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갔다온 아내의 장바구니에 오이 몇 개와 부추 한 단이 들어 있다. 오이소박이김치를 담그려고 사왔다고 한다. 오이는 한겨울에도 사다가 먹었지만, 부추는 오랜만에 보는 것이어서 퍽 싱그럽게 보였고, 새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부추를 보니, 신혼 초의 일이 떠올랐다. 아내와 대화하던 중에 '부추'에 관해 말하게 되었는데, 내가 '졸'이라고 하니 아내는 '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잎과 줄기의 모양을 말한 뒤에 오이소박이김치를 넣을 때 오이 속에 넣는 채소를 말한다고 긴 설명을 하자, 아내는 크게 웃으며 '부추'를 말하느냐고 하였다. 그리고는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니, 어찌 알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촌놈'이라는 뜻으로 놀렸다. 나는 '졸'이 표준어이고, '부추'가 사투리라고 우기다가 국어사전을 찾아 확인한 뒤에야 충청도에서 자란 내가 '부추'란 말을 몰랐던 것을 인정하였다.

  부추는 지방에 따라 '졸', '솔' 또는 '정구지'라고 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남자의 양기를 북돋우는 풀'이라 하여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한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를 '파옥초(破屋草)'라고도 하는데,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전에 어느 농부가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이웃 사람의 생일 잔치에 갔다. 이웃사람 몇 명을 초대한 그 집에서는 다른 때보다 몇 가지 음식을 더 장만하여 술을 대접하였다. 술과 음식을 맛있게 먹은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그날 밤 그의 아내는 크게 만족하였다. 아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생일 집에 가서 무얼 먹었기에 오늘 밤 그렇게 힘이 좋았어요?"
  "음, 그 집 음식 중에 부추 무침과 부침이 특히 맛이 있어서 그 걸 안주로 술 몇 잔 먹고 밥을 먹었을 뿐 별다른 것은 없었소."

  이튿날 아침, 농부가 다른 날보다 좀 늦게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와 보니, 아내가 아랫집을 헐고 있었다. 농부가 깜짝 놀라 왜 아랫집을 허느냐고 물으니, 아내가 말했다.

  "부추가 남자에게 그렇게 좋은 채소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랫집을 헐고, 그 자리에 당신한테 좋은 부추를 심으려고 헐고 있어요."

  이 이야기는 부추가 양기를 북돋운다는 것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인데, 이러한 연유로 부추를 '집을 헐고 심는 채소'라는 뜻의 '파옥초(破屋草)'라고 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공부하는 선비나 도를 닦는 수도자는 부추를 먹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부추가 양기를 북돋우는 효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추의 원산지는 중국 서북부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다. 부추는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기 때문에 '게으름뱅이풀'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구)'라고 하는데, 《설문자해(說文字解)》에는 부추 잎을 여러 번 잘라도 계속 싹이 나오기 때문에 땅(一) 위에 자라는 형상을 따서 (구)라고 하였다 한다. 

  시경(詩經)에 "염소를 바치고, 부추로 제사를 지낸다(獻羔祭)."란 말이 있다. 이것으로써 부추는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먹었고,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는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1236),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1433), 훈몽자회(訓蒙字會)(1527) 등의 문헌에 부추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부추는 우리 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부추를 병마나 액을 쫓는 힘이 있다 하여 김치를 담글 뿐만 아니라 각종 찌개나 찬을 만드는 데 양념처럼 몇 가닥씩 집어넣곤 하였다. 이것은 부추가 줄기는 희고, 잎은 파라며, 싹은 노랗고, 뿌리는 붉은 빛을 띠며, 씨앗은 검은 오색 채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추는 겨울에도 죽지 않으며, 뿌리를 찢어 심어도 잘 살고, 몇 번씩 잎과 줄기를 잘라도 바로 싹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다섯 가지 색을 지닌 채소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병마나 액을 쫓는 데에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겼으며, 다른 식물에 비해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신성시하였다.   

  부추는 서양 사람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한여름밤의 꿈>에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매혹적인 눈매를 '부추눈매'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푸른 눈으로 쏘아보면, 부추처럼 얼얼해진다는 데서 온 표현이라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시실리 지방에는 부추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   

  옛날에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어머니가 죽어서 저승에 갔다. 저승을 주관하는 저승 왕이 이승에 있을 때 그녀가 한 일을 적은 문서를 살펴보니, 그녀는 거지에게 부추잎 하나를 준 것밖에는 남에게 베푼 것이 없었으므로 지옥으로 보냈다. 얼마 후 베드로도 죽었는데, 그는 살았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천당의 문지기가 되었다. 어느 날, 베드로가 귀에 익은 여인의 신음소리를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니가 저 아래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베드로를 본 어머니는 주님께 잘 말씀드려 지옥에서 꺼내 달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주님을 찾아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해 달라고 하니,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적선한 것은 부추잎 하나뿐이니, 부추잎 하나로 너의 어머니를 끌어올려라."

  부추잎 하나로 어머니를 끌어올릴 수 없음을 안 베드로는 어머니를 보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연유되어 이탈리아에서는 부추를 '절망 속의 실현할 수 없는 희망'을 뜻하는 말로 쓴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부추가 마늘·파·양파 등과 같이 온열성(溫熱性)이 있으므로, 따뜻한 기운이 있으면서 솟는 힘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기(氣)의 운행을 도와주고, 혈(血)이 뭉쳐진 것을 풀어주어 간과 신(腎)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부추는 몸이 냉해 비위(脾胃)의 기능이 저하된 소음인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찬 음식을 급히 먹어 체한 경우에는 부추를 된장에 끓여 먹으면 막힌 속이 풀린다고 한다. 부추는 양기를 올리는 꿀과 함께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는 데, 이 역시 부추의 특성과 관련지어 하는 말이다.     

  요즈음에도 한국인은 부추를 나물, 김치, 부침 등으로 많이 먹고 있다. 오이소박이를 담글 때에는 반드시 부추를 썰어 넣는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부추 잡채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부산대학교 연구팀이 부추김치에 항암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김치가 항암 작용을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김치 중에도 부추 김치가 으뜸이라고 한다. 배추김치의 위암 세포 억제 효과가 70%인데 비하여 부추김치는 85∼94%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이 배추김치는 익어야 효과가 있는데 비하여 부추김치는 풋김치일 때에도 그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민간이나 한방에서 건강에 좋다고 전해 오는 부추가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건강 증진을 위하여 부추를 많이 먹어야겠다.

    <농지개량 제182호(서울 : 농지개량조합연합회, 1999. 4)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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