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연안에 있는 안타키아(Antakya)를 밤 11시에 출발한 우리는 2010624일 새벽 440분에 콘야(Konya)의 동남쪽에 있는 에레일리(Ereğli)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한국어문학과 3학년 메르트 군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메르트 군은 우리를 승용차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메르트 군의 집은 새로 지은 널찍한 아파트였다. 그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 뒤에 버스에서 제대로 자지 못하였을 터이니 좀 자라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 침대에 누워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피로가 좀 가시는 듯하였다.

   830분쯤 자리에서 일어나 메르트 군의 부모님과 인사를 하였다. 메르트 군의 부모님은 아주 반가워하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9시경에 빵과 치즈, 우유와 주스, 과일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메르트 군은 식사 후에 에레일리-광진구 자매결연 공원을 보고, 자기집 과수원에 가자고 하였다.

   10시경에 우리는 메르트 군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그의 어머니와 함께 타고 집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사야할 물건이 있으니, 시장에 잠깐 들르자고 하였다. 우리가 간 곳은 에레일리시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하는데,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과일과 채소 파는 곳을 둘러보니, 체리, 복숭아, 사과, 살구, 자두, 포도, 바나나, 무화과, 건과, 메론, 수박 등의 과일과 채소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쌓여 있는 상품들을 보니, 카이세리 시내의 시장이나 대형 마켓에서 보던 상품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양도 많고, 빛깔도 좋으며 튼실하여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가격표를 보니 가격 역시 아주 저렴하였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나의 눈을 끄는 것은 흰색 체리였다. 흰색 체리가 있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사진을 찍고, 자세히 보았다. 지금까지 보던 붉은 색 체리와 모양은 똑같은데, 색만 달랐다. 내가 흰색 체리를 처음 본다고 하니, 메르트 군은 이따가 과수원에 가면 흰색과 붉은색 체리가 나무에 달려 있으니, 마음껏 따먹으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공원으로 갔다. 공원 정문 위에는 에레일리구-광진구 자매공원이라고 왼쪽에는 한글로, 오른쪽에는 터키어로 쓰여 있었다. 한글로 쓴 아랫부분에는 태극기와 광진구의 기가 그려져 있고, 터키어로 쓴 아랫부분에는 터키 국기와 에레일리구의 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좀 작은 글씨로 ‘2002. 10. 16’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그것은 서울특별시의 광진구와 에레일리구가 자매결연을 맺은 날짜인 것 같다.

   공원 안에는 널찍하게 자리 잡은 1층 건물이 있는데, 건물 중앙에 아차산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건물 안의 넓은 홀은 보통 때에는 레스토랑으로 쓰는데, 결혼식을 하기도 하고, 특별한 행사장으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아차산을 나와 잔디밭 길을 조금 걸어가니, ‘광진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한국식 팔각정이 있었다. ‘광진정에 앉아 공원을 둘러보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아나톨리아 반도에 자리잡은 터키의 남쪽 지방까지 와서 자매결연을 한 광진구의 의지와 노력이 가상하고 존경스럽다.

   팔각정 앞에는 두 아주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와 같이 굵은 나무로 얇고 판판하게 밀어 쇠솥뚜껑 같은 것에 올려놓아 굽고 있었다. 메르트 군의 아버지는 이것을 사 가지고 와서 에레일리의 전통음식이니 먹어보라고 권하였다. 배가 부르지만, 받아서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우리가 공원에 있을 때 한국어문학과 2학년에 다니는 휘세인 군이 오트바이를 타고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우리가 온다는 말을 듣고,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면서 반가워하였다.

   우리는 메르트 군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그의 집 과수원으로 갔다. 메르트 군의 아버지와 휘세인 군은 각자 오트바이를 타고 뒤따라 왔다. 우리는 작은 언덕을 넘고, 누렇게 익은 밀밭을 지나 과수원에 도착하였다. 길옆에 작은 집이 한 채 있고, 꽤 넓은 밭에 체리, 살구, 사과복숭아호두 등의 나무가 서 있다. 과수원은 공무원을 하시다가 은퇴한 메르트 군의 아버지께서 은퇴한 후를 생각하여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누런 살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살구나무와 먹음직스런 체리를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매달고 있는 체리나무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메르트 군이 권하는 대로 살구와 체리를 따서 먹었다. 이렇게 열매를 한껏 달고 있는 살구와 체리 나무를 보는 것도 처음이고, 그 열매를 내 손으로 따서 바로 먹는 것도 처음이어서 조금 흥분되었다.

   살구는 신맛이 별로 없고 달콤하였다. 한국에서 살구 하면 신맛이 떠올라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여기 살구는 시지 않아 여러 개를 따서 먹었다. 체리는 약간 신맛이 나면서 달고 상큼한 맛을 냈다. 카이세리에서 몇 번 사다 먹던 체리보다 더 맛이 있었다. 터키에서는 체리가 1kg2리라(1,500) 정도 한다. 한국에서는 수입 체리 가격이 1kg18,000원 정도로 비싸서 마음대로 사다 먹지 못하였다. 그런 체리를 잘 익고 맛있게 생긴 것만 골라서, 나무에서 직접 따서 먹을 수 있으니, 참으로 기쁘고 흐뭇하였다.

 

   터키에서는 체리를 키라스(kiras)’비쉬네(vişine)’로 나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나 터키에 와서 사다 먹은 것은 키라스이다. 비쉬네는 키라스와 모양은 같은데, 알이 조금 작고 신맛이 강하다. 그래서 날로 먹는 것보다는 잼이나 주스를 만드는데 주로 쓴다고 한다. 키라스는 검붉은 색도 있고, 흰 색도 있다. 지금까지 체리라고 하면 검붉은 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 오기 며칠 전에야 흰색 키라스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흰색 키라스는 오늘 아침에 시장에서 처음 보았고, 나무에 매달린 것은 이 과수원에 와서 처음 보았다.

   나무의 줄기나 잎을 보니, 키라스와 비쉬네가 똑같아 보였다. 그러나 메르트 군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키라스와 비쉬네는 열매도, 줄기와 잎도 조금씩 달랐다. 키라스 나무 중에서도 흰색 키라스는 잎눈에 흰빛이 보였다. 키라스의 씨를 심으면 싹이 터서 자라 비쉬네의 묘목이 되는데, 여기에 키라스나무 가지를 잘라 접을 붙인다. 그러면 접붙인 가지에 의해 붉은 색 또는 흰색의 키라스 나무가 된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접붙인 가지가 자라는 것을 보니, 내가 어렸을 때 고욤나무 묘목에 감나무 가지를 잘라 접을 붙여 굵고 맛있는 감이 열리는 감나무가 되게 하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처음에는 키라스와 비쉬네를 구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메르트 군의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두 나무의 열매, 줄기와 잎을 비교하여 둘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키라스나무 중에서는 붉은색 키라스 나무인지 흰색 키라스나무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과수원집은 침대를 놓은 방 하나와 농기구, 거름흙, 비료 등을 보관하는 헛간이 있었다. 집앞에는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화덕이 있었다. 메르트 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침에 시장에 들러 사가지고 온 양고기와 채소를 넣고 맛있는 요리를 하였다. 그 요리를 사 가지고 온 식빵과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음식을 먹은 후에 차를 끓여 마셨다. 차를 마신 뒤에 메르트 군의 아버지는 터키의 전통술인 라크를 권하였다. 라크는 40%나 되는 독한 술이므로 사양하다가 맛을 보기로 하고 작은 잔에 반쯤 받았다. 거기에 물을 타니, 우유처럼 색이 변하였다. 맛은 진한 향이 있어 감미로우면서도 상큼하였다.

   잠시 후에 메르트 군이 바알라마(bağlama, 기타처럼 생긴 터키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자, 메르트 군의 어머니가 일어나 춤을 추었다. 잠시 후에 아버지도 일어나서 어머니와 함께 춤을 추었다. 잠시 후에는 휘세인 군이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북돋았다. 이런 모습을 보니, 야외에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터키 사람들의 흥취를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살구와 붉은색, 흰색 키라스를 각각 운반용 물통에 하나 가득 따서 차에 싣고 메르트 군의 집으로 왔다. 메르트 군의 어머니는 가지고 온 살구와 체리를 씻어 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메르트, 휘세인 군과 함께 시내 구경을 하고, 다음 날 카이세리로 돌아갈 버스표를 예매하였다.

   오늘은 메르트 군의 부모님과 하루를 지내면서 터키 중산층의 삶의 일면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처음으로 살구와 키라스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를 가까이서 보고, 한국에서는 비싸서 자주 사먹지 못하던 키라스를 마음껏 따먹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메르트 군과 그 부모님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에 감사한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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