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024일에는 서울교대 1회 동기생 52 명이 모여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아침에 모교와 총동창회를 방문 한 후 포천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산정호수 둘레길을 걸은 뒤에 시내로 돌아와 모교 총장과 동창회장, 은사님을 모시고 간단한 기념식을 한 뒤에 저녁식사를 하는 순서로 진행한 조촐한 행사였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모교 교정에 동기생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약속한 9시 가 되자 50여 명이 모여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자주 만난 사람도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었고,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름과 기억 속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동기생들의 얼굴을 보니, 젊고 예쁘며, 늠름하고 패기 있던 모습은 원숙하고 품위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대학본부 건물 앞에 가니, 중앙현관 위에 교대 1회 졸업 50주년 기념 모교 방문 환영현판이 걸려 있었다.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모교와 총동창회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7층 회의실로 가니, 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총장의 환영 인사에 이어 모교의 변화발전의 모습과 현재의 상황을 동영상과 파워포인트로 브리핑(briefing)해 주었다. 행당동 캠퍼스에서 시작한 모교가 서초동 한복판에 자리 잡아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니, 자랑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뿌듯하였다. 행당동 캠퍼스는 지금의 캠퍼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행당동 캠퍼스의 사진을 볼 때 더욱 정겹게 느껴지고, 감회가 새로운 것은 50여 년 전에 젊은 우리들의 꿈을 길러준 정겨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모교와 총동창회 방문을 마친 우리는 중앙현관 앞에서 방문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대학 내의 시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전세 버스를 타고 포천 산정호수로 향하였다.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정다운 대화를 하였는데,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다른 자리에 있을 때에는 자리를 바꿔 앉으면서 이야기하였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지낸 일과 현재의 일들이 꼬리를 물고 화제로 이어졌다.

 

   포천에 도착하여 맛이 좋기로 유명한 식당으로 들어가 갈비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남암순 동기회장과 금년에 팔순을 맞은 이배춘 회원의 건배사는 졸업 50주년을 맞은 회원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으로 더욱 도타운 정을 나누며 건강하게 지내자는 내용이어서, 모든 회원들의 공감을 얻었다. 오랜만에 와서 먹는 포천 이동갈비의 맛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기생들과 자유롭게 자리를 옮겨가며 나누는 정담은 더욱 맛깔스럽고 즐거웠다.

 

   점심 식사 후에 2014년도 하반기 정기총회를 가졌다. 총회를 마친 뒤에는 산정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그런데 남은 일정에 맞추느라 걷는 거리를 단축하는 바람에 정다운 친구와 단풍이 든 산정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걷는 즐거운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정창덕 회원의 진행으로 앞에서부터 차례로 졸업 50주년을 맞는 감회를 말하기도 하고, 자기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저녁 630분에 서초동 음식점의 넓은 방에 자리 잡은 우리는 간단한 기념식을 하였다. 기념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동기회 회장의 개회사, 모교 총장과 총동창회장의 인사에 이어 재학시절에 우리를 가르쳐 주신 박붕배최병록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서울교육대학교 교가를 제창하였다. 이 자리에서 동기생들은 졸업 50주년을 기념하면서 뜻을 모아 모교 발전기금과 장학기금을 총장과 총동창회장께 전달하였다. 남암순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를 올곧은 교육자로 길러주신 모교 은사님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올리고, 훌륭한 교사에 대한 꿈과 열정을 담고 생활하던 재학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감회, 40여 년 간 교단을 지키며 교육의 현장에서 겪은 기쁨과 보람, 힘들고 슬펐던 일들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뒤에 유명(幽明)을 달리한 동기생들에 대한 아픔을 말할 때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기생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심언녕 회원의 지휘로 <서울교대 교가>를 제창할 때에는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식장에 들어갈 때 받은 악보를 보고서 교가를 까맣게 잊고 지낸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하였다. 악보를 보니, 다행스럽게도 교가의 가사와 멜로디가 떠올라 반주를 들으며 심 회원의 지휘에 따라 교가를 부를 수 있었다. 나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서울교대와 교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 것임을 생각하니, 서울교대와의 인연의 끈이 매우 질긴 것임을 느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이봉준 목사가 건배를 제안하였는데, 예배 시간의 축도(祝禱)처럼 지금까지 지낸 일에 대한 감사와 기쁨, 앞날에 대한 기원(祈願)의 내용을 담은 뜻 깊은 건배사여서 공감(共感)이 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여흥(餘興)의 시간을 가졌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 또는 힘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맵시 있는 춤을 추는 남녀 동기들이 있어 모두 칭찬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어서 오래 계속하고 싶었지만, 9시에 끝내기로 한 식당과의 약속 때문에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서울교대와 맺은 인연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학입학지원을 할 무렵에 서울교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고1 때 담임이셨던 정 선생님의 권유와 설득으로 법학과 지망(志望)의 뜻을 접고 서울교대를 지원하여 서울교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인연으로 졸업과 동시에 교사 자격증을 받고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 인연이 끈이 되어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된 동기동창생과 연애하여 결혼하였다. 아내와 나는 재학 시절에는 소원(疏遠)하여 겨우 얼굴과 이름을 알고 지낸 정도였으니, 같은 학교로 발령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저 평범한 동기동창생이었을 것이다. 서울교대와 맺은 인연의 끈이 평생 반려(伴侶)를 만나게 해 주었다.

 

   나는 아내의 도움으로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은 후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대학의 교수가 된 뒤에도 서울교대에서 배운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은 나의 교수 생활의 기본이 되어 강의와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서울교대와 인연이 있는 선배의 사랑과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교수로 30년을 지내고 정년퇴직한 뒤에 터키에 객원교수로 파견되어 4년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학, 한국문화를 가르칠 때에도 서울교대에서 배운 지식과 초등학교 교사 때에 얻은 경험은 큰 힘이 되었다.

 

   서울교대와 맺은 인연의 끈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사회적 성장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퇴직한 후에는 공무원연금을 받으며 교양 있고 수준 높은 동기생들과 교유(交遊)하면서 즐겁고 유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이처럼 서울교대와 맺은 인연의 끈은 정말 질기고 튼튼하다. 이러한 인연의 끈을 나에게 던져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한다. 오늘따라 교대 진학을 권유해 주신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과 함께 그리움이 크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으니, 이런 마음을 지그시 억누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20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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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암

   얼마 전 친구들과 서울특별시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 잡고 있는 일자산(一字山)에 갔다. 일자산은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산등성이가 ()’ 자처럼 이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자산에는 고려 말의 대학자였던 이집(李集, 1327~1387) 선생이 1368(공민왕 17)에 신돈(辛旽)의 비행을 비판하고, ()를 피하기 위해 숨어서 지냈다는 둔굴(遁窟)’이 있다. 이집 선생은 이 일을 잊지 않으려는 뜻에서 호를 둔촌(遁村)’이라고 하였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遁村洞)의 동명(洞名)은 이집 선생의 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일자산의 산길을 걸을 때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개암나무였다. 개암나무는 개암을 담은 파란 주머니를 다닥다닥 달고서 뽐내며 서 있었다. 요즈음 자주 가는 대모산에서 보지 못하던 개암나무가 몇 그루씩 무리를 지어 서 있는 것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함께 걷던 친구에게 이게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잘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개암나무와 그 열매 개암에 관해 간단히 말한 뒤에 조금 떨어져 걸으면서 개암과 관련된 일들을 생각하였다.

 

   개암은 모양은 도토리 비슷하며, 껍데기는 노르스름하고 속살은 젖빛이다. 맛은 밤 맛과 비슷하나 더 고소하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마을의 뒷산에 개암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 가을에 나무를 하러 산에 가서 나무에 달려 있는 개암을 따기도 하고, 땅에 떨어져 낙엽 속에 있는 개암을 줍기도 하였다. 그 때 겉껍질을 이로 물어 깬 뒤에 속껍질을 벗기고 먹던 개암의 고소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개암을 생각하면 어렸을 때 들은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옛날에 한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개암 하나를 줍자 이것은 아버지께 드려야지.” 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하나를 줍자 이것은 어머니께 드려야지.” 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또 하나를 줍자 그제야 이것은 내가 먹어야지.” 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비를 피하려고 산속의 오두막집에 들어갔는데, 비가 그치지 않았다. 날이 저물자 도깨비들이 몰려와 방망이 하나를 세워놓고, “밥 나와라!” 하면 밥이 나오고, “고기 나와라!” 하면 고기가 나왔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잔치를 하였다. 다락에 숨어 있던 그는 배가 고파 개암을 먹으려고 이로 겉껍질을 깨무니, ‘-’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놀란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놓아둔 채 도망하였다. 그가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와서 금 나와라!”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하면 은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마을의 한 젊은이가 일부러 도깨비가 나온다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그는 개암을 줍자 이것은 내가 먹어야지.” 하면서 주머니에 넣고, 그 다음에는 이것은 내 색시 주어야지.” 하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처럼 그는 자기와 자기 아내 몫부터 챙기고, 부모는 뒷전이었다. 그가 외딴집에 들어가 있으니, 도깨비들이 몰려왔다. 그가 개암을 깨물자 도깨비들은 다락으로 올라와 지난번에 가져간 방망이를 내놓으라며 때렸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도깨비한테 매만 실컷 맞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은 도깨비도 도와주지만, 자기만 아는 욕심쟁이는 벌을 받는다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산에서 나무하다가 개암을 줍게 되면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어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짐하곤 하였다. 그 후 나는 개암하면 고소한 맛과 더불어 도깨비방망이이야기가 떠오르곤 하였다.

 

   나는 부모님의 묘를 서울 가까운 곳으로 이장(移葬)하기 전까지 충남 홍성에 있는 선산(先山)에 벌초를 하러 다녔다. 벌초를 하러 가면, 선영(先塋) 가까운 산길 좌우에 늘어서 있는 개암나무가 나를 맞아주곤 하였다. 나는 개암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개암나무를 볼 때마다 옛일이 생각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만져보곤 하였다. 그러나 개암이 여물지 않아 맛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워하곤 하였다. 개암이 익을 무렵에 다시 성묘를 갔으면 부모님도 찾아뵙고, 개암 맛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작년에 김 교수 내외와 함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에 갔을 때의 일이다. 김유정의 생가와 전시관, 동상(銅像), 디딜방아 등을 관람하고, 안내표지판을 보면서 금병산 실레이야기길을 따라 걸었다. 그 때 길 옆 산언덕에 개암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개암나무들은 키가 크고, 아주 튼튼해 보였다. 개암나무가 자생한 것인지, 정성들여 재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내가 국내에서 본 개암나무 중 가장 크고, 개암도 많이 열렸다. 얼마 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연암(燕巖) 물레방아공원에 갔었는데, 그곳에서도 개암이 열린 개암나무 여러 그루를 보았다. 연암 박지원이 1792년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설치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에서 개암나무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나는 국내 여러 곳에서 개암나무를 보면서 터키 흑해 연안에서 보던 개암나무숲과 맛있게 먹던 개암을 생각하였다.

 

   나는 터키 카이세리에 있는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서 객원교수로 2009년부터 4년 동안 근무하였다. 그곳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슈퍼마켓의 견과류 코너에서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함께 간 그곳의 G 교수에게 물으니, 영어로는 헤즐럿(hazelnut), 터키어로는 픈득(fındık)이라고 하였다. 헤즐럿은 우리말로 개암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다가 먹어보니, 정말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어렸을 때 고향의 뒷산에서 주워 먹던 개암의 맛이 연상되었다.

 

   개암에 대한 기록을 보면, 동의보감(東醫寶鑑)에 기력을 높여주며, ()과 위()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 적혀 있다. 이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개암의 효능을 알았던 것 같다. 요즈음에는 개암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그 장점이 널리 알려졌다. 개암에는 지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단순불포화지방이어서 몸에 좋고, 항암물질인 택솔(taxsol)이 들어 있어 항암 작용을 한다고 한다. 또 개암에는 칼슘과 철분도 많이 들어 있어 골다공증(骨多孔症) 예방에도 도움을 주고, 콜레스톨 수치를 낮춰주며, 암세포 활동을 억제해 준다고 한다. 비타민 E가 많이 들어 있어 심장질환 및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의 대사성 질환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개암은 향()이 좋고 고소한 맛이 있어 커피와 초콜릿, 과자를 만드는 데에도 많이 넣고 있다. 얼굴과 피부에 영양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화장품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터키 속담에 한 줌의 픈득(개암)이 평생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을 보면, 터키 사람들도 일찍부터 개암의 효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개암은 터키미국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 생산되는데, 터키의 흑해 지방에서 전 세계 소비량의 70%를 생산한다고 한다. 나는 터키에 있는 4년 동안 개암을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고 먹었다. 내가 개암을 좋아하니, 나와 인연이 있는 터키 사람들과 터키를 오가는 한국 사람이 개암을 사다 주곤 한다. 그래서 터키에서 돌아온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하여 개암을 먹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개암을 아느냐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한다. ‘헤즐럿을 아느냐고 하면, “헤즐럿 커피요?” 하고 반문한다. 커피에 헤즐럿 향을 가미한 헤즐럿 커피는 마셔보았지만, 견과(堅果)인 헤즐럿 즉, 개암을 통째로 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묻는 것이리라. 요즈음에는 터키에서 수입한 개암을 남대문시장에서 판다고 한다. 개암은 예로부터 국내 여러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니,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맞지 않아 재배하지 못하는 식물은 아닐 것이다. 건강에 좋은 견과류이니 수입해 오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서 재배하여 많이 생산되었으면 좋겠다.

                                                   <청하문학 13, 서울 : 문예운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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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9)>

다 같이 기도합시다예배 처음 시간이오니는 부적절한 말

 

 

  대개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간에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를 하는 순서가 있다. 대표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보면, 앞에 나가서 바로 기도의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다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적절하지 않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은 사회자가 기도 순서임을 말하여 알거나, 혹은 말하지 않더라도 주보를 보고, 기도 순서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모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뒤에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한참 뒤에 들리는 첫 말이 다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라고 한다면 조금은 당황스럽게 된다. 이러한 엇박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대표 기도자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표 기도를 맡은 사람은 이런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말고, 바로 기도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기도 중에 지금은 예배 처음 시간이오니~또는 이제 예배를 시작하오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과 성가대의 입장에 이어 사회자의 예배 시작을 알리는 말로 시작된다. 대표 기도는 예배가 시작되어 조용한 기도(묵도), 성가대의 송영(頌榮), 예배에의 부름, 찬송, 성시 교독 다음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대표 기도를 하는 사람이 지금은 예배 처음 시간이오니라고 한다면, 기도하기 전까지의 모든 순서는 예배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못 말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예배의 시종(始終)을 주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예배는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이 말 역시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꼭 하고 싶으면 이 예배를 마칠 때까지 주께서 주관하시고,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예배 시작 전에 부르는 찬송을 준비 찬송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준비 찬송이 있고, 본 찬송이 있을 수 없다. 예배 시작 전에 찬송을 부를 경우에도 준비 찬송이라 하지 말고, ‘몇 장 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송관김기창,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서울 : 예찬사, 2000.

<기독교타임즈 제450, 2006. 11. 18.>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8)>

 너무 좋아요(감사합니다/예뻐요).’는 잘못된 표현

 

   교인들 중에는 예배가 끝난 직후에 목사님께 설교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을 준 장로님께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집사님께 아이가 너무 예뻐요.”라고 칭찬의 말을 한다. 이런 말은 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쓰는데, 실은 잘못 표현한 말이다.

 

  ‘너무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 분에 넘치게/ 과도하게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이다. 따라서 이 말의 한정을 받는 말은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참외가 너무 익었다.’고 하면, ‘참외가 지나치게 익어서 먹을 수 없다./ 참외가 곯아서 먹을 수 없다.’는 말이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고 하면 날씨가 지나치게 추워서 견디기 어렵거나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위에 적은 설교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는 설교 말씀이 지나치게 좋아서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장로님, 너무 감사합니다는 장로님의 친절이나 호의가 지나쳐서 과잉친절을 하였다는 말이 된다. ‘아이가 너무 예뻐요.’는 아이가 지나치게 예뻐서 좋지 않다는 말이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過猶不及). 그러므로 앞의 말은 설교 말씀이 매우 좋았어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주 예뻐요.’라고 하면 말하는 사람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바른 표현이 된다. 교인들 중에는 목사님의 말씀에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은혜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 감당할 수 없어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런 인사는 목사님께 대한 치하라기보다는 걱정을 끼쳐드릴 말이다. 이때에는 너무 대신에 많은이나 을 넣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어른들 중에 이 꽃은 너무너무 예뻐요.’라고 하거나, ‘걔는 너무너무 잘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너무너무를 강조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첩어(疊語)에 의한 강조는 아동 언어의 특징이므로 어른들이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너무너무란 말 대신에 매우/ 아주를 넣어 쓰는 것이 좋겠다. 이 말은 너무너무 미워.’, ‘홍수의 피해가 너무너무 비참하였다.’와 같이 한정을 받는 말이 가치개념으로 보아 부정적인 것일 때에는 써도 좋다.

<참고문헌>

박갑수, 우리말의 허상과 실상,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3.

                                                                        <기독교타임즈 제448, 2006. 11. 4.>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7)>

감사(축하)드립니다’는 감사(축하)니다’로 써야 

 

  손윗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런 언어 습관이 널리 퍼져서 교인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복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감사(感謝)는 한자어로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의 뜻을 가진 명사이다. 여기에 접미사 하다가 붙어 동사가 되었다. 고마움을 나타내는 것은 내 마음의 표현이지 드리는 것이 아니다. 말씀은 드린다고 할 수 있지만, ‘감사는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손윗사람이나 하나님께 고마움을 나타낼 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드린다는 말을 넣어 말한다고 하여 공경의 뜻이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남의 좋은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인사할 때 축하드립니다하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축하역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축하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축하'란 말 뒤에 '드린다'는 말을 넣어 말한다고 하여 공경의 뜻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 감사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은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으로 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말한 의도와는 다르게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사한다는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감사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지 말고,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같은 뜻의 말이지만, 쓰이는 자리에 맞게 구별해서 써야 한다. 기도할 때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같은 말을 중복한 것이므로 적절하지 않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영광돌립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역시 옳지 않다. 이 말에서 감사영광을 받아 서술하는 말은 돌립니다’가 된다.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다. 그러나 감사는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린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은 감사하옵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해야 한다.

<참고문헌>

이송관김기창,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서울 : 예찬사, 2000.

리의도,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꼭 알아야 할 것들, 서울 : 설필, 1997.

                                                                     <기독교타임즈 제447, 2006. 10. 28.>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6)>

‘십팔 번’은 ‘애창곡’, ‘즐겨 부르는 노래’, ‘장기’로 써야

 

 

  어느 학술 발표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식사 후에 오락회가 열렸는데, 진행을 맡은 사람이 참석자에게 노래를 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는 000님이 십팔 번 ×××을 부르겠습니다.” 진행자는 십팔 번(十八番)’이란 말을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뜻으로 쓴 것 같다.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도 흔히 듣는다. 교인 몇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사람이 “000 집사님의 18번인 000장을 부릅시다.” 하고 제안하기도 한다교인들끼리 돌아가며 찬송가나 가곡, 가요를 부르는 자리에서도 십팔 번이란 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전에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 <라구요>의 가사 중에 우리 아버지 십팔번은 000이구요, 우리 어머니 십팔번은 000”이란 구절이 있다. 이 노래는 방송 전파를 타고 널리 퍼졌다. 이 말은 일부 국어사전에도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재주’, ‘가장 잘 부르는 노래’, ‘장기(長技)’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에서 들여온 관용어로, 별로 달가운 연원을 가진 말이 아니다.

 

  십팔 번은 일본어 쥬우하찌방(十八番)’을 이르는 것이다. 후지이(藤井之男)가 엮은 <언어대사전(諺語大辭典)>에 보면, 이 말은 배우 이찌까와 단쥬우로우가(市川團十郞家)에 전하는 18종의 예()가 있는데, 무릇 자랑으로 하는 일을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이찌가와 단쥬우로(1660~1704)는 이찌가와가(市川家)7세손으로, 17세기 에도(江戶) 전기에 일본 전통 희극인 가부끼(歌舞伎)의 대표적 배우였다. 그는 이찌가와가의 7대에 성공한 열여덟 가지 예()를 정리하였다. 이것이 가부끼 쥬우하찌방(歌舞伎十八番)’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쥬우하찌방이라 이르게 되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십팔 번이 된 것이다.

 

  일본 가부끼에서 유래한 십팔 번을 우리의 노래나 연희에서 그대로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래를 말할 때에는 애창곡(愛唱曲)’, ‘즐겨 부르는 노래또는 잘 부르는 노래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노래가 아닌 춤이나 연희일 때에는 장기(長技)’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불필요한 일본어는 쓰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박갑수, 우리말의 오용과 순화, 서울 : 한국방송사업단, 1984.

박숙희, 반드시 바꿔 써야 할 우리말 속 일본말, 서울 : 한울림, 1996.

                                      <기독교타임즈 제446, 200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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