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한 아파트 단지의 뒷동에 살던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1월에 미국 LA로 직장을 옮긴 사위를 뒤따라갔으니 잘 된 일이다. 그런데도 딸을 떠나보낸 나와 아내의 마음은 세상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하다. 3년 전 같은 아파트 앞 동에 살던 큰 아들네 가족이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갔을 때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 마음이 여린 아내는 아파트 뒤쪽 베란다에서 딸이 살던 아파트를 내려다보면서도 눈물을 글썽이고, 딸이나 외손자손녀 이야기만 나오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딸은 1996년에 결혼하여 서울에서 2년 간 신혼생활을 한 뒤에 한국 기업의 주재원으로 미국에 가서 4년여를 지낸 뒤에 200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 우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살았다. 딸은 12년을 사는 동안 두 차례 이사를 하였으나,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의 이사여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그 동안에 미국에 가기 전에 낳은 외손녀는 고등하교 2학년 학생이 되었고, 미국에 있을 때 낳은 외손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사위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50세 가까이 되자 자원하여 명예퇴직을 하였다. 퇴직한 후에 두 번이나 새로운 회사에 취업하여 몇 달씩 근무하였으나 그의 능력이나 뜻을 펼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던 중 중소기업의 미국법인 장으로 선발되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미국 유학을 하였고, 전에 미국 주재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발탁된 것 같다. 나이 50이 넘어 새로운 직장을 잡은 것도 다행스런 일인데, 자녀들의 학업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미국 LA의 법인장이 되었으니, 참으로 잘 된 일이다. 이 일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위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 믿고 감사한다.

 

   딸네 가족이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된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출국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그곳에 가서 잘 살기를 바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섭섭하고 허전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 동안 가까이 살면서 나눈 정이 깊고, 이번에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말은 아이들 공부가 끝나면 돌아온다지만, 그 때가 언제일지 모르겠다. 작은애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만 계산하여도 10년 넘게 걸릴 것이다. 대학을 마친 큰애가 학업을 계속할지, 직장은 어디서 잡을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돌아올 날을 쉽게 점칠 수 없다. 나와 아내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전처럼 가까이 살면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가까이 사는 동안 우리는 외손녀와 외손자가 하루하루 자라는 과정을 보고,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였다. 명절 때는 물론 시간이 맞으면 큰아들과 작은아들네 아이들까지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딸은 수시로 드나들며 집 안팎의 대소사를 이야기하였다. 나나 아내가 몸이 아플 때에는 문병 와서 위로하였다. 자기 볼 일로 백화점이나 마트에 갔다가도 예쁜 옷이나 신발이 있으면 사다 주었다. 자기 볼일로 어디를 갔다가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식이 눈에 띄면 사서 들고 왔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의 소식은 물론, 이웃 동네의 크고 작은 소식도 알려주었다. 딸은 우리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해 주었다.

 

  사위와 딸은 미식가(美食家)에 가까울 정도로 맛에 민감하다. 외손녀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점을 가본 다음에는 우리 부부를 데리고 갔다. 그래서 가까운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동네의 좋다는 음식점을 안내하곤 하였다. 음식 값은 우리를 대접하는 뜻에서 그가 내기도 하고, 좋은 곳을 안내받은 턱으로 내가 내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딸네 가족과 정이 깊어졌다. 그런 딸네 가족이 멀리 떠나고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 아니 서울이 텅 빈 것 같다.

 

  아내는 경동시장의 과일과 채소의 값이 동네의 마트보다 훨씬 싼 것을 보고, 이것저것 사려다가 나눠줄 딸이 없음을 생각하고 주춤하였다. 시내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딸네 가족과 함께 식사하던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예쁜 옷이나 장신구(裝身具) 가게 앞을 지나다가도 이를 사다 주면 좋아할 외손녀가 없음을 생각하고 눈물을 훔쳤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가 미국에 가거나 딸네 가족이 한국에 오면 만날 터이니 너무 아쉬워하거나 허전해 하지 말라고 위로하곤 하였다. 아내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도 가슴이 아리고 텅 빈 듯한 것을 어찌 하란 말이냐고 대꾸하며 눈물을 훔치곤 한다. 이를 보는 나의 눈가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곤 한다. 나는 아내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차에 태워 소요산으로 가서 산길을 걷기도 하고, 신북온천에 가서 쉬기도 하였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콘도에 가서 쉬면서 온천욕을 하고,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하였다.

 

  미국에 있는 딸과 외손자손녀와는 자주 카톡, 보이스톡,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는 동안에 가슴이 텅 빈 것 같던 허전함과 아리던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있다. 이제 그곳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기를 기도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주 안부를 전하면서 지내다가 만날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려야겠다.

 

  며칠 후면 대학의 교수인 큰아들이 연구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아들네는 1년 후면 돌아오겠지만, 딸네가 떠난 뒤에 바로 떠난다고 하니, 더욱 허전하다. 남아 있는 작은 아들네 가족과나 자주 만나야 할 터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바쁘고 거리가 머니 자주 만나기도 어려울 듯하다. 텅 빈 것 같은 허전함과 아쉬움을 달래며 지낼 일이 걱정이다.

                                                                            (201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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