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13일에 중앙아나톨리아의 서남쪽 내륙 평야 지대에 위치한 콘야에 갔다. 나와 아내는 아침 7시에 숙소 앞에서 양 선생, 충남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온 두 여학생과 함께 서비스 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콘야는 전에는 이코니움(이고니온)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와 로마 제국 당시에는 루가오니아의 수도였다. 신약 성서에 따르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을 왔던 곳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 와서 유대교의 회당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설교하였는데,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 무리들이 두 사도를 돌로 치려고 위협하여 할 수 없이 몸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사도행전 14:1~6). 이곳은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며 신앙생활을 잘하여 칭찬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나중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는데, 서기 235년에 초대교회 교회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곳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수도가 되어 11세기에 크게 번영하였다. 이 때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지금 남아 있는 많은 역사적인 경관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메블라나 박물관과 미나레 신학교가 가장 유명하다.

   콘야는 매우 아름다우며, 비옥하고 풍부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버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해진 넓은 평야에서 밀아마 등의 곡식과 체리, 살구 등의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여기서 생산되는 밀은 터키 전체 국민의 1년 양식이 되고도 남는다고 한다. 이 말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지방의 넓은 평야에서 나는 곡식의 양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콘야는 학자이자 시인인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Mevlana Celalleddin Rumi, 1207~1273)13세기에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즘(Sufism)을 창단한 곳이다. 그리고 수피즘의 상징으로 꼽히는 명상(冥想)의 춤 세마(Sema)’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오전 830분에 출발한 버스는 괴레메, 네브세히르, 악사라이 등을 경유하여 1250분에 콘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앙카라 대학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 김 교수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반갑게 만났다.

   우리는 돌무쉬(한국의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서 메르트 군이 알려준 하지 쉬크류(Hacı Sükrü)’ 식당을 찾아갔다. 콘야의 전통음식인 프른 케밥(Fırın Kebabı)’을 그 식당을 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몇 번씩 물어서 찾아갔다. 그 식당은 3대째 이어하는 프른 케밥 전문점이었다. 한쪽 벽에 역대 주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실내에는 터키 전통 농기구와 악기, 생활 용품 등으로 장식을 하였는데, 알맞게 배치되어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음식 이름의 프른(Fırın)오븐을 뜻하는 말이다. 주문한 음식은 얇게 썰어 오븐에서 잘 익힌 양고기를 보쉬피데(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불에 구은 빵의 일종)를에 싸서 접시에 놓았다. 먹기 전에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서울의 원할머니 보쌈이 연상되었다. 고기 맛은 부드럽고 연하며 고소하였다. 양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아내는 양고기 냄새가 나지 않아 좋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1인분은 150g15리라인데, 양도 적당하고, 값도 크게 비싸지 않아 좋았다. 일행 여섯 명이 모두 맛있게 먹었다며 만족해하였다. 그 식당을 꼭 찾아가라던 메르트 군의 말을 따르기를 잘한 것 같다.


   우리는 메르트 군이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메블라나 호텔로 갔다. 21실에 숙박료는 55리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방을 배정받은 뒤에 가방을 내려놓고, 시내 관광을 하였다.

메블라나 박물관(Mevlana Müzesi)

   메블라나 박물관은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 교단을 창시한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이다. 6,500의 부지 안에 자미와 수행 장소 등이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원래 궁전의 장미 정원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의 왕이 메블라나의 아버지 바하틴 벨레디에게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탑은 1396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곳은 메블라나 루우미가 메불라나 교단을 창시하던 때부터 1923년까지 메블라나 교단에서 사원으로 사용하였다. 1923년 터키에서 종교의 세속화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왕정(王政)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메블레나 교단은 크게 위축되어 교단은 해체되고, 메블라나 사원은 폐쇄되었다. 1927년에 사원으로 쓰였던 장소만 박물관으로 문을 열어 메블라나의 생활상과 교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되었다.

   이곳의 중심은 탑 바로 아래에 있는 성인들의 묘소이다. 여러 묘 중에서 관이 가장 큰 것은 루미의 묘로, 유해는 관 아래의 땅에 매장되어 있다. 여러 관들은 각각의 지위를 나타내는 커다란 터번을 올려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 박물관에는 메블라나 루미의 소지품, 세밀화(細密畵)가 그려진 코란, 의상, 신비스런 악기, 그리고 손으로 만든 양탄자, 비문, 문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터키 신비주의 이슬람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알랏딘 자미(Alaaddin Camii)

   메블라나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시내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서 셀리미예 자미와 알랏딘 자미를 비롯한 여러 자미와 박물관을 찾아갔다. 터키어를 잘하는 양 선생이 길을 물으며 앞서 갔으므로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면 되었다.

  메블라나 박물관 바로 옆에는 셀리미예 자미(Selimiye Camii)가 있다. 이 자미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리미예 2(재위 기간 1566~1574)가 건축하였다. 이 자미는 오스만 제국의 건축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자미로 꼽힌다. 자미 안에 들어가니 건물이 높고 창이 많아서 그런지 햇빛이 들어와 밝고 환하였다. 자미 안 분위기는 웅장하고 경건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 구석에는 이슬람식 큰절을 하고 기도하는 사람도 보였다. 자미 밖으로 나오니 마당에 셀 수 없이 많은 기러기들이 떼지어 와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있었다.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알랏딘 자미는 알랏딘 언덕(Alaeddin Tepesi)’에 자리 잡고 있다. 알랏딘 언덕은 콘야에서 사람이 제일 먼저 살기 시작한 곳으로,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이코니온 성이 있었다. 지금은 공원이 되어 버린 이곳에 알랏딘 자미가 있는데, 셀주크 터키인들에 의해 지어진 가장 오래된 자미이다. 이 자미의 건축은 루크네딘 마수드의 통치 기간(1116~1156)에 시작하여 1221년 술탄 알랏딘 카이쿠바드 1세 때에 완성되었다. 완성한 술탄의 이름을 따라 알랏딘 자미로 불린다.

   이 자미의 천장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은 42개인데, 대부분 로마 시대나 비잔틴 시대의 신전이나 교회 등의 건축물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자미의 내부에는 아무런 치장이 없음은 물론, 뒤에 지어진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색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하다. 이 자미는 기도 장소로서의 위엄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셀축 터키의 술탄 8명의 관이 보관되어 있다.

   알랏딘 자미를 보고 나온 우리는 카라타이 박물관(Karatay Muzesi)으로 갔다. 이 박물관은 13세기 중반에 셀주크 시대의 고관인 카라타이가 지은 신학교인데, 지금은 도자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시하고 있는 것들은 셀주크 시대의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제 미나레 박물관(İnce Minare Müzesi)은 카라타이 신학교와 비슷한 시기에 고관이었던 히사프 아타에 의해 지어진 신학교이다. 인제 미나레는 가는 첨탑이란 뜻이다. 첨탑이 번개를 맞아 부러져서 전체 길이의 3분의 1정도만 남아 있다. 정문 앞면에 장식된 기하학적인 문양은 셀주크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지금은 셀주크와 오스만 시대의 석조, 목조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메블라나(Mevlana)와 신비의 춤 세마(Sema)

   콘야는 13세기에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가 창단한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즘의 상징으로 꼽히는 명상(冥想)의 춤 세마(Sema)’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세마가 유명한 고장답게 기념품 상점에는 세마의 춤 동작을 표현한 크고 작은 도자기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세마의 춤 동작은 이 지역 광고에도 수없이 보이고, 가로등 아래에도 조명 장치를 하여 매달았다. 이를 보면 도시 전체가 세마의 신비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호텔 직원에게 세마를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는가를 물으니, 메블라나 문화회관에서 매주 토요일 730분에 공연한다고 하였다. 거리로 나와 크고 깨끗해 보이는 식당으로 가서 콘야의 전통음식이라고 하는 에틀리에메크 피데(Etliekmek Pide, 고기가 있는 피데의 뜻)’를 시켰다. 콘야가 자랑하는 전통음식 두 가지를 다 먹어보고 싶어서였는데, 점심에 먹은 프른 케밥과 마찬가지로 맛이 좋았다. 식사 후에 시내 버스를 타고 메블라나 문화회관으로 갔다. 오후 7시도 못되어 도착하였는데, 문화회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몇 시부터 입장하느냐고 물으니, 730분이 되어야 입장시킨다고 하였다.

   세마를 시작한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는 1207930일에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발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위대한 이슬람의 신학자였고, 어머니는 지역 지도자의 딸이었다. 루미는 12살 때 몽골의 침략을 피해 고향을 떠났는데, 1228년 셀주크의 술탄 알라딘 카이쿠바드의 초대를 받아 콘야로 왔다. 그는 콘야에서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힌두교, 불교 지도자를 만나 교류하면서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신학교의 교수가 되었는데, 이란에서 온 방랑자이면서 춤추는 수피신비주의자인 셈스를 만나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 전통적인 신학자, 법률가의 길을 가던 그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시를 쓰고 춤을 추면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였다.

   루미는 진정한 영적 지도자로서 명상과 기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슬람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 루미는 다음과 같은 7가지 교훈을 남겼다.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연민과 사랑을 태양처럼하라.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을 밤처럼 하라.
   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 하라.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기를 땅처럼 하라.
  
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있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행하라.
 
   루미의 사상과 낮은 곳으로 향한 사랑은 유럽 지성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6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우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17세기 화가 렘브란트, 18세기 작곡가 베토벤, 19세기 대문호 괴테 등도 직간접으로 루미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 지성들이었다.

   루미가 활동하던 시대에 아랍어로 씌어진 코란은 비아랍권의 서민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더욱이 이슬람교에서는 오해와 왜곡을 막기 위해 코란을 다른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에 따라 이슬람교는 아랍 중심의 지배자와 엘리트 계층만을 위한 신앙적 도구로 한정되어 가고 있었다. 루미는 코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도 누구나 일정한 영적 수련을 거치면 신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세마이다. 그는 독특한 회전 춤을 통해 누구든지 신의 경지를 경험하고, 궁극적으로는 신과 교통하면서 이슬람의 오묘한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마는 민중들에게 퍼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루미는 관용(寬容)과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이슬람을 재해석하여 이슬람 신비주의를 이룩하고, 그 안으로 인류를 품으려 하였다. 그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이나 무신론자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펼쳐 인류 모두가 상호존중과 화해를 통해 함께 사는 진정한 지혜를 제시하였다. 특히 용서와 관용을 강조했다.

   루미의 묘 앞 돌에는 아래의 시구가 적혀 있다.

    오라! 그대가 누구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불을 섬기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 오라. 우리들의 문은 절망의 문이 아니니, 그저 있는 그대로 오라!…….”

   루미의 관용과 상생의 이슬람 정신은 아랍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퍼져갔고, 다른 종교와 서로 섞이고 공생하면서 오늘날 비아랍 세계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그의 가르침은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이었고, 인류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1273년 루미가 세상을 떠나자 무슬림뿐만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40일간이나 되는 장례에 모두 하나같이 애도하고 참여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말해 준다.

   유네스코는 루미의 탄생 800주년이 되는 2007년에 루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여 그의 높은 정신을 기렸다.

   이슬람의 정통 수니파에서는 세속적인 음악과 춤을 금지한다. 신을 향한 마음이 흐트러지고, 타락과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슬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음악은 코란을 낭송하는 소리일 것이다.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음악과 춤이 하나의 종교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메블라나 종단의 수피 댄스 곧 세마이다.

   730분이 되니 문화회관 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라고 하였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문화회관의 공연장은 넓고 깨끗하였다. 30분을 기다려 8시가 되니, 악단과 노래하는 사람이 나와 의자에 앉았다. 악기는 터키의 전통악기인데, 우리의 대금과 같은 관악기도 있고, 기타와 비슷한 현악기도 있었다.

   잠시 후 흰옷을 입은 위에 검은 겉옷을 걸쳐 입고, 원통형의 흰 모자를 쓴 사람이 혼자 나와 중앙으로 와서 엎드려 절하고, 낮은 음으로 노래를 하였다. 그 뒤에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나왔다. 이들을 세마젠(Semazen)’이라고 하는데, 세마를 통해 수도하는 사람들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단순 연희자인지, 세마를 통해 수도하는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기도와 의식을 마친 세마젠은 한 걸음 걷고는 발을 모아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큰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는 겉옷을 벗고 음악에 맞춰 몸을 회전하며 춤을 추었다. 하늘을 향해 자기 몸의 축을 세우고, 눈을 지그시 감고 귀와 마음을 열고 알라를 부르며 몸을 빙글빙글 돌린다.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가리킨다. 고개는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였는데, 지구의 자전축(自轉軸)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돌고, 3명이 돌고, 잠시 후에는 20여 명이 모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옆으로 움직인다. 한 사람이 돌고, 옆 사람이 돌고, 모두가 도는 군무(群舞)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엄숙해 지고, 거룩함이 느껴진다. 이런 춤이 계속되는 동안 수도자는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신과 소통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이 입은 옷과 동작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흰옷은 에고(ego)의 죽음을, 검은 겉옷은 무덤을 상징하고, 원통형의 모자는 자신의 묘비를 상징한다고 한다. 벌린 두 팔은 영적인 합일을 의미한다. 하늘을 향한 오른 팔은 신의 은총을 받는다는 뜻이고, 땅을 향한 왼팔은 신의 은총을 전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지구의 회전 방향과 같이 왼쪽으로 돌고 돌면서 신 앞에서 하나가 되고, 모든 사람과 신의 창조물을 사랑으로 포용한다.

   음악은 악기만 연주될 때도 있고,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하는데, 곡들이 모두 경건하고 장중하였다. 모두가 돌며 춤을 추는 회전무가 끝난 뒤에는 다시 큰 원을 그리며 걷고, 그 뒤에는 다시 회전무를 하였다. 나는 신비감이 도는 세마를 보면서 전체를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터키 신비주의 명상춤 세마는 20059월에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온 50주년을 기념하여 한터 친선협회 및 한국 이슬람중앙회 주관으로 송파구민회관에서 선보였다.

   세마는 920분이 되어서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마음이 가볍고 경쾌하였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보니, 문화회관 앞 가로등 밑에 세마의 동작을 나타내는 조명등이 나란히 걸려 있다. 조명등의 세마 동작은 하늘과 땅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콘야는 2011624일에 장위교회 목사님을 비롯한 교우 20여 명과 함께 다시 방문하였다. 여행 일정 상 시간이 없어서 여러 곳을 보지 못하고 메블라나 박물관과 알랏딘 자미를 관람하였다. 이 날은 더운 날씨여서 알라딘 자미를 관람하고 나와서 알랏딘 언덕의 휴게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커다란 크리스탈 용기에 세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아 주었다. 한 그릇에 4리라로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싸기는 하였지만, 터키 아이스크림의 참맛을 즐기며 땀을 식힐 수 있어 좋았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중 <터키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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