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은 대한적십자사 중앙청소년적십자가 1963년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지자 정부는 2년 뒤인 1965년에 ‘스승의 날’을 공식기념일로 인정하고, 날짜를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5월 15일로 변경하였다. 그 까닭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을 받는 것처럼 스승을 존경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였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화하는 제자, 정성 어린 선물을 보내는 제자, 직접 찾아와 함께 식사하며 담소하는 제자들이 있다. 이런 제자를 대할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그 마음에 감사한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에 그에게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아쉽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고마우면서 미안할 뿐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스승의 은혜」(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 노래를 부른다. 50년 가까이 교직에 있었던 나 역시 이 노래를 스승 앞에서 부르기도 하였고, 스승의 위치에서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교직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된 내가 나이 든 제자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니 만감이 스쳤다. 올해에는 이런 일이 두 차례나 있었다.
한번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지도한 여제자 세 명이 나와 아내를 인사동의 한식집으로 초대한 날의 일이다. 한 사람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노래 지도에 특출한 기량을 지녔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성악에 재능을 가졌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고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적인 인물이다. 모두 교직에서 은퇴한 뒤에 각자의 재능을 살리며 제2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세 사람이 카네이션과 선물을 준 뒤에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세 사람이 화음을 맞춰 3절까지 부르는 동안 나는 세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에 감사하면서 부족했던 점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 가득하였다. 노래를 들은 뒤에 대화하면서 먹는 점심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정겹고 맛이 있었다.
다른 한 번은 1982학번 학부 제자 8명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퇴직 교수인 K가 세종시 금강변에 별장처럼 쓰는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다며 동기생들을 초청하여 함께 갔다. 공주 갑사를 탐방하고 저녁에 전원주택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였다. 돼지고기와 양갈비를 K 부부가 직접 가꾼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먹으며 포도주를 곁들이니 정말 흥겨운 잔치 자리가 되었다. 여러 대화 중에 재학 시절에 있었던 일이 화제에 올랐을 때에는 서로 말을 보태며 즐거워하였다. 30여 년 전에 미국으로 가서 살고 있는 B 부부도 귀국하여 함께 자리하니 더욱 뜻깊고 정겨웠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에 K가 친구들을 일어서게 한 뒤에 하모니카로 「스승의 은혜」 노래를 연주하자 모두 제창하였다. K의 부인은 작은 화분에 담긴 예쁜 꽃을 주면서 손수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기른 것이라고 하였다. 70세 전후의 이 동기들은 몇 년 전부터 철마다 한 번씩 나를 불러 함께 트레킹을 하며 담소하곤 한다. 이일만도 고맙고 과분하게 생각하며 지내는데, 오늘은 모두 뜻을 모아 「스승의 은혜」 노래까지 불러주니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하였는가 되돌아보았다.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느라 시간에 쫓겨 학생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베풀지 못하였고, 함께 시간을 나누지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학연을 맺은 지 30∼40년이 지났고, 나이 70세가 넘어 같이 늙어가는 오늘까지 나를 스승으로 기억하고 칭송해 준다. 나에 대한 과분한 대접에 미안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오래전에 맺은 학연을 잊지 않고 이어오는 제자들을 보면서 교육자가 되어 많은 제자를 둔 것을 감사한다. 오늘 따라 전에 모임을 같이하던 판사와 검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사회의 병든 자들과 상대하며 사는데, 교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젊은이들과 생활하니 좋겠다.”라고 하던 말. 이제 제자들에게 재학 시절에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접어야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달라는 제자들의 말처럼 오래 사제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도록 건강 유지에 힘써야겠다. (202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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