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9월 북경에 있는 J대학교 초빙교수로 가 있을 때의 일이다. 북경에 있는 동안 백두산과 연변 지역을 다시 가보고 싶어서 여행사에 연락을 해보니, 시기적으로 늦은 때라 손님을 모으지 않는다고 하였다.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한국에 있을 때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준 이 선생이 연길에 오면 안내해 줄 터이니 오라는 이메일(e-mail)을 보내왔다. 기쁜 마음으로 4박 5일 일정의 여행을 계획하고, 이 선생 남편의 친구가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해 밤 8시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약하였다.

  오후 4시에 아내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길 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에 와서 우리 둘이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매우 긴장되었다. 택시 기사에게 서툰 중국어로 수도공항을 가자고 말하고서 혹 다른 곳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길이 막혀 비행기 시간에 늦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중국어 단어를 꿰맞추고, 손짓으로 물어 항공권 발급 장소를 찾아가서 탑승권을 받고, 탑승 수속을 마친 뒤에야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국내 항공기를 타고 두 시간쯤 비행하여 연길 공항에 도착하니, 이 선생이 남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선생의 시누이 남 선생의 아파트에서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환담하였다. 연길에 온 둘째 날에는 이 선생 내외와 함께 택시를 전세 내어 타고 도문, 훈춘 지역을 둘러보았다. 
 
   셋째 날에는 이 선생의 안내로 백두산에 가기로 하였는데, 마침 휴일이어서 초등학교 4학년인 이 선생의 딸도 함께 가기로 하였다. 우리 일행 네 사람은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승용차를 타고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이 선생 남편의 주선으로 중국 교포 A씨가 개인 사업을 하는 동생의 차를 가지고 왔다. 그는 운전도 잘 하고, 이야기도 잘하였다. 나는 앞자리에 앉아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화제가 자동차에 미치자, 그는 현대자동차 중국 공장에서 만든 소나타와 엘란트라가 중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고 하였다. 우리가 타고 가는 차 역시 현대에서 만든 엘란트라였다. 나는 1990년에 중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의 차가 한 대로 없는 것을 보고 아쉬워하였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후 15년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였다.

   백두산을 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길에서 80km 정도로 달릴 수 있었다. 전날 밤부터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가끔씩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곤 하였다. 안도(安圖)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쉰 뒤에 다시 달렸다. 오전 9시 40분경에 백두산 산문(山門)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온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볐다. 이 선생이 입장권을 사 왔는데, 표가 여러 장이었다. 받아서 보니, 1인당 입장료가 60원, 상해 보험료가 5원, 그리고 차량 통행료와 주차료가 있었다. 조금 더 차를 타고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그곳에 타고 온 차를 세우고, 천지를 왕복하는 전용 짚차의 승차권을 사서 타고 가야 한다고 하였다. 매표소 앞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니, 차들이 모두 산에 올라갔기 때문에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기사 A씨는 조금 전에 만났던 공안원과 이야기한 뒤에 공안원의 차를 타라고 하였다. 우리는 한 시라도 빨리 천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 차를 탔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기상대쪽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은 소형차 두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인데 굴곡이 심하였다. 1990년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괭이와 삽을 가지고 도로 공사를 하던 길인데, 이제는 완전히 포장 되었다. 우리를 태운 차량의 기사는 아주 능숙하게 차를 몰았다. 그런데 굴곡이 심한 길을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앞자리에 앉은 나는 차가 옆으로 미끄러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였다. 불안한 마음을 억제하며 차창 밖을 보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차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무와 풀의 키가 작아졌다. 한참을 오르니, 우리는 구름과 안개 속에 싸이게 되었다.

   기상대 앞쪽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구름과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없겠다는 생각에 실망스러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숨이 차서 쉬어가면서 10분쯤 걸어 봉우리 끝에 섰다. 그러나 천지는 운무(雲霧)에 싸인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몇 년을 별러서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는데,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는 천지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전에 왔을 때 보았던 천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국인 단체관광객인데, 모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렸다. 아내에게 그만 내려가자고 하니, 아내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였다. 우리는 이슬비를 피하려고 찢어진 우의(雨衣) 자락을 당기며 기다렸다. 잠시 후, 햇빛이 비치는 것 같아 크게 기뻐하며 기다렸지만, 천지 위를 덮은 운무는 변함이 없었다. 단체관광객 몇 팀이 실망을 안고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본 뒤에야 우리도 발길을 돌렸다. 여기까지 와서 천지를 보지 못하고 간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아쉽다 못하여 속이 상하였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인 것을 어쩌겠는가! 우리는 참으로 참 복이 없구나!’ 하며 다시 차를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장백폭포 뒤쪽으로 걸어서 올라가면 천지의 물에 손을 담글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의 승용차로 바꿔 타고 장백폭포 쪽으로 올라갔다. 날씨는 구름이 많이 걷혀 파란 하늘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다시 입장권을 사서 폭포 쪽으로 올라가니 폭포 아래에서 뜨거운 온천물이 솟아 흐르고 있는데, 섭씨 83도나 된다고 하였다. 장엄한 폭포를 보고 탄성을 연발하다가 위에서 내려다보지 못한 천지의 물을 손으로 만져보겠다는 생각으로 폭포 뒤쪽으로 난 계단 길을 한 시간쯤 걸어 올라갔다. 수천 개가 되는 듯한 계단을 올라가니, 평평한 길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 천지가 보였다. 천지 둘레의 산봉우리는 아직도 안개와 구름이 감싸고 있었으나, 호수 위에는 햇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물가에 이르러 보니, 둘레가 4~5km쯤 되어 보이는 넓고 푸른 천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 덮인 험한 산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는 파란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해발 2,000m가 훨씬 넘는 높은 산 위의 험한 산봉우리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스러웠다. 조물주가 만들어 깊은 산속에 숨겨놓은 비경(秘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가에는 콩알 만한 작은 돌과 모래가 곱게 밀려오는 작은 파도를 맞이하였다가 밀어 보내곤 하였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과 사진기를 뒤로 젖히고, 물에 손을 담갔다. 그리던 천지의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니,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비경을 보았다는 벅찬 감격과 함께 자연의 신비감이 온몸에 느껴졌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산봉우리에서 천지를 내려다보지 못하여 섭섭했던 마음도 풀렸다. 아내 역시 아주 감격스러워하면서 물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고, 물을 튕겨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작은 돌을 골라 깨끗이 씻어 주머니에 넣었다.

   단체로 온 관광객들이 시간에 쫓겨 서둘러 내려가고 나니, 넓은 천지에 우리 일행 5명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천지 둘레의 아름다운 경관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맑고 파란 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지 표석 앞과 백두산 괴물의 형상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서 있는 맞은편에는 산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계단이 보였다. 함께 간 A씨의 말에 의하면, 그 길이 북한 사람들이 천지로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나는 비디오카메라를 줌으로 당기며 그 곳을 살펴보았으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쪽의 상황과는 판이하였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리지 않았다면, 저 길로 천지를 왔을 터인데, 제3국인 중국 땅으로 와서 건너다보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천지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연길로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고는 통일이 된 뒤에 저 편의 길로 다시 천지를 보러 오리라 다짐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폭포 아래로 내려와서 온천수에 삶은 계란을 사서 시장 요기를 하고 온천장으로 들어갔다. 전에 왔을 때는 천으로 사방을 둘러친 노천 온천장이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시설을 갖춘 온천장이 있었다. 실내 온천장 밖에는 자연스레 흐르는 물을 받아놓은 노천탕이 있었다. 나는 노천탕으로 가서 몸을 담그고 앉아서 자연의 오묘함을 새삼 느꼈다. 천지의 모습을 본 감동과 온천수의 따스함이 나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면서 편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차를 타고 와서 힘든 산길을 왕복하느라고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오후 8시경에 숙소로 돌아와서 서울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감격과 기쁨을 이야기하였다. 그 다음날은 연변 지역 동표들이 추석을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연길 시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 다음날은 용정(龍井) 지역을 둘러본 뒤에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 두 사람의 마음에는 백두산 천지를 본 감격과 기쁨, 숙소를 제공하고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여러 곳을 안내해 준 이 선생과 그 가족의 따스한 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글은 <충청문학 제17호, 서울 : 충청문인협회, 2006>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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