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의실에서의 일이다. 강의실 앞쪽은 몇 가지 시청각 기자재가 자리잡고 있어서 수강생 60명이 모두 들어오면 통로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방인데, 수강생 중 몇 명이 교육실습을 나간 관계로 강의실 앞쪽과 뒷쪽에 빈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강의용 의자를 강의실 뒷벽에 붙이고 뒷문 쪽에 앉아 있는데, 늦게 들어오는 학생이 뒷문을 여니 문이 의자에 걸려 다 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딪는 소리가 났다. 그것을 본 나는 큰 소리로 '뒷문 앞에 앉은 학생은 출입에 방해가 되니, 옮겨 앉아요.' 하고 말한 뒤에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출석 부르는 동안에도 몇 학생이 문 부딪는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출석을 다 부른 뒤에 그 여학생을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않아 있었다.

   나는 그 여학생의 태도를 의아해 하면서, "출입에 방해가 되니 옮겨 앉으라는데 왜 그대로 앉아 있는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하고 말한 뒤에, 전체 학생을 향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말을 하였다. 그러느라고 몇 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여학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학생이 출입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담당 교수가 옮겨 앉으라고 세 번씩이나 말을 하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성을 높여 옮겨 앉으라고 세 번을 말하였는데도 옮겨 앉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면서 옆 자리로 옮겨 앉고, 의자를 안쪽으로 당겨 놓으라고 하자, 그제서야 옆의 책상으로 옮겨 앉았다.

   나는 그 학생이 옮겨 앉는 것을 보면서,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할까? 요즈음 학생들은 형제자매가 하나 또는 둘인 집에서, 부모님이 자기만을 위해 주는 분위기에서 자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지 못한 데다가 남의 말을 간섭으로 생각하고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 어린이나 젊은이들은 공주병과 왕자병 중증 환자라고 하니, 그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나는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에 온 뒤에는 다른 일을 하느라고 조금 전의 일을 잊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찾아와 강의실에서의 일을 사과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뒤에 앉은 까닭이 실은 남을 위한 배려였다고 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진심을 말하는 그 여학생을 보면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학생'이라고 꾸짖은 나 역시 학생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이어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생활할 것을 당부하자, 그 학생은 가벼운 표정으로 연구실을 나갔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나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적인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얌체 같은 짓을 하지 않음은 물론, 질서를 잘 지키며,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남을 골탕먹이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질서가 잘 지켜지는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될 것이 아닌가?     
 
   승용차를 운전하다 보면, 과속으로 달리기, 급히 차로 바꾸기, 불법으로 끼어들기 등 교통 법규를 어기는 차량들이 많다. 또, 혼잡한 교차로에서 서로 먼저 가려고 찻머리를 들이미는 바람에 차들이 뒤엉켜 혼잡을 가속시키는 경우가 많다. 주차장에 가 보면, 옆 차선에 걸쳐서 세운 차가 있어 뒤에 오는 차량 역시 옆 차선에 걸쳐 세우게 되어 결국은 한 대 또는 두 대를 세울 수 없게 하는 경우가 있다. 또, 진출로에 차를 세워 다른 차량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경우도 있다. 운전자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조금만 유의하면, 교통 질서·주차 질서가 확립되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운전하고 주차할 수 있을 터인데, 나만을 생각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많은 불편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몇 년 전에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본 사람들이 인도를 걷는 것을 보니, 여러 사람이 걸을 때에는 반드시 종대(縱隊)로 걸었다. 그래서 뒷사람이 앞질러 가거나 반대편으로 가는 사람이 통행하는 데에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였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지닌 남을 배려하는 예절이기도 하고, 좁은 인도를 효율적으로 통행하는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건물의 복도나 좁은 인도를 걸을 때 횡대(橫隊)로 걷는다. 그래서 뒷사람이 앞질러 갈 수도 없고,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 비켜가기도 불편하다. 통행 방법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일본 문화는 '종대 문화'이고, 한국 문화는 '횡대 문화'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을 하였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생긴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생활을 통하여 기르도록 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세수수건을 쓸 때에도 다른 식구를 배려하여 한쪽 자락만 쓰라고 하였고, 상위에 놓은 생선을 먹을 때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한쪽 부위만 먹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복도를 지나다닐 때에는 좌측 통행을 하고, 줄을 서서 다니라고 가르치고 훈련을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친다. 그래서 왕자병과 공주병에 걸린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이렇게 자란 어린이는 어른이 된 뒤에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는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쉽게 하게 되고, 심할 때에는 범죄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가정에서 부모가 가르침은 물론이고, 유치원·초·중·고교에서 교육과정에 넣어서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남의 처지나 형편을 헤아려 행동하는 사람,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는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 질서가 잘 지켜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사회가 구현(具現)되기를 기대한다.   

                <조선문학 통권 152(서울 : 조선문학사, 2004. 1)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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