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의 중앙민족대학 객원교수로 와서 북경 생활을 시작한 지 18일이 되던 날이다. 점심 식사 후에 향산(香山)에 가려고 아내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향산은 북경 서북의 하이디앤취(海澱區) 서산 기슭에 위치한 삼림공원인데, 북경 중심부에서 약 20km 떨어져 있다. 북경에 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내가 향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공부한 중국어 교재에 향산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앙민족대학 정문 건너편에서 904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툰 발음으로 두 사람이 ‘시양산’에 간다고 하니, ‘쓰 콰이(3元)’를 내라고 하였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쯤 가니, 향산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가니, 벌써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10원의 입장료를 내고 북문으로 들어서서 사방을 살펴보니, 숲이 우거진 큰 산이 보였다. 넓은 평지만 보이던 북경 시내에 이런 산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있는 높은 산이었다. 산기슭에는 작은 호수가 푸른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산 중턱에는 절이 있고, 탑이 보였다. 이곳 사람들의 휴일인 토요일 오후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왔지만, 워낙 산이 넓고 길이 많아 혼잡하지는 않았다.
 
  길을 걷다 보니, 케이블카 타는 곳 표지판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지났다. 산을 걸어 오르기에는 늦은 시간이어서 케이블카를 타려고 승강장으로 갔다. 케이블카 이용 요금은 평일에는 30원이고, 국경절과 공휴일에는 40원인데, ‘단행(單行)’이라고 쓰여 있었다. 주 5일제 근무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온 나는 토요일이 휴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60원을 냈더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 매표원이 80원이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이곳은 토요일도 휴일임을 생각하고 20원을 더 내고 표를 샀다.

   케이블카는 가는 방향으로 두 사람씩 앉게 되어 있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올라가는 케이블카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발 아래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산의 남쪽에는 사원인 듯한 큰 건물과 탑이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높이 오를수록 산은 험하였고, 뒤편으로는 산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발밑에는 등산로가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더위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웃옷을 벗어들고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19분 동안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보며, 중국 산동에 있는 태산에 갔을 때와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갔을 때에 이와 비슷한 케이블카를 탔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 올라가니, 산 정상이었다. 거기에는 ‘향로봉(香爐峰) 해발 557m’라는 표석이 서 있었다. 산 정상에는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그 형상이 솥과 같고, 운무(雲霧)가 바위 주위를 감돌 때에는 마치 향로가 자색 연기를 내뿜는 듯하다고 한다. 그래서 산봉우리를 향로봉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곳을 ‘귀지앤초우(鬼見愁)’라고도 하는데, 그 까닭은 산이 높아 귀신이 보아도 근심한다는 뜻이라 한다. 

   향로봉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북경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건물들과 도로, 녹지대 등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보였다. 길을 따라 달리는 차들이 열을 지어 움직이는 개미떼의 움직임처럼 보였다. 뒤편을 보니, 첩첩히 싸인 산의 능선들이 겹겹으로 이어져 있었다. 산허리에 감긴 구름 뒤로 또 이어지는 산, 그 뒤에 아득히 보이는 먼 산. 그 동안 중국의 산수화에서 흔히 보던 아름다운 풍경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니, 정말 장엄하고도 아름다웠다. 옛사람들이 일찍부터 향산에 맑은 구름이 떠 있는 모습을 ‘서산청운(西山晴雲)’이라고 찬탄하며 연경(燕京, 북경의 옛이름) 팔경(八景)의 하나로 꼽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러 산줄기에는 산행할 수 있는 넓은 길이 나 있고, 봉우리에는 정자가 서 있다. 나는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보면서 아침 일찍 산에 올라 능선에 난 길을 따라 이쪽 봉우리의 정자에 앉아 쉬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저편 봉우리에 있는 정자로 옮겨가 쉬고, 또 그 다음 정자로 옮겨가 쉬면서 며칠을 지내면 속세를 떠난 신선과 다름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었지만, 길도 잘 모르는 데다가 그럴 만한 체력이 없으니 어쩌랴. 신선과 같은 생활도 의욕이 왕성하고, 그를 뒷받침할 만한 체력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향로봉 표석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한참을 기다려 사진을 찍고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서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고 쉬었다. 아내는 산 아래에서 사 가지고 온 군고구마를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더니,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평소에 군고구마를 즐기지 않았지만, 아내가 하도 맛있다고 하기에 받아 먹어보니 질척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정말 맛있었다. 군고구마 장수가 ‘티앤(甛. 달다)’이라고 하면서 봉지에 넣어주던 자신만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향산에서 먹은 군고구마의 맛은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케이블카가 운행 마감을 하면 어쩌느냐면서 서둘러 승강장으로 와서 케이블카를 탔다. 올라올 때와 반대 방향으로 앉아 올라갈 때 보지 못한 산의 이모저모를 내려다보니, 정말 좋았다. 보행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을 유심히 보니, 중국 사람도 있지만, 외국인이 많이 눈에 띠었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타는 승강장에는 ‘표를 사지 않은 손님은 그대로 타고 내려가서 표를 사면 된다.’고 써 있었다. 우리는 그 말의 해석을, 걸어서 올라간 사람이 내려올 때 케이블카를 타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올라올 때 표를 샀으니, 그 표를 보이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내려서 보니, 다시 40원짜리 표를 사서 보여주어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온 뒤에야 ‘단행(單行)’이란 말의 뜻을 바로 알았다. 그러고 보니, 케이블카 탑승 요금은 1인당 왕복 80원이다. 이것은 중국 물가로는 꽤 비싼 요금이다. 이런 요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주머니 사정이 좋은 중국 사람일 것이다. 케이블카 시설을 해 놓고, 외국 관광객이나 형편이 좋은 내국인들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면서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은 관광 수입 면에서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내가 짧은 시간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케이블카의 덕이었다. 나는 케이블카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광객과 체력에 자신이 없는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실감하였다. 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중국 산동의 태산을 오를 때와 이탈리아 카프리 섬을 올라갈 때에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한국에서 북한산을 비롯한 풍광이 좋은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고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케이블카 승강장 동편으로 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향산은 여행사의 관광 상품의 일정에는 들어 있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북경 관광 여행을 한 사람들로부터 향산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곳을 와 본 것이 참으로 기쁘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향산은 10월 중순에서 11월 초 사이에 단풍이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단풍이 아름다울 때, 휴일을 피하여 다시 와서 단풍 구경도 하고, 북경 식물원도 구경하자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향산의 명물이라는 대추를 한 봉지 사서 들고.

        <문예운동 제89호, 서울 : 문예운동사, 2006. 3. 1.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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