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의 마지막 날 아내, 강 여사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에 자리 잡고 있는 수종사를 찾았다. 산 밑에서 절까지 올라가는 길은 시멘트로 거칠게 포장한 비탈길인데, 경사가 심하고 굴곡이 많아 좀 긴장하여 차를 몰았다. 도로 폭이 좁아서 마주 오는 차가 있을 때에는 좀 넓은 곳에 비켜 서 있기도 하였다.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 절문 앞 주차장에 당도하니, 아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오래 전에 왔을 때 산 밑에 승용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일을 말하였다.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절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산위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기운을 보고 가 보니, 우물 속에 동종(銅鐘)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 온다. 1459년(세조 5)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나은 뒤에 한강을 따라 환궁(還宮)하던 중 이수두(二水頭·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한밤중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리므로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운길산에 옛 절터가 있다고 하였다. 이튿날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더니, 절터 근처의 바위굴에 18나한(羅漢)이 있는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왔다고 하였다. 왕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곳에 절을 세우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절에 1439년(세종 21)에 세운 태종의 딸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浮屠, 사리를 안치한 탑)가 있다. 이로 보아 이 절의 창건은 그 이전이며, 세조연간에 크게 중창한 것이라 하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을 보니, 나무에서 갓 피어난 새 잎으로 산은 온통 연두 빛인데, 곳에 따라 농도(濃度)의 차이를 보인다. 연두 빛의 산색은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참으로 아름답다. 나뭇잎은 기름을 바른 것처럼 야들야들하며 매끄러움과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첫째 문을 지나 절로 향하는 길의 좌우에는 온갖 꽃들이 저만의 자태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길옆에 피어 있는 꽃 중에는 라일락․철쭉․좁쌀나무꽃․죽단화(황매화)․페튜니아․팬지와 같이 이름을 아는 꽃도 있지만, 이름을 모를 꽃도 많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검색하여 산괴불주머니, 붉은병꽃, 폐튜니아, 말발도리, 지면패랭이꽃, 도깨비부채, 한련화, 독활 등의 꽃 이름을 알아냈다. 꽃들은 이름이 다른 것처럼 모양과 색을 달리하여 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다.

 

  꽃 이름을 검색하며 걷다 보니, 불이문(不二門)이 나왔다. ‘불이(不二)’는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로,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해탈문(解脫門)이 서 있다.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이다. 이 문은 정진(精進)을 촉진시키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계단을 올라 해탈문 안으로 들어가니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응진전(應眞殿), 약사전(藥師殿), 산신각, 범종각, 경학원(經學院), 요사(寮舍) 등이 가지런히 서 있다. 아침 예불 시간이므로, 대웅전에서 독경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범종각 아래에는 세조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서 수종사가 고찰(古刹)임을 말해주고 있다.

 

  대웅전 앞의 넓고 평평한 공간은 아래에 있는 집의 옥상인데, 전망대의 구실을 한다. 거기서 앞을 보니, 먼 산줄기를 휘돌아 내려오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해지는 광경과 함께 두 강 인근의 아름다운 경관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북한강은 북한 지역인 강원도 금강군의 옥발봉에서 발원하여 금강산 비로봉 부근에서 발원하는 금강천과 합류한 뒤 천 리를 넘게 달려온 강이다.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골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역시 천여 리를 흘러 온 물줄기이다. 이 두 강물은 두물머리에서 합수하여 팔당댐을 넘어 서울을 지나 한강 하류를 거쳐 서해로 들어간다.​ 천 리가 넘는 먼 길을 달려온 두 물이 합수하는 광경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경이롭고 장대하다. 한 동안 앞을 보다가 눈을 감고 서서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신록․단풍․설경(雪景)을 떠올려 보았다. 또 일출․일몰․구름이 덮인 한강의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변하는 광경이 아름답고, 멋지고, 신비롭기 짝이 없다. 조선의 문장가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동방 사찰 중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이라고 극찬한 말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알겠다.

 

  이곳은 또 다른 유명인사와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은 이곳에서 가까운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별서(別墅)를 두었다. 그는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을 사랑하여 틈이 나는 대로 들길을 걸어 수종사에 와서 주지인 덕인(德仁) 스님과 교유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은 수종사를 즐겨 찾았다. 그는 일생 중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에 비교하였다. 당시에 다선(茶仙)으로 꼽히는 초의선사(艸衣禪師)는 이곳으로 다산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셨다고 한다.

 

  수종사에서는 차 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이곳에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나는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으며 경내를 찬찬히 둘러본 뒤에 삼정원으로 들어가 찻상 앞에 앉았다. 찻상에는 녹차와 다기(茶器)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젊은 보살은 친절하게 차를 우려 마시는 요령을 설명하며 차를 우려 주었다. 잘 우러난 녹차의 색은 연두색으로 삼정헌 아래로 보이는 산색과 비슷하여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함께 간 아내․강 여사와 마주 앉아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녹차의 맛과 향은 그윽하고 부드러웠다.

  녹차를 마시며 환담하던 찻상을 정리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전후좌우의 경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라.’고 한, 찻상에 깔아놓은 하얀 천에 적혀 있던 ‘인연설(因緣說)’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오늘 세 사람이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될 수종사를 탐방한 것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인연이 영원할 수는 없으나,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2019. 5. 4.)

 

 

'자료실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처신  (0) 2019.06.07
정릉(貞陵)에 얽힌 사랑과 미움  (0) 2019.05.18
제천 의림지(義林池)  (0) 2019.04.24
응봉산 개나리  (0) 2019.03.30
요세미티 공원의 증기기관차  (0) 2019.03.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