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2014. 02. 14)에 교일산우회 회원들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입구에서 만나 독립문공원을 지나서 아파트 뒤쪽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안산 자락길표지판이 나왔다. 서울 시내의 크고 작은 산에는 쉽게 접근하여 편히 걸을 수 있는 만들어 놓고, ‘둘레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몇 군데에는 장애인 휠체어나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고, ‘자락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 말은 산자락에 있는 길이란 뜻인 듯하다.

 

   안산은 서대문구에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말의 안장과 같다고 하여 안산(鞍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안산은 정상이 해발 296m로 나지막한 산인데, 전망대에서 남산타워가 바로 보이고, 그 뒤로 관악산이 보였다. 북동쪽으로는 인왕산과 북한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서대문형무소가 보였다. 벚나무, 층층나무가 많은데, 메타세쿼이아 숲, 자작나무숲이 있어 이채롭다. 전에는 서울 서북지방에서 보내는 봉화를 받아 남산으로 보내는 동봉화대가 있던 곳이다.

 

   우리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산자락의 쉼터에서 형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내 앞의 벤치에 앉아 있던 형이 나의 뒤쪽을 가리켜며 뒤를 보라고 하였다. 내가 몸을 돌려 뒤를 보니, 기둥에 검정색으로 常樂我淨이라 쓴 누런 나무판이 걸려 있다. 이를 본 회원들은 각자의 한문 실력을 발휘하여 상락아정의 뜻을 풀이하였다. 한 회원이 항상 즐거워하며 나를 정결하게 하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보다는 더 깊은 뜻이 있는 말인 것 같은데, 구체적인 뜻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주 산행 모임 때 형이 흰 종이 한 장을 주었다. 그것은 常樂我淨의 뜻을 조사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간단히 살펴본 뒤에 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서 다시 읽어 보고, 다른 자료를 찾아보며 내 나름으로 이 말의 뜻을 정리하였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涅槃)의 네 가지 덕(四德)이라고 한다. 열반은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이르는 말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표이다. ‘상락아정은 열반의 네 가지 덕목이니, 글자 한 자 한 자가 깊은 뜻을 가진 말이다. 이를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풀이하는 식으로 뜻을 풀이하려고 하면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상()영원한 본성(本性)’을 말한다. 부처 같은 본성은 없어지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인연을 초월하고 업장(業障)을 소멸하여 즐거워하는 해탈의 경지이다. ()본성의 자아(自我),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자아이다. ()번뇌와 망상(妄想) 없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를 뜻한다. 시장 한 가운데에 있어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깨끗하여 누구에게나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상락아정은 청정무구한 본성을 찾아 즐거워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하면서 번뇌와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덕을 이룬다.’는 말이 된다. 그러고 보면, 상락아정은 이르기 어려운 경지이지만, 이를 얻기 위해 힘써 노력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하겠다.

 

   나는 이르기 어렵지만, 이를 목표로 삼고 노력하라는 뜻의 상락아정과 뜻이 통하는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경을 뒤적이던 중 다음 구절에 유의하였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본성 즉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서 기뻐하라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상()과 낙()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아()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면서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정()에 해당한다. 이렇게 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에 맞는 삶이 된다. 이런 삶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열반의 경지에 이른 삶이다. 그러고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상락아정이나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은 같은 맥락의 가르침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여러 번 읽었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도 수없이 들었다. 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이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 결심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곤 하였다. 이번 산행에서 본 상락아정의 뜻을 되새기면서 이 말씀의 실천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안산 자락길 쉼터에 걸려 있는 상락아정의 현판은 무심코 지나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나무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고 가다듬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귀한 말이다. 이 현판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사에 무뎌져가는 나에게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안산 자락길 걷기는 매우 즐겁고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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