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틈이 나면 아내와 함께 아파트 가까이에 있는 대현산에 올라갔다 오곤 한다. 이 산은 우리 집에서 한 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곳으로, 높고 큰 산은 아니지만, 운동 부족인 나에게 운동 공간을 제공해 주고, 아내와 대화할 시간을 마련해 준다. 또, 온갖 나무들과 꽃이 있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 준다.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과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분주히 날며 지저귀어 교외로 나가지 않고도 봄의 정취를 맛보게 해 준다. 여름이면 소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단풍나무, 아카시아 등이 해를 가리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잎이 밝은 햇살아래 자태를 뽐낸다. 눈이 내린 날 산에 오르면, 눈꽃이 핀 나무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새로 조성한 넓고 시원스런 대현산 공원이나 응봉산보다 이 산을 즐겨 찾곤 한다.

   우리는 이 산에 아침에 간 적도 있고, 대낮이나 해질 무렵에 간 적도 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몇 곳의 배드민턴장에서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는 부부가 함께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부부가 함께 와서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은 최소한 먹고 입는 일에 궁색한 사람, 뜻하는 일이 잘 안 되어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 일에 쫓기어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게으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고, 공기 맑은 산자락에 와서 땀을 흘리며 운동하니 더욱 건강해 질 것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면 그에 따른 성과도 좋아질 것이요, 가정도 화목해 질 것이니,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 

   나의 둘레에는 탁구를 하는 사람, 테니스를 하는 사람,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 골프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나에게 적어도 한 가지 운동을 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나이 들기 전에 논문 한 편이라도 더 쓰고, 저서 한 권이라도 더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뒤로 미루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나이를 먹고 말았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에는 거리가 멀어진 데다가 더 바빠졌고, 많이 걸으면 무릎이 아프곤 하여 북한산에 가는 일이 시들해졌다. 대현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것 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나의 운동 부족을 걱정하던 아내가 함께 탁구를 하자고 하였다. 이 제안을 받은 것이 2002년 봄이었는데, 그 해는 작은 아들을 장가보내는 일, 회갑 전까지 내겠다고 벼르던 저서의 집필,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추진하는 회갑기념 논문집 두 권에 실을 논문 두 편을 쓰는 일, 95세가 된 어머니의 병을 간호하는 일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일은 염두에 둘 수 없었다. 

   2003년 1월에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는 어머니를 여읜 허전함, 그 동안 쌓인 피로와 체력 소모 때문이었는지 기침을 하고, 만성 피로와 함께 무력감에 빠졌다.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고, 약을 먹어 기침은 멎었으나, 만성 피로와 무력감은 낫지 않았다. 전부터 다니던 한의원을 찾아가니, 한의사는 내게 보약을 먹은 뒤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주일에 두세 번씩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나 역시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아내의 권유대로 탁구를 하기로 하였다.

 
   2003년 2월에 나는 아내와 함께 탁구장에 갔다. 젊었을 때 탁구를 좀 하기는 하였으나, 기본자세를 익힌 적도 없고, 흥미 위주의 마구잡이식 경기를 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나의 탁구 실력은 형편없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나보다 실력이 좋은 아내가 상대하여 주며 격려해 주는 바람에 용기를 내어 탁구대 앞에 서서 치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에 나는 아내의 권유대로 정식으로 회원 등록을 하고, 하루에 20분씩 지도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사용하던 쉐이크핸드 라켓을 라운드형으로 바꾸고 기본자세부터 새로 익혔다. 지도를 맡은 분은 80년대에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여선생인데, 기본자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코치한테 렛슨을 받기 전과 후에는 아내와 연습을 하였다. 일주일에 두 번을 가겠다고 하였지만, 한 번밖에 못가는 때도 있었고, 아예 못가는 주도 있었다. 나와 아내의 건강 형편 때문에 몇 달씩 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탁구장에 가서 열심히 연습하였다. 그렇게 2년을 지내고 보니, 기본자세도 어느 정도 몸에 익었고, 상대방의 자세에 따른 공의 움직임과 방향을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내와 아주 재미있게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가끔씩 교회에 가서 교인들과 게임을 하기도 한다. 


    아내는 35년 동안 교사로 있다가 1998년에 명예퇴직을 하고, 바로 탁구를 시작하였다. 운동 부족을 자각하고 있던 아내는 퇴직 직전부터 수영을 시작하였는데, 수영장 물의 소독약 때문인지 눈병이 생기곤 하여 그만두고, 구민체육관 탁구 교실에 등록하여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세 번씩 체육관에 가서 잠깐씩 렛슨을 받고, 회원들과 연습하기를 5년 가까이 하였다. 늦게 배운 탓에 실력이 죽죽 늘지는 않았지만, 공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다. 내가 탁구를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무렵에 나는 아내에게 게임을 하자고 하였다. 젊었을 때 내가 이기곤 하였으므로, 게임을 하면 크게 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여서 몇 점을 접어주어야 게임이 되는 형편이었다. 정식으로 배우면서 연습한 연조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내가 탁구를 시작한 지 2년이 된 지금은 아내와 게임을 하면, 막상막하(莫上莫下)의 열전을 벌일 때도 있다.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약이 올라 더 하자고 조르기도 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그날의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어 건강 상태가 좋은 날은 이기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몇 게임을 더 하여도 지고 만다. 게임을 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고,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온 몸이 가벼워진다.

   탁구는 과격하지 않으면서 운동량이 많다. 적당히 숨이 차고, 땀이 흐르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아내는 골밀도가 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무척 걱정을 하였는데, 탁구를 시작한 뒤에 골밀도가 높아져서 정상이 되었다고 하여 아주 기뻐하고 있다. 탁구는 좁은 공간을 차지하는 실내운동이므로, 테니스나 골프처럼 날씨의 제약 없이 할 수 있고, 경비가 많이 들지도 않아서 좋다. 탁구를 부부가 함께 하니,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다른 한 쪽을 기다리며 불평할 일이 없어 좋다. 운동 후에는 함께 외식을 하거나,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또 본인은 물론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어서 좋다. 우리 부부는 뒤늦게나마 탁구를 시작한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기며,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고 자부한다. 둘레 사람들도 보기에 좋다면서 부러워한다.

  나는 틈이 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대현산을 찾고, 탁구를 하며 건강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아내가 허리의 통증 때문에 탁구는 물론, 대현산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내가 속히 완쾌되어 함께 탁구도 하고, 대현산도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아내의 수발을 들고 있다.       
     
  <수필문학 > 통권 제172호, 2005년 3월호에 수록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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