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에 있는 대학의 초빙교수로 와서 북경 생활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학교안의 작은 아파트에 가방을 풀고 나니, 학술대회에 참가하거나 관광을 왔을 때와는 달리 모든 문제를 안내자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섰다. 큰 문제는 학과 교수나 조교에게 말하여 해결한다지만, 작은 문제는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못해 막막하였다. 그렇다고 방안에만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아내와 함께 용기를 내어 바깥출입을 시작하였다. 먼저 학교 안을 거닐어 숙소의 위치를 확인한 뒤에 교문 밖으로 나가서 학교 둘레의 지리를 익혔다. 그 다음에는 이곳 교수님들이 알려준 대로 가까운 공원, 쇼핑센터를 걸어서 갔다 오기도 하고,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사먹기도 하였다. 좀 먼 곳을 갈 때에도 처음에는 택시를 타고 다녔으나, 뒤에는 지도를 보고 대강의 방향을 살핀 뒤에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렇게 생활하는 동안 나는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 

  거리에 나가서 제일 먼저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자전거의 행렬이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차도 양편의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자전거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자전거를 탄 사람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가득 메우며 달렸다. 자전거 행렬을 보고 있으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큰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내게로 밀려와 작은 충격과 전율을 안겨 주었다. 저 힘이 바로 중국을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서민들은 자전거를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전거를 집에 두고 승용차나 버스를 이용한다면, 교통 혼잡으로 시내는 마비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전거는 대도시의 교통 혼잡을 덜어주는 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는 데도 비만으로 보기 흉한 사람이 적은 것은 녹차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자전거 도로를 많이 만들어 출퇴근 때에 이용하게 함으로써 교통의 혼잡을 덜고, 유류를 절약하며, 대기 오염을 막고, 운동량을 늘려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게 하였으면 좋겠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또는 넓지 않은 인도를 걸을 때 나는 습관적으로 왼편으로 걷거나 비켜서곤 하였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 역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거나 비켜섰다. 그래서 길싸움을 하느라고 서로 길을 막아서는 사람처럼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닌 적이 몇 번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여기 사람들은 왜 좌측통행을 하지 않지? 일본 사람들은 잘 하던데.”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은 ‘우측통행’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 때 나와 마주쳤던 사람들은 나를 보고, ‘우측통행’도 모르는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옷차림이 매우 검박(儉朴)하다. 9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거리에서 넥타이를 맨 남자,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자를 만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강의를 하는 교수들 역시 편한 복장이고, 대학생들의 옷차림 역시 수수하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깔끔하면서도 다양한 옷차림과 차이가 있다. 2년 전 9월에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 때 더운 날씨인데도 정장을 한 사람, 양복의 윗저고리는 입지 않았더라도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사람이 많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은 겉으로 꾸미기보다는 내실을, 형식이나 명분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중국 사람들의 의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력 10월 1일은 국경절인데, 국경절 휴일이 며칠이냐고 물으니, 3일 또는 5일, 또는 7일로 대답이 각각 달랐다. 대학의 경우 7일을 쉬는 대학도 있고, 9일을 쉬는 대학도 있었다. 내가 있는 학교를 보니,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쉬고, 토요일과 일요일인 8일과 9일에 강의를 하였다. 휴일이 닷새인데, 이틀을 앞당겨 7일을 연이어 쉬었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에 강의를 하는 것이라 하였다. 7일까지 쉰 은행이 8일과 9일에 영업을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국경절이나 춘절(음력 설)에 쉬는 기간은 단위 기관마다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용하여 연휴를 만들어 쉬고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중국인들의 실용적인 사고의 표현이라 하겠다.
학교 안에서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기숙사에서 강의실로, 식당으로 옮겨갈 때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으며 담소하는 것, 이성의 친구와 손을 잡거나 허리를 껴안고 다니는 것은 한국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한적한 그늘 밑의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아주 달랐다. 이른 아침, 낮, 오후를 가릴 것 없이 한국 학생들처럼 몇 사람씩 모여 앉아 담소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개는 혼자, 또는 두세 명이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아 책을 읽거나 무엇을 쓰고, 영어 회화 연습을 한다. 식당이나 샤워장 앞에 줄을 서 있는 경우에도 앞뒤 사람과 담소하지 않고 각자 무엇을 읽거나 외우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친구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여서, 또는 공부한다고 티내지 않으려고 시험 시간 직전이 아니면 남이 보는 데서 무엇을 읽거나 외우지 않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중국에서 한국에 유학 온 대학원생이 한국과 중국의 대학생이 공부하는 모습을 ‘칼로 두부 자르기식’과 ‘스폰지식’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한국 학생은 실컷 놀다가도 시험 때가 되거나 과제를 할 때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밤을 새워 공부한다. 그러나 중국 학생은 조각나는 시간까지 활용하면서 꾸준히 공부한다고 한다. 대학생들의 공부하는 태도로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곳에서는 자동차도, 사람도 교통 신호를 엄수하기보다는 눈치껏 움직이는 것 같다.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으면, 보행자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사람들이 건너간다.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려 건너가려고 하면, 우회전하는 차가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유턴하는 차와 좌회전하는 차가 밀고 오기도 하고, 자전거가 달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길을 건너려면 겁부터 났다. 차들도 신호가 바뀌지 않았는데, 눈치를 보며 진행한다.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기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자기가 가려는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동차가 경적을 울려댄다. 앞서가는 자동차나 사람에게 경고의 뜻으로 울리는 경우에도 필요 이상으로 자주, 길게 울린다. 앞의 버스가 손님을 내리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 차가 움직일 때까지 경적을 울린다. 주택가나 학교 안에서도 걷다가 경음기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는 일이 많다. 숙소 안에서도 경음기 소리에 짜증이 나기 일쑤이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 앞에 육교가 있는데, 얼마 전에 육교의 바닥면을 뜯어내고 다시 입히는 공사를 하였다. 공사가 끝난 다음날에 그 육교를 올라가며 보니, 육교 바닥이 광고판이나 되는 듯이 명함 크기의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글자가 작아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보거나 앉아서 살펴보기 전에는 광고 내용을 볼 수 없는 데도 새로 만든 육교 바닥에 셀 수 없이 많은 광고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정말 광고의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버스 정류장에 가면 아치 모양의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의 위쪽에는 그 정류장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노선표가 붙어 있어서 이용하기 편리하게 해 놓았다. 그런데, 정류장 이름을 적어놓은 곳에는 대부분 광고지가 붙어 있어서 그 정류장의 이름을 볼 수 없다.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그게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처럼 중국말이 서툴러 물을 수도 없고, 차장들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도 없어서 버스 노선표에 적힌 정류장 이름을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길을 익히고, 내릴 곳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나, 길이 선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정류장 이름이 광고지로 덮여 있거나 떨어져 버렸으니, 시설을 해 놓은 취지가 무색해졌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 귀가 따가울 만큼 큰 소리로 휴대전화를 받는 사람,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 길가다 가래침을 뱉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런 것은 모두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 음식은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면서도 맛이 있으며 위생적이라 하여 점점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북경 시내에는 한국 요리 전문식당이 많이 있다. 내가 간 식당은 하나같이 손님들이 많아 식사 시간에는 자리 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름 있는 한국 식당에 처음 가서 불고기를 먹을 때의 일이다. 값이 싸고 맛도 좋았는데, 식후에 계산서를 보니, 불고기 1인분 값은 18위앤인데, 젓가락과 물수건 값이 2위앤, 숯불 값이 6위앤, 상추를 추가로 시킨 것이 6위앤이었다. 차나 생수 값을 따로 받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크게 이상하지 않았으나, 밥을 먹는데 필요한 젓가락, 불고기를 굽는데 필요한 불 값을 따로 받는 것은 아주 생소하였다. 한국에서 불고기를 먹을 때 불 값이나 추가로 시킨 김치나 상추의 값을 따로 받지 않는 습관에 젖은 나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동안 나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을 여러 번 받았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냐를 놓고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던 중 30여 년 전에 판소리 감상회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박동진 명창이 무대에 나와 허두가를 불렀는데, 관객들이 모두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이를 본 박 명창은 마이크를 빼어 들고서, “아니, 요 잡것들 요렇게 가만히 자빠져 있으려면 뭐 하러 왔당가? 집에서 낮잠이나 자지. 내가 소리를 하면 ‘얼씨구!’, ‘잘한다!’ 하고 추임새를 해야 신명이 나지.” 하면서 관객들을 놀린 뒤에 추임새 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관객들이 추임새를 하자, 박 명창은 신명이 났다. 그래서 그 날 소리판은 소리꾼과 관객이 한 덩어리가 되어 아주 흥겨워졌다. 우리는 서양 음악 연주회에 가서는 정숙하게 앉아 있어야 하고, 판소리 감상회에 가서는 추임새을 해야 한다. 서양 음악 감상회에 가서 ‘얼씨구’ 하고 추임새를 하였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고, 판소리 감상회에 가서 얌전하게 앉았다가는 ‘잡것’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의 문화를 한국의 문화의 잣대로 평가하여 이를 폄하하거나 추켜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것은 판소리 감상회에 간 서양 음악가가 “한국의 음악 청중은 듣는 태도가 나쁘다.”고 불평하였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이곳 문화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제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이곳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하여 이곳 사람들처럼 큰 두려움 없이 길을 건넌다. 그리고 음식점에 가서도 물 값, 불 값, 젓가락 값을 따로 청구하여도 그러려니 하고 돈을 낸다. 복식으로 된 아파트 복도가 컴컴하여 앞이 안 보이면, 발을 굴러서 소리로 감지하는 전등의 센서를 작동시켜 전등을 켜고 드나드는 일에도 익숙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나도 모르게 이곳 문화에 적응되고 있는 것이리라.

  <수필문학 통권 184호, 서울 : 수필문학사, 2006. 4. 1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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