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과 정 선생님은 한문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셨다. 선생님께서는 가끔 한문 명구를 칠판에 쓰시고, 뜻을 설명해 주셨다.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다.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 주자(朱子, 1130~1200)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그 의미를 곱씹어 볼수록 좋은 말이어서 꿈 많던 소년 시절의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내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나를 일깨우는 명구가 되었다. 이 말을 책상 앞 벽에 써서 붙이고, 마음에 새겼다. 그로부터 먼저 목표를 설정하고,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집중력을 강화하며 마음을 다잡곤 하였다.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며 긴장이 풀리거나 나태해질 때에는 이 말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곤 하였다. 그래서 이 말은 나를 일깨우는 경구(警句)가 되기도 하였다.

   교사로, 교수로 교단에 섰을 때에는 계제를 살펴 학생들에게 이 말을 써 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옛날이야기 <바위를 뚫은 화살>을 이야기해 주곤 하였다.

   옛날에 무과를 준비하는 젊은이가 산속에서 활쏘기를 비롯한 무술 훈련을 하고, 해가 진 뒤에 집으로 향하였다. 그가 어두움을 뚫고 고개를 넘으려고 하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호랑이를 활로 쏘아 맞히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세 대의 화살을 날렸다. 화살을 맞은 호랑이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으므로 집으로 달려왔다.

   이튿날 그 곳에 가보니, 큰 바위에 자기 화살 세 대가 꽂혀 있었다. 그는 지난밤에 바위를 호랑이로 알고 화살을 쐈음을 알고 겸연쩍었다. 그러나 화살이 바위를 뚫은 것을 흡족히 여기며 다시 화살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화살은 바위에 튕겨나가곤 하였다. 이 이야기는 옛날부터 널리 퍼져 전해오면서 필사의 각오로 정신을 집중하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교훈적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이광장군열전어느 날 이광(李廣, B.C. ?119)이 사냥을 나갔다가 수풀 속에 큰 호랑이가 있는 것을 보고 활을 쏘아 명중시켰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바위였다. 그리고 살촉이 바위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활을 바위에다 대고 쏘았으나 살촉은 바위를 뚫지 못했다.”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바위를 뚫은 화살이야기가 이 이야기를 모태로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정 선생님은 모사재인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이란 말과 함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도 가르쳐 주셨다. 앞의 말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그 일의 성사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고, 뒤의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이 말은 계획한 일의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면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혹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냥 하늘의 뜻으로 알고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 말의 출처는 《삼국지연의》이다. 촉한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유비가 사망한 뒤에 위나라와 싸울 때 계책을 세워 사마의(司馬懿)의 군사를 골짜기로 유인한 뒤에 화공(火攻)을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큰비가 내려 불이 꺼짐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를 보고 제갈량은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며 한탄하였다고 한다.

   이와 똑같은 뜻을 가진 말이 신약성경에도 있다. 잠언161절의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라는 말이다.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의 이 가르침은 계획을 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한다.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일의 성격과 내용, 기울이는 노력의 정도를 보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모사재인 성사재천’,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라는 말씀은 젊은 시절의 나를 일깨워주는 명구였다. 이런 명구를 가르쳐주시고, 진학지도를 바르게 해주신 정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다. (202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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