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친구가 경기도에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는 호수가 있다고 하였다. 호기심이 생겨 어디냐고 물으니,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에 있는 ‘호명호수’라고 하였다. 약속한 날에 상봉역에서 그 친구를 만나 함께 경춘선 열차를 타고 가다가 상천역에서 내렸다. 등산로로 걸어 올라가는 것은 힘들 것 같아 상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산 아래에 있는 제1주차장에서 호명호수까지 올라가는 길은 약 3.8km이다. 버스 운전기사는 익숙한 솜씨로 경사가 심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 올라갔다. 호젓한 길 좌우에는 온갖 나무와 풀이 저마다의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어 매우 훌륭하고 멋졌다. 관광버스 기사들이 이 길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는다는 말이 실속이 없는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쯤 달려 호수 앞 광장에 내리니, 앞이 탁 트이며 넓은 호수가 보였다. 해발 538m나 되는 산의 꼭대기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호수 앞에 세운 받침대에는 하늘을 나는 거북이 앉아 있다. 호수에는 크게 만든 거북 한 마리와 오리 한 쌍이 정겹게 떠 있다. 거북은 물에 사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신의 사자(使者)․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오리는 물로 인한 재앙에서 인간을 구원하고, 가뭄에 물을 가져다주어 풍요를 이루게 하며, 변치 않는 애정을 보여주는 신이한 존재로 믿는 새이다. 이런 상징성을 지닌 거북과 오리는 호수를 찾는 사람에게 신비로우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가지런히 쌓은 돌둑에 안겨 있는 푸른 물은 일렁일 때마다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인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느긋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장엄한 산은 자기 모습의 일부를 호수 가장자리에 띄우고 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도 이에 질세라 멋진 모습을 호수에 드리우고 있다. 산 정상에서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호수를 보니, 놀라움과 함께 감탄의 말이 절로 나왔다.
이 호수는, 깊은 밤에 남아도는 전기를 이용해 청평호 인근의 물을 산꼭대기로 끌어올려 저장하였다가, 전기 수요가 많을 때 그 물을 흘려보내어 전기를 일으키는 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의 상부에 만든 인공저수지이다. 이 저수지는 높이 62m, 길이 290m로, 수심은 55m이며, 호수 둘레는 1.6km이다. 1975년에 착공하여 1980년에 준공하였다. 만수(滿水) 면적은 149,400㎡(약 45,000평)로, 총 저수량은 267만 톤이다. 이 물을 730m 아래에 있는 지하발전소로 보내어 일으킬 수 있는 전기의 양은 약 40만 ㎾라고 한다.
호명산은 예로부터 산세가 빼어나고 조망이 좋기로 이름난 산이다. 여기에 큰 호수가 만들어졌으니, 그 경관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가평군에서는 경관이 빼어난 이곳을 여러 사람들에게 휴식처로 제공하려는 뜻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와 업무 협약을 맺고, 2008년부터 ‘호명호수공원’으로 개방․운영하고 있다. 지금 이곳은 가평 8경 중 제2경으로 선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호명호수공원 안내도를 본 뒤에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잘 정돈된 소나무 숲에 호랑이 형상의 커다란 조형물이 있고, 그 옆에 호명산의 유래를 적은 표지판이 서 있다. 호명산의 유래를 읽은 뒤에 호수의 맑은 물을 바라보며 둑길을 조금 걸어가니, 산위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보니, 청평호 주변의 물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장관이다.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시원하고 평온해 진다.
멋진 광경을 본 뒤에 커피로 그림 그리는 화가 최달수 씨가 운영하는 호명갤러리로 들어갔다. 안에는 판매하는 음료와 케이크가 있고, 안쪽에 최씨의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모두 커피로 그린 그림인데, 커피의 색깔과 농도를 잘 조절하여 여러 모양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묘사하여 신비하고 이채롭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다채로운 커피의 향이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듯하였다.
갤러리에서 나와 호수 둘레의 길을 걸으며 주변의 경관, 잘 가꾼 꽃과 나무, 내방객을 위한 휴식처, 각종 시설물 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높이 세워놓은 ‘자원개발의 새 기원’ 탑을 볼 때에는 첩첩산중에 저수지를 마련하여 자원개발의 기원(紀元)을 이룬 일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졌다. 한국전력 순직사원 기념탑 앞에서는 전력보국(電力報國)의 큰 뜻을 펼치다가 순국하신 사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머리를 숙였다.
이 산에는 산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에 한 스님이 계곡의 물에 몸을 씻고 있는데 수캉아지 한 마리가 오더니,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님은 이 산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면서, 그 강아지와 함께 지냈다. 강아지는 자라면서 호랑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 자란 호랑이가 정상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크게 울자 근처에 살던 암호랑이가 찾아왔다. 둘은 바위 밑 동굴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었다. 그 뒤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동굴로 피신하여 화를 면하였다. 사람들은 이 산을 ‘호랑이가 우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虎鳴山)’이라고 하였다. 아기 갖기를 원하는 여인들이 호랑이의 정기를 받아 수태(受胎)하려고, 이 동굴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울던 바위와 동굴은 호명호수를 만들 때 파헤쳐져서 지금은 그 흔적조차 볼 수 없다.
호명산은 신령스러우면서 무서운 호랑이가 살고, 마을사람들이 난리를 피하던 동굴이 있던, 깊고 험한 산이다. 이런 산에 양수발전소의 상부 저수지를 만든 것은 자연과 과학을 아우르는 놀라운 발상이었다. 이러한 발상이 자원개발의 성과를 이루고, 호명호수공원이라는 관광명소를 만들어냈다. 이 공원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이 자연과 과학이 조화를 이룬 현장을 보면서,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노고를 되새겼으면 좋겠다.(2019.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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