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지방의 노인대학 학장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소재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옛날이야기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니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수많은 옛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소재로,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강의할까를 노인대학 학장과 상의한 후 <옛이야기에서 행복 찾기>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먼저 옛이야기에 나타난 행복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옛이야기는 우리 조상들이 꾸며낸, 일정한 짜임새를 가진 이야기이다. 우리 조상들은 옛이야기를 생활 속에서 형성하여 말로 전해 왔다. 옛이야기 속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 신앙, 세계관, 꿈과 낭만, 웃음과 재치, 생활을 통해서 얻은 교훈,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와 용기 등이 녹아 있다. 따라서 옛이야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조선 후기에 널리 읽힌 한글 고소설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에는 우리 조상들은 어떠한 삶을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였는가가 잘 나타난다.

 

   옛날에 세 선비가 봄철에 경치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시다가 과음(過飮)하여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저승사자가 이들을 저승으로 잡아갔다. 이들은 저승의 문서를 관리하는 최 판관(判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최 판관이 이들의 주소와 성명을 묻고, 수명부(壽命簿)와 대조해 보니, 이들은 10년 후에 잡아와야 할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을 염라대왕에게 보고하니, 염라대왕은 수명이 남은 사람을 잡아온 저승사자를 크게 꾸짖고, 이들을 즉시 이승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세 선비는 자기들의 육신이 썩기 시작하여 갈 곳이 없으니,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염라대왕은 원하는 대로 해 줄 터이니, 소원을 적어내라고 하였다. 첫째 선비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하고, 높은 벼슬을 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둘째 선비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성공하여 부자가 된 후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살게 해 달라고 하였다. 셋째 선비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효행과 예절을 바르게 익히며 올바르게 성장한 뒤에, 부모님께 효도하며 자녀를 길러 이들이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을 보고,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면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근심걱정 없이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를 본 염라대왕은 첫째 선비와 둘째 선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셋째 선비의 글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너는 참으로 생각이 깊구나. 이것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힘써 노력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그리 알고 어서 가거라.”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조선 후기에 유재건(1793~1880)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의 <삼사발원설(三士發願說)>에도 실려 있다. <삼사발원설><사횡입황천기>는 조선 후기에 널리 유포되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내용이 한문단편 또는 한글 고소설 작가에 의하여 소설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사람의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하는 영혼불멸관(靈魂不滅觀)과 재생(再生)에 관한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의 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고 있다.

 

  <삼사발원설>에서 옥황상제는 셋째 선비가 원하는 복을 청복(淸福)이라고 하는데, ‘청복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탄식한다. 청복은 조선 선비들의 행복관을 나타내는 데 많이 쓰이던 말이다. ‘청복은 세상의 명리(名利)를 탐하지 아니하고, 근심 걱정 없이 쾌적하게 소요하며 한가로이 노닐고, 천수(天壽)를 누리며 건강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행복관을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인데, 높은 벼슬이나 재물에 가치를 두지 말고, ‘청복을 누리며 살 것을 일깨워 준다.

 

   문명화된 산업사회에 사는 현대인들은 위 작품에 나오는 첫째와 둘째 선비처럼 권력이나 재물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을 추구하는 데에 온갖 노력을 다 바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이나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어서 한 번 유혹을 받으면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되고 만다. 그래서 마침내는 파멸의 늪에 빠지고 말게 된다. 지난 날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사람의 풀죽은 모습, 탈법적인 행위를 한 재벌들의 구겨진 모습을 보면서 온갖 상념(想念)이 교차한다. 그들이 조상들의 행복관을 본받아 청복을 누리고자 했던들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워 법을 어기고, 자기의 이익만을 쫓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오늘날 저토록 처참한 몰골을 보이지 않을 것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셋째 선비의 소원이 더욱 뜻 깊게 느껴진다.

 

   청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과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들이 유혹할 때에는 뿌리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밖으로 드러나거나 요란스럽지 않은 가운데 참 행복을 느끼며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기의 능력과 처지를 바로 알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갖지 않으며, 바르게 처신하며 노력하는 가운데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은 복은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의 올바른 뜻을 펼 수 있을 정도의 지위와 권력, 의식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을 가르칠 정도의 재물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청복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알려 주는 청복, 참된 행복은 많은 재물이나 큰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다. 참된 행복은 올바르게 성장한 뒤에, 부모님께 효도하며, 자녀를 길러 이들이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을 보고,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면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근심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한국인 모두 청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원한다                                                                (2015.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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