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공원의 증기기관차
지난 10월 하순에 아내와 함께 딸을 만나러 LA에 갔다가 삼호관광에서 모집하는 관광단에 끼어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을 탐방하였다. 이 공원은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Range) 중간에 있는 산악지대로, 빙하(氷河)의 침식으로 생성된 계곡과 폭포, 숲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공원은 연간 약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이 공원의 면적은 약 4,046㎢(약 12억 坪)에 이른다고 하니, 그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요세미티 공원이 자리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아래쪽은 초원지대로, 백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에는 인디언들이 버펄로(buffalo, 아메리칸 들소)와 함께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다. 백인 이주민들은 처음에는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으나, 그들이 버펄로의 가죽과 뿔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나빠졌다. 그 후 백인 기병대가 와서 원주민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원주민들은 백인을 보면, ‘요세미티!’라고 소리치면서, 산으로 도망하였다. 이로 인해 ‘미친 곰’이란 뜻을 가진 ‘요세미티’가 이 공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전날 오후에 이 공원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프레즈노 시로 갔다.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숙박한 우리는 아침 7시 15분에 버스에 올라 요세미티 공원으로 향하였다. 공원 가까이 오자 버스는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달렸다. 길 좌우에는 쭉쭉 뻗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숲이 이어졌다. 버스는 ‘이 공원의 특색은 우거진 숲과 화강암’이라고 한 가이드의 말이 실감나는 풍경을 보여주며 계속 달렸다.
우리는 오전 9시 30분에 증기기관차 승강장에 도착하였다. 이 공원에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는 전에 나무를 베어 나르던 기차인데, 지금은 관광열차로 이용하고 있다. 증기기관차 한 량(輛)이 천장을 덮지 않은 객차 두 량과 천장을 막은 객차 한 량을 끌었다. 증기기관차에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이 많은 모양이다. 객차에 올라보니, 두어 아름쯤 되는 통나무를 ‘ㄴ’자로 깎아 만든 긴 의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석 량의 객차에는 우리와 함께 온 한국인 90여 명과 외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탑승하였다.
증기기관차는 증기를 뿜어 올리면서 천천히 밀림 속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증기기관차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달리다가 커브를 돌 때에는 기적(汽笛)을 울렸다. 굽은 길을 달릴 때에 보니, 기관차의 아래쪽에서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요즈음에는 보기 드문, 증기기관차가 끄는 객차를 타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밀림을 달리니,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고 가슴이 뛰었다. 열차는 20분쯤 달린 뒤에 숲속에 정차하였다. 객차에서 내린 아내와 나는 밀림 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아늑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만끽(滿喫)하였다. 탑승을 알리는 기적이 울리자 밀림의 정취(情趣)에서 벗어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객차에 올랐다. 객차는 다시 10분쯤 달려 출발지점에 도착하였다.
증기기관차 승강장 둘레의 넓은 지역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나무는 대부분 ‘수가파인(Sugarpine)’과 잎에 Y자 모양이 있는 ‘Y편백나무’이다. 수가파인은 솔잎이 6개이고, 솔방울은 매우 커서 웬만한 크기의 파인애플과 비슷하다. 곧게 자란 수가파인과 와이편백나무는 둘레가 한 아름이 넘어 보이고, 키는 20∼30m는 족히 될 듯하다. 이런 숲속에 놓인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를 타고 밀림을 둘러보았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열차 관광을 마친 우리는 승강장 앞에 있는 야외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줄을 지어 서서 햄버거와 쿠키, 삼호관광에서 특별히 준비해 온 농심의 신라면을 받아 야외식탁에서 먹었다.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 넣어주는 햄버거도,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도 정말 맛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았던 동행들도 아주 맛이 좋다고 하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요세미티 공원의 울창한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다. 식사를 마친 뒤에 마시는 커피의 그윽한 맛고 향 또한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숲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려 입장료를 내는 곳(Nation Park Service)에 이르렀다. 버스 1대 입장료 300 달러를 내고, 한 시간 가량을 더 달려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약 두 시간 동안 천천히 걸으며 요세미티 계곡, 세계 최대의 화강암 바위인 엘 카피탄(El Capitan), 미국 최대의 낙차를 자랑하는 요세미티 폭포 등을 둘러보았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과 골짜기의 웅장하면서도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주변의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공원의 곳곳에는 타다 남은 나무들이 그대로 있어 작년 여름에 있었던 산불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원은 수많은 나무들이 광합성작용을 하므로, 산소 농도가 매우 높아 공기가 맑고 상쾌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날에는 뜨거운 햇볕의 작용 또는 나무끼리의 마찰로 인해 산불이 일어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침엽수가 자라던 곳에서 불이 나서 모두 타고 나면, 그 자리에서 활엽수가 나서 자라 다시 숲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산불이 나면, 숲이 워낙 넓어서 진화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 걱정이 없기 때문에 진화에 온힘을 기울이지 않고, 자연의 섭리(攝理)에 맡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산불이 나면 되도록 짧은 시간에, 완전히 진화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공원 탐방을 마친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들어갈 때와는 달리 북서쪽 길을 달려 내려왔다. 차창 밖을 보니, 소나무와 편백나무는 진녹색을 자랑하며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서 있지만, 활엽수는 노랗게 물들어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오늘의 탐방에서 깊은 감동과 감격을 느꼈으므로, 10여 년 전에 왔을 때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다 풀렸다. 그러나 전에 왔을 때에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과 기대’를 안고 발길을 돌리던 것과는 달리 인생의 가을을 맞은 내가 이곳에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마음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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