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탈회윅은 콘야에서 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지이다. 이곳은 영국의 고고학자 제임스 멜라트가 1961~1965년에 걸쳐 발굴하였다. 그는 발굴 결과 이곳을 포함하는 아나톨리아 지방이 신석기 시대 선진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콘야의 메블라나 호텔에서 숙박한 우리는 호텔 사장의 소개로 승용차를 몰고온 사람에게 90리라(7만원)를 주기로 하고,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차탈회윅으로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보니, 길가에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던 집을 재현해 놓은 초가집과 전시관이 있다. 그 위쪽 언덕에 발굴 현장이 있는데, 높은 지붕으로 덮은 곳도 있고, 덮지 않은 곳도 있다. 아직도 발굴이 끝나지 않은 곳도 있다. 그곳의 관리인 남자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전시실로 안내하여 이곳의 개황을 설명하였다. 그런 뒤에 당시 사람들이 살던 집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안내하여 살던 집의 구조와 생활 모습 등을 설명하였다.

이곳은 기원전 7,000년경에 형성된 마을인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기원전 6,700년경, 그리고 가장 후기의 건축물은 기원전 5650년경의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대 사람들은 흙벽돌로 지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지붕에서 나무 사다리를 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에는 벽난로와 화덕이 있고, 바닥보다 조금 높은 단은 앉거나 잠을 잘 때, 또는 일을 할 때 사용하였다. 곡식과 과일 나무를 재배하였고, 집짐승도 길렀던 흔적도 남아 있다.

이곳에의 면적은 13ha 정도인데, 5,000~10,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흙벽돌집을 이어서 짓고 살았다. 집은 100년 정도 살고는 허물어 메우고, 그 위에 새로 집을 지어 살았다. 이런 일이 1,000년 정도 반복되다 보니, 집터는 다른 곳보다 20m 정도 높아져 언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굴된 것 중에는 진귀한 것들이 많은데, 모두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으로 가져갔고, 여기에는 사진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여러 사람이 사슴과 물소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 춤추는 장면, 머리를 마주대고 있는 표범을 그린 벽화 등이 아주 선명하였다. 조각품 중에는 유난히 큰 유방과 배를 드러내고 앉아 있는 여신상이 눈에 띄었다. 이 신상은 아주 특이하여 앙카라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에서 본 기억이 또렷하다. 짐승의 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여인의 상반신 모양으로 다듬은 돌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사람의 무덤에서 뼈도 발굴되었는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무덤을 대지어머니(지모신)의 태()로 보고, 죽은 사람이 대지어머니의 태속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믿음에서 생긴 매장(埋葬)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발굴의 현장에는 마을의 형태와 구조, 옛날 집들의 위치와 구조, 신전의 위치와 구조, 무덤 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진과 설명이 게시되어 있었다. 안내원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여러 가지 출토품이 나온 곳도 말해 주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면서 신석기 시대에 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을까를 생각하였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물이 있는 강가로 기후가 따뜻한 곳이다. 물과 기후 가 맞아 식량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희소가치(稀少價値)가 있는 물자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에 모여 살았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예리코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이 곡물을 식량으로 섭취하게 되자, 체액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소금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소금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예리코에 기원전 7,000년경에 성곽도시가 형성되었다.

차탈회윅에는 어떤 물자가 있었기에 도시가 형성되었을까 궁금하였다. 나중에 안 일인데, 차탈회윅은 흑요석이 많이 나는 곳이다. 흑요석은 예리한 날을 만드는 데에 아주 귀중했다. 그래서 차탈휘익에는 예리코와 유사한 교역중심지가 생긴 것이다.

차탈회윅을 떠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비잔틴 시대의 교회가 있다는 실레(Sille) 마을을 찾아갔다. 20분쯤 달려 실레 마을에 갔는데, 교회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공사를 하고 있는 교회의 뒷편 언덕에도 비잔틴 시대의 교회가 있었다고 하기에 살펴보니, 벽만 남아 있었다. 공사를 하고 있는 교회 앞쪽에는 바위산이 있는데, 옛날에 동굴에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가보니, 카파도키아에 많이 있는 석굴교회와 비슷하였다.

우리는 오는 길에 로마 시대부터 있던 공동목욕탕을 수리하여 지금도 쓰고 있다는 목욕탕 앞에 쉬면서 사진을 찍고, 콘야 시내로 들어왔다. 승용차 기사는 우리를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주었다. 우리는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30분에 출발하는 카이세리행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중 <터키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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