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의림지(義林池)

   지난 4월 9일에 아내, 김 교수 내외와 함께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義林池)를 다시 찾았다. 의림지 입구에 들어서니, 의림지 상징 캐릭터인 ‘물의 요정 방울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그 옆에는 제천시 상징 캐릭터인 ‘박달 신선과 금봉 선녀’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캐릭터를 보는 순간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가 떠올랐다. 나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의림지 제방을 걷기 시작하였다.

 

   의림지는 용두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막아 만든 저수지로, 김제의 벽골제(碧骨堤)․밀양의 수산제(守山堤)와 함께 고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 온다. 제천을 고구려 때에는 ‘奈吐(내토)’라 하고, 통일신라 때에는 ‘奈堤(내제)’라 하였다. 이 말은 ‘큰 제방(둑)’이란 말로,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충청남․북도를 호서(湖西)라고 한다. 이것은 의림지의 서쪽이라는 말로(<<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16권 참조), 의림지가 충청도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을 붙이는 기준이 되었음을 말해 준다. 이것은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던 시대에 넓은 제천 평야에 물을 공급하여 농사를 짓게 한 의림지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 준다.

 

   의림지의 축조(築造) 연대에 관하여는 삼한시대 축조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는 설, 조선시대 현감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지명 분석에 근거하여 삼한시대 축조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의림제(義林堤)」 항에는 정인지가 두 차례나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항일운동기인 1914~1918년에 대대적으로 수축하였다고 한다. 지금 보는 모습은 1972년 장마에 무너진 둑을 복구한 것이다.

 

   나는 의림지 둑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잘 다듬어진 흙길을 지난 뒤에 나무판으로 만든 계단을 올라 호수의 서쪽으로 가니,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 나왔다. 그 산의 소나무 숲에서 세 줄기의 폭포수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린 폭포수는 잔잔한 수면에 파문(波紋)을 일으키며 원래 있던 저수지의 물과 뒤섞인다. 폭포 앞의 저수지에 설치한 분수에서는 힘차게 솟아오르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큰 물줄기 세 개와 여러 개의 작은 물줄기가 떨어지며 예쁜 파문을 일으킨다. 참으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의림지는 둘레가 1.8km이고, 수심은 약 8m가 된다. 제방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 되었다. 제림은 초록빛을 띤 잔잔한 물결과 어우러져서 아름답고 그윽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제방을 따라 걷다 보니, 1948년에 세운 경호루(鏡湖樓)와 순조 7년(1807)에 세운 영호정(映湖亭)이 있다. 물과 숲이 어우러진 곳에 서 있는 누각과 정자는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고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곳은 명승지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어 2006년 12월 4일에 국가명승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나는 영호정을 지나 동쪽 둑길을 걸으며 아내에게 안내문에 간단히 씌어 있는 의림지 전설 세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하자 인색한 부잣집 영감은 쌀 대신 두엄을 퍼서 주었다. 이를 본 그 집 며느리가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다 스님에게 주면서, 시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비가 내리거든 속히 산 위로 피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얼마 뒤 장대비가 내리는 것을 본 며느리는 스님의 말이 생각나서 급히 산으로 달렸다. 그때 천둥 번개와 함께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얼떨결에 뒤를 돌아보니, 자기 집이 벼락에 무너지고, 그 자리에 물이 고였다. 그 때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禁忌)를 어겼기 때문에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의림지의 유래를 설명하기 위해 전국에 널리 퍼져 있는 「장자못 전설」을 끌어다가 꾸민 이야기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 의림지 동편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그 집 앞에는 집의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그 집 며느리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 접대에 힘이 들어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이 며느리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보고, 그 연유를 물었다. 그녀는 손님이 많아 고되어 못살겠다고 하였다. 스님은 손님이 끊어지게 하려면 집 앞에 있는 거북바위의 꼬리가 집 쪽으로 향하도록 돌려놓으라고 하였다. 그녀가 어른들 몰래 하인을 시켜 거북바위의 방향을 틀어놓은 뒤로 손님이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뒤에 그 집이 망하고, 그 집터에 물이 괴어 의림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풍수설화의 ‘거북 모티프’를 받아들여 의림지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위의 두 이야기처럼 의림지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이 저수지의 영검성을 설명하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 의림지에 사는 큰 이무기가 이웃 마을에 나타나서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곤 하였다. 조선 선조 때에 제천에 장사인 어(魚) 씨 오형제가 살았다. 어느 날, 이들이 의림지 이쪽에서 놀다가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데, 불이 없었다. 그때 의림지 건너편 산기슭에 나무꾼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를 본 맏형이 담뱃대에 담배를 담아 상투머리에 꽂고 헤엄쳐 건너갔다. 그가 담뱃대에 불을 붙여 다시 머리에 꽃은 뒤에 헤엄쳐 건너올 때 물속에서 커다란 이무기가 솟아올라 그를 쫓아왔다. 그가 요리조리 피하며 헤엄쳐서 뭍으로 올라오자, 이무기는 꼬리로 그를 쳤다. 그는 잽싸게 몸을 피한 뒤에 동생들과 힘을 합하여 이무기를 죽였다. 그 뒤로 이무기가 가축이나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어졌다. 이를 노래한 김이만(金履萬)의 「어장사 참사가(魚壯士斬蛇歌)」가 전해지고 있다(제천시홈페이지 참조). 이것은 의림지의 영검성을 드러내려고 ‘사신(蛇神) 모티프’를 받아들여 꾸민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전설 시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수지의 동북쪽 끝에 이르니, 고목 곁의 큰 바위 위에 ‘우륵정(于勒亭)’이 있고, 동쪽으로 난 도로 건너편의 산기슭에는 ‘우륵샘’이 있다. 이 지역에는 옛날부터 “신라 진흥왕(534~576) 때에 우륵(于勒)이 돌봉재[石峯]에 살면서 제비바위[燕子岩]에 와서 가야금을 탔다. 유적으로는 우륵당 옛터와 우륵정이 있었다.”는 말이 전해 왔다. 그래서 “우륵정은 의림지 동북쪽 벼랑에 있다.”고 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우륵정을 세우고, 약수가 나오는 우륵샘을 정비하였다. 부드럽고 순한 우륵샘물을 마셔 갈증을 풀고 우륵정에 올랐다. 의림지의 전경을 살펴본 뒤에 눈을 감으니, 바람 소리와 함께 옛 악성(樂聖) 우륵의 탄금(彈琴)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의림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농경문화의 역사와 전설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곳을 사랑하는 아내, 학문과 인품을 존중하여 아끼는 제자 김 교수 내외와 함께 걸을 수 있어서 매우 즐겁고 흐뭇하였다. 제천 10경 중 제1경으로 꼽는 의림지의 진면목이 그윽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201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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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개나리

 

서울 성동구 응봉동과 금호동에 걸쳐 있는 응봉산은 봄과 희망을 상징하는 개나리꽃의 명소이다. 이른 봄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 온 산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응봉산은 강남에서 성수대교를 건너 북쪽으로 올 때에는 산의 남쪽을 보여주고, 독서당길을 지날 때에는 북쪽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나는 1990년대 중반에 이곳을 지나다가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처음 보고, 감탄하고 환호(歡呼)하였다. 그 후로 가끔 이 근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꽃이 하도 예뻐서 산 밑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 개나리꽃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했던 적도 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응봉산이 보이는 금호동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응봉산은 해발 94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산 이름은 산의 모양이 매의 머리 모양을 닮았으므로, ‘매봉또는 응봉(鷹峯)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이곳에서 매를 놓아 꿩을 잡기도 하였으므로, 산 이름을 매봉 또는 응봉이라고 하였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조선 태조는 즉위 4(1395)에 이곳에 응방(鷹坊)’이라고 하는 관아(官衙)를 설치하고, 매사냥에 쓸 매를 사육하는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태종·세종도 이곳에 와서 매사냥을 즐겼다. 조선 태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100여 년 동안 이곳에 와서 151회나 매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매사냥터로 이름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응봉산에 개나리를 심은 것은 1980년대 개발 이후 산자락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는 1987년에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조림사업의 일환으로 1만 그루의 개나리를 심었다. 응봉산은 암반층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이어서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몹시 메마른 곳이다. 개나리는 이런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수종(樹種)이어서 심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봄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개나리 명산이 되었다. 응봉산 동쪽에는 석재(石材)를 채취하던 바위 절벽이 있다. 지금은 이곳을 손질하여 인공암반등반시설을 설치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등반 훈련을 하면서 체력 증진에 힘쓴다.

 

서울 성동구에서는 1997년부터 응봉산에 개나리가 활짝 피는 3월 말부터 4월 초순 사이에 개나리축제를 연다. 개나리축제 때에는 어린이 그림그리기대회, 글짓기대회, 사진전시회, 노래자랑, 먹거리장터 등이 열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봄기운에 마음껏 취하며 즐긴다.

 

    응봉산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마주 보이는 산이어서 거실에서 산색(山色)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알 수 있다. 2014년은 터키에서 4년을 보내고 돌아온 후 처음 맞는 봄이어서 화신(花信)을 전해 주는 응봉산의 개나리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가끔씩 응봉산을 바라보곤 하였다. 320일 아침, 거실에서 응봉산을 바라보니, 나뭇가지에서 노란색이 조금 보이는 듯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니, 개나리의 가지마다 노란 꽃망울이 맺혀 있다.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노란빛은 조금씩 짙어졌다. 꽃샘추위에 잔뜩 움츠리고 있던 꽃망울들이 예쁜 미소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 아내와 함께 다시 응봉산에 가니, 온 산이 샛노란 개나리와 막 피어나는 목련, 벚꽃이 어우러져 새 봄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터키에 가 있는 4년 동안 봄이면 개나리가 활짝 핀 응봉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보고 싶어 하였다. 그동안 보지 못하였던 꽃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응봉산의 개나리는 나에게 새봄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해 주고, 한국에 와서 다시 봄을 맞게 된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다.

 

  응봉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 북서쪽을 보니, 대현산과 금호산이 보이고, 그 뒤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바로 앞에 서울숲이 있고, 그 옆으로는 중랑천이 흘러와 한강 본류의 큰 물줄기와 만나는 모습이 보인다. 한강 건너로는 무역센터·잠실주경기장·역삼동 스타빌딩·압구정동 아파트 등의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관악산·청계산·우면산이 눈에 들어온다. 성수대교와 영동대교, 동호대교, 강변북로와 동부간선도로, 응봉교와 두무개길을 연결하는 입체도로에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린다.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와 힘차게 달리는 차들을 보니, 활기가 넘쳐나 역동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팔각정에서 보는 서울의 경관은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 응봉산을 서울 남부조망의 명소, 별자리 관찰의 명소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으로 오기 위해 독서당길 위에 놓은, 응봉산과 금호산을 잇는 구름다리를 건너 우리 아파트 뒤쪽에 있는 대현산으로 향했다. 독서당공원과 대현산에도 개나리꽃과 벚꽃을 비롯한 여러 꽃들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는다. 대현산을 거쳐 집으로 온 뒤에 거실에서 다시 응봉산을 건너다보았다. 응봉산의 개나리꽃들이 자기들의 예쁜 모습이 변하기 전에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작은아들 내외와 손녀들이 오면, 이들과 함께 다시 가야겠다. 꽃이 지기 전에 애들이 와야 할 텐데······.

                            <성동문학 제19, 서울: 성동문인협회, 2019. 10.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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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 공원의 증기기관차

 

  지난 10월 하순에 아내와 함께 딸을 만나러 LA에 갔다가 삼호관광에서 모집하는 관광단에 끼어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을 탐방하였다. 이 공원은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Range) 중간에 있는 산악지대로, 빙하(氷河)의 침식으로 생성된 계곡과 폭포, 숲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공원은 연간 약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이 공원의 면적은 약 4,046( 12 )에 이른다고 하니, 그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요세미티 공원이 자리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아래쪽은 초원지대로, 백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에는 인디언들이 버펄로(buffalo, 아메리칸 들소)와 함께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다. 백인 이주민들은 처음에는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으나, 그들이 버펄로의 가죽과 뿔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나빠졌다. 그 후 백인 기병대가 와서 원주민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원주민들은 백인을 보면, ‘요세미티!’라고 소리치면서, 산으로 도망하였다. 이로 인해 미친 곰이란 뜻을 가진 요세미티가 이 공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전날 오후에 이 공원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프레즈노 시로 갔다.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숙박한 우리는 아침 715분에 버스에 올라 요세미티 공원으로 향하였다. 공원 가까이 오자 버스는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달렸다. 길 좌우에는 쭉쭉 뻗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숲이 이어졌다. 버스는 이 공원의 특색은 우거진 숲과 화강암이라고 한 가이드의 말이 실감나는 풍경을 보여주며 계속 달렸다.

 

  우리는 오전 930분에 증기기관차 승강장에 도착하였다. 이 공원에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는 전에 나무를 베어 나르던 기차인데, 지금은 관광열차로 이용하고 있다. 증기기관차 한 량()이 천장을 덮지 않은 객차 두 량과 천장을 막은 객차 한 량을 끌었다. 증기기관차에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이 많은 모양이다. 객차에 올라보니, 두어 아름쯤 되는 통나무를 자로 깎아 만든 긴 의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석 량의 객차에는 우리와 함께 온 한국인 90여 명과 외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탑승하였다

 

  증기기관차는 증기를 뿜어 올리면서 천천히 밀림 속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증기기관차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달리다가 커브를 돌 때에는 기적(汽笛)을 울렸다. 굽은 길을 달릴 때에 보니, 기관차의 아래쪽에서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요즈음에는 보기 드문, 증기기관차가 끄는 객차를 타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밀림을 달리니,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고 가슴이 뛰었다. 열차는 20분쯤 달린 뒤에 숲속에 정차하였다. 객차에서 내린 아내와 나는 밀림 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아늑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만끽(滿喫)하였다. 탑승을 알리는 기적이 울리자 밀림의 정취(情趣)에서 벗어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객차에 올랐다. 객차는 다시 10분쯤 달려 출발지점에 도착하였다.  

 

  증기기관차 승강장 둘레의 넓은 지역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나무는 대부분 수가파인(Sugarpine)과 잎에 Y자 모양이 있는 ‘Y편백나무이다. 수가파인은 솔잎이 6개이고, 솔방울은 매우 커서 웬만한 크기의 파인애플과 비슷하다. 곧게 자란 수가파인과 와이편백나무는 둘레가 한 아름이 넘어 보이고, 키는 2030m는 족히 될 듯하다. 이런 숲속에 놓인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를 타고 밀림을 둘러보았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열차 관광을 마친 우리는 승강장 앞에 있는 야외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줄을 지어 서서 햄버거와 쿠키, 삼호관광에서 특별히 준비해 온 농심의 신라면을 받아 야외식탁에서 먹었다.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 넣어주는 햄버거도,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도 정말 맛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았던 동행들도 아주 맛이 좋다고 하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요세미티 공원의 울창한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다. 식사를 마친 뒤에 마시는 커피의 그윽한 맛고 향 또한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숲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려 입장료를 내는 곳(Nation Park Service)에 이르렀다. 버스 1대 입장료 300 달러를 내고, 한 시간 가량을 더 달려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약 두 시간 동안 천천히 걸으며 요세미티 계곡, 세계 최대의 화강암 바위인 엘 카피탄(El Capitan), 미국 최대의 낙차를 자랑하는 요세미티 폭포 등을 둘러보았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과 골짜기의 웅장하면서도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주변의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공원의 곳곳에는 타다 남은 나무들이 그대로 있어 작년 여름에 있었던 산불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원은 수많은 나무들이 광합성작용을 하므로, 산소 농도가 매우 높아 공기가 맑고 상쾌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날에는 뜨거운 햇볕의 작용 또는 나무끼리의 마찰로 인해 산불이 일어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침엽수가 자라던 곳에서 불이 나서 모두 타고 나면, 그 자리에서 활엽수가 나서 자라 다시 숲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산불이 나면, 숲이 워낙 넓어서 진화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 걱정이 없기 때문에 진화에 온힘을 기울이지 않고, 자연의 섭리(攝理)에 맡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산불이 나면 되도록 짧은 시간에, 완전히 진화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공원 탐방을 마친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들어갈 때와는 달리 북서쪽 길을 달려 내려왔다. 차창 밖을 보니, 소나무와 편백나무는 진녹색을 자랑하며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서 있지만, 활엽수는 노랗게 물들어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오늘의 탐방에서 깊은 감동과 감격을 느꼈으므로, 10여 년 전에 왔을 때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다 풀렸다. 그러나 전에 왔을 때에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과 기대를 안고 발길을 돌리던 것과는 달리 인생의 가을을 맞은 내가 이곳에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마음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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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서부 지역에는 경관이 빼어난 협곡 즉 캐년(Canyon)이 여러 곳 있다. 캐년은 붉은 사암층이 수만 년 동안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좁고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인(韓人) 관광회사들은 여러 캐년 중 경관이 빼어난 다섯 곳을 골라 관광객을 모집하여 단체관광을 하고 있다. 나는 지난 10월 하순에 아내와 함께 딸을 만나러 LA에 갔다가 삼호관광에서 모집하는 관광단에 끼어 5대 캐년을 탐방하였다.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애리조나 주에 있는 그랜드 캐년은 미국 국립공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가 볼 곳 제일순위로 꼽히는 곳이다. 그동안 한국인이 다녀간 수만 하여도 8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원래 원주민인 아파치족이 살았는데, 스페인 사람이 이곳을 서방세계에 알렸다. 이 협곡을 처음 발견한 스페인 사람은 이곳의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을 보고, 스페인어로 그랑데(거대하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영어로 바뀌니 그랜드(grand)가 되어, ‘그랜드 캐년이라고 한다.

 

   그랜드 캐년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협곡으로, 지질학의 교과서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길이 약 470km, 평균 넓이 약 16km, 깊은 곳의 깊이 약 1,700m라고 하니, 정말 거대한 협곡이다.

 

   이곳의 탐방로는 콜로라도 강을 사이에 두고 사우스 림(South Rim)노스 림(North Rim)으로 나뉜다. 나는 남쪽 포인트로 가서 기묘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협곡의 웅장하며 위엄 있는 광경을 보며 크게 감탄하였다. 20013월에 처음 갔을 때에는 장엄한 광경에 가슴이 뛰는 벅찬 감동을 느꼈었다. 이번에는 그 때처럼 가슴이 뛰는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였으나, 장대한 광경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콜로라도 강과 그랜드 캐년의 장엄한 광경을 하늘에서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 일찍 관광용 경비행기 탑승장으로 갔다. 탑승권을 구입하여 체크인(check-in)하고, 대합실에서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며 대기하였다. 그런데 출발 예정시간 임박하여 날씨관계로 경비행기 운행을 중단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쉬운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자이언 캐년(Zion Canyon)

   자이언 캐년은 유타 주에 있는 협곡이다. 이곳에는 웅장하면서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 그래서 신들이 노니는 곳이란 뜻으로 자이언(Zion)이라고 이름하였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면서 길 양편에 이어지는 바위들의 모습을 보았다. 한참 올라간 뒤에 길옆에 차를 세우고 협곡의 장관을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앞을 건너다보니, 큰 바위를 깎아내리면서 돌로 온갖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 붙이고, 사이사이에 문양(紋樣)을 넣은 것 같은 바위비탈이 이어 서 있다. ,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바위산도 이어져 있다. 비탈진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려 살고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면서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였다. 이런 협곡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비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곳은 아주 먼 옛날에 바위산이 바다에 잠겨 있으면서 침식작용을 일으켜 이런 장관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해발 약 2,800m나 되는 이곳이 바닷물에 잠겼었다니, 상상하기 어렵다.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

        브라이스 캐년은 유타 주에 있는 계단식 분지 형태의 협곡이다. 선셋 포인트(sun set point)로 가서 협곡을 내려다보았다. 이암(泥巖)과 사암(砂巖)으로 된 붉은 색 바위들이 첨탑(尖塔)처럼 높이 솟아오르며 기묘한 모양을 뽐내고 있다. 이곳을 첨탑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라고 하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겠다.

 

   나바흐 루프(Navajo loop)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기묘한 바위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어떤 바위는 굉장히 큰 빌딩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어떤 것은 첨탑처럼 하늘로 뾰족하게 솟아오르며 멋진 모습을 뽐낸다. 어떤 것은 수수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어떤 것은 섬세한 조각가가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모두 다 경이롭기 짝이 없다.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유타 주 남부로부터 애리조나 주 북부에 걸쳐 있는 협곡이다. ‘메사(mesa, 원래 평평한 평지였으나 단단한 표면의 지층은 부식되지 않는 반면, 부식이 잘 되는 약한 부분은 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단단한 표면은 상대적으로 주위보다 높은 언덕)라고 하는 테이블 모양의 바위가 여러 곳에 솟아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원주민들이 운행하는 16인승 지프(geep)차를 타고, 흙먼지가 이는 길을 15분쯤 달려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원주민들의 생활용구와 관광용품을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세 자매바위’, ‘낙타바위를 비롯하여 이름 있는 큰 바위들이 곳곳에 있다. 이곳은 이런 바위들이 마치 기념비(monument)가 줄지어 있는 듯하다 하여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라고 이름하였다. 이곳에서 <추적자>를 비롯한 여러 편의 서부영화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안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

   안텔로프 개년은 애리조나 주 파웰 호(Powell Lake) 근처에 있다. 콜로라도 강이 만든 예술품으로, 붉은 사암층(砂巖層)이 수만 년 동안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진작가들이 모여 자유롭게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는데, 그 뒤로 널리 알려져 관광객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곳은 인디언보호구역에 위치한 지하협곡(under canyon)으로, 탐방길이 복잡하다. 그래서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두 개 관광회사에 소속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켄스 투어(kens Tour)에 탐방 신청을 하였다. 15명이 한 조가 되어 원주민인 나바오 족 청년의 안내를 받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평지를 300m쯤 걸어간 뒤에 동굴 입구에서 철제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갔다. 20여 계단을 내려간 뒤에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아 걸으며 바위들의 모습을 살폈다. 건물 34층 높이의 바위들은 깎아지른 듯이 곧게 또는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고, 소라껍질 속처럼 둥글게 파인 채 서 있기도 하였다.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도 있다. 이런 바위들은 바위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보였다. 같은 바위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색감이 다르다. 눈으로 볼 때와 사진기에 찍어서 볼 때도 색이 다르게 보인다. 참으로 신기하다. ‘자연의 신비, ‘빛의 마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안내하는 인디언 가이드는 앞장서서 걷다가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에서는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 직접 찍어 주기도 하였다. 지하협곡을 탐방하는 시간은 정말 즐겁고 황홀하였다. 그런데 철판으로 된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조금 전에 지하에서 보던 황홀한 광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보던 광경 그대로였다. 아쉬움이 밀려온다. 남가일몽(南柯一夢) 고사에 나오는 주인공이 꿈을 깬 뒤에 느꼈을 허망함도 이와 같았을까!

 

나는 5대 캐년의 풍광을 보는 동안 놀라움과 감탄이 연속되었다. 이런 장관은 이 세상의 예술가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만들 수 없을 만큼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기묘하며,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런 장관이 생긴 것은 메사 지질의 특성과 강의 침식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협곡이 생긴 내력을 설명하는 이론일 뿐이다. 대자연의 예술품이 생긴 내력이 이런 말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를 위대한 신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비로운 신의 예술품을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며,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 (2018.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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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24일에는 다달이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하늘공원에 갔다. 원래는 단풍과 억새, 코스모스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10월에 가기로 하였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날에 비가 내려서 가지 못하고, 11월 모임으로 미루었다. 그래서 이번 모이는 날에는 날씨가 좋기를 바랐다. 그런데 전날 일기예보를 들으니, 첫눈이 내릴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예년처럼 눈발이 흩날리다가 그치거나, 자국눈이 내리겠지하고 가볍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뿌연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현관을 나와 계단을 내려서니, 쌓인 눈이 신발의 반쯤 올라왔다. 나는 금년 들어 처음 내리는 눈이기에 가방에 있는 우산을 꺼내지 않고 그대로 맞으며 신금호역으로 걸어갔다. 아파트 단지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동창생 6명이 만났다. 두 사람은 감기가 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눈을 맞으며 하늘공원에 갈 것인가, 아니면 찻집으로 가서 담소하다가 점심을 먹을 것인가를 물었다. 친구들은 올겨울에 내리는 첫눈을 밟으며 걷는 것도 좋고, 눈이 곧 그칠 것 같으니 하늘공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나와 공원으로 향하였다.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넓은 도로에는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길에는 우리보다 먼저 공원을 오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제법 많이 나 있다. 우리는 넓은 도로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 올라갔다.

 

   도로 좌우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흰색의 두꺼운 옷을 입고 서서 우리를 반기는 듯하였다. 한참 올라가니 누구인가가 만들어 놓은 작은 눈사람이 길가에 서서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친구들과 눈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 눈을 맞으며 뛰놀던 일, 눈을 뭉쳐 던지며 눈싸움을 하던 일,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하던 일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 역시 아스라한 옛 기억이 떠올라 맞장구치며 즐거워하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눈은 그치고 햇볕이 따사롭게 비쳤다. 그에 따라 쌓였던 눈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눈이 적은 곳을 골라 밟으며 걸었지만, 운동화가 차츰 젖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공원의 정상 가까이 갔을 무렵에는 양말이 젖어 발이 축축해졌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들과 금년 겨울의 첫눈을 밟으며 걷는 것에 감동을 느껴 발이 젖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늘공원은 한강과 접한 98미터 높이에 있는 58천 평의 넓은 공원이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매우 넓은 공원이다. 정상에 오르니, 눈에 덮인 넓은 공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던 설원(雪原)이 펼쳐진 듯 황홀하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꽃들도, 곱게 물든 단풍잎도 눈에 덮였다. 위용(偉容)을 자랑하던 나무도, 땅을 기던 덩굴도, 많은 사람이 밟아 더러워진 땅도 눈에 덮여 하얗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눈은 예쁘고 추함도, 잘나고 못남도, 크고 작음도 따지지 않고 다 덮어 순수하고 순결한 외양(外樣)으로 바꿔 놓았다. 사람들도 눈에 덮인 공원의 모습처럼 자기만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순수하고 착하게 살면, 설원에 햇빛이 비쳐 찬란한 것처럼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억새 단지에 가니, 억새들의 일부는 하얀 이불을 덮고 누워 있고, 일부는 눈의 힘에 눌리지 않고 곧게 서 있다. 억새가 하얀 꽃을 달고 곧게 서서 하늘거리는 귀엽고 멋진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공원의 동남쪽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엄한 풍경이 환하게 펼쳐졌다. 건물들이 새하얀 눈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모습은 아주 멋있게 보였다. 한강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놓은 교량의 교각 역시 눈 모자를 쓰고 우뚝 서 있고, 그 밑을 흐르는 물은 푸른빛을 자랑하며 유유히 흐른다. 우리는 눈 덮인 공원 언덕과 억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에 앉아 쉴 곳을 찾았다. 모두 눈에 덮여 있는데, 지붕이 있는 그네에는 눈이 없었다. 두 사람이 그네에 앉자 나머지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둘레에 섰다. 우리는 거기서 준비해 간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눈 덮인 공원에서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커피와 과자는 정말 맛있었.

 

   내려올 때에는 눈 녹은 물이 흘러 걷기에 불편하였다. 공원 입구로 내려오니, 그 때 마침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맹꽁이차가 올라왔다. 맹꽁이차 탑승료를 물으니, 1인당 2000원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승차권 발매기에서 승차권을 구입하여 맹꽁이차를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산 물고기를 파는 곳으로 가서 광어와 농어를 사서 회를 떠 달라고 부탁하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맛있는 회를 안주로, 내가 미국에서 사가지고 온 양주를 마신 뒤에 청하와 소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었다.

 

  

  

   눈길을 걸은 오늘은 다리도 좀 아프고 피곤하였다. 신발이 젖어 양말까지 축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7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첫눈을 즐기며 걸은 뜻깊은 날이어서 그런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감성(感性)이 무뎌진 탓에 그동안 눈이 내려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첫눈이 8.8cm나 내렸고, 초등학교 동창들과 하늘공원을 걸은 특별한 날이다. 그래서 그동안 무뎌졌던 감성이 조금은 되살아난 듯하다. 첫눈이 쌓인 길을 걸으며 느낀 감동과 기쁨은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2018.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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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전국을 펄펄 끓게 하는 가마솥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기온이 지난주에 38까지 올라갔고오늘과 내일은 39까지 올라 111년에 오는 최강 폭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 16일째 폭염이 계속되니, 밖에 나가면 숨이 턱턱 막힌다. 실내에서도 냉방기기가 없으면 견디기 어렵다. 낮에 올라간 기온은 밤이 되어도 떨어질 줄 몰라 열대야 현상이 8일째 계속되니, 잠을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이런 날씨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하니, 하루하루 지낼 일이 걱정이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환자가 2,000명을 넘었고, 사망한 사람도 27명이나 된다고 한다. 온힘을 기울여 기르던 가축과 어패류(魚貝類)가 떼죽음을 하고, 무와 배추의 작황도 나빠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폭염이 장기화하면, 사과 등의 과일도 피해가 우려된다고 한다.

 

  눈을 돌려 사회 현실을 보면, 정부가 내걸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비웃듯이 서민들의 소득은 늘지 않았는데, 물가는 오르기만 한다. 한국경제는 정부의 반기업적 정서와 최저임금 문제 등이 겹쳐 점점 나빠져서 북한도 비아냥거릴 만큼 위기상황이 되었다.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되지 않았는데, 비핵화가 다 된 듯이 앞서가는 말과 행동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병력 감축과 군비축소가 논의되어 군사력이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경제와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사태의 본질에는 눈을 감은 채 엉뚱한 말만 하고 있으니,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계속되는 더위와 싸우느라 힘들고, 이어지는 우울한 소식에 짜증이 나서 속이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때에 불현 듯 떠오르는 말은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겼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다. 다윗 왕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궁중의 보석 세공사(細工師)에게 반지를 만들라고 하면서, “반지에는 내가 승전해 기쁨이 넘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하였다. 반지를 만든 세공사는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지혜로운 솔로몬 왕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솔로몬 왕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넣으라고 하였다. 다윗 왕은 흡족해 하면서 세공사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유대교 경전의 주석서인 <<미드라시(Midrash)>>에 나오는 이 말은 정반대의 두 가지 상황을 직관적으로 조합시킨 명언이다. 성공했거나 승리하였을 때 자만하지 말며, 실패하였거나 상황이 나쁠 때 낙심하지 말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제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께 더위에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넸다. 한 분은 선풍기와 에어컨을 끼고 지낸다면서, “더워서 죽겠다고 하였다. 다른 한 분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고, 낮에는 실내에서 생활한다. 이 더위를 잘 이겨내고 가을을 맞으면, 더 건강해 질 것이라고 하였다. 계속되는 폭염을 자연현상으로 치부하고, 이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이 분의 생활 태도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 분은 더욱 건강해진 몸으로 시원한 가을을 맞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말의 뜻과 통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로는 중국문헌 <<회남자(淮南子)>> <인생훈(人生訓)>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들 수 있다. 중국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하자, 그는 이것이 무슨 복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하였다. 몇 달 지난 뒤에 달아났던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이것이 무슨 화가 될는지 어찌 알겠소?” 하였다. 그의 아들이 그 좋은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하였다. 1년 뒤에 전쟁이 일어나자 변방의 장정들이 모두 싸움터에 나가 싸우다가 거의 다 전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싸움터에 나가지 않아 무사하였다. 이것은 화가 복이 되고, 복이 변하여 화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고사(故事)이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고,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고 나면, 기쁘고 즐거운 일이 찾아왔다. 그 뒤에 다시 괴롭고 슬픈 일이 생겼고, 이를 견뎌내면 다시 기쁘고 보람된 일이 다가왔다. 이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 자만하지 않고, 실패하였거나 상황이 나쁠 때에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극복한 덕이라 생각한다.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를 겪으면서, 오늘 한국이 처한 암담한 현실을 보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과 새옹지마란 말을 되뇌어 본다. 며칠 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올 것이다. 우리의 경제가 좋아지고,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안보에 대한 불안 없이 평화를 누리면서 더욱 발전하는 날이 올 것이다. 눈앞의 일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희망의 끈을 든든히 잡고 어려움을 이겨내야겠다. (2018. 08. 01) 

              <서울문단 제7호(한국문인협회 서울지회, 2018>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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