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터키에 오기 전까지 ‘터키는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이 많고, 역사 유적과 기독교 성지(聖地)가 많은 나라’라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앞으로 여행할 나라로 꼽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내가 뜻하지 않게 터키에 와서 1년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수로 30여 년 간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한 뒤에 제자 교수의 권유로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해외 대학에 개설된 한국어문학과에 파견하는 객원교수 초빙 공고를 보았다. 객원교수를 파견할 여러 나라 중 터키가 가장 마음에 들어 응모하였더니, 다행히 선발되었다. 그래서 터키의 중부 지역 카이세리에 있는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객원교수로 오게 되었다.

   내가 터키에 간다고 하니, 잘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우 걱정을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걱정하는 이유는 이슬람 국가에 가서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하였다.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안전을 염려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이슬람교는 ‘한 손에 코란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선택을 강요하며 선교(宣敎)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뒤부터 이슬람교는 ‘무서운 종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미국의 9․11 테러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에 이슬람교도가 있다는 뉴스를 여러 번 접하였다. 또, 몇 년 전에는 이슬람교도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가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일로 이슬람교도는 종교가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식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구의 98%가 이슬람교도인 터키에 간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는 터키를 소개한 책을 읽으면서 터키는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한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세 번째로 많은 군인을 파견한 나라,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한국인에게 매우 친절한 나라,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며, 한국인과 정서면에서 통하는 점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 있는 터기문화원에 가서 젊은 터키인 교사한테 터키어를 배우면서 터키 사람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슬람 국가에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터키 카이세리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한국어문학과 학과장인 터키인 G 교수이다. 나는 G 교수를 비롯한 여러 교수와 학생들을 접하면서 터키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었다. 터키는 이슬람교의 수니파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종교의 세속화(世俗化) 운동을 한 나라여서 중동 이슬람 국가의 분위기와는 좀 다르다고 한다. 터키에 와서 보고 들은 것 중에서 다음의 몇 가지 일은 나의 이슬람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내가 터키에 온 것은 2009년 9월 15일인데, 그 때는 라마단 기간이었다.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은 금식(禁食)하는 달로,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다. 한 달 동안 금식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고,  신앙심을 키우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금식하여 절약한 비용은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주거나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해가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하고, 해가 진 후 저녁 식사를 할 때에는 가난한 사람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한다. G 교수에게 물으니, 아침 5시 전에 아침을 먹고, 저녁 7시 30분경에 자미나 TV에서 금식 해제 신호가 울리면 그 때서야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무려 14시간 30분 동안을 물도 마시지 않고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기독교에서도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물은 마시면서 한다.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단식(斷食) 투쟁을 하는 사람도 물은 마시면서 한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금식 시간에는 물도 마지지 못하게 한다니, 참으로 가혹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식사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참기 어려워 쩔쩔매곤 하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참을까! 이것은 깊은 신앙심과 인내심을 갖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린이나 노약자, 임신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도들이 금식에 참여한다고 하니, 이들의 신앙심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터키에서 살면서 이슬람교와 관련된 큰 명절을 두 번 지냈다. 한 번은 금식 기간이 끝난 다음날부터 3일 간 이어지는 ‘라마단 바이람(금식 명절)’이다. 이때에는 가족과 친지가 서로 만나 금식 기간을 잘 넘겼는가, 건강을 해치지는 않았는가를 확인하면서 명절 음식과 함께 단 것을 나누어 먹는다. 그래서 이를 ‘셰케르 바이람(설탕 명절)’이라고도 한다. 또 한 번은 라마단 바이람이 끝난 뒤 두 달쯤 되는 때에 4일 간 쉬는 ‘쿠루반 바이람(희생 명절)’이다. 코란에 보면, 알라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한다. 아브라함은 알라의 뜻에 순종하여 아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그의 믿음을 확인한 알라께서는 아들 대신 양으로 제사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구약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같다. 희생 명절은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셰케르 바이람을 지내고 한 달 뒤에 성지순례를 떠난 사람은 마호메트(Mahomet)의 탄생지인 메카(Mecca)에서 쿠루반 바이람을 맞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 집에서 명절을 맞는다. 희생 명절에는 각 가정에서 양이나 소를 잡는다. 가족이 많지 않은 집에서는 양을 잡고, 가족이 많은 집에서는 소를 잡는다. 친척이나 이웃이 뜻을 모아 소를 잡기도 한다. 그래서 희생명절에는 온 나라에서 수많은 양과 소가 제물로 목숨을 잃는다. 각 가정에는 메카를 향하여 절하고 기도하는 곳이 있는데, 대개 벽에 코란의 구절을 써 붙인다. 양이나 소를 잡을 준비가 되면 가족 모두 또는 가족 대표가 그 자리에서 또는 집안의 기도처로 가서 기도하고, 양이나 소를 잡는다. 양이나 소를 잡은 후에 다시 예배를 드린다. 잡은 양이나 소의 고기 중 3분의 1은 가족, 3분의 1은 친척 몫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불우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불우한 사람은 희생명절에 양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기 둘레에 양을 잡지 못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구호 단체나 기관에 의뢰하여 고기를 나누어 준다고 한다. 셰케르 바이람과 쿠루반 바이람에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만나서 명절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객지에서 살던 사람은 거의 다 고향을 찾는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교통의 혼잡이 극심하고, 교통사고도 많이 난다. 한국의 설과 추석에 귀성객으로 교통의 혼잡을 이루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한다. 해 뜰 무렵, 정오, 오후 4시 경, 해질 무렵, 잠자기 전에 기도를 한다. 마을마다 있는 자미(이슬람사원)에서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한다. 이를 ‘에잔(ezan)’이라고 하는데, ‘알라는 위대하시다. 모두 자미에 나와서 기도합시다.’는 뜻의 말을 길게 뽑아서 방송한다. 기독교에서 종을 울리는 것과 대조를 보인다. 에잔이 울리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기도를 한다. 금요일 낮에는 신도들이 자미에 가서 함께 기도한다. 이슬람교인들의 기도 내용은 한국의 기독교인이나 불교 신자들이 기도하는 내용과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들 역시 서원(誓願) 기도를 한다. 내가 만난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은 10년 전에 자가용 승용차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차를 사게 되면 자동차 값의 3분의 1을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서원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동차를 산 뒤에 약속한 대로 차 값의 3분의 1을 ‘불우한 어린이를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였다고 한다. 쿠루반 바이람에 잡은 소나 양의 고기 3분의 1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 주는 것이나 소원을 빌면서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슬람교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종교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슬람 교리는 이자를 받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남에게 돈을 빌려 줄 때에 이자를 받지 않는다. 은행에 돈을 맡길 때에도 이자를 받지 않는 예금에 가입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슬람교인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점은 물론, 규모가 큰 슈퍼마켓에서도 술을 팔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식을 하여도 술을 마시지 않고, 차나 다른 음료수를 마신다. 한국 사람들처럼 저녁식사 자리에서 반주를 하고, 1차나 2차를 가는 일은 없다. 그래서 시내의 상점이나 식당들도 비교적 이른 시간에 문을 닫으며, 밤늦도록 흥청거리는 일이 없다. 이곳이라고 하여 술이 아예 없고, 모두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술을 파는 슈퍼마켓이나 술집이 따로 있어서 그곳에 가야만 술을 사거나 마실 수 있다. 술집에 가지 않는 사람은 자기 집에서 술을 마신다.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돼지를 기르지도 않으므로 이곳에서는 돼지를 볼 수 없다. 한국어 연수나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갔던 학생들 중에는 기숙사에서 주는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돼지고기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는 먹을 수 없어서 밥과 김치만 먹은 날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는 학생에게 한국에서 파는 라면에는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면서 그런 줄 알았으면 먹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 사람들 중에는 한국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파는 한국 라면은 돼지고기 성분을 빼고 만들은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살인을 금하고, 자살도 죄악시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 폭탄 테러(terror)를 하여 많은 사람을 해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테러 집단이 이슬람교도로 알려진 것은 그들이 이슬람교의 교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서 이슬람교를 빙자(憑藉)한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 학생들은 신앙심이 깊은 학생도 있고, 좀 약한 학생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순박하고, 친절하다. 한국어과 학생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 카이세리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은 아주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내가 아내와 함께 시내에 나가면, 이상하게 보이는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들을 유심히 쳐다본다. 어린이들은 ‘헬로우’ 하고 부르기도 하고, 고등학교 학생들은 짧은 영어로 말을 걸기도 한다. 어른들은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르카다쉬(친구)’라고 하면서 악수를 청한다. 견과류나 빵과 과자 종류를 파는 가게에서는 맛이 어떨지 몰라 선뜻 사지 못하는 우리에게 맛을 보라고 권하고, 열심히 좋은 점을 설명한다.

  터키에서 1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에 이곳에 오기 전에 가졌던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없어졌다. 이슬람교도의 독실한 신앙심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슬람교에 대해 그릇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슬람교도 중에 테러 분자가 많다고 알고 있었던 것은 무장 테러 단체들이 이슬람교를 빙자한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종교는 교리(敎理)에 따라 추구하는 지향 가치가 있다. 그것은 교리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포괄적으로 말하면 ‘선(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종교는 선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니, 선교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인정해 주고, 자기 종교의 좋은 점을 자랑하면서 자기 종교를 믿도록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선교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 종교를 정치적 목적이나 주의(主義)․주장(主張)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른 종교에 대한 비방(誹謗)이나 배척(排斥)도 없어질 것이고, 다른 종교를 그릇되게 인식하거나 편견(偏見)을 갖게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이 글은 <<성동문학 10>>, 성동문인협회, 2010에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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