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에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들과 함께 강서구 방화동과 개화동에 자리잡고 있는 강서둘레길을 걸었다. 오전 1030분에 지하철 5호선 방화역에서 만나 오늘의 산행 코스를 추천한 권 박사의 안내로 옆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개화산 둘레길을 걸었다.

 

  제일 먼저 간 방화근린공원에는 소나무와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빈터에는 운동기구와 쉼터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근린공원을 지나 약사사(藥師寺)에 갔다. 약사사는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절인데,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9호와 40호인 3층석탑과 석불(石佛)이 있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개화사(開花寺)인데, 약수가 유명하여 약사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 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림의 소재를 찾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개화산 전망대에 오르니 행주산성, 북한산, 방화대교, 월드컵공원, 남산타워, 가양대교, 63빌딩 등이 한눈에 보였다. 그 옆에는 겸재가 가양동에 있는 정자 소악루(小岳樓)를 중심으로 한강 주변을 그린 <소악후월(小岳候月,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다)>, 양천 쪽에서 난지도 부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금성평사(錦城平沙, 금성의 평평한 모래펄)>, 목멱산에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 목멱산에 아침해가 떠오르다)> 등 여섯 작품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곳에 와서 진본(眞本)은 아니지만,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원조로 꼽히는 겸재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화산 정상에 오르니, 육각정자인 봉화정이 있고, 그 옆에 복원해 놓은 조선시대의 봉화가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라뱃길 전망대가 나왔다. 이곳에서 보니,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연결하는 아라뱃길과 김포시, 일산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늘길 전망대에 오니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보니, 조선 중기의 문신 심정(沈貞, 1471~1531)을 비롯한 풍산 심씨 가문의 묘 60여 기가 있는 풍산심씨 묘역이 있었다. 심정은 중종 14년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몰아내고 좌의정까지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경빈 박씨의 동궁 저주 사건이 드러나 삼사(三司)의 탄핵을 받고 강서로 유배되었다가 사약(賜藥)을 받아 죽은 인물이다. 심정의 묘를 둘러보면서 정권을 잡기 위해 사화(士禍)를 일으켰던 인물의 비참한 말로(末路)를 생각하니,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업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니, 마을 어귀에 높이가 26m나 되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조선 중종 때의 정승 심정이 심은 나무로 수령이 은행나무는 400, 느티나무는 450년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마을을 지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강서둘레길을 걸으며 서울 서쪽에 있는 개화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조선 시대의 인물 겸재 정선의 작품 활동과 심정의 정치 역정을 돌아보았다. 함께 한 회원들은 모두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