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큰 회사의 대리로 근무하는 조카와 조용히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이야기하는 중에 기독교인의 행동이 화제에 올랐다. 그는 다소 역정 섞인 말투로, 직장에서 예수 잘 믿는다고 떠들며 설치는 사원들 때문에 창피하고 화가 나서 교회를 못 다니겠다고 하였다. 장로의 아들로, 얼마 전에 교회 집사가 되어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의아스러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는 몇 사람의 실례를 들면서 이야기하였다. 예수를 믿는다고 떠들며 설치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여 사람들의 빈축을 사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내세웠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그렇지 못할 바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떠들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그들의 말과 행동에 혐오감을 느끼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저렇다고 비아냥거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장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지, 예수를 믿고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를 한단다.

   우리 둘레에는 이웃을 사랑하며 남모르게 봉사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인임을 내세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선량한 기독교인들을 속이거나 바가지를 씌워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도 틈만 나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예수를 믿도록 권면하는 말을 한다. 이러한 사람의 전도가 효과가 있을까? 열심히 전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이름을 더럽히거나 욕되게 하여 전도를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내가 아는 교수 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전도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교회에 좀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갔고, 거기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인과 함께 교회에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교회 마당에 주차 공간이 있기에 후진하여 주차할 요량으로 차를 앞으로 뺐는데, 그 사품에 점잖게 차린 한 중년 남자가 잽싸게 차의 머리를 앞으로 하여 그 자리에 차를 댔다. 그는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혀 멍하니 서 있다가 다른 자리에 차를 대고,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표정 하나 없이 차의 문을 잠그고, 바로 그 교회로 들어갔다. 그는 저렇게 뻔뻔한 사람과 한 자리에 앉아 예배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부인만 예배에 참석하게 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 뒤로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신앙은 사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을 구실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교회의 임원일지도 모르는 그 중년 남자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여 전도는커녕 제 발로 찾아온 교인을 문전에서 쫓아버리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말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도에 방해가 되는 언행으로 전도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도는 말보다 행동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하다 보니, 전에 근무하던 대학에서 가르친 M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대학입시 공부를 하여 30세가 다 되어 야간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2학년 때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만 하였으므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에는 앞장서곤 하였다.

   학우들은 착하고 부지런하며 겸손한 그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나이가 제일 많은 그를 과대표로 선임하였다. 그 때는 학교가 재단 문제로 교수와 학생들 모두 의견이 엇갈려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학우들에게 충고하고 설득하여 화합을 이루면서 무리 없이 과를 이끌었다. 그는 몇 학기에 걸쳐 과대표를 하면서 과의 일에 솔선수범하고, 봉사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첨예하게 대립되던 재단 문제에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학우들도 그를 욕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임은 물론,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하기도 하였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한 학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그 동안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 못 봤습니다. 그런데 그는 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저도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기독교인은 말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684호,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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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교수는 전임으로 근무하는 대학에서 연구, 강의, 학생 지도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면 다른 대학에 가서 시간강사로 강의하기도 한다. 다른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다 보면, 그 대학이나 학과 나름의 특성에 따라 학생들의 수강 태도나 강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여러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였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강의가 있다.

   오래 전에 제자 김 교수의 청에 따라 백석대학교에 출강하였을 때의 일이다. 첫 강의가 있는 날, 김 교수 연구실에서 차를 마시고 강의실로 가려고 할 때 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강의 시작 전에 기도하고 시작하시지요.” 나는 뜻밖의 말이어서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말은 하지 않고 속으로 기독교 관련 전공과목이 아닌 한국의 전통문화 강의 시간에 기도하고 시작하라니, 가당한 말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강의실로 향하였다.

   강의실 가까이 가니, 여럿이 힘차게 부르는 찬송 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가 강의할 방에서 수강생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수강생이 선교학과와 신학과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신앙이 돈독한 학생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였다. 그러나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강의 시작 직전에 온 힘을 다해 찬송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문화 강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기독교의 선교와 목회 활동에 도움이 되게 해 달라는 기원의 기도를 한 뒤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 다음 주 강의시간에도 강의실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날도 학생들 앞에 서서 기도한 뒤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 다음 주부터는 학생들이 차례를 정하여 강의 시작 전에 기도를 하게 하였다. 그래서 강의 시작 전에 기도하는 일은 한 학기 내내 계속되었다. 이 학생들의 수강 태도는 아주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이러한 강의 분위기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과대표 학생을 중심으로 학우들이 뜻을 같이하고 호응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표가 어떤 학생인가 궁금하였다. 김 교수는 나이가 좀 든 대표와 몇몇 학우들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일러 주었다.

   학생들의 수강 태도는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나는 그에 발맞춰 강의 준비를 더 열심히 하고, 열과 성을 다하여 강의를 진행하였다. 수강생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았으므로, 나 역시 열성적으로 강의에 임하였다. 강의 내용은 한국의 일생의례, 세시풍속, 민간신앙(가신신앙동신신앙점복신앙무속신앙), 구비문학, 민속놀이등 한국의 전통문화 전반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 알아야 할 내용들이다. 또 기독교의 선교나 목회 활동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이다.

   나는 구비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지만, 학문적 필요에 따라 민속 전반의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젊은 시절 무속 조사 현장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를 몇 차례 만났다. 나는 그 분에게 신학자가 굿판에 와서 무속 조사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는 미신 또는 우상숭배라고 폄하하는 무당을 중심으로 한 무속을 알기 위해 열심히 현장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로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미신 또는 우상이라 하여 배척하거나 타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 전통문화의 실상과 의미를 바로 알고, 기독교의 교리에 비추어 수용 또는 변용할 수 있는 것인지, 배치되므로 타기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모르거나 무시하고서는 외래종교인 기독교를 선교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고, 효율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외국에 선교사를 파견할 때 그 나라의 문화를 반드시 익히도록 하는 이유도 같다.

   나는 일반대학은 물론 몇몇 신학대학에도 출강하였지만, 기도하고 강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백석대학교 강의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수강생들은 기독교 신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강의에 임하면서도 기도하고 수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학생들이라면 기독교 전공 강좌를 수강할 때에는 더 진지하고 열성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졸업한 뒤에 선교와 목회의 현장에 가서 더욱 열성적으로 일할 것이다. 그러면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큰 보람과 성과를 거두게 하실 것이다. 이런 학생을 배출한 대학의 학과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면서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이들이 공부하고 일할 대학교, 교회, 교단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680,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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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카톡으로 ‘3대 바보’에 관해 적은 글을 받았다. 그 중 하나는 노후 자금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자식 눈치 보며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 글을 읽을 때 간접적으로 들은 한 지인의 사연이 떠올랐다. 그는 사업을 하는 아들이 이자를 쳐서 매월 드릴 터이니 돈을 꿔 달라고 사정하여 몇 차례에 걸쳐 은행에 넣어 두었던 돈을 모두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얼마 동안은 약속한 날짜에 꼬박꼬박 돈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노후자금 넘겨주기를 잘 하였다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제 날짜에 돈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생활비가 없는 그는 노인 일자리를 찾아 이 일 저 일을 하며 고생스럽게 산다고 한다. 그가 노후 자금을 아들에게 모두 넘기지 않았다면 생활비가 없어 고통을 겪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실패를 딛고 젊음의 용기와 패기로 극복하고 이겨냈을 것이다.

   노인이 가진 돈을 자식들에게 생전에 증여하는 것이 좋은가, 죽은 뒤에 상속하는 것이 좋은가?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 「황금연못」에서 50여 명의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노후자금이나 부동산을 자녀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좋은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남는 것을 상속받게 하는 것이 좋은가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나눠주는 것이 좋다는 사람은 자녀들이 필요로 할 때 나눠주어 힘을 펴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노년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관심을 갖게 하려면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날 모인 사람들의 의견은 ‘생전의 증여’보다는 ‘사후의 상속’이 조금 더 많았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옛날이야기 「나도 계집 있다」에 이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 옛날에 한 농부가 섣달 그믐날 아들과 며느리가 떡을 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 떡이 익자 아들과 며느리는 아이들을 불러 먹으면서 그에게는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 뒤늦게 외출하였다가 돌아온 그의 아내가 아들과 며느리를 꾸짖은 뒤에 떡을 가져왔다. 그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떡을 먹었다. 그 때 마침 아들이 방문 앞을 지나자 문을 열어젖히고, "너만 계집 있느냐! 나도 계집 있다!"라고 외쳤다. 명절이 지난 뒤에 그는 논과 밭을 모두 팔아 가지고 아내와 함께 멀리 떠났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진 아들 내외는 빈궁한 생활을 하며 백방으로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다. 어렵사리 아버지를 찾은 아들이 용서를 빌며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아버지는 거절한다. 3년이 지난 뒤에 그는 아들 내외와 아이들이 겨우 먹고 살 정도의 토지를 사서 주고, 나머지 재산은 마음대로 쓰면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세 가지의 교훈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첫째, 자녀는 부모에게 재산이 있어야 관심을 갖는다. 둘째, 자녀가 생활할 수 있는 만큼의 재산은 미리 나눠준다. 셋째, 남은 재산은 자기가 가지고 관리하면서 쓰다가 남으면 상속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와 같은 삶의 지혜를 옛날이야기 속에 숨겨 전하였다. 이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후의 생활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얼마 전에 60대 후반의 제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에서 은퇴한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에게 자립정신을 강조하며 재산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이혼하자며 재산 분할을 요구하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아내는 재산을 분할 받아 아들에게 주려고 그런다고 하였다. 그는 아내의 뜻을 꺾을 수 없어 아들에게 노후 자금의 반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재산 증여에 대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이 다를 수 있음이 나타난다.

   얼마 전에 남편을 여읜 지인이 이런 말을 하였다. 그의 남편은 자녀들에게 생전에 부모에게 의탁할 생각을 하지 말라며 자립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아들도 딸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하였다. 자녀는 어린 시절부터 정신 교육을 제대로 하여 성인이 된 뒤에 자립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노부모의 생활을 어렵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혼인하여 삼남매를 두었다. 그래서 내가 은퇴 후의 생활 계획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을 때에 모두 혼인을 하였다. 나는 내 형편에 맞게 도와주어서 그들이 인생을 출발함에 큰 어려움이 없도록 해 주었다. 그 뒤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조금씩 도와주었다. 나는 연금 받는 것이 있으니,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큰일이 생겼을 때에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돈만 조금 가지고 있으면 된다. 연금을 받으며 노후를 편안히 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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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김 교수와 전북 고창군 흥덕에 갔을 때의 일이다. 거기서 김 교수는 아끼는 제자 송 목사에게 전화를 하니, 그가 달려왔다. 우리는 그가 담임한 교회 신축공사장에 가서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본당 자리에 둘러서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공사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는 백석대학교 선교학과 졸업생이다. 그는 재학 시절에 나이 많은 학생으로, 학업에 매우 열중하였다. 나는 그 무렵에 백석대학교에 강사로 가서 선교학과와 신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강의하였다. 송 목사는 그 때 내 강의를 들은 학생인데, 과대표로 강의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던 ‘노학생’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그에게 담임하고 있는 교회의 형편을 묻고, 목회에 성공하기까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고향인 군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그는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파는 장사를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나이가 좀 든 뒤에는 전기와 설비 기술을 익혀 건설 현장에 가서 열심히 일하였다.

   그는 20세에 아는 사람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너는 공부를 더 하여라.”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몹시 가난하였던 그는 그 말씀을 무시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계속하였다.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서울에 있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교회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심신이 몹시 피곤하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폐결핵이라고 하였다. 그는 객지 생활에, 당시에 불치병으로 여기던 폐결핵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빠졌다. 그는 약을 먹으며 기도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 무렵에 그가 다니는 교회의 처녀 전도사가 그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처음에는 중졸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신학대학을 졸업한 전도사와 결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망설였다. 그러나 서로의 진심이 통하여 어른들의 허락을 얻어 29세에 결혼하였다. 신혼에 투병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굳은 의지와 믿음으로 이겨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왜 공부하라는 내 말을 따르지 않느냐? 더 공부해라!”라는 강한 음성을 들었다. 그는 그 말씀을 따르기로 하고, 36세가 되던 해 1월에 노량진의 고입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였다. 전에 배운 것은 다 잊어버렸고, 정신 집중도 잘 안 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는 3월에 고입검정시험에 합격하고, 그해 8월에 대입검정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래서 37세에 백석대학교 선교학과에 입학하였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그는 한 시 반 때도 놀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가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기도와 도움이 큰 몫을 하였다.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전도사로 일한 뒤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14년 전에 교인이 열세 명인 흥덕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 교회의 교인과 지역 주민은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그는 교회 승합차로 동네 어른을 태워다드리며, 사는 형편과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를 묻곤 하였다. 어른들 중에는 수도가 잘 나오지 않아서, 전등·TV·냉장고·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계셨다. 그는 이런 말을 듣는 즉시 달려가서, 청년 시절에 익힌 설비와 전기 기술을 발휘하여 무료로 수리해 드렸다. 이런 일이 알려지자 이웃동네 어른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그를 불렀다. 이렇게 하는 동안 어른들과 친해지면서 조심스럽게 전도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 동네는 물론 이웃동네의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사는 그 분들의 자녀가 흥덕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교인이 130여 명이 되었다. 교인이 늘고 보니, 교회를 신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교인들과 뜻을 모아 신축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시골교회에서 목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투철한 신앙심, 늦깎이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해 쌓은 실력이 바탕이 되었다. 그 위에 장사를 한 경험, 전에 익힌 전기와 설비의 기술이 어우러진 결과라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시골교회 목회에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목회자로 키우려는 장기 계획에 의한 것이리라.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는 사람이 헤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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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튀르키예 에르지예스대학교 객원교수로 근무할 때 안타키아(Antakya)성 베드로 동굴교회를 찾아갔다. 안타키아는 튀르키예 남동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약 202천명의 도시이다. 이곳은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으로, 옛 이름이 하타이(Hatay)여서 하타이로 표기된 지도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튀르키예 내륙 지방에 있는 얄바츠(Yalvaç)이다. 다른 하나는 수리디아 안디옥으로, 지금의 안타키아이다.

   이곳은 기원전 2,000년경까지 시리아의 아무트 왕국이 통치하였다. 그 뒤를 이어 히타이트, 앗시리아, 페르시아가 다스렸다.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물맛이 좋은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 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무장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가 이곳에 안티오키아 왕국을 건설하고, 안타키아를 수도로 정하였다. 그 뒤에 로마에 병합되었고, 시저에 의해 재건되어 상업·교육·문화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안디옥은 베드로 사도가 기독교를 로마 여러 곳으로 전파하는 포교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 바울 사도와 바나바가 와서 생활하고, 선교 여행을 떠난 곳이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을 쓴 누가의 고향이고, 요한 사도의 수제자로 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서머나 교회 감독으로 순교한 폴리갑의 고향이다. 이곳은 신약시대 포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으로, 기독교에서 예루살렘·로마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3년에 이곳을 성지로 선포하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뒤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열심히 전파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늘어가자 이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졌다. 신도들은 스테반의 순교 이후에 박해가 더욱 심해지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던 베드로 사도는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그를 따르던 신도들 중 일부가 이곳으로 와서 교회를 세우고, 베드로 사도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의 신도가 늘어가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이곳으로 보냈다. 이곳에 온 바나바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울 사도의 고향 다소로 가서 바울을 데리고 와 이 교회에서 1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 당시에 예수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크리스천(Christian)’이라 불렀다(11:2226). 이렇게 보면,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고, 이 교회의 신도들은 처음으로 크리스천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나는 조금 긴장되고 흥분된 마음으로 하비브 낫자르산 기슭의 큰 바위를 깎아 만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성 베드로 동굴교회가 바위 안에 세워진 것을 보면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안은 100쯤 되어 보이는 직사각형의 방인데, 전면의 중앙에는 돌로 쌓은 단이 있고, 그 가운데에 돌로 된 제단이 있다. 제단 앞의 벽 위쪽에는 천국의 열쇠와 두루마리 성서를 손에 든 베드로 사도의 상이 서 있다. 제단 오른 쪽에는 병을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 약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를 성수라고 한다. 제단 왼쪽에는 도피처로 가는 터널이 있다. 돌로 만든 제단은 12∽13세기의 것이고, 모자이크 바닥은 45세기 것이라고 한다. 나는 교회 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성수를 한 모금 마시면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경건한 생활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 때 서양 사람으로 보이는 남여 30여 명이 들어와 둘러서자 안내자가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설명이 끝나자 일행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말한 뒤에 모두 손을 잡고 찬송을 하였다. 찬송이 끝나자 그 사람이 대표로 기도하였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주 진지하고 경건하였다. 기도가 끝난 뒤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이탈리아에서 성지순례를 왔다고 하였다. 나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사도가 세운 세계 최초의 교회,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처음 생긴 교회를 와 보았다는 감격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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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초에 아내와 함께 남산에 벚꽃을 보러 갔다. 남산 북쪽 순환로에서 타워 쪽으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는 꽃을 활짝 피운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벚나무 사이사이에 피어 있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비롯하여 키 작은 봄꽃들도 이에 질세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바람 한줄기가 다가와 벚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니,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날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을 연상케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를 마음껏 즐기며 걷다보니, 어느새 남산타워 아래에 당도하였다. 팔각정에 올라 잠시 쉰 뒤에 남산타워 옆과 봉수대 아래쪽을 보니, 소원하는 바를 적은 기원문을 걸어두는 판넬이 설치되어 있다. 여러 가지 색의 예쁜 모양 필름이나 플라스틱판에 적은 기원문은 자물쇠에 채워진 채 설치대에 걸려 있다. 겹겹이 걸린 기원문을 보니, 걸은 지 얼마 안 되는 것은 예쁜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글자도 선명하였다. 그러나 안쪽에 걸려 있는 것은 판이 퇴색하였고, 글자도 지워졌으며, 자물쇠는 녹이 슬었다.

   기원문의 내용은 아주 다양하였다. “우리가 함께 한 1주년, 그리고 함께 할 100, 영원히 오늘 같기를!”이라고 쓴 글은 연인이 사귄 지 1년을 기념하며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돼서도 남산에 이거 보러 오자는 글은 친구 또는 연인이 노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여 남산에 다시 와서 이 글을 보자는 다짐이다. “00 사랑해요. 큰 거 하나 당첨되게 해 주세요.”는 사랑을 다짐하면서 행운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백반증이 빨리 낫게 해 주세요.”는 피부에 백색반이 나타나는 질환을 낫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자녀의 이름을 쓰고 그 뒤에 입학 축하해. 사랑해, 건강하기를!”이라고 적은 것이나, “우리 가족 영원히 행복하기를!”은 온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모두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 사랑의 결실과 지속, 입시·입사 시험 합격 등 일상적 소망을 적은 것이다. 기원문의 대부분은 한글이지만, 영어 또는 낯선 외국어로 쓴 글도 있는 것으로 보아 외국인도 있는 것 같다.

   기원문을 쓰는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집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을 때 쓰는 상량문에는 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과 함께 집을 지은 뒤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축원의 말을 적었다. 입춘에는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복을 바라는 입춘축을 써서 붙였다. 정월 대보름에 하는 달집태우기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 기원 등 축원의 글을 써서 붙이고 제를 올린 뒤에 태웠다. 액연(厄鳶) 날리기에서는 재액을 멀리 쫓아 버리고, 복을 부르기 위하여 정월 대보름을 기해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써서 날려 보냈다. 양초에 소원문 쓰고 태우기, 꽃바구니에 발원문 쓰기, 달님 기도문 작성 등도 기원문 쓰기의 풍습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는 기원문을 써서 붙이거나 불에 태우고, 멀리 보내거나 간직하였다. 기원문을 작성하여 태우는 것은 신에게 그 뜻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기원문을 써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유명 장소에 자물쇠를 채워 거는 것과 같은 일은 없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 널리 행해지는 풍습이 들어온 것 같다.

   오래 전에 튀르키예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솟아 있어 절묘한 지형을 자랑하는 카파도키아의 산언덕에 세운 신나무에 수많은 기원문을 걸어놓은 것을 보았다. 이곳에 신나무를 세운 것은 기묘한 지형의 산언덕을 신이한 장소로 본 때문이리라. 에페스(성경에 나오는 에베소) 근처의 뷜뷜산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앞에 기원문을 거는 판넬이 서 있다. 이곳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와 헝겊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 중에는 외국인이 걸어놓은 것도 있지만, 무슬림인 튀르키예인들이 걸어 놓은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무슬림이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비는 것은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 마리아를 선지자 예수의 어머니로 기록하였으므로, 마리아를 거룩한 여인으로 숭배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기원문을 써서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사람들은 언어는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언어주술관은 현대인에게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설날 축원의 뜻을 담아 덕담을 하는 것도 이런 의식의 표현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역시 말은 현실화한다는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종교적인 신심을 가진 신앙인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자기가 믿는 신에게 정성들여 기도한다. 이것은 인간이 소원하는 바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신이 이를 받아들여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요즈음에는 자물쇠를 채운 소원의 글을 명소에 거는 일이 국내외에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이 전통문화이든, 외래문화이든 탓할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소원을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명소에 거는 것은 장난기를 겻들인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의 발로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다만 퇴색되고, 녹이 슨 기원문은 주기적으로 철거하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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