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잠잘 때 꿈을 꾸는데, 대개의 경우에는 꿈의 내용을 잊어버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꿈을 깬 뒤에도 또렷이 기억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꿈에는 감각적인 꿈도 있고, 정신적인 꿈도 있다. 무거운 바위나 트럭에 눌리는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옆 사람이 다리를 올려놓고 자고 있었다든지, 물방울이 자기 몸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실제로 머리 위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더라는 경우는 감각적인 꿈의 예이다. 정신적인 꿈은 잠자는 사람의 주변 환경이나 신체적 조건과는 관련이 없는 꿈으로, 잠재의식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정신적인 꿈이다.
 
  옛사람들은 정신적인 꿈을 신성시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 조짐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해몽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 문명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해에 복권에 당첨되어 많은 돈을 받은 사람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이 전날 밤에 돼지꿈, 용꿈을 꾸었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해몽에 관한 민속적인 사고가 현대인의 의식에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해몽에 관한 민간 의식은 흥미로운 것이 많이 있는데, 두드러진 것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꿈을 풀이할 때, 돼지는 분뇨와 함께 재물, 운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꿈에 돼지를 보면 재물이 생긴다고 한다. 돼지꿈 중에서 돼지를 집으로 몰고 들어오는 꿈을 최고의 길몽으로 여긴다. 꿈에 돼지 새끼를 품에 안으면 복된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태몽으로 해석한다. 길몽으로 여기는 돼지꿈은 그 효력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래 지속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돼지꿈을 정초에 꾸면 일 년 내내 효과가 있고, 결혼 초에 꾸면 일생 동안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용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은 운수가 크게 상승할 대길몽(大吉夢)이라고 한다. 뱀이 용으로 변신하는 꿈 역시 대길몽으로 여긴다. 꿈에 뱀에 물리면 재운이 온다고 하는데, 독신자는 배우자를 만난다고 한다. 말을 타는 꿈은 지위가 높아질 꿈이고, 말이 왔다 갔다 하는 꿈은 먼 곳에서 기쁜 소식이 올 꿈이고, 마차를 보거나 타는 꿈은 멀리 여행할 꿈이라고 한다. 호랑이가 뛰어 다니는 꿈은 크게 비약할 징조로 보기도 한다.

  꿈에 소가 새끼를 낳으면, 오랫동안의 고생이 결실을 맺을 징조라고 한다. 이를 선조의 도움을 받을 징조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가 대소변을 마당에 누면, 윗사람의 도움으로 재물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소가 피를 흘리는 꿈은 윗사람의 도움으로 금전상의 이익을 볼 징조로 해석한다. 이 때 소의 피가 몸에 묻으면, 더 좋다고 한다. 꿈에 소를 보면, 조상이 할 말이 있다는 뜻 또는 제사나 성묘를 잘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를 타고 산에 가면 죽는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조상의 인도로 산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물과 불에 관한 꿈 역시 길몽으로 해석한다. 불이 활활 타는 꿈은 재수가 좋을 꿈이라고 한다. 불이 완전히 타서 재가 남으면, 재물이 수북히 쌓일 징조이고, 화상을 입으면 승진 또는 영전을 하거나, 유산이나 기부금을 받을 징조라고 한다. 꿈에 물을 보았을 경우, 작은 물은 작은 재물이고, 큰물은 큰 재산이며, 빗물은 하늘의 은혜라고 한다. 샘물이 솟아오르면 재물이 샘솟듯하고, 큰물이 논밭에 그득히 고이면 큰 재물을 모은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꿈 이야기 중 물과 관련된 것으로는 삼국유사에 있는 신라 김유신 장군 여동생의 꿈 이야기이다.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 보희(寶姬)가 꿈에 서쪽 산에 올라가 소변을 보니, 소변이 장안에 가득하였다. 이튿날 아침, 보희가 동생 문희(文姬)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문희는 그 꿈을 사겠다고 하였다. 문희가 옷깃을 열고 받으려 하자, 보희는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하였다. 문희는 꿈을 사는 값으로 비단치마를 언니에게 주었다. 그런 지 10일이 지난 뒤에 김유신은 자기 집 앞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끈을 밟아 떨어지게 하고, 옷끈을 달자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김유신이 보희에게 김춘추의 옷끈을 달아 주라고 하니, 보회는 이를 사양하였다. 김유신이 문희에게 김춘추의 옷끈을 달아 주라고 하니, 문희는 오빠의 말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 김춘추의 터진 옷을 꿰매고, 옷끈을 달아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춘추와 문희는 친하게 되었고, 뒤에 정식으로 혼인하게 되었다. 진덕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29대 태종무열왕이다.

    위 이야기에서 보희는 자기의 오줌이 장안에 가득 차는 꿈을 꾸고서도 이 꿈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고 뜨악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 꿈의 상징적 의미를 알아차린 문희는 언니에게서 그 꿈을 사고, 그 꿈이 실현되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김춘추와 혼인하고, 왕비가 되었다. 이것은 꿈의 의미를 바로 알고, 노력하여 실현시킨 예이다.

  옛사람들의 꿈에 대한 생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하게 해 준다. 설화나 고소설에 나오는 꿈 이야기에는 비범한 인물의 출생을 알리는 태몽(胎夢)과 앞일을 예시하는 예시몽(豫示夢)이 있다. 

    태몽의 경우를 보면, 조선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이방원의 처)는 북악에서 큰 소가 태양을 머리에 이고 뛰어내려 오다가 거꾸러지자 태양이 땅에 떨어졌는데, 그 소가 다시 일어나 태양을 집어삼키고 자기의 품으로 드는 꿈을 꾸고서 세종 대왕을 잉태하였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용이 품안으로 드는 꿈을 꾸고 율곡 선생을 잉태하였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과 원효대사의 어머니는 별이 떨어져 품에 뜨는 꿈을 꾸고서 김유신 장군과 원효대사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예시몽의 경우, 직접적인 예시몽과 상징적인 예시몽이 있다.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를 보면, 여주인공 사씨는 첩 교씨의 모함으로 집에서 쫓겨나 시아버지의 여막에서 자다가 시아버지가 나타나 "어서 일어나 남쪽으로 가라."는 꿈을 꾸고 몸을 피하여 교씨가 보낸 자객의 칼을 피하였다. 작자 미상의 고소설 [김학공전]에서는 강주 자사가 되어 부임하러 가는 김학공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가 가까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는 꿈을 꾸고 사람을 풀어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도 이와 비슷한 꿈을 꿈을 꾸고서 사람을 시켜 아들을 찾는다. 그래서 자나깨나 잊지 못하고 그리던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난다. 이것은 꿈이 앞일을 직접적으로 예시해 준 예이다.
 
  고소설 [심청전]을 보면, 심봉사가 대궐에서 열리는 맹인 잔치에 들어가기 전날 밤에 '몸이 불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벗겨 북을 메고,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를 덮는 꿈'을 꾸고 마음이 상하여 어쩔 줄 모른다. 그 때, 안씨 맹인이 '몸이 불 속에 들어가니 기쁜 일이 있을 것이오, 가죽을 벗겨 북을 멘 것은 대궐에 들어갈 것이오, 낙엽이 뿌리를 덮은 것은 자손을 만날 징조'라고 해몽하고, 심봉사를 격려하며 맹인 잔치에 참여하게 한다. 심봉사는 안씨 맹인의 말을 듣고 힘을 내어 대궐로 들어가 왕후가 된 심청을 만나고, 눈도 떴다. 이것은 꿈이 앞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예인데, 여기서는 해몽이 매우 중요한 몫을 한다. 
 
  이성계는 젊은 시절에 '거울이 깨지고, 꽃잎이 떨어지고, 지붕이 무녀져 석가래 세 개가 자기의 몸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것을 무학대사는 '거울이 깨진 것은 나라가 망하는 것과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요, 꽃잎이 떨어진 것은 곧 열매가 열릴 조짐이요, 몸에 석가래 세 개가 떨어진 것은 임금 왕(王) 자를 뜻하니 왕이 될 징조'라고 해몽하였다. 이성계는 이 꿈을 마음에 두고, 자기 스스로를 왕의 재목으로 다듬으며 때를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신라 37대 선덕왕 때 부수상 자리에 있던 김경신(金敬信)은 '복두( 頭)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 두 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꿈을 깬 김경신이 하도 이상하여 사람을 시켜 해몽을 하게 하니, '복두를 벗을 것은 관직을 잃을 징조요, 가야금을 든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김경신은 몹시 근심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다. 그 때 아찬(阿 ) 여삼(餘三)이 김경신을 찾아와 두문불출하는 연유를 물었다. 김경신이 꿈 이야기를 하자, 여삼은 '복두를 벗을 것은 위에 앉은 이가 없다는 것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요, 열두 줄 거문고를 든 것은 12대손이 왕위를 이어받을 조짐이요,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해몽하였다. 김경신은 당시에 김주원(金周元)이 수상의 자리에 있었으므로, 부수상인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삼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삼은 김경신에게 북천(北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스스로를 왕의 재목으로 다듬으며 여러 가지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선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 사람들은 김주원을 왕으로 삼아 대궐로 맞아들이려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린 비로 북천의 물이 불어서 김주원은 내를 건널 수 없었다. 이 때, 김경신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왕위에 오르니, 대신들이 모두 와서 따르며 축하하였다고 한다. 그가 신라 38대 원성왕이다.    위 이야기에서 김경신은 여삼의 해몽을 받아들여 북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한편, 왕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였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북천신의 도움과 여러 대신들의 호응을 얻어 왕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같은 내용의 꿈일지라도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잘못 될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는 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자주 꾸는 꿈을 일부러 기억하려고 애를 쓰거나, 꿈의 내용에 연연하여 마음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잠을 깨고 난 뒤에도 또렷이 기억되는 꿈은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은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몽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농지개량 제170호(서울 : 농지개량조합 연합회, 1998. 4)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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