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온이 34°C까지 오른, 아주 더운 날이다. 오후에 볼일이 있어 낙원동에서 인사동을 지나 조계사 쪽으로 걸어갔다. 그 길은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이면도로(裏面道路)로 가로수가 없고, 동서로 뻗은 길이어서 빌딩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도 없었다. 그래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나는 고개를 좀 숙이고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양산이나 넓은 모자챙으로 해를 가리며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문지·책·서류봉투·손수건·부채 등을 높이 들어 해를 가리며 걷는 사람도 있다.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 정면이나 목 부분에 대면서 걷는 젊은이도 있다. 그 중에서 나의 흥미와 관심을 끈 것은 합죽선(合竹扇)을 펴서 해를 가리고 걷는 사람을 여럿 본 것이다.
합죽선(合竹扇)은 얇게 깎은 대나무 껍질로 살을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이다. 부채고리에는 장식을 매다는데, 전에는 신분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매달았다고 한다.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전승되는 합죽선은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세련미를 갖추었다. 따라서 합죽선은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을 넘어 멋과 예술을 담은 특별한 예술품이라 하겠다.
부채는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다. 부채에 관한 오래된 기록은 후백제의 왕 견훤이 고려 태조 왕건의 즉위 소식을 듣고, 선물로 공작선(孔雀扇, 공작의 깃으로 만든 부채)을 보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이다. 이 부채가 단선(團扇, 둥글게 만든 부채)인지 접선(摺扇, 접었다 폈다 하게 된 부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합죽선은 더위를 식히는 것 외에도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다. 선비들은 합죽선을 가지고 다니다가 내외하거나(남의 남녀 사이에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피함.) 예의를 지켜야 할 경우에는 펴서 얼굴을 가려 실례를 범하지 않으려 하였다. 손잡이 부분에 있는 지압점(指壓點)을 눌러 건강 증진의 도구로도 활용하였다. 길을 가다가 불량배나 강도를 만났을 때에는 합죽선으로 막아 화를 면하였다. 시조나 가곡을 부를 때에는 장단을 맞추는 데에 사용하였다. 민요나 판소리를 부르는 소리판이나 무당의 굿판, 전통무용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품(小品, 연극이나 영화 따위에서, 무대 장치나 분장에 쓰는 작은 도구류)이다.
옛날부터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에는 부채를, 동짓날에는 새해의 농사준비에 도움이 되는 달력을 나눠주었다. 조선시대에는 단오가 되면 공조(工曹)에서 부채를 만들어 임금께 바치고, 임금은 이를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 단오에는 일반인들도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여름을 맞아 더위를 이기고 건강을 지키라는 뜻이 담긴 풍습이라 하겠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오에 부채를 진상(進上)하게 한 뒤에 임금이 이를 신하들과 군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사가 있다.
합죽선은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만들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대나무와 한지의 품질이 우수한 전라도 지방에서 만든 것이 호평을 받았다. 전주감영에서는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합죽선을 만들었다. 최근에 와서 합죽선은 역사성‧예술성 면에서 전승‧보존 가치가 높다 하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만드는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선자장(扇子匠)을 지명하였다. 합죽선 장인(匠人)의 전승계보를 보면, 제1대는 라경옥 씨이고, 제2대는 그의 아들 라학천 씨이다. 제3대는 라학천 씨의 다섯 아들이고, 제4대는 라학천 씨의 외손자인 김동식 씨이다. 김동식 씨는 외할아버지인 라학천 씨와 셋째 외숙인 라태순 씨의 기술을 이어받은 제4대 선자장이다. 합죽선은 2007년에 전라북도중요무형문화재로, 2015년에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제128호)로 지정되었다. 김동식 씨는 전라북도 지정 선자장에 이어 국가지정 선자장이 되었다. 제5대는 아들 김대성 씨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합죽선 세 개를 가지고 있다. 둘은 전주 지방에 사는 제자가 선물로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필리핀에 여행 갔던 제자가 사다 준 것이다. 그 중 하나는 고종황제께 합죽선을 만들어 바친 제2대 합죽선 장인 라학천 씨의 다섯째 아들 고 라태용 선생이 만든 명품(名品)이다. 이 부채는 잔손을 많이 들여 정밀하게 만든 37개의 살에 기름먹인 한지를 붙여 만들었다. 부채를 펴면 3분의 2쯤 되는 선면(扇面)에 굽은 노송을 그린 묵화(墨畫)가 있고, 그 옆에 송나라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시 「고송(古松)」이 적혀 있다. 끝에는 ‘崔雲植 敎授. 000 拜上/ 丁丑年 元旦 無等)’이라 쓰고 낙관이 찍혀 있다. 부채고리에는 청․홍색 실로 정성껏 만든, 고상하면서도 호사스러운 느낌을 주는 매듭이 달려 있다. 제3대 선자장인 라태용 선생이 만든 부채를 보고 있으면, 아주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선자장인 라 선생께 특별히 부탁하여 얻은 작품을 나에게 선물한 000 선생께 감사한다. 나는 이 부채를 받은 정축년(1997)부터 지금까지 연구실에 두고, 냉방 시설이 가동되지 않아 더울 때에는 더위를 식히고, 심심할 때에는 지압을 하는 소품으로 활용한다. 부채에 적힌 시를 읽으며 고송을 스쳐온 듯한 바람을 느껴보기도 한다.
요즈음 아내는 오죽을 깎아 만든 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접이식 작은 부채[烏竹扇]를 가지고 다닌다. 서예를 공부한 친구가 써준 글귀가 적혀 있어 매우 아끼며 사용한다. 그러나 나는 부채를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어디를 가든 실내는 냉방이 잘 되어 있고, 승용차는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차안에 에어컨이 있어 덥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밖이 워낙 더웠기 때문에 냉방을 한 은행에 들어가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A4 용지로 부채질을 하면서 합죽선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였다.
요즈음에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부채를 보면, 전통부채 외에 현대부채도 있다. 현대부채는 전체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거나 플라스틱으로 살을 만들어 양쪽에 종이를 접착한 살부채, 종이에 인쇄를 하여 필름으로 코팅을 하고 자루를 끼운 부채 등 다양하다. 이들은 바람을 내는 데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가지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일회용품이다. 합죽선이나 오죽선은 오래 사용할 수 있고, 가지고 다니기에 좋으며,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에 만난 선배가 가방에서 합죽선을 꺼내 부채질을 하고, 거기에 쓰인 한시를 풀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합죽선을 애용하는 것은 각자의 건강을 챙기면서 무형문화재의 전승과 보존에 도움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합죽선을 가지고 다니면서 더위를 식히는 한편, 옛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2019.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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