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을 받아먹고 사는 나라’ 이야기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거나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미개한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옛날의 일이라면 그 때는 다 그랬을 것이고, 미개한 나라 이야기라면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이니 색다른 이야기일 것도 없다. 그러나 옛날의 이야기도, 미개한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문명이 발달한 나라의 현재의 이야기라면 흥미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여름에 뉴질랜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B씨는 13년 전에 이곳으로 이민을 왔는데, ‘빗물을 받아먹고 사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민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름 있는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빗물을 받아먹고 사는 나라’는 지상의 낙원과 다름없을 것이니 그곳에 가서 살겠다는 생각에서 이곳으로 왔다고 하였다. 그의 이민 결심의 동기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단순하고 낭만적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뉴질랜드에 와서 맨 먼저 우산 장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1년 중 우기(雨期)가 6개월이나 되니, 한국에서 품질 좋은 우산을 들여와 팔면 많은 이익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우산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고 그대로 비를 맞고 다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차!’ 하고 후회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안 한국인교회 교인들이 그를 돕는 뜻에서 우산을 팔아 주어서 자금의 일부를 회수하였지만 큰 손해를 보았다. 그 후 그는 그곳의 기후와 풍토,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살폈다고 한다.

   나는 그 곳 사람들이 정말로 빗물을 받아먹고 사는가 궁금하여서 그런 집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차가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가니, 넓은 초원에서 소․말․양 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고, 사람이 사는 집들이 뜨문뜨문 보였다. 초원 가운데로 나 있는 도로 옆에 있는 휴게소에 들르니, 바로 옆에 빗물을 받아먹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골이 진 슬레이트(slate) 모양의 자재로 지붕을 덮었는데, 추녀 끝에는 지붕에 내린 빗물을 받는 물받이가 있고, 그 물을 한 곳으로 모으는 홈통이 땅위에 있는 통에 연결되어 있었다. 물을 받는 통은 지름이 4~5m쯤 되어 보이는 둥근 모양의 큰 통인데, 뚜껑이 덮여 있다. 통의 위쪽에는 통에 넘치는 물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통의 아래쪽에는 물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는 그 통에 저장된 물을 식수로 사용함은 물론 허드렛물로도 쓴다. 통에 저장한 물을 다 쓸 무렵이면 또 비가 내리므로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뉴질랜드에는 이런 집이 아주 많다고 하였다. 

   뉴질랜드는 공장은 건설하지 않고, 공산품은 외국에서 사다가 쓰면서 자연 환경을 유지 보호하고 있다. 그러니 매연(煤煙) 걱정은 할 필요가 없고, 많은 숲들이 공기를 정화(淨化)해 주니 공기가 맑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처럼 산성비[酸性雨]가 내리지도 않고,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으니 황사(黃紗)가 섞인 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은 맑고 깨끗하므로, 빗물을 받아서 먹어도 아무 탈이 없고, 비를 피하기 위해 따로 우산을 쓸 필요도 없다. 자동차의 경우도 비를 맞은 뒤에 마르면 비 맞은 자국이 없고, 세차한 것처럼 깨끗하다. 그러니 따로 세차장에 가서 세차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 곳에는 세차장이 따로 없다. 

   뉴질랜드는 무공해 청정국가(淸淨國家)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을 가로지르는 길을 내지 않으며, 터널을 뚫지 않는다. 교각(橋脚)을 많이 세우면 물의 흐름을 방해하고, 물의 흐름을 방해하면 자연이 변화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강위에 다리를 놓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교각의 수를 줄이기 위해 긴 다리 대신 강폭이 좁은 곳에 짧은 다리를 놓는다고 한다. 

  B씨의 말을 들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 이민을 결심한 그의 마음을 이해하였고, 이를 실천에 옮긴 그의 의지와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보니, 우리나라의 실상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에 나는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과 냇가에 나가 놀곤 하였다. 친구들과 함께 미역을 감고, 물장난을 하였으며, 냇바닥의 모래로 이를 닦았다. 목이 마르면 냇물을 그대로 마셨다. 이를 본 어른들 누구도 물이 더러우니 먹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을이면 논바닥에 파놓은 물길을 따라 미꾸라지와 송사리가 몰려다녔고, 이삭이 나온 벼 위에는 ‘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처럼 메뚜기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날아다녔다. 우리는 그 곳에 있는 미꾸라지와 메뚜기를 잡아 가지고 가서 끓여 먹거나 구워서 먹곤 하였다. 비가 오면 변변한 우산이 없어서 그러기도 하였지만, 비를 맞아도 해롭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대로 맞는 것이 예사였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뿜는 매연과 분진(粉塵)이 공중에 항시 떠 있게 되었다. 농약이나 방부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약품이나 중금속의 사용이 늘고, 축산의 오폐수(汚廢水)와 생활 쓰레기가 늘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가끔씩 황사가 불어온다. 이런 일이 겹치니 공기도, 토양도, 지하수도 나빠졌다. 그래서 맑은 공기를 마시기 어렵게 되었고, 아무 물이나 마실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 공해(公害)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1980년대만 하여도 높은 산을 오를 때에 가지고 간 물을 다 마신 뒤에는 계곡에 흐르는 물을 그대로 받아 마셨다. 서울 근교의 도봉산, 수락산, 아차산 등을 오를 때에는 계곡 곳곳에 있는 옹달샘의 물을 마음 놓고 떠서 마셨다. 그러나 지금은 큰 산의 계곡 물도 마실 수 없고,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의 옹달샘물도 오염이 되어서 ‘음용 불가(飮用不可)’라고 써 붙인 곳이 늘어가고 있다. 오염된 대기, 살충제의 공중 살포(撒布), 침출수(沈出水)의 혼입(混入) 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높은 산의 계곡 물까지 오염된 현상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가정에서는 수돗물을 믿지 못하니 그대로 마실 수 없어 정수기를 설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한다.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것을 빗대어 ‘돈을 물 쓰듯 한다.’고 하였는데, 물 값이 휘발유 값 못지않게 비싼 시대가 되었으니, 이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공해 문제를 말하다 보니, 어느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그 교수는 1970년대에 공해 문제를 다룬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의 공해 정도는 그 때의 기준치를 몇 배 초과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때에 인체에 해롭다고 하던 그 기준대로라면, 지금쯤은 사람들이 다 공해에 찌들어 죽었거나 병이 들고, 기형아(畸形兒)가 많아야 하는데, 그런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들이 나쁜 환경에 적응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해의 정도가 심하여졌어도 지금까지는 인체의 적응력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러나 인체의 적응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공해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자연 파괴로 인한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지혜가 뛰어난 존재이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불행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바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 환경 보호 단체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우리들 각자가 자연 보호와 오염 방지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가 우리의 자연을 멍들게 하였다. 그러나 피해를 줄이고 생태계가 속히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운 날씨에도 자원봉사를 한 국민의 노력과 여망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의 경우를 보면, 생활오수(生活汚水)를 따로 흐르게 하고 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중랑천이나 탄천에 물고기가 살게 하였고, 청계천에 물고기와 새들이 서식하게 하였다. 서울의 공기도 조금 맑아졌고, 한강물의 탁도(濁度)도 조금 낮아졌다고 한다. 이것은 물이나 토양이 오염되지 않게 하고, 오염된 물은 정화하는 노력을 하면,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어서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빗물을 받아먹는 나라’ 이야기가 먼 태평양 가운데의 뉴질랜드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야기라는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전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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