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내가 동사무소에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반납하였다. 동에서는 노인의 운전면허증 반납을 권장하는 뜻에서 10만원이 들어 있는 교통카드를 주었다고 한다. 아내는 나에게 언제까지 자동차 운전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운전을 하고 있고, 운전면허증은 내년까지 유효하다. 그러므로 그 일은 내년에나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내의 물음을 계기로 나의 운전 경력과 내가 탄 승용차에 관한 기억을 되돌아본다.

   나는 19792월에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받았다. 후배 교사의 소개로 이웃 초등학교의 교사들이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단체로 자동차운전교육을 받는 데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론과 실기 교육을 마치고 면허시험에 응시하였다. 이론시험에는 함께 응시한 교사들 모두 합격하였다. 그러나 실기시험에는 1차로 합격한 사람이 몇 명 안 되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한 번에 합격하여 면허증을 받는 기쁨을 맛보았다.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받고 보니, 자동차를 사서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대학 교수가 된 지 1년밖에 안 된 나로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잘 하지만, 실생활 면에서는 단돈 1만원도 융통하지 못하는 손방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승용차를 살 수 있게 200만원만 빌려다 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니냐면서 펄쩍 뛰었다. 나는 승용차를 사려는 이유와 빚 갚을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그 해에 나는 시간강사 시절에 나가던 때와 같이 외부 강의를 맡았다. 그래서 두 대학에 가서 여러 시간 강의를 해야 했다. 멀리 있는 두 대학 출강을 위해 오가는 시간을 아껴서 강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나는 두 대학 강사료를 받으면 월급 건드리지 않고 꾼 돈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방학에 자료조사 여행을 갈 때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니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승용차를 사야 한다고 하였다. 아내는 내 설득에 넘어가서 동료 교사한테 돈을 꾸어다 주었다.

   그래서 그해 4월에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소형승용차를 구입하였다. 지금은 누구나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각 기관의 장이나 사업하는 사람이 아니면 자가용 승용차를 사서 탈 생각을 가지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갓 임용된 교수가 자가용을 샀으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함께 빈축을 사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싶은 것을 샀고, 유용하게 이용할 계획이 있었으므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 구입한 브리사는 1000cc 미만의 소형차였지만, 꿈에 그리던 자가용 승용차였으므로, 중형이나 대형승용차가 부럽지 않았다. 장위동 집에는 주차장이 없었으므로, 동네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를 탈 때에는 학원에서 배운 대로 매일 엔진오일, 브레크오일, 타이어 공기압 등을 체크하고, 기름걸레로 차체의 먼지를 제거하곤 하였다. 차에 흙물이나 빗물 자국이 있을 때에는 물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겨울에는 물을 데워가지고 나와서 차를 닦곤 하였다. 이런 열정과 정성은 처음 가진 승용차에 기울였던 것이고, 그 다음에 구입한 승용차부터는 차츰 게을리하였다. 요즈음에는 운행에 꼭 필요한 사항만 점검하거나 그것도 미루는 때가 많다. 가끔씩 카센터에 가서 안전점검을 받고, 자동세차를 하거나 어쩌다가 돈을 주고 손세차를 한다.

   브리사를 사던 해에는 어머니와 큰누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하였다. 소형차에 어머니와 큰누님, 그리고 우리 부부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3남매가 탔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큰 불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주 계룡산 갑사와 동학사, 부여 낙화암 등 충남의 명승지를 순례하였다. 그 뒤에는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하였으니, 첫 번째 차에 기울인 사랑이었던 것 같다.

   브리사는 5년 동안 큰 고장 없이 나의 발 노릇을 해 주었다. 나의 출퇴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의 출근에도 도움을 주었다.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학생들과 함께 설화자료 조사 여행을 하였다. 커다란 릴(reel) 녹음기를 비롯하여 여행의 필수품을 넣은 큰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자료조사 여행을 다니던 때에 비하면 정말 편안한 여행이었다. 시골에서 비를 만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가슴 졸이던 일, 눈이 쌓여 움직이지 못하고 여관에서 며칠씩 묵던 일 등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때 동행하여 고생했던 학생들(지금은 교수가 된 이가 여럿임)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이제 내가 자동차 운전을 시작한 지도 어언 44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의 발이 되어 준 승용차를 세어 본다. 1979년에 산 브리사(기아자동차, 서울14790)를 비롯하여 1984년의 맵시나(대우자동차, 서울19745), 1991년 콩코드(기아자동차, 서울29028), 1996년 소나타(현대자동차, 서울315147), 2001년 카렌스(기아자동차, 서울488424), 2006SM7(르노삼성자동차, 016097), 2014SM7(르노삼성자동차, 403987) 등이다. 이들 7대의 승용차가 지금까지 나의 발이 되어 출퇴근, 자료조사, 관광여행 등을 도와주었다. 지금까지 나의 발이 되어 준 7대의 승용차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그동안 승용차를 타고 다님으로써 출퇴근 때에 편했던 것은 물론이고, 자료조사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설화와 민속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자료집도 여러 권 간행할 수 있었다. 방문이나 관광 여행에서는 큰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 주었다. 지인 중에는 일찍부터 운전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며 기피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차를 운행하였으니, 운전을 즐기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사고 없이 운전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앞으로 언제까지 운전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23.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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