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 있는 어느 학회에서 주관하는 강습회에 가서 오전 강의를 하였는데, 마침 거기에 고향 후배가 있어 나이 든 수강생 몇 사람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조용한 방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입시 제도와 학교 교육이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그 중 한 분이 최근에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라면서 딸의 담임 교사 뺨을 때린 젊은 어머니 이야기를 하였다.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의 5학년 담임 여교사가 3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당번 역할을 잘못한 여자 어린이를 불러 꾸중을 하였다. 그 어린이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식식거리고 앉아 있었으나, 선생님은 모른 체 1시간 수업을 진행하였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그 학교에서는 점심 시간에 반별로 학교 급식실에서 밥과 반찬을 타다가 나누어 먹는데, 담임 선생님의 밥은 당번 어린이가 타다 드리게 되어 있었다. 그 어린이는 선생님의 밥을 타다 드리면서, 선생님 밥그릇에 침을 뱉었다. 이를 본 한 어린이가 이 사실을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화가 치밀어 올라 그 어린이를 불러 뺨을 때렸다. 그 어린이는 밥을 먹지 않고,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친 채 울면서 집으로 갔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더니, 성난 그 아이의 어머니가 달려 들어와 "네가 뭔데 내 딸의 뺨을 때려? 너 좀 맞아 보아라." 하고는 선생님의 뺨을 때렸다. 반 어린이들 앞에서 뺨을 맞은 선생님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 일은 반 아이들의 입을 통해 그날로 그 반 학부모에게 알려졌고, 2∼3일 뒤에는 그 아파트 주민의 대부분이 알게 되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저 여자가 담임 선생님 뺨을 때린 무서운 여자'라고 수군대며 그녀를 멀리 하였다.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이웃들도 그녀를 건성으로 대할 뿐 전처럼 가까이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는 아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기가 막혀 한동안 할말을 찾지 못하고 앉아 있었고, 우리 나라의 교육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아찔함을 느꼈다.
 
  학교 교육에서 선생님은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함이 있어야 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래야 선생님의 권위도 서고, 학습 지도의 성과와 아울러 인성 지도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 학생이 믿고 따르지 않아 교사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데, 그 학생을 불러 꾸중을 하였으니, 그 꾸중이 아이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결과 아이는 선생님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학생의 반감은 마침내 선생님의 밥에 침을 뱉는 행위로 나타났고, 이를 참지 못한 선생님은 학생의 뺨을 때린 것이다. 이 때, 선생님이 조금 더 자애로운 마음으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화를 자제한 후 다른 방법으로 아이의 잘못을 일깨워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식식거리고 앉아 있다가 선생님의 밥에 침을 뱉은 아이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아이는 자기만 위해 주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잘된 것은 자기의 공이고, 잘못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형성된 아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복수할 방도를 찾다가 선생님의 밥에 침을 뱉은 것이리라. 이 아이에게 이러한 성격과 행동 양식을 지니도록 한 것은 어머니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학생의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자기 아이를 잘못 가르치고 있고, 자기 아이의 장래를 그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머니가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주고,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속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자녀 교육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 줄 잘못 알고 있는데, 이것은 아이의 기를 꺾지 않고,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자녀에게 적극성과 자제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자녀로 하여금 자기를 과대평가 하게 만들어 '공주병' 또는 '왕자병'에 들게 하는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이런 병에 걸린 아이는 자라면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좌절감과 고통을 겪어야만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어머니는 자기 딸을 제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나서 후련함을 느꼈을 것이다. 속상해 하는 딸의 화를 대신 풀어주었으니, 딸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끼고, 자기 딸에게 체면이 섰다고 우쭐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일이고, 그 뒤에는 그 어머니가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이라 하여 도덕 군자일 수 없는데, 선생님이 그 아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 속에 인성 지도를 포기해야 할 아이로 자리잡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그 어머니는 담임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거나, 이참에 그 선생님을 그 학교에서, 또는 교육계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온갖 지혜를 다 짜낼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아니 되는 일이다. 그 일은 그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선생님의 입을 통해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도 알려질 것이니, 그 일을 아는 선생님 누가 그 아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정말 딱한 일이다. 
 
  그 어머니는 반 학생의 학부모나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어머니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될 것이다. 반 학생들의 학부모나 이웃들로서는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딸의 담임 교사 뺨을 때리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에게 마음을 열고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같은 반 학부모나 이웃들로부터 선생님의 권위와 학교 교육의 효과를 실추시킨 인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둘레에는 이 어머니와 같은 젊은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젊은 어머니들은 자기의 자녀 사랑 방법, 자녀 교육 방법이 옳았는가를 다시 생각하고, 지금처럼 자녀를 키웠을 때, 그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랄 것인가를 생각하여 바르게 행동하여야 한다. 학교 선생님을 공교육의 주체로 인정하고, 자기 자녀만을 감싸며 사랑해 주는 도구적인 인물이기를 기대하지 않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문제 학생 뒤에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의 의미도 되새겨 봄직하다..
 
  요즈음에는 학교 교육이 흔들리고,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을 경제 논리로 풀려 하고 있고, 사회에는 교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일이다. 어린이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기르려면, 교실을 바로 세워야 한다. 훌륭한 자질을 가진 젊은이가 교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교사를 우대하고, 교사의 권위를 세워 주어야 한다. 자녀의 바른 성장을 위해,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자기 아이만을 위하는 마음을 자제할 줄 하는 현명한 어머니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수필문학 제120호(서울 : 수필문학사, 2000. 6)에 수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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