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뛰기는 예로부터 단오절에 널리 행하던 민속놀이다. 그네뛰기는 남성놀이인 씨름과는 달리 여성들 사이에서 주로 행해졌는데, 마을 어귀나 동네 마당의 큰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가지에 줄을 매고 하였다. 그네를 매기에 적당한 나무가 없을 때에는 넓은 마당에 긴 통나무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가로질러 묶은 통나무에 그네를 매었는데, 이를 '땅그네'라고 하였다. 그네뛰기는 4월 초파일 전후에 시작하여 오월 단오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네뛰기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므로, 재미와 함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네를 허공 높이 구르기 위해서는 온몸의 탄력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특히 팔 다리의 힘이 뛰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그네뛰기를 통하여 팔다리의 힘을 기르고, 온몸의 순발력과 민첩성을 기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예쁘고 화려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이 그네에 올라 하늘 높이 몸을 날려 오가는 모습은 새장에 갇혀있던 새가 풀려나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활기가 넘치면서도 아름답다. 단오에 그네뛰기 하던 모습을 민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오월이라 단옷날은 천중가절(天中佳節) 아니냐./ 수양청청 버들 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
(후렴)후여넝층 버들가지 저 가지를 툭툭 차자.
후여넝출 버들가지 청실홍실 그네 매고/ 임과 나와 올려 뛰니 떨어질까 염려로다.//
한 번 굴러 잎이 솟고 두 번 굴러 뒷이 솟아/ 허공중층 높이 뜨니 청산녹수 얼른얼른.//
어찌 보면 훨씬 멀고 얼른 보면 가까운 듯/ 올라갔다 내려온 양 신선선녀 하강일세.//
난초 같은 고운 머리 금박댕기 너울너울/ 오이씨 같은 두 발길로 반공 중에 노닌다.//
요문갑사 다홍치마 자락 들어 꽃을 매고/ 초록적삼 반호장에 자색 고름도 너울너울.//

    이 민요에는 그네뛰기의 정경은 물론 그 멋과 흥취가 잘 드러나 있다. 민요를 이야기하다 보니,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니 구름 속에 나부낀다.……한 번 구르니 나무 끝이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 아래라."고 노래한 가곡 [그네]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 노랫말에도 그네 뛰는 모습과 함께 그 멋과 흥취가 드러나는데, 예로부터 불러오던 민요의 내용과 통하는 점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중국의 경우, 그네뛰기는 북방 유목민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옛 문헌인 {형초세시기(荊礎歲時記)}에 "북방 민족이 한식날 그네뛰기를 하여 가볍고 날랜 몸가짐을 익혔다. 그 후 이것을 중국 여자들이 배웠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가지를 가로질러 맨 다음, 거기에 물감들인 줄을 매달고 선비와 부인들이 줄 위에 앉거나 서서 밀고 잡아당기며 놀았다. 이 놀이를 추천(추韆)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중국의 그네뛰기는 북방에서 시작되어 점차 남쪽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일설에는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북방의 융적(戎狄, 북방에 사는 異民族)을 친 후부터 그들의 놀이인 그네뛰기가 중국에 전해져 청명절을 전후하여 성행하였다고 한다. 당 나라 현종은 이 날 궁정에 그네를 매고 궁녀들에게 그네뛰기를 하게 하였는데. 이 놀이를 '반선녀(半仙女) 놀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그네뛰기가 중국에서 전래한 것인지, 아니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네뛰기에 관한 기록은 고려 때부터 보인다. 중국 문헌 {송사(宋史)}에는 고려 현종 때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곽원(郭元)이 "고려에는 단오일에 그네뛰기를 한다."고 하였다. 그네뛰기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문헌은 {고려사(高麗史)}인데, "단오절에 최충헌이 그네뛰기를 백정동궁(栢井洞宮)에서 베풀고, 문무(文武) 4품 이상을 초청하여 연회하기를 사흘 동안 하였다."는 기록과 최이(崔怡)가 "5월에 여러 관원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할 때 그네를 매고 무늬 놓은 비단과 채색 꽃으로 꾸몄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우왕이 "거리를 순행하고, 수창궁으로 가서 그네뛰기를 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로 보아 고려 시대에는 그네뛰기가 널리 성행하였고, 매우 호사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쓰여진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단오 날에 여염집 부녀자들 사이에 그네뛰기가 성행하였다."고 하였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항간에서는 단오절에 남자와 여자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고 하였다. {송경지(松京誌)}에는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여염집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고, 남자들은 씨름을 한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제주도에는 매년 8월 보름에 다른 놀이와 함께 그네뛰기를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하였다. {개성지(開城誌)}에는 "5월 5일에 여자들은 성장을 하고 경덕궁에 모여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만월대에 모여 씨름을 한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조선 시대에도 그네뛰기가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네뛰기에는 한 사람이 뛰는 '외그네뛰기'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뛰는 '쌍그네뛰기'가 있다. 그네뛰기 대회를 할 때에는 누가 더 높이 오르는가를 겨루는데, 높이를 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네 앞 적당히 떨어진 곳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방울을 매단 다음, 그네가 앞으로 높이 솟아오를 때 장대에 매달린 방울을 발로 차서 방울을 울리는데, 정한 횟수를 오가면서 울리는 방울 소리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여 승부를 가리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그네의 발판에 긴 줄자를 매달아 그네가 높이 올라갔을 때 그 높이를 재는 방법이다. 그네뛰기 대회를 할 때에는 푸짐한 상품도 주어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그네뛰기는 20세기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서울을 비롯하여 개성, 평양, 사리원, 수원, 남원, 김천 등에서는 대대적으로 행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에 우리 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일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국가가 총동원을 해야하는 때에 그네뛰기와 같은 한가한 민속놀이를 할 수 없다 하여 이를 금하였다. 그래서 한 동안 널리 행해지지 않다가 8·15광복 후부터 다시 전국에서 이 놀이가 부활하였다. 서울에서는 남산과 장충단 공원, 사직공원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민간 단체의 주관으로 크게 열렸다. 1956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82회 탄신 축하 기념 행사로 창경궁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이 때 일반은 개인전을, 여자 중·고생은 단체전을 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최근에 와서는 다양한 운동경기와 여가 선용 방법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네뛰기는 전처럼 널리 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주부클럽연합회에서 신사임당 기념행사의 하나로 1970년부터 매년 5월에 하는 그네뛰기 대회와 밀양의 '아랑제(阿娘祭)'와 남원의 '춘향제(春香祭)' 때에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정도이다. 

    그네는 지방에 따라 '근데, 군데, 근듸, 군듸, 근의, 군의, 구리'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추천( 韆)'이라고 한다. 고려 때 지어진 경기체가 [한림별곡]에는 "홍(紅)실로 홍(紅)글위 매요이다"라 하여 그네를 '글위'라 하였다. 그네를 조선 정조 때 이성지(李成之)가 지은 {재물보(才物譜)}에는 '근의'라 하였고, 숙종 때 신이행(愼以行)·김경준(金敬俊)이 지은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그릐'라 하였다. 고소설 {춘향전]에서는 "이애 향단아 근듸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다. 근듸줄 부뜰어라."라 하였다. 이로 보아 그네는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원래는 '근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그네는 '끈(繩)의 놀이(戱)'를 뜻하는 말이라 하겠다.

  그네뛰기는 단오에, [놋다리밟기]나 [강강술래]는 추석에 널리 행해온 여성의 민속놀이인데,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하던 조선 시대의 여성들도 이 날만은 자유롭게 외출하여 친구·친척·친지들과 함께 이들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곤 하였다. 그 중 그네뛰기는 녹음방초(綠陰芳草)가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여성들이 자연 속에서 하루를 즐기면서 체력단련도 할 수 있었으니, 민속적으로나 정서 함양·체력 단련 면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놀이이다. '그네를 뛰면 여름에 모기에 물리지 않으며 더위도 타지 않는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데, 이 말에는 그네뛰기를 하여 체력을 기르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네뛰기를 전처럼 널리 행하여 우리의 전통적 민속놀이를 계승하면서 체력도 기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농지개량 제184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6)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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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갔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학교에 오가면서 건너다니던 냇가에 이르니, 친구들과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하고 노래를 부르며 두꺼비집짓기 놀이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우리는 두꺼비집을 다 지은 뒤에 두꺼비를 잡아다가 각기 지은 집에 넣고, 누구의 집에 든 두꺼비가 나오지 않고 오래 있는가 내기를 하기도 하였다. 우리 둘레에 많이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던 두꺼비는 민속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해 봄에는 정읍 지역의 민속을 조사하던 중에 정읍시 북면 마정리에 갔었다. 승용차를 타고 정읍에서 칠보 가는 길로 10분쯤 달리니, 4차선 도로변의 언덕에 두꺼비가 앉아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는 가로(길이) 1m 90cm, 가로 90cm, 두께 70cm, 땅에서 입까지의 높이 80 cm, 땅에서 궁둥이까지의 높이 50cm 가량 되는 자연석이다. 이 바위가 있는 곳은 풍수지리상으로 아름다운 매화꽃잎이 떨어지는 연못의 형상을 지닌 '매화낙지(梅花落地)'라고 전해 온다. 그래서 자연마을 이름을 '매타실(梅墮實)' 또는 '연지동(蓮池洞)'이라고 한다. 이 바위는 원래 칠보산 용추봉에 있었는데, 천지조화의 힘을 얻어 풍광이 좋은 이곳으로 왔다고 전해 온다. 그런데 이 바위의 꼬리 부분이 향하는 마을은 풍년이 들고, 좋은 일이 겹쳐 일어나지만, 머리가 향하는 마을은 여자들이 바람난다고 전해 온다. 두꺼비 바위가 있는 곳에서 건너다 보이는 마을은 북면 월천동, 연지동과 평촌, 태인면 태남리 장재울 등 네 마을인데, 전에는 이 마을 사람들이 몰래 두꺼비 바위의 꼬리 부분이 자기 마을을 향하도록 돌려놓곤 하였다고 한다. 그 일로 이웃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일이 있어서 몇 년 전에 북면 태곡리에 사는 정종구(남, 57세, 농업) 씨 등 몇 명이 두꺼비 바위의 머리 부분을 마을이 없는 부분으로 향하게 한 뒤에 시멘트로 고정해 놓았다고 한다.

  지난 1995년 10월에는 경남 진해시 용원동 녹산공단 조성 공사장에서 공사를 하던 중에 땅 속에 묻혀 있던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 일이 있다. 가로 10m, 세로 8m, 높이 10m 가량의 이 바위는 두꺼비가 용원 앞 바다를 향해 뛰려고 움츠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바위가 발견되자 용원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마을의 수호신이므로 훼손하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신문 기사를 보고 이곳을 찾아갔을 때는 바위를 깨는 작업이 진행되어 몇 조각으로 깨진 뒤였는데,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바위를 깨는 작업을 맡은 중장비 기사의 꿈에 두꺼비가 나타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갈 터이니 며칠 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기사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하기도 하고, 마을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도 하였다. 

  나는 이런 일을 보며 두꺼비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 민속에서 두꺼비는 족제비, 구렁이 등과 함께 집 지킴이 또는 재물을 관장하는 신을 상징한다. 지킴이란 한 집안이나 어떤 장소를 지키고 있는 신령한 동물 또는 물건을 말한다. 이 지킴이는 가신(家神) 또는 수호신의 성격을 띠는데, 재복(財福)을 관장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두꺼비나 족제비, 구렁이는 부잣집에 꾄다고 전해 온다.

  무당의 굿거리 중 대감거리에서 부르는 <대감타령>에, "부자 되게 도와주마. 장자(長者) 되게도 도와주마. 곳간도 채우고, 단지도 채워서 멍의 노적 쌓아놓을 적에 노적 더미에 꽃이 피고, 금구렁이 굽을 치고, 업두꺼비 새끼치고, 금족제비 터를 잡아 밑의 노적 싹이 나고" 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는 두꺼비가 재복을 관장하는 업신으로 나타난다.

  충북 청원군 오창에는 처녀를 구한 두꺼비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한 처녀가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두꺼비에게 자기의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주곤 하였다. 얼마 지나자 그 두꺼비는 커다랗게 자랐다. 그 마을에서는 일년에 한 번씩 당집에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해에 두꺼비를 기른 처녀가 제물로 뽑혔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가 밤에 당집에 들어가 보니, 두꺼비가 먼저 와 있었다. 한밤중에 천장에서 지네가 파란 불꽃을 뿜으며 처녀를 잡아먹으려 하자 두꺼비가 빨간 불을 토하며 지네와 싸웠다. 밤새도록 싸움을 한 두꺼비는 지네를 죽여 처녀를 구한 뒤에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 <지네장터> 설화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데, 이 이야기에서 두꺼비는 의리가 있고, 희생 정신이 강한 동물로 나타난다.
 
  두꺼비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나이 자랑>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 노루가 잔치를 베풀고, 여러 짐승을 초대하였다. 잔치에 초대받은 짐승 중 여우와 토끼, 두꺼비가 서로 어른이라면서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였다. 먼저, 여우가 나이 많음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는 천지개벽할 때 하늘에 별을 붙였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토끼는, 여우가 별을 붙이기 위해 딛고 올라간 사다리를 만든 나무가 바로 자기가 심은 나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두꺼비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여우와 토끼가 왜 우느냐고 묻자 두꺼비는, 토끼가 심었다는 그 나무로 망치를 만들다가 죽은 손자 녀석이 생각나서 운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우와 토끼는 상좌를 두꺼비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두꺼비는 의뭉스럽고, 지혜가 많은 동물로 나타난다.   

    평남 강서 고분의 천장에 있는 일월화(日月畵)의 달 속에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두꺼비를 달의 정령으로 보는 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중국 신화에는 천하 제일의 궁사(弓師) 예(羿)가 서왕모로부터 불사약을 얻어다 놓았는데, 아내인 항아(姮娥)가 이를 남편 몰래 먹고, 남편의 활에 맞아 죽을 것이 두려워 달로 도망가서 미운 두꺼비로 변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우리 나라에 전해지면서 두꺼비가 달의 정령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는 자장율사의 사리탑 전설도 두꺼비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의 사리를 보러 온 조정의 사신이 사리탑의 돌 뚜껑을 열게 하고 보니, 그 곳에 커다란 두꺼비가 앉아 있고, 그 뚜껑의 안쪽에는 뒷날 아무개 성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열 것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아무개 성이 바로 그 사신의 성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두꺼비를 신령스러운 동물, 영혼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애장왕 10년 6월에 벽사(碧寺)의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었는데, 그 해 왕의 숙부 언승(彦昇)과 아우 이찬 제옹(悌邕)이 군사를 이끌고 대궐로 들어와 왕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고 한다. 또 백제 의자왕 20년 4월에는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위에 모였는데, 그 해에 백제가 망했다고 한다. 이들 이야기에서 두꺼비는 국가에 변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알려준 동물이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에는 술이 나오는 술샘, 즉 주천(酒泉)이 있었다고 한다. 이 샘에서는 전에 술이 나왔는데, 양반이 오면 약주가, 상사람이 오면 막걸리가 나왔다고 한다. 어떤 상사람이 양반 차림으로 가서 물을 뜨니 막걸리이므로 샘물마저 사람 차별한다고 화가 나서 개를 잡아넣은 후로 술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곳을 가보니, 주천의 전설을 적은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돌로 만든 두꺼비의 입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꺼비의 입에서 물이 흐르도록 한 것은 두꺼비가 물의 저장 및 조절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전기를 사용하는 가정에는 전기의 사용량과 전압이 적정량을 초과할 때 퓨즈가 끊어지게 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두꺼비집'이라고 한다. 전에 연탄불을 피울 적에 사용하던 철판 덮개를 '두꺼비'라고 하였다. 전기 안전장치나 연탄 덮개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두꺼비가 불을 조절한다는 의식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있는 두꺼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 보면, 정읍에서 두꺼비 바위의 꼬리가 자기 마을로 오게 하려고 애쓰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 녹산공단 조성 공사 중에 나타난 두꺼비 바위를 보존해야 한다던 마을 사람들의 주장을 알 것 같다. 두꺼비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니, 자녀 갖기를 원하는 분들께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아 잘 기르라는 덕담 한 마디를 하고 끝을 맺어야겠다. 

  <농지개량 제183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5)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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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 갔다온 아내의 장바구니에 오이 몇 개와 부추 한 단이 들어 있다. 오이소박이김치를 담그려고 사왔다고 한다. 오이는 한겨울에도 사다가 먹었지만, 부추는 오랜만에 보는 것이어서 퍽 싱그럽게 보였고, 새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부추를 보니, 신혼 초의 일이 떠올랐다. 아내와 대화하던 중에 '부추'에 관해 말하게 되었는데, 내가 '졸'이라고 하니 아내는 '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잎과 줄기의 모양을 말한 뒤에 오이소박이김치를 넣을 때 오이 속에 넣는 채소를 말한다고 긴 설명을 하자, 아내는 크게 웃으며 '부추'를 말하느냐고 하였다. 그리고는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니, 어찌 알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촌놈'이라는 뜻으로 놀렸다. 나는 '졸'이 표준어이고, '부추'가 사투리라고 우기다가 국어사전을 찾아 확인한 뒤에야 충청도에서 자란 내가 '부추'란 말을 몰랐던 것을 인정하였다.

  부추는 지방에 따라 '졸', '솔' 또는 '정구지'라고 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남자의 양기를 북돋우는 풀'이라 하여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한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를 '파옥초(破屋草)'라고도 하는데,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전에 어느 농부가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이웃 사람의 생일 잔치에 갔다. 이웃사람 몇 명을 초대한 그 집에서는 다른 때보다 몇 가지 음식을 더 장만하여 술을 대접하였다. 술과 음식을 맛있게 먹은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그날 밤 그의 아내는 크게 만족하였다. 아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생일 집에 가서 무얼 먹었기에 오늘 밤 그렇게 힘이 좋았어요?"
  "음, 그 집 음식 중에 부추 무침과 부침이 특히 맛이 있어서 그 걸 안주로 술 몇 잔 먹고 밥을 먹었을 뿐 별다른 것은 없었소."

  이튿날 아침, 농부가 다른 날보다 좀 늦게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와 보니, 아내가 아랫집을 헐고 있었다. 농부가 깜짝 놀라 왜 아랫집을 허느냐고 물으니, 아내가 말했다.

  "부추가 남자에게 그렇게 좋은 채소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랫집을 헐고, 그 자리에 당신한테 좋은 부추를 심으려고 헐고 있어요."

  이 이야기는 부추가 양기를 북돋운다는 것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인데, 이러한 연유로 부추를 '집을 헐고 심는 채소'라는 뜻의 '파옥초(破屋草)'라고 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공부하는 선비나 도를 닦는 수도자는 부추를 먹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부추가 양기를 북돋우는 효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추의 원산지는 중국 서북부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다. 부추는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기 때문에 '게으름뱅이풀'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구)'라고 하는데, 《설문자해(說文字解)》에는 부추 잎을 여러 번 잘라도 계속 싹이 나오기 때문에 땅(一) 위에 자라는 형상을 따서 (구)라고 하였다 한다. 

  시경(詩經)에 "염소를 바치고, 부추로 제사를 지낸다(獻羔祭)."란 말이 있다. 이것으로써 부추는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먹었고,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는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1236),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1433), 훈몽자회(訓蒙字會)(1527) 등의 문헌에 부추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부추는 우리 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부추를 병마나 액을 쫓는 힘이 있다 하여 김치를 담글 뿐만 아니라 각종 찌개나 찬을 만드는 데 양념처럼 몇 가닥씩 집어넣곤 하였다. 이것은 부추가 줄기는 희고, 잎은 파라며, 싹은 노랗고, 뿌리는 붉은 빛을 띠며, 씨앗은 검은 오색 채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추는 겨울에도 죽지 않으며, 뿌리를 찢어 심어도 잘 살고, 몇 번씩 잎과 줄기를 잘라도 바로 싹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다섯 가지 색을 지닌 채소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병마나 액을 쫓는 데에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겼으며, 다른 식물에 비해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신성시하였다.   

  부추는 서양 사람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한여름밤의 꿈>에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매혹적인 눈매를 '부추눈매'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푸른 눈으로 쏘아보면, 부추처럼 얼얼해진다는 데서 온 표현이라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시실리 지방에는 부추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   

  옛날에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어머니가 죽어서 저승에 갔다. 저승을 주관하는 저승 왕이 이승에 있을 때 그녀가 한 일을 적은 문서를 살펴보니, 그녀는 거지에게 부추잎 하나를 준 것밖에는 남에게 베푼 것이 없었으므로 지옥으로 보냈다. 얼마 후 베드로도 죽었는데, 그는 살았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천당의 문지기가 되었다. 어느 날, 베드로가 귀에 익은 여인의 신음소리를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니가 저 아래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베드로를 본 어머니는 주님께 잘 말씀드려 지옥에서 꺼내 달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주님을 찾아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해 달라고 하니,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적선한 것은 부추잎 하나뿐이니, 부추잎 하나로 너의 어머니를 끌어올려라."

  부추잎 하나로 어머니를 끌어올릴 수 없음을 안 베드로는 어머니를 보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연유되어 이탈리아에서는 부추를 '절망 속의 실현할 수 없는 희망'을 뜻하는 말로 쓴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부추가 마늘·파·양파 등과 같이 온열성(溫熱性)이 있으므로, 따뜻한 기운이 있으면서 솟는 힘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기(氣)의 운행을 도와주고, 혈(血)이 뭉쳐진 것을 풀어주어 간과 신(腎)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부추는 몸이 냉해 비위(脾胃)의 기능이 저하된 소음인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찬 음식을 급히 먹어 체한 경우에는 부추를 된장에 끓여 먹으면 막힌 속이 풀린다고 한다. 부추는 양기를 올리는 꿀과 함께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는 데, 이 역시 부추의 특성과 관련지어 하는 말이다.     

  요즈음에도 한국인은 부추를 나물, 김치, 부침 등으로 많이 먹고 있다. 오이소박이를 담글 때에는 반드시 부추를 썰어 넣는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부추 잡채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부산대학교 연구팀이 부추김치에 항암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김치가 항암 작용을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김치 중에도 부추 김치가 으뜸이라고 한다. 배추김치의 위암 세포 억제 효과가 70%인데 비하여 부추김치는 85∼94%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이 배추김치는 익어야 효과가 있는데 비하여 부추김치는 풋김치일 때에도 그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민간이나 한방에서 건강에 좋다고 전해 오는 부추가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건강 증진을 위하여 부추를 많이 먹어야겠다.

    <농지개량 제182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4)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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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중에는 요즈음에도 신년 초가 되면 그 해의 운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기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 일생의 운세와 함께 그해의 신수를 보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들은 신년 초가 아니더라도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하는데, 그 경우는 아주 다양하다. 점쟁이를 찾아가 앞일을 알아보는 것을 '점친다', '점본다', '문복(問卜)한다'고 하는데, 이를 '점복(占卜)'이라고 하기도 한다. 

  점복(占卜)이란 인간의 생활에 따르는 모든 조짐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미리 알아내어 인간의 생활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활에 따르는 모든 조짐'이라고 할 때의 '조짐'은 한 개인이나 가족 또는 집단의 과거, 현재, 미래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대한 조짐을 말한다. 이러한 조짐을 미리 알아보는 방법으로는 점복을 한다. 요즈음에 주로 행해지는 점복에는 신점(神占), 역리(易理)에 의한 점, 상점(相占), 몽점(夢占), 풍수점(風水占) 등이 있다. . 

  신점은 신이 내린 무당이 신의 영력(靈力)을 이용하여 점을 하는 것인데, 그 방법은 무당에 따라 다르다. 어떤 무당은 주문(呪文)을 외우며 방울을 흔들어 신을 부른 뒤에 신의 계시를 받아 점괘를 말하고, 어떤 무당은 주문을 외우며 엽전 7개를 두 손 안에 넣고 흔든 뒤에 엽전을 점상(占床) 위에 뿌려 엽전이 앉는 모양을 보고 점괘를 말한다. 어떤 무당은 점상 위의 쌀을 이용하여 점을 하고, 어떤 무당은 알이 큰 염주를 돌리며 신을 불러 신의 계시를 받기도 한다. 신점을 하는 무당들은 사람의 출생과 성장·혼인·자녀·부귀·건강과 질병·수명 등 인간의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정해지고, 그 뜻대로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점복을 통하여 신의 뜻을 알아보고, 신에게 기원하여 질병과 재난을 물리치고, 복을 받게 해 주려고 한다.

  역리에 의한 점은 역학에 관한 이론을 학습한 사람이 역리를 풀어서 하는 점이다. 역리를 학습한 사람을 흔히 '철학가(哲學家)', '역학가(易學家)', '역술인(易術人)'이라고 하는데, 이들 중에는 집안기도·산기도 등을 통하여 강신(降神) 체험을 한 사람도 있고, 강신 체험 없이 학습과 연구를 통하여 역리를 깨우친 사람도 있다. 강신 체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학습한 역학의 이론 위에 신의 계시가 겹침으로써 점의 적중률이 높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사람의 운명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운명을 정하는 네 기둥 즉 사주(四柱)에 의해 정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주를 역리로 풀어서 정해진 운명을 미리 알아 좋은 일이 예정되어 있을 때에는 그에 순응하여 맞아들이고, 질병·재난이 있을 때에는 부적·독경(讀經)·기도·액막이·굿 등을 통하여 이를 예방하거나 물리쳐야 한다고 한다.

  상점에는 얼굴의 형상을 주로 보는 관상(觀相), 손의 모양과 손금을 주로 보는 수상(手相) 등이 있다. 상점은 관상과 수상을 공부한 사람이 보는데, 이들은 관상이나 수상뿐만 아니라 역리(易理)도 함께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관상이나 수상은 많은 사람의 관상과 수상을 보아서 얻은 경험과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적중률이 높다고 한다.

  몽점은 해몽(解夢)을 통해 조짐을 알아보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꿈을 꾼 사람이나 가족이 꿈을 풀이하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해몽가에게 해몽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해몽가는 신점을 하는 무당이나 역리점을 하는 역학가, 상점을 하는 관상가 등이 겸하는 경우가 많다.

  풍수점은 풍수설을 연구한 사람이 집터나 조상의 묏자리를 보고, 점을 치는 것이다. 풍수설을 연구한 사람은 집터나 조상의 묏자리가 그 사람과 맞으면 발복하여 모든 일이 잘 되고, 맞지 않을 때에는 재난을 당하게 되는데, 이사를 하거나 묏자리를 옮김으로써 재난을 물리침은 물론, 복을 받아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점복자를 찾아가 문복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장사·사업·이사·매매·취업·소송 등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의 잘되고 못됨, 이로움과 해로움 등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점을 한다. 혼인을 하려고 할 때에는 배우자의 선택·택일 등을 잘 하기 위하여 점을 하고, 개인의 이름·상호(商號) 등을 새로 짓거나 이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기 위하여 점을 한다. 병이나 재난이 있을 때에는 그 원인과 처리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실물(失物)·가출자·도망자 등이 있을 때에는 그 행방을 알아보기 위하여 점쟁이를 찾는다. 또 자녀의 출산·건강·입학·입대 등을 알아보기 위하여, 집터나 묘지를 새로 선택하거나 이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기 위하여 점쟁이를 찾기도 한다.

  사람은 앞일을 알지 못하므로, 앞일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 궁금증은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어려우면 더해진다. 외환 위기와 함께 다가온 경제적 불황으로 실업자가 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금년 초에 점복자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를 말해 준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대인들이 점을 치는 마음은 어떠해야 할까? 점을 하는 점복자나 점복자를 찾아가 문복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식은 사람의 출생·건강·부귀·자녀·배우자·원만한 인간 관계 등 삶에 필요한 모든 사항들이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되거나, 우주 운행의 이치에 따라 태어날 때 이미 정해 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사주 팔자를 지나치게 믿지 말아야 한다.

  운명은 자기의 성격, 의지,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점을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이 취해야 할 가장 좋은 태도이다. 그러나 앞일이 궁금하여 점을 하였을 경우에는 그 점괘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그 점괘를 '자성예언(自成豫言)'의 자료로 삼아 그 일의 성취를 스스로 예언을 한 뒤에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나쁜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경우에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면 된다.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면, 실수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좋지 않은 일이 있을지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이야기 중에 점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부지런히 일하며 살던 중년의 농부가 이름 있는 점쟁이를 찾아가 많은 돈을 내놓고 점을 해 달라고 하였다. 점쟁이는 그에게 '지금처럼 살면 노년에 누워서 먹을 팔자'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그날부터 자기는 누워서 먹을 팔자이니,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놀기만 하였다. 농사철이 되어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니, 아내가 나서서 농사일을 하였으나,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살고 보니, 그 사람은 살림이 어려워져 끼니를 걱정하게 되었다. 크게 깨달은 그는 다시 부지런히 일하여 살림을 일으킨 뒤에 편안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금년 가을에 시집갈 것'이라는 점괘를 받은 노처녀가 있다면, 그 처녀는 그 날부터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모임에도 나가고, 남의 혼인 예식에도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소개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전철이나 만원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이 좋은 인연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운명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운명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농지개량 제181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3)에 수록하였음.>



                                            
   우리는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띠동물을 정하고, 그 동물을 그 해의 수호 동물로 생각한다. 그리고 띠동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따져서 그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고,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의 운명과 관련지어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띠동물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보통 때에는 가볍게 생각하다가도 해가 바뀌는 정초와 어린아이가 출생하였을 때, 혼인을 앞둔 젊은이가 궁합을 볼 때에는 이를 매우 중시한다.

    단기 4332년(서기 1999년)은 기묘년(己卯年)으로  토끼해이다. 토끼는 십이지 중 넷째 지지(地支)인 묘(卯)로, 방위로는 동쪽, 시간으로는 오전 5∼7시, 띠로는 토끼, 달로는 음력 2월, 음양으로는 음(陰), 오행(五行)으로는 목(木), 색으로는 청(靑)에 해당한다.  토끼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친근하고 사랑스런 동물이다. 작고 귀여운 생김새와 놀란 듯한 표정에서 약하고 선한 동물로, 예민하고 재빠른 동작에서 영특한 동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토끼띠인 사람은 치밀하고 명석하며, 외길을 가는 학자나 교직자가 많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면서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약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래서 토끼는 장수(長壽)의 상징, 달의 정령(精靈)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토끼를 주인공으로 하는 판소리 <토별가(兎鼈歌)>에서 토끼는 묘방(卯方)인 동쪽을 맡은 방위신(方位神)으로, 양의 세계인 해에서 양기(陽氣)를 받아먹고, 음(陰)의 세계인 달에서 장생약(長生藥)인 음약(陰藥)을 받아먹는다. 그래서 음양 기운이 간에 들었으므로, 토끼의 간이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령스런 약이라 하였다. 판소리계 소설 <토끼전>의 용왕이 화공(畵工)을 불러 토끼 화상을 그리는 대목에서는 토끼가 사는 공간을 신비화하여 표현하였다. 그리고 토끼를 달동물 또는 선계(仙界)의 신성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토끼가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달 그림에 두꺼비와 함께 토끼가 등장하고, <삼국사기>에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토끼는 삼국 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듯하다. 그러는 동안에 토끼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흥미와 교훈을 주기도 하고, 사람의 행동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옛날이야기에 나타난 토끼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토끼는 용기와 지혜로 위기를 극복하였다. <토기의 간> 이야기를 보면, 거북이의 꾀임에 빠져 용궁에 간 토끼는 용왕의 병에 자기의 간이 약이라고 하여서 자기를 데려왔다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토끼는 어떻게든지 살아나가야 한다는 마음에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산 속 샘가에 간을 빼어 두고 왔으니, 가서 가져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용궁을 빠져 나왔다. <호랑이와 토끼> 이야기에서 토끼는 호랑이에게 잡혀 죽게 되자, 꾀를 내어 호랑이에게 참새 고기를 많이 먹게 해 줄 터이니, 참새 고기를 먹고도 배가 차지 않으면, 그 때 자기를 잡아먹으라고 한다. 호랑이가 좋다고 하자, 토끼는 호랑이를 대밭으로 데리고 가서 눈을 감고 앉아 있으라고 한 뒤 대밭에 불을 지르고 도망하였다. 토끼가 호랑이에게 다시 잡히자, 토끼는 지난번의 실수를 사과하고, 물고기를 실컷 먹게 해 줄 터이니, 물고기를 먹은 뒤에 자기를 잡아먹으라고 한다. 호랑이가 좋다고 하자, 토끼는 호랑이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서 꼬리를 물에 넣고 있으라고 한 뒤 시간을 끌어 호랑이의 꼬리가 얼어붙게 한 뒤 달아났다. 두 이야기에서 토끼는 용기와 지혜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둘째, 토끼는 사태를 직시하는 지혜와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있다. <토끼의 재판>에서는 나그네가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주었는데, 그 호랑이가 나그네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나그네는 하도 기가 막혀 어쩔 줄을 모르다가, 다른 이에게 물어본 후 잡아먹으라고 한다. 나그네와 호랑이는 황소와 소나무, 토끼를 만나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하고, 어찌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황소는 사람들이 죽도록 일을 시킨 뒤에 잡아먹는 것을 들어, 소나무는 사람들이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는 것을 들어 사람의 그릇됨을 말하고, 호랑이에게 나그네를 잡아먹으라고 한다. 그러나 토끼는 처음에 어떤 상황이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하여 호랑이로 하여금 다시 함정에 들어가게 한 후 나그네에게 어서 길을 떠나라고 한다. 토끼는 사태를 직시하는 지혜와 판단력이 있었으므로, 나그네를 구해주고, 자기를 구해준 은인을 잡아먹으려한 호랑이를 다시 함정에 빠뜨려 죽게 하였다.
 
   셋째, 토끼는 약한 자를 도와주는 착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까치와 호랑이> 이야기에서 까치는 "새끼 한 마리를 주지 않으면 둥우리로 올라가서 새끼들을 한꺼번에 모두 잡아먹겠다."고 협박하는 호랑이에게 매일 새끼 한 마리씩을 주었다. 뒤늦게 이를 안 토끼는 까치에게 "호랑이는 나무에 오르지 못하니 염려하지 말고 새끼를 주지 말라."고 한다. 토끼는 이 일로 인하여 호랑이에게 잡혀 죽게 되었지만, 꾀를 써서 그 위기를 벗어났다.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이용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동료를 도와준 토끼의 행동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가를 일깨워준다.

     넷째, 토끼는 게으름쟁이를 깨우치게 하였다. <토끼와 개미> 이야기에서는 개미가 토끼의 등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으며 놀기만 하니, 토끼는 개미에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것을 줄 터이니 내려오라고 한다. 개미가 내려오자, 토끼는 밥 덩어리를 나뭇잎에 붙여 가지고 끌면서 뒷걸음질친다. 개미는 맛있는 밥을 먹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기어갔지만, 뒷걸음질하는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개미는 하루 종일 먹을 것을 따라다녔으나 먹지 못하고, 배고픔으로 허리가 잘록해진 뒤에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다섯째, 토끼는 잔꾀를 부리거나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경계한다. <토끼와 두꺼비> 이야기에서 토끼와 두꺼비는 잘 포장된 떡 한 그릇을 얻고, 어떻게 하면 떡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걸음이 빠른 토끼는 꾀를 내어 "떡그릇을 산꼭대기로 가지고 올라가 굴려서 네가 주은 것은 네가 먹고, 내가 주은 것은 내가 먹기로 하자."고 한다. 토끼는 구르는 떡 그릇만 보고 따라갔다가 떡을 먹지 못하고, 두꺼비는 뒤따라가면서 그릇 밖으로 튕겨나오는 떡을 널름널름 주워 먹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토끼는 제 꾀에 넘어가 떡을 먹지 못하였다.  <토끼의 점> 이야기에서 토끼는 호랑이를 따라 빈 집에 들어간다. 그 때 집안에 숨어 있던 포수가 화승총을 쏘니, 방안에 있던 솜에 불이 붙었다. 총에 맞은 호랑이는 불에 타 죽고, 노루는 뛰어나가다가 다리가 째져 죽었다. 이를 본 토끼는 놀라서 죽었다. 이 이야기에서 토끼는 자신의 경망스러움 때문에 놀라서 죽고 말았다. 
 
   위에 적은 것은 우리 조상들이 마음 속에 길러온 토끼의 모습이다.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은 삶의 지혜를 일깨우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왔을 것이다. 이러한 토끼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가를 일깨워 준다.  우리는 지금 한국 전쟁 이후 가장 큰 국난이라고 하는 경제 위기에 처해 있고,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토끼가 용궁에 잡혀갔을 때나 호랑이에게 잡혔을 때 보여준 용기와 지혜를 배우고, 사태를 직시하는 판단력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남을 돕고, 게으른 자를 일깨워 주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토끼가 호랑이를 물리친 것처럼 호랑이해에 발생한 위기를 토끼해에 모두 물리치고,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토끼는 제 꾀에 넘어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며, 자기의 경망성 때문에 제풀에 죽기도 한다. 이것은 토끼의 속성에 빗대어 행동을 신중히 할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되 자기를 과신하거나, 경망스럽게 행동하지는 말아야겠다. 이것이 토끼해를 맞는 우리들이 토끼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농지개량 제180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2)에 수록하였음.>


  나는 길을 가다가 집 짓는 곳이 있으면, 이리저리 살피곤 한다. 집 짓는 것을 보면, 집터를 닦은 뒤에 먼저 기둥을 세우는데, 세워 놓은 네 기둥을 보면, 그 집의 넓이와 높이 등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을 사람의 운명에 비유해 보면, 집의 네 기둥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사주(四柱)이고, 집은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운명의 네 기둥, 즉 사주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을 운명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이러한 운명 결정론을 지니고 살아왔다. 모든 것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지며 사는 현대인들도 이런 의식을 지니고 있다.

  운명의 네 기둥이란 뜻을 지닌 사주(四柱)는 태어난 해와 달과 날짜와 시각을 각각기둥으로 하는 연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를 말한다. 이것을 식물과 사람에 비유하면, 연주는 뿌리/조상, 월주는 싹/부모, 일주는 꽃/나, 시주는 열매/자녀에 해당한다 하겠다.

  사주는 흔히 10간(干) 12지(支)를 조합한 육십 갑자(六甲)로 말한다. 연주는 태세(太歲)라고도 하는데, 해의 차례에 따라 육갑으로 나타낸다. 1998년을 무인년(戊寅年)이라 하고, 1999년을 기묘년(己卯年)이라고 하는 것은 연주 또는 태세에 따른 것이다. 월주는 월건(月建)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달의 차례에 따라 육갑으로 나타낸다. 새해인 1999년 음력 1월의 월건은 병인(丙寅)이다. 일주는 일진(日辰)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하루하루를 차례에 따라 육갑으로 나타낸다. 1999년 설날(양력 2월 16)의 일진은 기해(己亥)이다. 시주는 태어난 시각을 시 계산법에 따라 육갑으로 말하는 것이다. 밤 11시부터 1시를 자시(子時)라 하고, 그로부터 두 시간을 단위로 하여 축시, 인시, 묘시, 진시, 사시, 오시 등으로 말한다. 시 계산법에 따르면, 1999년 음력 1월 1일 낮 12시는 경오시(庚午時)이다. 그러므로 1999년 음력 1월 1일 낮 12시에 태어난 사람의 연주는 '기묘', 월주는 '병인', 일주는 '기해', 시주는 '경오'이다. 이를 육갑으로 말하면, 모두 여덟 글자가 된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은 아주 팔자 좋은 사람이야.',  '내 팔자는 왜 이 모양인가.' 등의 말을 하는데, 이것은 사주를 육갑으로 말하면 여덟 글자가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사주 팔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사주는 어린아이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의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다고 하니, 이것이 타당성이 있는 것인가? 이것이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면, 사주가 같은 사람의 운명은 똑같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전부터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고, 따로 공부할 기회도 없어 묻어두고 지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무속과 점복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던 중 역리(易理)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의 논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났던 역리학자 중의 한 사람은, 사람의 삶은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이 있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주로 타고난 것은 숙명이고, 그 외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조금씩 변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하였다.

  내가 아는 쌍둥이 형제는 20분 간격으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추첨에 의한 학교 배정으로 서로 다른 학교를 다녔다. 대학을 진학할 때, 형은 문과 계통의 학과에, 동생은 자연과학 계통의 학과를 진학하였다. 그 후 연락이 끊겨서,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 어떻게 사는 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전공이 다른 쌍둥이 형제의 삶의 모습은 똑같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쌍둥이 형제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서로 다른 운명 대로 사는 것을 역리학자들은 두 사람의 이름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주가 같아 같은 숙명을 타고났지만, 이름의 작용으로 운명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쌍둥이 자매의 경우, 초·중·고교까지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교육대학을 다닌 후 교사가 되었다. 몇 년 뒤에 혼인하여 살고 있는데, 두 자매의 삶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이것은 이름이 다르고, 혼인함에 따라 서로 다른 배우자의 운이 작용하여 자매의 운명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험한 일, 괴롭고 슬픈 일 보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 온 문제이다. 첫째는 좋은 사주를 타고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타고난 운명을 미리 알아 이를 바꾸는 일이다.

  좋은 사주를 타고나기 위해 사람들은 출산 시기를 계산해 보고, 좋은 사주를 타고 날 가능성이 있는 때에 출산할 수 있도록 임신 시기를 조절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부부간에 동침하는 것도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이를 계산해서 하였다고 한다. 또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면 일주와 시주를 미리 따져보고, 좋은 날·좋은 시에 출산할 수 있도록 출산 일자와 시각을 앞당기거나 늦추기 위한 여러 가지 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좋은 일주와 시주를 계산해 보고, 그 시각에 맞춰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역리를 연구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제왕절개 수술에 의해 일주와 시주를 조절하는 것은 인위적인 조작이기 때문에 효험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자기의 사주는 이미 결정되어 어쩔 수 없으나 자녀나 손자만은 좋은 사주를 타고나게 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인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앞일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점복자(占卜者)를 찾아가 문복(問卜)을 하기도 한다. 문복을 하여 점괘를 받은 뒤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앞날에 어떤 불행이나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그 일을 막기 위해 조심하며 부적을 사용하기도 하고, 비손이나 굿 등 액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행위를 한다. 이것은 타고난 운명을 미리 알아보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점을 한 뒤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점괘를 믿으며 그 일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 일의 성취를 예언하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 '자성예언(自成豫言)'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액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은 주술성을 띤 경우가 많아서 타당성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사에 삼가고 신중을 기하면 불행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우리는 운명의 네 기둥, 사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주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운명론은 성장 환경, 교육 환경, 본인의 의지와 노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므로 신뢰성이 희박하다. 나는 이런 운명론에는 회의를 가지면서, '성격이 운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성격은 타고난 체질, 가정 환경, 교육 환경과 본인의 자각과 노력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러한 성격을 바탕으로 자기의 가치관, 인생관, 결혼관, 직업관 등이 형성된다. 운명은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자기의 성격과 가치관에 따라 자기와 관련된 일을 선택하고, 판단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 둘레에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노력한다. 그런 사람은 처음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그 일을 성취하고야 만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탓하고, 원망하며, 좌절하고 만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힘들고 괴롭게 살면서 팔자 타령을 하기 일쑤이다.   

  우리는 운명론에 빠져 팔자 타령을 하거나, 점복자의 말에 현혹되어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 여건에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바르게 판단하고, 최선을 다하면,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곧 운명을 개척하는 길이다.           

    <농지개량 제179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1)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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