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원(小菊院)은 충남 연기군 동면 합강리에 사는 고향 친구 부인의 당호인데, 지금은 조촐한 음식점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금강과 미호강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지명이 합강리(合江里)인 이곳에 자리잡은 소국원의 경치는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루어 빼어나게 아름답다. 소국원 앞에서 북쪽을 보면, 정북(正北)에 황우산(黃牛山) 주봉이 있고, 좌우로 뻗친 이 산의 줄기가 소국원을 감싸고 있다. 남쪽을 보면 집 앞으로 난 길 아래에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 건너 정남(正南)으로 부용산(芙蓉山) 주봉이 보이는데, 동서로 뻗친 이 산의 줄기가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소국원 자리를 멀리서 보면,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풍수를 아는 사람이 이 자리를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 한 것은 이 곳의 풍경을 잘 드러낸 말이라 하겠다. 

  이 친구가 이곳에 와서 자리잡은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과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조용한 곳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적당한 곳을 찾다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고향을 떠나 벼슬살이를 하면서 귀거래(歸去來)를 노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이가 많았다. 요즈음에도 나이 들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가 많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가 많다. 그런데, 그는 오래 살던 대전에서 멀지 않고, 고향 홍성과도 그리 멀리 않은 이곳에 와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실천력이 있는 사람이고, 복 받은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처음부터 음식점을 하려고 마음먹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얼마 안 되는 밭에 철따라 채소를 가꾸고, 집 둘레에 꽃과 과수를 기르며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의 음식 솜씨가 뛰어난 것을 아는 주위 사람들이 그 좋은 솜씨를 묻어두기 아깝다며 권하여 음식점을 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인은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동그스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균형 잡힌 미인인데, 지성적이면서도 따스한 인상을 준다. 꽃에 비유하면 작은 국화 같다고나 할까. 그의 집에는 '소국원(小菊院)'이라고 붓으로 쓴 액자가 걸려 있는데, 이것은 그와 가깝게 지내는 분이 부인에게 당호를 지어 주면서 써 준 것이다. 부인의 외모와 개성을 잘 드러내는 당호를 지어준 그분의 성찰력과 안목이 대단하다 하겠다. 그들 부부는 음식점을 열기로 한 뒤에 당호를 지어 준 분과 상의하여 '소국원'을 상호로 쓰기로 하였다.
 
  소국원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훈제 오리고기와 민물 새우찌개 두 가지인데, 훈제 오리를 찾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그 곳에서 훈제 오리를 시키면, 부인이 솜씨를 발휘하여 준비한 여러 가지 김치와 나물, 젓갈, 마늘 장아찌, 멸치볶음 등 몇 가지 밑반찬과 그가 직접 가꾼 상추, 쑥갓, 깻잎, 풋고추 등 야채를 정갈하게 담아 내온다. 그리고 맵시 있게 자른 훈제 오리고기를 큰 접시에 담아서, 그가 손수 쑥과 몇 가지 야채를 짜서 만든 소스를 겨자와 함께 가져다 준다. 보기에도 깔금하고 맛깔스러워 입에 침이 솟는다. 예쁘게 썰어 놓은 부추, 배, 양파, 당근 등을 소스에 넣었다가 오리 고기와 함께 상추나 깻잎에 싸서 먹으면 정말 맛이 있다. 오리 고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던 사람도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기를 먹는다. 
 
  소국원은 부부가 직접 운영하는데, 식탁이나 식기 관리, 상차림이 청결하여 위생적이고, 음식 맛이 좋으며, 아주 친절하다. 그는 돈 벌 욕심을 내지 않고, 자기 집을 찾는 손님을 가족처럼 진심으로 대하고, 손님의 건강을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가꾸는 채소에 농약을 쓰지 않는다. 채소에 키토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실험을 해 본 뒤에 비싼 키토산을 거름으로 주어 맛좋은 상추와 배추를 가꾼다. 그래서 한 번 다녀간 사람은 다시 그곳을 찾는다. 그곳은 큰 길에서 2km나 떨어진 산속 강변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곳에 오는 손님은 한 번 왔던 사람 아니면, 누구의 소개로 찾아가는 사람뿐이다. 그런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은 친구 내외의 맛과 청결과 친절 덕분일 것이다.     
 
  당호나 상호에 들어가는 '원' 자를 한자로 쓸 경우에는 '원(園)'이나 '원(苑)'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소국원(小菊院)'은 '원(院)' 자를 쓴다. '원(院)'이란 글자에는 '옛날에 관아(官衙)에서 돈 없는 사람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던 숙소'의 뜻이 들어 있다. 그는 소국원을 무료로 운영하지는 못하지만, 상호에 담긴 뜻을 살려 친절과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운영하겠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소국원은 15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점심 시간이나 바쁠 때에는 가지 못하지만, 시간이 좀 자유스러운 저녁 시간에는 가끔씩 찾는다. 내가 찾아가면 친구가 달려나와 손을 잡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아주머니가 뒤따라 나와서 공손히 인사하며 나를 맞아준다. 나는 방으로 먼저 들어가지 않고, 집 둘레에 있는 화단의 꽃과 나무, 채소밭을 둘러본다. 친구의 자상한 손길과 땀을 먹으며 자란 꽃과 나무, 채소를 보고 있으면 계절의 변화와 함께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된다. 그는 바쁜 일이 없으면 나와 함께 화단과 채소밭가를 거닐며 그 동안 있었던 일, 다른 친구를 만났던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에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린 어린 시절 고향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집 둘레를 살펴본 뒤에는 함께 간 사람들과 야외용 식탁 앞의 의자에 앉아 시원한 음료와 맥주를 마시며 주변의 경관을 감상한다. 그 때에는 논문을 쓰다가 풀리지 않아 골똘하던 문제나 무슨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긴박감에서도 해방되고, 힘들고 복잡한 일로 짜증스럽던 감정도 누그러진다. 방으로 들어가 아주머니의 정성과 솜씨가 담긴 김치, 된장찌개, 젓갈, 나물, 장아찌 등을 먹을 때에는 어린 시절에 즐기던 고향의 맛을 느끼게 된다. 친구가 기른 상추, 쑥갓, 시금치, 마늘, 고추 등을 먹을 때에는 어린 시절에 내가 그것을 직접 가꿔서 온 가족이 함께 먹던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가 함께 간 사람들과 어울려 화제의 꽃을 피울 때쯤 친구는 쑥의 효소를 섞어 만든 '쑥술'을 가져와 일행에게 한 잔씩 권하며 잠깐씩 우리의 화제에 끼기도 한다. 일행 중에 처음 간 손님이 있어도, 그의 말과 행동이 소박하고 진실하여 저항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갔던 사람이 다시 갔을 때에는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의 언행을 보면서, 사람을 대할 때 예의를 지키며 소박하고 진실하게 대하면 곧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

  얼마 전부터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 일을 한다. 주방 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가 오지 않아 부인 혼자 하는 주방 일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자꾸 하다 보니 요령도 터득하였고, 일하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일하는 아주머니를 승용차로 아침에 모셔오고, 저녁에 모셔다 드리며 받들어 모시느라 속 썩는 것보다 직접 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주방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님이 오면, 앞치마를 벗고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일부러 모른 체하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생각이 바뀌어 주방일과 손님 시중에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일하니,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을 다니는 아들과 대학에 다니는 딸도 집에만 오면 주방의 일과 손님 시중에 정성을 다한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그곳을 찾았을 때, 그는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은 주로 점잖고 교양 있는 분인데, 내가 이런 손님들을 접대하며 시중 들다 보니, 나도 교양이 높아져서 직장 생활할 때보다 격상된 느낌이야!" 
이 말을 들은 내가 그 동안 수양 많이 했다고 하니,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네. 왜 진작 이런 생활을 찾지 못했나 하는  생각을 해."

    그의 화단에는 국화가 많이 있는데, 잔뿌리와 줄기를 잘라 여기저기에 심고 있다. 상호가 소국원이니, 소국이 만발한 집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가을이 되면 색색의 예쁜 국화꽃이 소국원을 감싸며 아름다움을 자랑할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국화처럼 그의 행복도 무럭무럭 자라 활짝 피기를 간절히 바란다. 
                  <충청문학(서울 : 충청문인협회, 2000. 8)에 수록한 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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