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종로에서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오려고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동대문을 지나 안암동에 오니, 손님이 많이 내려 버스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고려대학교 앞에 오니, 한 중년 남자가 비틀거리며 버스로 올라왔다. 그를 본 나는 밤이 깊지도 않았는데, 비틀거릴 정도로 취한 것을 보니, 일찍부터 술판을 벌였던 모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 사람은 빈 자리가 있는데도 앉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을 찾아다니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뭐라고 말을 걸었다. 손님들이 대꾸를 하지 않으니까 뭐라고 욕을 하더니, 앞으로 가서 운전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가 좋은 말로 빈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고, 그 사람은 듣기는켜녕 욕을 하며 기사의 옷을 잡아 흔들었다.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사를 흔들어 대니, 불안을 느낀 손님들이 그만두라고 소리쳤지만, 그 사람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세게 흔들어댔다. 화를 참고 다음 정류장에 온 기사는 차를 세우고, 그 사람을 차에서 끌어내린 뒤에 출발하였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집으로 오며, 그 사람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행동으로 보아 그 사람은 술만 먹으면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어 싸우는 '술버릇'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곱게 집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길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다가 얻어맞거나 제풀에 넘어져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술버릇에 생각이 미치자, 사병으로 군에 있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난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소대에는 술버릇이 유별난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술만 먹으면 우는 사람이다. 내가 그 부대에 배속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요일 밤의 일이다. 오후에 외출한 그는 술이 얼근하여 들어와서 동기생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신병인 나는 그의 이야기 소리와 노랫가락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깨어보니, 그가 소리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무슨 슬픈 일이 있어서 울겠거니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 후에도 그는 자주 술을 마셨는데, 술에 취하기만 하면 처음에는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끝에 가서는 엉엉 울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술만 먹으면 우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술만 먹으면, 싸우는 사람이다. 그는 외출하여 술을 먹기만 하면 민간인이나 다른 부대 사병들과 싸움을 하고, 부대에 들어와서는 부대원들과 싸움을 하여 상대방을 때리거나 매를 맞곤 하였다. 그래서 그로 인한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주사(酒邪)가 있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술버릇은 왜 생기는 것일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설화 중 [술이 생긴 내력] 이야기는 옛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말해 준다.
옛날에 한 효자가 병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를 위해 온갖 약을 다 구하여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먼 곳에 있는 용한 의원을 찾아가 아버지의 병세를 자세히 설명하고, 약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의원은 '약이 있기는 하나 구할 수가 없다.'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알아 본 결과 아버지의 병에는 세 사람의 간이 특효약이라고 하였다.
그는 고심 끝에 약을 구해 드리기고 결심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 고개로 갔다. 해진 뒤에야 산마루에 도착한 그는 길옆에 숨어서 사람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선비 차림의 남자가 올라왔다. 그는 갑자기 내달아 선비를 칼로 찌르고 간을 꺼내 그릇에 담은 뒤에 시신을 절벽 아래로 굴렸다.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있느라니까, 스님 한 분이 불경을 외우며 올라왔다. 그는 다시 달려들어 전과 같이 하였다. 얼마 후, 한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다가 소리를 지르고, 다시 노래를 부르다가는 춤을 추면서 올라오는데, 미친 사람이 분명하였다. 그는 미친 사람의 간이 약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주저하다가 미친 사람의 간도 사람의 간이니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달려들어 간을 취하였다. 그는 자기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이의 시신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가 세 사람의 시신을 잘 묻어 주고 집으로 왔다. 그 약을 잡수신 아버지의 병은 씻은듯이 나았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이 되는 날, 그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세 사람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가 준비해 간 음식을 차려놓고 절한 뒤에 무덤을 살펴보니, 지금껏 보지 못하던 풀이 수북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의 영혼이 풀로 자란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두고 위하려는 뜻에서 그 풀을 뽑아 가지고 와서 밭가에 심었다. 그 풀은 자라 이삭이 나오고, 씨앗이 여물었다. 사람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겨 다투어 그 씨앗을 가져다 심었다. 이렇게 하여 이 식물은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그게 밀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밀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어 먹었다.
이 이야기에서 밀은 억울하게 죽은 세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곡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밀로 만든 누룩을 넣어 술을 빚어 먹으면, 처음에는 선비처럼 점잖지만, 그 다음에는 혼자 염불을 외는 중처럼 묻지 않아도 말을 많이 하고, 그 다음에는 미친 사람처럼 날뛴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술의 속성과 술 취한 사람이 보이는 행동의 변화를 빗대어 표현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술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억제되었던 감정을 풀어내어 기분을 좋게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술은 적즉보명 과즉손명(適則保命 過則損命, 적당하면 건강에 좋고, 과하면 건강에 해롭다.)'이라고 한다. 그런데 술은 먹기 시작하면 자꾸 더 먹게 되어 주량을 초과하게 된다. 그러면 술버릇이 나와 실수를 하게 되고, 건강도 해치게 된다. 술을 먹을 때 '제1단계는 사람이 술을 먹고, 제2단계는 술이 술을 먹고, 제3단계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한다. 고약한 술버릇은 제1단계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제2단계를 지나면서 나타나는 것이니, 제1단계에서 술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술버릇은 죽어야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한번 몸에 밴 술버릇은 고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술버릇은 술을 배울 때 생긴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친구끼리 몰래 술을 마시며 감정을 발산하곤 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쁜 술버릇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운 사람은 고약한 술버릇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제사 지낸 뒤에 음복(飮福) 할 때 어른들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면서 술을 배우거나, 아버지나 어려운 선배와 술을 마시면서 술을 배운 사람은 술버릇이 곱다고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제사 지낸 뒤에 음복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아이에게도 술을 따라 주며 마시게 하였고, 관례(冠禮) 때에는 초례(醮禮)라 하여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쳤던 것이다.
'술이 생긴 내력'에서 말한 것처럼 술은 선비와 중과 미친 이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고약한 술버릇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술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술을 먹지 않으며 사회생활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술은 마시되 자제할 줄 알고, 고약한 술버릇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술 마시는 예절과 요령을 가르칠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은 건전한 음주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한국수필사에서 발행안 "한국수필" 제106호(2000년 9월, 10월 합병호)에 수록한 것임.>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집으로 오며, 그 사람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행동으로 보아 그 사람은 술만 먹으면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어 싸우는 '술버릇'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곱게 집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길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다가 얻어맞거나 제풀에 넘어져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술버릇에 생각이 미치자, 사병으로 군에 있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난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소대에는 술버릇이 유별난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술만 먹으면 우는 사람이다. 내가 그 부대에 배속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요일 밤의 일이다. 오후에 외출한 그는 술이 얼근하여 들어와서 동기생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신병인 나는 그의 이야기 소리와 노랫가락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깨어보니, 그가 소리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무슨 슬픈 일이 있어서 울겠거니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 후에도 그는 자주 술을 마셨는데, 술에 취하기만 하면 처음에는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끝에 가서는 엉엉 울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술만 먹으면 우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술만 먹으면, 싸우는 사람이다. 그는 외출하여 술을 먹기만 하면 민간인이나 다른 부대 사병들과 싸움을 하고, 부대에 들어와서는 부대원들과 싸움을 하여 상대방을 때리거나 매를 맞곤 하였다. 그래서 그로 인한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주사(酒邪)가 있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술버릇은 왜 생기는 것일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설화 중 [술이 생긴 내력] 이야기는 옛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말해 준다.
옛날에 한 효자가 병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를 위해 온갖 약을 다 구하여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먼 곳에 있는 용한 의원을 찾아가 아버지의 병세를 자세히 설명하고, 약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의원은 '약이 있기는 하나 구할 수가 없다.'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알아 본 결과 아버지의 병에는 세 사람의 간이 특효약이라고 하였다.
그는 고심 끝에 약을 구해 드리기고 결심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 고개로 갔다. 해진 뒤에야 산마루에 도착한 그는 길옆에 숨어서 사람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선비 차림의 남자가 올라왔다. 그는 갑자기 내달아 선비를 칼로 찌르고 간을 꺼내 그릇에 담은 뒤에 시신을 절벽 아래로 굴렸다.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있느라니까, 스님 한 분이 불경을 외우며 올라왔다. 그는 다시 달려들어 전과 같이 하였다. 얼마 후, 한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다가 소리를 지르고, 다시 노래를 부르다가는 춤을 추면서 올라오는데, 미친 사람이 분명하였다. 그는 미친 사람의 간이 약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주저하다가 미친 사람의 간도 사람의 간이니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달려들어 간을 취하였다. 그는 자기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이의 시신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가 세 사람의 시신을 잘 묻어 주고 집으로 왔다. 그 약을 잡수신 아버지의 병은 씻은듯이 나았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이 되는 날, 그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세 사람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가 준비해 간 음식을 차려놓고 절한 뒤에 무덤을 살펴보니, 지금껏 보지 못하던 풀이 수북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의 영혼이 풀로 자란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두고 위하려는 뜻에서 그 풀을 뽑아 가지고 와서 밭가에 심었다. 그 풀은 자라 이삭이 나오고, 씨앗이 여물었다. 사람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겨 다투어 그 씨앗을 가져다 심었다. 이렇게 하여 이 식물은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그게 밀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밀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어 먹었다.
이 이야기에서 밀은 억울하게 죽은 세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곡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밀로 만든 누룩을 넣어 술을 빚어 먹으면, 처음에는 선비처럼 점잖지만, 그 다음에는 혼자 염불을 외는 중처럼 묻지 않아도 말을 많이 하고, 그 다음에는 미친 사람처럼 날뛴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술의 속성과 술 취한 사람이 보이는 행동의 변화를 빗대어 표현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술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억제되었던 감정을 풀어내어 기분을 좋게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술은 적즉보명 과즉손명(適則保命 過則損命, 적당하면 건강에 좋고, 과하면 건강에 해롭다.)'이라고 한다. 그런데 술은 먹기 시작하면 자꾸 더 먹게 되어 주량을 초과하게 된다. 그러면 술버릇이 나와 실수를 하게 되고, 건강도 해치게 된다. 술을 먹을 때 '제1단계는 사람이 술을 먹고, 제2단계는 술이 술을 먹고, 제3단계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한다. 고약한 술버릇은 제1단계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제2단계를 지나면서 나타나는 것이니, 제1단계에서 술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술버릇은 죽어야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한번 몸에 밴 술버릇은 고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술버릇은 술을 배울 때 생긴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친구끼리 몰래 술을 마시며 감정을 발산하곤 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쁜 술버릇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운 사람은 고약한 술버릇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제사 지낸 뒤에 음복(飮福) 할 때 어른들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면서 술을 배우거나, 아버지나 어려운 선배와 술을 마시면서 술을 배운 사람은 술버릇이 곱다고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제사 지낸 뒤에 음복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아이에게도 술을 따라 주며 마시게 하였고, 관례(冠禮) 때에는 초례(醮禮)라 하여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쳤던 것이다.
'술이 생긴 내력'에서 말한 것처럼 술은 선비와 중과 미친 이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고약한 술버릇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술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술을 먹지 않으며 사회생활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술은 마시되 자제할 줄 알고, 고약한 술버릇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술 마시는 예절과 요령을 가르칠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은 건전한 음주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한국수필사에서 발행안 "한국수필" 제106호(2000년 9월, 10월 합병호)에 수록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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