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들과 함께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회원의 밭농사 현장을 찾았다. 회원들은 건강 증진을 위해 먼저 서울시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잡고 있는 일자산 산행을 한 뒤에 회원이 농작물을 가꾸는 밭에 갔다. 회원이 어디에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그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천호역과 잠실역에서 보훈병원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보훈병원으로 갔다. 셔틀버스는 천호동에서는 10, 잠실에서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타야 하였다. 나는 천호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중앙보훈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랐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신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에 대한 진료와 의학적정신적 재활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보훈병원 이용자가 많다는 것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깊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여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앙보훈병원에서 만난 회원 9명은 회원의 안내로 보훈병원 뒤에 있는 일자산 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산등성이가 4km 가까이 이어지므로 일자산(一字山)’이라 하였다는 산 이름처럼 산길은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길 양편에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은 푸른빛을 더해 가고 있었다. 회원들과 삼삼오오(三三五五) 짝을 지어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대화는 참으로 정겨웠다.

 

   산길을 걸을 때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개암나무였다. 자주 가는 대모산에서 보지 못하던 개암나무가 열매를 담은 파란 주머니를 다닥다닥 달고서 뽐내며 서 있었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보던 개암나무와 부모님 산소 옆에 줄지어 서 있던 개암나무의 모습이 떠올랐다. 춘천 김유정 문학관 뒷산에서 보던 커다란 개암나무의 모습도 떠올랐다. 터키에 있을 때 흑해 연안에서 보던 개암나무숲의 모습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우리 일행은 1시간 넘게 걸은 뒤에 땀을 식히려고 일자산 등성이에 있는 쉼터의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 때 회원이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과 부침개를 꺼내놓았다. 회원은 오이를, 회원은 초컬릿 과자를 꺼내놓았다. 쉼터의 간이탁자가 갑자기 조촐한 파티의 식탁이 되었다. 회원들은 포도주잔을 높이 들어 이런 기회가 자주 있기를 빈다.’는 건배사를 줄인 구호 이기자를 크게 외친 뒤에 건배(乾杯)하였다. 산에서 부침개와 오이, 과자를 안주 삼아 마시는 포도주의 맛은 아주 좋았다.

 

   얼마를 더 걸은 뒤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2시간 이상을 걸었으니 5~6km는 족히 걸었으리라. 내려오는 길 양편에는 노란 얼굴에 하얀 꽃잎을 예쁘게 단 개망초가 주욱 늘어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산을 내려오니, 물류 창고들이 밭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낯선 곳이기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곳은 경기도 하남시 서부면 감북동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회원의 안내에 따라 물류 창고 뒤에 있는 밭으로 갔다. 거기에는 두 필지의 널찍한 밭이 있는데, 왼쪽이 회원이 농사짓는 밭이라고 하였다.

 

   밭의 입구에는 농기구와 거름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간이시설과 걸터앉을 수 있는 나무토막 등이 있었다. 200평은 족히 될 것 같은 밭에는 토마토와 가지, 고추가 튼실한 열매를 자랑하고, 상추호박오이땅콩강낭콩고구마도라지부추토란생강당귀 등이 자라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활짝 핀 백합꽃이 줄지어 서 있다. 이들은 기름진 땅에서 충분한 영영분과 적당한 수분을 섭취한데다가 햇볕을 제대로 받아 자람 상태가 아주 좋았다. 갈색을 띈 흙은 매우 기름져 보이는데, 두둑은 물론 고랑에도 잡초가 전혀 없다. 숙련된 농사꾼이 정성스레 가꾸는 밭임을 알 수 있었다. 농작물들은 주인이 자기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였다.

 

   ㅂ회원은 서울 시내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20여 년 전부터 농작물을 가꿨다고 한다.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라며 농사짓는 것을 보았기에 농작물을 가꾸는 일이 낯설지 않아서 동료들과 공동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해 왔다고 한다. 강동구 상일동이 개발되기 전에 밭을 빌려 30여 평의 밭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옮길 장소를 물색하던 중 4년 전에 지금의 밭을 얻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여러 작물의 특성을 연구하여 그에 맞는 재배법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가 가꾼 밭작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본 이곳 토박이 농사꾼들도 모두 놀라워한다고 하였다.

 

   그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천연비료를 만들어 쓰는데, 이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서 천호동 집 근처의 기름집에서 수시로 깻묵을 얻어오고, 건강원에서 건강식품을 다리고 난 찌꺼기를 얻어온다. 깻묵에 뜨물을 부어 발효시킨 뒤에 건강원에서 얻어온 한약재와 건강식품 찌꺼기를 다시 섞어 뜨물을 부어 비닐로 덮어두면 완전히 발효되어 좋은 거름이 된다. 밭에서 뽑은 풀과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 중 소금기가 없는 밥이나 과일껍질은 물론이고, 대변도 따로 받아 발효시켜 거름을 만든다. 밭 가장자리에 비닐로 덮은 둥그런 더미가 몇 개 있는데, 그게 바로 거름을 발효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든 거름은 최상의 천연비료이므로, 이를 먹고 자란 농작물은 아주 건강하다. 그래서 병충해에 잘 견디므로, 따로 농약을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몇 년을 하면 토질도 바뀌어 농작물이 잘 자라는 땅이 된다고 한다. 천연비료를 만들어 쓰는 그의 꾸준한 노력과 정성이 놀랍고 갸륵하다.

 

   나는 일행과 함께 밭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상추 줄기에 달린 잎을 따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 상추를 먹어보니, 쌉쌀하면서 고소한 맛이 유별하였다. 식당에 가서 먹거나 가게에서 사다 먹던 상추의 맛과 달랐다. 아내는 이렇게 맛 좋은 상추는 처음 먹어본다며 좋아하였다. 나는 상추를 먹으며 1주일에 45일을 거름의 재료를 비롯하여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자전거에 싣고 50분씩 달려가서 농작물을 가꾸는 교장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정년퇴임한 후에 밭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농작물의 특성에 따른 농사법을 연구하면서 정성과 땀을 기울이는 교장이 그 일을 하면서 더욱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20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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