여 년 전 대학 재학시절에 맺은 사제의 인연을 잊지 않고 오늘도 찾아와 준 그의 따뜻한 마음에 깊이 감사한다. 그가 내년에 한국에 온다고 하니, 그때 감사하는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손녀는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얻어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를 배려하는 그의 깊은 생각에 감사하면서 함께 하루를 보냈다. 그는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에 다시 데리고 가서 카페의 운영 상황을 직접 보게 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가지로 안내하였다. 그와 차를 마시며 그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의 일, 이민 와서 겪은 어려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과 효도, 한국의 역사와 전통,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지식의 활용, 장래의 일 등에 관해 대화하였다.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27세 여성의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 등에 관해서도 들었다. 어린아이로만 여기던 그가 잘 자라 성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곳을 떠나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다녀와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대화하였다. 우리는 온 가족이 정성으로 대접해 준 일을 고마워하며 치하하였고, 그들은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말하였다. 우리는 나이를 생각하여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라고 하자, 사위는 교인 중에 그렇게 말한 분이 계신데 아홉 번이나 더 오셨다면서 또 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안고 그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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